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각 나팔 부는 이유 - yang-gag napal buneun iyu

제목: 양각 나팔을 부는 의미

본문: 수 6:4-9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가라 하고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나아가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그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행진하며 후군은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더라

머릿말

주님의 은혜로 충만 하십시로.

여러분 만국기를 어느 때 달지요?

그러면 태극기는 언제 게양 합니까?

나팔은 어느 때 불까요?

저는 육십 년 대 말부터 군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는 기상나팔이 있었고 또 식사 나팔이 있었고 하기식 나팔이 있었고 취침나팔 까지 불었습니다. 그중에 기억되는 것은 식사 시간 나팔이 제일 생각이 많이 납니다.

가사가 생각나는데 ///밥은 밥은 꽁보리밥 국은 국은 된장국 식기 전에 빨리 먹어라.///

여러분 순종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어떻게 항상 순종을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덕목들 가운데 늘 강조되던 것이 바로 순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순종이란 완전한 믿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들이 이루어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순종을 직접적으로 수행하기 전의 상황은 수많은 불안과 근심과 심지어는 혼란도 생기게 됩니다. 말씀에 순종하기보다는 눈 앞에 산적해 있는 일들이 더 바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당장 삶에 도움이 되는 일이 더 중요하게 생각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해야 되는지 내 육신의 일 생활에서 눈에 보이는 일을 먼저 해야 되는지 혼란이 되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목사는 늘 그렇게 말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하려고 하는데 그놈의 미련 때문에, 아니면 고정 관념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다른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순종을 명확하게 기억나게 하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백성들의 마음을 단단히 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순종의 근거는 어디서 확인 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의 삶에 기준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정복하는 과정의 이야기입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다함께 오늘 본문 말씀을 읽어봅시다. 읽으실 때 양각나팔 또는 나팔이라는 단어에 주의 하면서 읽어봅시다.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가라 하고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나아가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그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행진하며 후군은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더라

하나님께서는 왜 여리고를 정복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양각나팔을 불라고 하신 것일까요? 다른 소리 나는 것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고 일반 나팔도 있었을 것인데 왜 특별하게 양각나팔을 불라고 하신 것일까요?

성경에 의하면 양각 나팔은 신년, 안식일, 절기, 안식년 또는 새 달이 시작되는 시간을 알리는 신호의 의미로서 나팔을 불기도 했으며 유대인들의 전통 가운데는 메시야가 올 때도 나팔을 불게 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양각 나팔에 대한 의미가 있었다.

'양각나팔'이란 말 그대로 양의 뿔로 만든 나팔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의 뿔로 만들어진 나팔을 불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을 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억 속에 무엇인가를 생각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양각나팔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창22장 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 장면이 등장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내실 때부터 이미 그에게 많은 자손들로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기간 동안 자손을 기다렸음에도 아브라함은 자손을 품에 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99세에 얻은 것이 바로 ‘이삭’이었는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다함께 성경을 읽어봅시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 22:1-2)

이때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고 나무와 불과 그리고 칼을 가지고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는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순종을 보시고 이것이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시험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뿔이 있는 숫양을 준비하셔서 그 숫양으로 제물을 드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창 22:13-14)

이 사건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의 뿔’이란 단어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순종을 기억나게 만드는 도구로 인식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의 뿔로 나팔을 만들어 부는 의미는 바로 양의 뿔로 만들어진 나팔을 불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가졌던 순종을 기억나게 하고, 또 이삭의 헌신과 희생을 기억나게 하며 또 이러한 순종과 헌신과 희생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준비 시키신 것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한 것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모든 절기 때마다 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부는 의미도 각각의 절기들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다시금 하나님 앞에 순종을 기억하도록 하며 안식일에 나팔을 부는 것도 안식일을 통하여 다시금 하나님 앞에 순종하도록 기억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양각나팔

오늘 본문 여호수아 6장에서 여호수아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명령 역시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너무도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수6:2-5]

본문에서도 기술하고 있지만 견고한 성읍이었던 여리고를 양각 나팔을 잡고 하루에 한 바퀴씩 돌라는 것이었고 마지막 일곱 번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일곱 제사장은 나팔을 울려 불고 백성들을 외쳐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여리고 성이 무너지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 말씀을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유대 랍비들의 해석에 의하면 여호수아는 이미 양각나팔에 관련된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여호수아 자신과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명령은 마치 옛날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셨던 명령들처럼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었지만 결국 아브라함과 이삭의 순종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스스로 준비하심으로 그 모든 일들을 처리하시고, 아브라함과 이삭의 순종과 허신은 받으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예루살렘 성전뜰이 있고 담이 있습니다. 그 담이 넓이가 백 미터이고 길이가 이백 미터라고 한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에 제사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온 사람들이 수십만 명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붉은 암 송아지의 재로 만든 물 뿌림을 받기 위하여 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당하기나 한 것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 하신다면 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믿음입니다.

온전한 순종과 헌신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명령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순종을 요구하던 명령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양각나팔을 붙들고 하나님의 궤와 함께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일곱 번째 날 일곱 바퀴를 돌고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각나팔을 울려서 불었습니다. 그 결과 여리고 성은 무너졌습니다. 여호수아역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도저히 이해 불가한 명령을 온전히 순종하고 희생함으로 따랐습니다. 거기에는 두 번의 질문도 따져 묻는 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심

하나님께서는 온전하게 순종과 헌신으로 대답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던 승리를 안겨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이삭을 하나님께 제사하라고 말씀하신 것에 대하여 즉시 순종하여 순종한 것을 하나님께서는 그 시험을 통과 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이삭이 자기를 희생하는 모습을 하나님은 가쁘게 받으셨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것 같이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삭 대신에 숫양을 주비하셨는데 그 양이 수풀에 양의 뿔이 걸렸습니다. 그 양을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양으로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명령에 순종하고 헌신하는 자에게 그리고 그 명령에 따라 희생을 각오하는 자들에게 이미 준비하시고 계시는 승리를 안겨주실 것입니다.

즉 양각 나팔을 불라는 하나님의 요구에 응답하는 자에게 안겨주시는 승리 입니다.

삶에 적용

우리들의 신앙생활에는 항상 커다랗고 견고한 성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순종하려고 하지만 순종할 수 없도록 만드는 여러 가지 불안한 요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불안하고 순종할 수 없도록 만드는 이런 여리고와 같은 성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명령하시 것은

온전히 순종하라, 온전히 헌신하라... 아브라함을 기억하라

즉 양각나팔을 불라... 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귓가에 양각나팔소리가 들릴 때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순종을 기억하고 우리도 그렇게 순종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고 순종하는 이에게는 그에게 필요한 승리를 주십니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여리고 같은 큰 문제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께 믿음으로 무릎을 꿇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갈 길을 인도하십니다. 그 길을 순종함으로 행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승리의 상급을 주실 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