윤동주 시인의 작품세계 *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아명 해환(海煥). 북간도 출생. 연희 전문 졸업(1941) 및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 수학(1943). 중학 재학시 간도 연길에서 발행하던 '카톨릭 소년'에 동시 '병아리, 빗자루 오줌싸개 지도, 무얼 먹구 사나, 거짓부리' 등을 발표했으나 정식으로 문단 활동을 한 적은 없다. 1944년 독립 운동 죄목으로 체포되어 구주 복강 형무소에 수감되었고, 이듬해 옥사하였다. 1946년 유고(遺稿)인 '쉽게 쓰여진 시'가 경향신문에 처음 발표되었고, 1948년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간행되었다. 그의 작품 경향은 고도의 메타포(비유)와 시적 기교로 내면적인 인간의 자아성찰과 시대와의 비극적 대결을 통한 비극적 인식 속에서의 자아의 윤리적 완성을 꾀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자화상, 서시, 십자가, 병원, 또 다른 고향, 쉽게 쓰여진 시, 참회록, 무서운 시간' 등을 들 수 있다. * 윤동주의 작품 세계 1) 윤동주의 작품 세계는 불안, 고독,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과 용기로 현실을 돌파하려는 '현실 초극의 의지'가 표출되어 있다. 그의 시에는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울분, 자책, 그리고 밝고 희망찬 미래를 향한 신념, 희구, 소망의 '미래 지향적 의지'가 담겨 있다. 2) 특히, 그의 시를 일관하는 주요 정신은 '자아 성찰과 부끄러움의 의식' 그리고 이와 관련된 속죄양 정신'이다. 이러한 정신은 '서시'를 비롯하여 '참회록, 길' 등 그가 남긴 거의 모든 시에서 바탕이 되고 있다. '서시'에서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가리라'하고 다짐하고 있고, '참회록'에서는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에 비친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바라보며 자아 성찰의 의지'를 다지고 있으며, '길'에서는 잃어버린 자아를 찾기 위해 '담장 옆 길게 나 있는 길을 걸어가면서 담장 저쪽의 자아'를 찾아가는 의지를 읊고 있다. 3) 그런데 윤동주 시인의 자아 성찰의 정신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부끄러움'은 매우 솔직하고도 섬세한 감각으로 표현되고 있는 점도 특기할 만한 점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시 '별헤는 밤'의 '부끄러운 이름', 참회록의 '부끄런 고백', '쉽게 씌어진 시'의 '부끄러운 일', '길'의 '부끄럽게 푸른 하늘', '서시'의 '부끄럼 없는 삶' 등에서 이러한 사실을 거듭 공감할 수 있다. 4) 그는 적극적으로 현실에 가담하거나 적극적 행위를 통해 항일 운동을 한 시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동시대를 포함하여 한국 시문학사 전체 시기에 활동한 어떤 시인보다 가장 철저하고 진지한 자아 성찰을 통해 맑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로서 짧지만 뜻있는 삶을 살다간 영원히 기억될 시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 대표적 시의 정리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 우리는 ‘왜’ 그를 사랑하는가?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5기 최지혜기자
윤동주는 1917년 북간도 명동에서 태어났다. 명동은 조선 시대에서부터 힘들고 어려울 때나 종교적 혹은 정치적 박해를 피하려고 이주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그는 자라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여 역사의식을 기르고 문학관을 정립했다. 그리고 졸업 후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중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이듬해인 1945년 2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 윤동주의 연희전문학교 졸업사진(출처 Basic 고교생을 위한 문학 용어사전) ▲ 아름다운 우리말로 시의 미감 살려
△ 「별 헤는 밤」 일부 구절 (출처 본인) △ 「참회록」 일부 구절 (출처 본인) ▲ 식민지 지식인의 기구한 삶, 호기심 불러일으켜 2016년에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는 큰 관심을 받고 흥행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상황에서 지식인이자 시인으로서 역할과 실천에 대해 고민한 윤동주의 삶이 눈길을 끌었던 것이다. 윤동주의 기구한 삶은 관객이 그의 시에 큰 관심을 두게 했다. 식민지 지식인의 정신적 고통을 섬세한 감정으로 표현하고 투명한 시심으로 노래하여 한국인들의 마음을 울린 것이다. 그의 죽음에 관해 해결되지 않은 의문점은 시를 더 주목하게 한 요소 중 하나다. 윤동주는 일본에서 옥사했다. 그런데 윤동주의 사촌 송몽규가, 윤동주가 주사를 맞은 바 있다는 증언을 했고, 이 증언으로 윤동주가 일본의 생체 실험으로 사망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전해진다. 그의 죽음에 안타까운 마음과 부채 의식이 있기에 우리는 그의 삶과 시에 더 열광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일제강점기는 한국인들에게 지울 수 없는 아픈 시기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사망했다. 해방 6개월 전 젊은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안타까움을 더한다. 이러한 윤동주의 생애 때문에 한국인은 그를 더 기억하고 그의 시를 좋아할 수도 있다. 윤동주는 생전에 시집을 낸 적이 없고, 유고시집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한 권 나왔을 뿐이다. 시집을 한 권밖에 남길 수 없었던 사연도 시인을 더 아끼게 한다.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 표지 ▲ ‘부끄러움’ 가지고 자기반성을 시로 노래해 윤동주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자기반성을 시로 노래한 시인이다. 윤동주가 노래한 자기 성찰은 항상 ‘부끄러움’과 함께한다. 그가 독립운동을
한 흔적은 없지만, 자신의 선택을 부끄러운 일로 여기며 참회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 ‘부끄러움’의 감정은 절박한 시대 상황에서 자신이 실천적으로 행동하지 못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의 ‘부끄러움’은 조금 더 근원적이고 절대적인 윤리를 소망하며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게 했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며 시를 쓰고 고뇌했다. 윤동주 시의 ‘부끄러움’은 윤동주의 삶과 시를 지탱하는 근원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들 윤동주를 ‘반성적인 시인’이라고 한다. 그는 끙끙 앓으며 자기반성 하는 사람이었다. 동시대 시인으로 이육사가 있다. 그는 독립운동가로 활발하게 활동한 저항 시인이다. 윤동주와는 다른 행보를 보인 인물이다. 그의 시에는 독립을 향한 강인한 의지와 굳건한 결단력이 잘 드러난다. 윤동주 시의 특징인 ‘부끄러움’과는 다른 정서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육사의 시보다는 윤동주의 시에 더 공감하고, 윤동주의 시를 더 많이 찾는다. 아마 윤동주의 ‘부끄러움’에 더 깊이 공감하기 때문이리다. 암울한 시대에 선봉에 서서 적극적으로 불의에 대항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쉽게 선택할 수 없는 길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라는 뼈아픈 시기에 윤동주가 보인 성찰과 반성의 태도가 보통의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느껴지기 쉬웠을 테다.
물론, 윤동주가 저항 시인인지 아닌지 논쟁의 여지가 남아있어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 그가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보기 어렵고, 늘 그러한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만 느낀 것이라면 시대의 방관자가 아니냐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이 아주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시가 가진 힘이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최소한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아야 잘못된 과거에서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고,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아야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가 가졌던 ‘부끄러움’은 지식인으로서, 시인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꼭 필요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