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속 방정식 - misul sog bangjeongsig

[수학동아 2016년 2월호]

화려한 색채로 묘한 매력을 뽐내는 작품이 사실은 다항식의 근을 그래프로 나타낸 결과라면 믿기십니까? 마치 거장의 추상 미술 같은 이 작품은 바흐만 카탄타리 미국 뉴저지주립대 교수가 개발한 그래프 그리는 방법으로 탄생한 다항식 그래프입니다. 대체 어떻게 다항식이 예술 작품으로 변했는지 그 속내를 파헤쳐 봅시다.

미술 속 방정식 - misul sog bangjeongsig

종이에 물감을 마음대로 쭉쭉 짠 다음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편 데칼코마니 작품을 연상시킵니다. - 바흐만 카탄타리(미국 뉴저지주립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제공


뉴턴의 방법이 만든 예술 작품


10z48-11z24+1이라는 다항식의 근은 어떻게 구할까요? 이차방정식도 머리가 아픈데 근의 공식도 쓸 수 없는 무려 48차식이라니! 5차식 이상의 방정식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확한 근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수학자들은 다항식 근의 근삿값을 구하는 방법을 고안했지요. 미적분학을 고안한 아이작 뉴턴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그가 고안한 방법을 ‘뉴턴의 방법’이라고 부릅니다.

미술 속 방정식 - misul sog bangjeongsig

무려 36차식으로 만든 작품으로, 오리엔탈 문화의 진수로 평가받는 페르시안 카펫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습니다. - 바흐만 카탄타리(미국 뉴저지주립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제공


바흐만 카탄타리 미국 뉴저지주립대 교수는 뉴턴의 방법을 써서 다항식의 근을 그래프로 나타내면 멋진 작품이 탄생한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이런 작품을 ‘폴리노미오그래프’라고 부르고, 이를 만드는 작업을 ‘폴리노미오그래피’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다항식을 뜻하는 ‘Polynomial’과 그래프를 의미하는 ‘Graph’를 합쳐 만든 이름입니다.


뉴턴의 방법은 다항식 근의 근삿값을 구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구하고자 하는 다항식의 근을 초깃값 z0라고 가정하고, zn+1 = zn- f(zn)/f'(zn)이라는 식을 이용해 근에 가까운 점들 z1, z2, z3, z4, …를 차례로 찾아 어떤 수에 가까이 가는지 알아내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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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무늬와 색상으로 멋쟁이 티를 내는 나비의 실체도 다항식이랍니다. - 바흐만 카탄타리(미국 뉴저지주립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제공


그런데 초깃값을 잘못 잡으면 엉뚱한 값이 나옵니다. 따라서 정확한 근삿값을 구하기 위해서는 초깃값을 다양하게 잡아 계산한 뒤 그 중 같은 값으로 수렴하는 값을 다항식 근의 근삿값으로 정해야 하지요. 카탄타리 교수는 이렇게 같은 값으로 수렴하는 초깃값들을 같은 색으로 칠하면 멋진 이미지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든 것이지요.


카탄타리 교수가 개발한 프로그램은 조작법이 간단할 뿐만 아니라 뉴턴의 방법을 몰라도 쉽게 그래프를 그릴 수가 있습니다. 물론 다항식의 성질을 알면 훨씬 더 멋진 작품을 만들 수가 있지요.

미술 속 방정식 - misul sog bangjeongsig

마치 물구나무를 선 사람을 가뿐히 들어올린 것도 모자라 원형으로 대형을 이룬 곡예사들을 표현한 작품 같습니다. - 바흐만 카탄타리(미국 뉴저지주립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제공


바흐만 카탄타리 인터뷰


“다항식의 재미, 폴리노미오그래피로 찾으세요!”


안녕하세요. 바흐만 카탄타리입니다. 저는 대학에서 수학을, 대학원에서 컴퓨터과학을 공부했습니다. 수학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모두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중학교 때부터 배우는 다항방정식은 수학과 과학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이론의 토대가 되고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수학자와 과학자들은 방정식을 풀 방법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저도 뉴턴의 방법에 관심을 가지고 컴퓨터로 쉽게 다항식 근의 근삿값을 구할 수 있는 알고리즘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항방정식을 시각화할 방법이 떠올랐고, 그 결과로 폴리노미오그래피를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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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노미오그래피를 고안한 바흐만 카탄타리 교수님. - 바흐만 카탄타리(미국 뉴저지주립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제공


폴리노미오그래피의 매력은 딱딱한 다항식을 멋진 작품으로 표현해 많은 학생들에게 수학의 재미를 느끼게 해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 수준에 맞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중학생부터 대학원생까지 모두 폴리노미오그래피를 배울 수가 있지요. 이차방정식까지만 아는 중학생들은 이와 관련된 작품을 만들고, 복잡한 다항식을 풀 수 있는 박사 과정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다항식을 이용해 나타냅니다.


저는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12개국에서 폴리노미오그래피 워크숍을 개최했습니다. 한국은 2014년과 2012년에 방문해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강연했지요. 태극 문양의 작품을 만들어 보여 주자 학생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학생들의 잠재력은 대단합니다. 단순히 수학의 재미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조하거든요. 폴리노미오그래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무용이나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든 학생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앞으로 저는 수학이나 과학, 소프트웨어, 미술 교사들이 폴리노미오그래피를 이용해서 수업을 할 수 있도록 교육 내용과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제공할 계획입니다. 현재 교사들이 편리하게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폴리노미오그래피를 이용한 게임도 만들어 소개할 예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폴리노미오그래피를 통해 수학과 친해지면 좋겠습니다.

미술 속 방정식 - misul sog bangjeongsig

애플 앱스토어에서 ‘Poly-z-Vision’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으면 다양한 폴리노미오그래피 작품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안드로이드 버전은 곧 출시할 예정입니다. - 바흐만 카탄타리(미국 뉴저지주립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제공

미술 속 방정식 - misul sog bangjeongsig

저자: 이한진 출판사: 컬처룩 가격: 1만8000원

일상에서 수학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숱한 ‘수포자’들의 질문에 답이 될 만한 책이다. 기하학을 통해 수학과 예술이 어떻게 만나왔는지 다양한 사례를 들어 보여준다. 포항공대 수학과 출신으로 현재 한동대 글로벌리더십 학부 수학 전공 교수인 저자의 말에 따르면, 수학과 예술만큼 가까운 분야도 없다. “두 분야 모두 고도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는 이유에서다. 또 소나타와 교향곡, 시와 소설 등의 예술이 추구하는 ‘구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데는 수학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다.

책은 수학이란 학문의 본질부터 꼼꼼히 짚는다. 수학은 인류의 문명과 함께 시작된 학문이며, 실용적인 목적에서 출발했다. 저자는 “수학이 사회적 필요를 떠나 존재한 적은 없다”고 단언했다.

수학의 탄생과 발전은 농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온도 변화와 우기ㆍ건기의 시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것을 알아챈 인류는 정확한 달력을 만들기 위해 천문 관측과 산술 계산법을 발달시켰다. 또 강한 왕권 사회에서는 대규모 건설ㆍ토목 사업을 하기 위해 측량이 필요했는데, 이는 오늘날 기하학의 모태가 되는 지식의 발달로 이어졌다. 그에 따라 고대 문명의 발생지인 이집트나 바빌론, 중국과 인도 모두 기하학에 대한 실용적인 지식을 갖게 됐다. 논증적인 과학으로서의 기하학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됐고, 그 지식을 집대성한 것이 유클리드의 『원론』이다. 유클리드는 BC 3세기경 활약한 그리스 수학자로, 『원론』에서 피타고라스 정리를 비롯한 수학적 명제 465개를 증명했다.

기하학이 예술에 응용된 대표적인 사례는 건축물이다. 특히 12세기 등장한 고딕 양식 성당의 건축 미학은 수학적 법칙 안에서 구현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삼엽형(꽃잎 수가 세 개인 꽃 모양)ㆍ사엽형ㆍ오엽형 등 창의 잎새김 장식과 끝이 뾰족하게 치솟은 첨두형 아치는 유클리드 기학학을 이용해 자와 컴퍼스만으로 작도할 수 있다.

‘1대 1.618’을 의미하는 ‘황금분할’ 비율도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수학이다. 이상적 직사각형, 즉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직사각형을 뜻하는 ‘황금 직사각형’ 그리는 법에 대해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렇게 정의했다. 주어진 선분 AB 위에 점 E를 찍어, 선분들의 길이의 비가 AB:AE=AE:EB가 되도록 한다. 그리고 선분 AB를 가로로 해서 높이가 AE인 직사각형을 그려, 직사각형 ABCD를 만든다. 이 직사각형이 바로 황금 직사각형인데, 이 사각형 속에 있는 직사각형 EBCF와 닮은 사각형이 된다. 과연 점E를 어디에 찍어야 황금 직사각형이 되는지는 중학생 수준의 수학 실력으로도 충분히 구해낼 수 있다. 선분 AE의 길이를 a, 선분 EB의 길이를 b로 놓은 뒤, 닮은 사각형임을 응용해 (a+b):a=a:b라는 식을 만들고 a/b의 비율을 구하면 된다. 결과는 ‘1.61803’. 황금분할을 만들어내는 ‘황금수’다(글자를 읽는 것만으로는 호락호락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좀 수고스럽더라도 펜을 들어 그림을 그려보고 비례식과 이차방정식을 풀어본다면, 수학의 재미가 와락 쏟아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황금비율의 응용은 무궁무진하다. 피라미드와 파르테논 신전, 밀로의 비너스상과 조르주 쇠라의 ‘아스니에르의 물놀이’ 등이 황금비율을 통해 아름다움을 완성했다.

책은 저자가 한동대에서 수년간 강의해온 교양강좌 ‘수학과 문명’을 토대로 썼다고 한다. “수학을 어려워하고 부담을 갖는 학생들, 특히 디자인ㆍ건축ㆍ미디어 등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역사적으로 많은 예술가가 기하학에서 영감을 받아 방법론 등을 발견한 예를 보여 주어 수학에 흥미를 갖게 하고자 했다”는 게 기획 의도다. 융합 시대를 살아가는 일반인에게도 이 책은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수학은 결코 고립된 주제가 아니라는 것, 늘 우리 삶 속 가까이 있어왔다는 깨달음이다.

글 이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