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대표작 - binsenteu ban goheu daepyojag

[전시 리뷰]
'고흐, 향기를 만나다' 전시회 4월 3일까지 서구문화회관에서 열려
대표작 8점 작품 별로 향기 조향... 향으로 느끼는 고흐의 삶

빈센트 반 고흐 대표작 - binsenteu ban goheu daepyojag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서는 차가운 숲의 향이 난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의 레플리카 작품 전시회가 3월 4일부터 4월 3일까지 서구문화회관 아트갤러리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보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작품이 더욱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프루스트 효과’를 이용한 체험형 전시로 기획됐다.

프루스트 효과란 후각(향기)을 통한 자극으로 기억을 재생해내는 현상이다. 후각을 이용하면 더욱 강렬하고 인상 깊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작품은 고흐의 생애와 연관 지어 진열했다. 우중충한 색감의 초창기 작품부터 자살하기 전 마지막 작품까지 순서대로 감상 할 수 있다.

고흐의 삶과 작품에 대한 설명은 감상의 깊이를 더해준다. 설명 아래에는 동생 테오와 고갱 등 주변 인물과 주고받은 편지의 내용이 짤막하게 적혀 있어 관람객의 흥미를 돋운다.

빈센트 반 고흐 대표작 - binsenteu ban goheu daepyojag
고흐가 그림을 그릴 떄 사용한 색을 향으로 표현했다.

전시장 입구부터 향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고흐가 실제 그림 그릴 때 사용했던 색과 매치된향이 진열됐다. 마스크를 낀 상태로 직접 향을 맡을 수 있다.

로즈, 자몽, 바닐라, 화이트 머스크, 피오니, 라일락, 마린, 카시스, 샌들우드 향이다.

옆에는 고흐가 27세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사진, 작품과 함께 설명돼 있다.

고흐는 1886년 파리로 떠나 코르몽의 스튜디오에 합류해 젊은 예술가들과 교류한다. 인상주의를 접하며 빠른 속도로 화풍과 색채를 흡수해 우중충했던 고흐의 색채가 1년 만에 화려하게 피어난다.

빈센트 반 고흐 대표작 - binsenteu ban goheu daepyojag
시향지와 '해바라기'

고흐의 단짝이었던 고갱과의 일화와 이와 관련된 대표작 ‘해바라기’도 전시됐다. 고갱이 아를로 와서 고흐와 함께 지내기로 결정하자 고흐는 환영과 우정의 의미로 ‘해바라기’ 연작을 완성한다.

‘해바라기’는 고흐의 설렘을 닮은 향으로 마치 갓 꺾어온 해바라기처럼 푸릇하고 달콤했다.

고갱과 고흐의 인연은 길게 이어갈 수 없었다. 둘은 예술에 대한 시각과 성격이 매우 달랐고 많은 싸움이 발생했다. 결국 고갱은 1889년 12월 말다툼 끝에 고흐를 떠났다. 절망에 빠진 고흐는 자신의 왼쪽 귀를 절단한다.

빈센트 반 고흐 대표작 - binsenteu ban goheu daepyojag
'별이 빛나는 밤'

고흐는 이후 정신 요양원에 스스로 입원해 1년 동안 약 150점의 작품을 완성했으며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도 이때 탄생했다.

‘별이 빛나는 밤’은 단순히 실제 창문 밖 풍경을 옮겨낸 것이 아니라 상상과 결합한 풍경화다. 당시 고흐의 심리 상태처럼 그림 속 밤하늘은 소용돌이치고 있다.

‘별이 빛나는 밤’의 향을 맡자 홀로 우두커니 숲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차가운 밤을 연상시키는 향이었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별을 보는 것은 언제나 나를 꿈꾸게 한다”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듯이, 우리는 별에 다다르기 위해 죽는다”고 고흐는 표현했다. 그만큼 밤하늘은 고흐에게 무한함과 애정의 대상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 대표작 - binsenteu ban goheu daepyojag
3D 프린팅으로 재현한 '아이리스'

만져보는 작품도 준비돼 있다. 캐나다 국립 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작품을 대여해 3D 프린팅으로 재현한 것이다. 마련된 손소독제를 손에 바른 후 작품 ‘아이리스’를 직접 만져보며 고흐의 붓터치를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조향사들이 고흐의 작품과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조향한 향수가 사용됐다. 고흐의 대표작 ‘밤의 카페테라스’, ‘반 고흐의 침실’, ‘해바라기’, ‘아이리스’, ‘별이 빛나는 밤’, ‘꽃 피는 아몬드 나무’, ‘도비니의 정원’, ‘까마귀가 있는 밀밭’ 등 8점의 전시작품 옆 선반에는 시향지가 놓여있다.

톱 노트, 미들 노트, 베이스 노트 등 향에 대한 설명이 함께 있어 이해를 돕는다. 관람객은 각 작품의 특색을 살린 향을 맡으며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네이버 예약, 엔티켓을 통해 무료로 예약 가능하다. 1일 8회 회차당 50명씩 입장할 수 있다.

주말에는 ‘나만의 고흐 섬유향수 만들기’ 체험도 진행되지만, 현재 전 회차 매진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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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빌럼 반 고흐는 네덜란드 화가로 일반적으로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는 그의 작품 전부를 정신질환을 앓고 자살을 감행하기 전의 단지 10년 동안에 만들어냈다. 그는 생존기간 동안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사후에 비로소 알려졌는데, 특히 1901년 3월 17일 파리에서 71점의 반 고흐의 그림을 전시한 이후 그의 명성은 급속도로 커졌다.
반 고흐는 흔히 탈인상주의 화가로 분류 되며, 또한 인상파, 야수파, 초기 추상화, 표현주의에 미친 영향이 막대하며 20세기 예술의 여러 다른 관점에서 보일 수 있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은 반 고흐의 작품과 그의 동시대인들의 작품에 바쳐졌다. 네덜란드의 또 다른 도시인 오테를로에 있는 크뢸러-뮐러 박물관도 상당히 많은 빈센트 반 고흐 그림의 수집을 보유하고 있다.
반 고흐가 그린 몇몇 그림들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 사이에 순위가 매겨지기도 한다. 1987년 3월 30일에 반 고흐의 그림 '아이리스'가 뉴욕의 소더비즈에서 5390만 미국 달러라는 기록으로 팔렸다. 1990년 5월 15일에 그의 '가셰 박사의 초상'이 크리스티즈에서 8,250만 달러에 일본의 다이쇼와제지 명예회장 사이토 료에이에게 팔림에 따라, 새로운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당시 사이토가 지불한 8,250만 달러는 낙찰가 7,500만달러에 경매가 구전 10%가 가산된 금액이다. 이후 '가셰 박사의 초상'은 미국의 수집가에게 4천 400만 달러에 다시 팔렸다.

예민한 감수성의 아웃사이더 '빈센트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 대표작 - binsenteu ban goheu daepyojag

1853년 네덜란드 남부에서 태어난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독일 개혁 교회 목사의 아들로 6남매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흥미롭게도 고흐에게는 태어나기 전에 죽은 형(1852년)이 있었는데 그 형의 이름도 빈센트였습니다. 그의 형이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고흐는 살면서 죽은 형을 대신해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항상 했다고 합니다. 그의 원래 꿈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성직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번번히 신학 대학 입학에 낙방하고, 교회에서도 그의 기질과 성격적 문제를 들어 전도사로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녹록지 않은 세상 속 그는 지독한 가난과 고독에 맞서 싸우며 자신을 평생 뒷바라지한 가족이자 동생, 둘도 없는 친구인 테오 반 고흐를 깊게 의지했습니다. 테오의 조언으로 정식 화가가 되길 결심하고 그의 나이 27세, 그의 인생,  세상을 바꿀 화가로서 첫 발돋움하게 됩니다.

'자화상' 그리며 인물의 본질과 내면을 탐구하다

빈센트 반 고흐 대표작 - binsenteu ban goheu daepyojag

고흐만큼 자기 자신을 그린 자화상을 많이 남긴 화가는 없으며 그는 항상 무뚝뚝한 얼굴로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그렇게 남신 자화상의 개수만 무려 43점에 달합니다. 그가 이렇게 많은 자화상을 남긴 이유는 인물의 본질과 내면을 표현하는 인물화를 그리며 그림 실력을 늘리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고흐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사진가가 포착한 사진 속 내 모습보다 더 심도있는 나의 초상을 탐구하는 중이다'라고 적었습니다. 강렬한 색과 보색대비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위해 그는 자화상을 그리며 연습했습니다. 물론 모델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대표작 - binsenteu ban goheu daepyojag

자화상 속 고흐는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단정한 차림을 하고 있지만 머리는 밀짚모자나 페도라, 군밤모자를 쓰거나 아예 머리카락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수염을 덮수룩하게 기르고 파이프를 물기도 하고 , 수염 없이 말끔하게 앉아 있거나 심지어 귀가 잘린 모습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도시를 떠나 정착한 아를, 그리고 '해바라기'

빈센트 반 고흐 대표작 - binsenteu ban goheu daepyojag

고흐의 생애 중 가장 행복했던 시기는 프랑스 남부 아를(Arles) 지역으로 이주했을 때라고 합니다. 1888년 파리라는 대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낀 그는 심신의 안정을 되찾기 위해 보다 밝고 따사로운 태양빛과 다채로운 풍경을 갈구했습니다. 이주한 뒤부터 죽기 전까지 약 2년 반 정도, 고흐는 이 곳에서 약 300여 점의 작품을 쏟아냈습니다. 고흐는 친구 고갱(Paul Gauguin)과 함께 살기로 한 작업실 '노란 집'을 꾸미기 위해 해바라기를 잔뜩 그리기로 합니다.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는 다른 화가들이 그린 것과 다르게 물감을 두껍게 칠해 꽃의 입체감이 느껴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푸른 밤하늘, '별'보며 꿈을 꾸다

빈센트 반 고흐 대표작 - binsenteu ban goheu daepyojag

아를에 머물던 고흐는 편지에 '별을 그리기 위해 밖으로 나갈 것'이라고 적을 정도로 별을 사랑했습니다. 더불어 '캄캄한 어둠이지만 그조차도 색을 가지고 있는'밤의 풍경을 화폭에 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를 주변을 흐르는 론(Rhone)강 위로 빛을 내는 별들이 총총 박혀있습니다. 그리고 밤하늘의 색은 검정이 아니라 푸른색으로 칠해졌는데 이로 인해 고요한 밤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내 분위기는 활기가 넘쳐보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 대표작 - binsenteu ban goheu daepyojag

<별이 빛나는 밤에>는 고흐가 고갱과 다투고 자신의 귀를 자른 뒤 생 레미(Saint Remy) 정신병원에 있을 때 그린 작품으로 고흐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풍경을 직접보고 그렸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이 작품은 자신이 봤던 밤하늘을 떠올리며 그렸습니다. 보색인 진한 남색과 노란색을 사용해 밤하늘과 별과 달을 더욱 생생하게 그려내었습니다. 한편, 고흐는 죽기 전까지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을 타인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으나 그는 살아생전 사람들에게 끝내 인정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마음 속 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대표작 - binsenteu ban goheu daepyojag

실제로 그가 그린 유화 1,500여 점 가운데 팔렸던 작품은 <아를의 붉은 포도밭> 단 하나였습니다. <데이지와 양귀비를 담은 꽃병>도 있긴 하지만, 이건 그의 주치의이자 친구인 폴 가셰의 여동생에게 약값 대신 지불하다시피 한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팔린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불꽃같은 삶을 살다 37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비록 가난을 벗삼아 평생을 고독하게 보냈지만, 그는 자신이 남긴 수많은 명작들로 하여금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가슴 속에 불멸로 남아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