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판 포스터
한동안 커뮤니티에서 자주 언급되었던 유전 감독의 차기작 '미드소마' 한참을 미루다가 어제 친구와 같이 보고 아무래도 후기를 남기고 싶어져서 열심히 정리해 봤어요... 위 포스터는 생소하실 수도 있겠지만 일본판 미드소마 포스터입니다 '히구치 유코' 라는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렸다고 하는데 일본은 기괴하고 묘한 걸 정말 잘 만드는 것 같아요 전세계의 포스터를 다 본 건 아닌데 우연히 포스팅을 위해 포스터를 찾으러 갔다가 이 일본판 포스터를 보고 너무나... 이 영화를 완벽하게 표현하는 포스터 같아서 일본판 포스터를 사용했어요 저는 영화를 넷플릭스에서 감상했습니다 (21.05.14)
도입부터 심상치 않은 그림을 보여 주는데 이 그림은 완전 복선 덩어리더라구요 유전에서도 그렇고 아리 에스터 감독은 운명론자라서 자신의 영화에도 그런 운명적임, 거부할 수 없이 정해진 것에 대해 자주 나타내는 것 같아요 이번 영화도 역시 관객들과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보다는 정해진 내용과 결말의 동화 한 편을 들려 주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스토리의 방향성을 처음부터 제시할 수 있는 그림을 원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위 그림인데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감독이 원했던 대로 영화 내의 4가지의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까 영화의 전개에 있어서 포인트가 되는 부분을 다루고 있어요 (대니의 입장에서) 이때 나오는 배경음악의 제목은 'prophesy(예언)'
첫 번째, 대니 가족의 죽음 눈과 메마른 나무, 땅의 상태를 보면 이 그림에서의 계절은 겨울인 것 같아요 가족들과 대니는 어지럽게 엉킨 줄들로 연결되어 있는데 해골이 그 줄을 끊어 버리고 있습니다 해골은 죽은 사람으로 사신이거나 죽음 그 자체를 의미하죠 이는 죽음으로 인해 분리된 대니와 대니 가족들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이 줄들은 얼핏 호스처럼 보여서 호스를 사용한 가스 자살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붉은 계열의 색상이라는 것, 대니의 배꼽 부분으로 이어져 있다는 점이 죽음과 상반되게 생명을 의미하는 탯줄 같아 보이기도 했어요 그렇다면 과연 탯줄이 의미하는 것은 뭘까 그것이 끊어졌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탯줄은 생명과 연결, 탄생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탯줄은 아기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 엄마와 연결된 상태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일종의 호스이고 태어난(탄생) 이후에는 이런 탯줄을 절단하게 됩니다 일차원적으로 봤을 때는 단순히 엄마(부모님)과의 연결이 끊어지는 셈이죠 위의 그림에서 줄을 탯줄로 본다면 죽음(해골, 사신)으로 인해 부모님(넓은 의미에서 가족)과의 연결이 끊어지고 대니가 다시 탄생한다 즉, 가족의 죽음 이후로 일어날 대니라는 인간의 가치관, 자아가 새롭게 태어나는 것(=변하는 것)을 내포하고 있지 않았나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니의 여동생과 부모님이 굳이 길게 늘어진 호스를 사용해 죽음을 맞이한 것 역시 감독의 의도된 장치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대니와 크리스티안 그리고 펠레 바로 앞의 그림과는 달리 땅에서는 새싹이 돋고 그림 전반에 푸르른 색이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대니는 슬픔에 잠겨 있고 그런 대니를 위로하는 크리스티안, 그리고 뜬금없이 나무 위에 앉아 있는 펠레 여기서 저는 크리스티안의 모습에 주목했어요 울고 있는 대니를 위로하고 있지만 한쪽 팔은 뒤로 감춘 모습인데요 바로 "Cross Fingers" 라는 서양의 문화가 떠오르더라구요
위의 손동작은 흔히 상대에게 행운을 빌어 주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대외적으로는 맹세하고 있지만 등 뒤로 숨겨진 크로스 핑거 이처럼 뭔가 숨기고 있거나 거짓인 상황에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맥락으로 사용하는 장면은 트루먼 쇼와 해리포터에서도 나와요
영화 < 트루먼 쇼 > 본인을 제외한 모든 인물과 상황이 통제된 쇼의 주인공인 트루먼이 결혼 사진에서 아내의 크로스 핑거를 발견하고 놀라는 모습 영화 초반부터 크리스티안은 이제는 질려서 버겁고 귀찮게 느껴지는 대니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싶어하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상황을 회피하며 대니의 불안과 집착을 가중시켰고 결국 대니 가족의 죽음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겹치며 이렇다할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영화가 전개되는 요인(대니와 함께 호르가 마을로 떠남)을 제공하게 됩니다 또 이러한 모든 상황을 관찰하는 듯 둘보다 높은 위치(나무 위)에서 둘을 내려다 보며 수첩에 무엇인가를 기록하는 모습의 펠레는 어쩌면 이 모든 상황이 펠레의 계획이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바로 이어지는 다음 장에도 나타나게 됩니다
세 번째, 피리 부는 사나이 펠레 점점 더 밝고 선명한 색상들을 사용하며 전의 그림보다도 훨씬 많은 꽃과 나무들이 그려져 있어요 이 부분에서도 복선은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특히 조쉬와 마크의 차림새를 보면 이들의 최후도 알 수 있어요 광대 옷을 입고 있는 마크 손에 책을 들고 있는 조쉬 둘 모두 관련된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는 아래 영화 줄거리 부분에서 더 상세하게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피리를 부는 펠레는 동화 < 피리 부는 사나이 >를 떠오르게 합니다 동화에서 피리 부는 사나이는 마을의 사람들이 저지른 잘못의 댓가로 아이들을 홀려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여기서는 펠레가 피리 부는 사나이의 역할을 맡은 듯 앞장서서 피리를 불며 나머지 네 사람을 알 수 없는 곳, 호르가 마을로 이끌고 있습니다 그리고 환영하는 마을 사람들의 뒤로 영화의 분위기가 반전되고 전개가 진행되는 사건인 'Ättestupa' 의식의 장면도 함께 그려져 있어요 아테스투파와 관련해서는 말들이 많은데 연구 결과 아테스투파 풍습에 관련된 정보는 구전 우화를 문서로 옮긴 책에서 발견한 것이고 실제로 성행했던 풍습이라는 사실은 명확하게 증명된 바가 없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고려장과 비슷하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와전된 이야기, 당대 상황에서 비롯된 일종의 도시 전설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마지막, 축제를 즐기는 호르가 마을과 대니 대니는 외부인임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과 같은 옷을 입고 함께 축제를 즐기게 됩니다 이는 결국 대니가 호르가 마을에 완전히 동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밝은 분위기 속에서도 언밸런스하게 섞여 있는 해골은 이러한 동화의 과정에서 필연적인 죽음을 암시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게다가 해골의 수는 5 영화 내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외지인의 수와 같아요
이렇게 도입부의 그림 한 장으로 모든 줄거리와 결말을 살펴 봤는데요 아래에서 좀 더 상세하게 리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동생 테리로부터의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받게 된 대니는 찜찜함을 느끼고 몇 번이나 테리와 부모님에게 연락해 보지만 연락은 닿지 않습니다 결국 음성메시지를 남기고 초조하게 방 안으로 돌아다니던 대니
불안한 마음에 크리스티안에게 전화를 걸고 상황을 설명해 보지만 돌아온 것은 크리스티안의 냉담한 반응이었어요
대니는 다른 친구와 통화하며 크리스티안의 태도에 대해 하소연을 하다가도 금세 기가 죽어 자신이 너무 심하게 크리스티안에게 의지하여 부담을 주는 것 같다며 자책해요 통화 내용으로 보면 과거부터 테리의 돌발 행동은 심심치 않게 발생했던 걸로 보여요 대니는 꽤 오래 전부터 여동생 테리의 조울증으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며 신경 안정제를 복용 중인 불안한 상태였습니다
테리에게 한 번 더 메시지를 전송한 대니에게 걸려오는 전화 여기선 발신자 제한이라고 나왔는데 그냥 저장되지 않은 번호(사고로 인한 병원 등에서의 연락)라서 이렇게 번역된 것 같아요
한편 매번 징징거리고 불안하게 행동하는 대니에게 완전히 질린 크리스티안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대니와 정리할 방법을 모색해 보지만 우유부단한 크리스티안은 나쁜 사람은 되기 싫은 듯 갖은 핑계를 댑니다 근데 이게 1년이 넘었대요 1년 넘게 헤어지려고 생각만! 하고 있는... 크리스티안도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피곤... 마크는 본인 일도 아닌데 마구 흥분해서 크리스티안에게 빨리 대니와 정리할 것을 강요해요 그러는 와중에 대니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오고 마크는 크리스티안을 말리지만 크리스티안은 결국 전화를 받습니다
부모님과 여동생은 가스 중독으로 죽음을 맞이한 상태였습니다 아무래도 대니는 이와 관련된 전화를 받은 것 같아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가스를 흡입하는 데 사용된 호스의 색은 노란색, 테리가 입은 셔츠의 색도 노란색, 부모님이 덮고 계시던 이불 역시 노란색입니다
대니가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감독의 이전 작품인 유전에서 딸의 죽음에 오열하던 엄마가 떠올랐어요 두 작품 모두 처음 죽음을 목격했을 때 절규하는 인물을 보여 주지 않아요 제 3자에게 초점을 맞춰 절규하는 목소리만 들려주다가, 장면 전환 후 당사자가 오열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 주는 연출이 유전 때와 똑같아서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어요
가족의 죽음 후 더 불안하고 예민해진 대니는 크리스티안에게 더욱 집착하게 돼요 파티에 간다는 크리스티안을 굳이 따라나서는 대니 사실 저는 여자친구가 저러면 좀 싫을 것 같긴 해요 아무래도 특수한 상황이니까 이해해야 하지만 음...
막상 도착한 파티는 당연히 재미도 없고 대니와도 맞지 않아요 게다가 대니 때문에 크리스티안과 크리스티안의 친구들 모두 불편한 듯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실없는 농담만 주고 받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대니에게 들린 충격적인 소식
그것은 바로 크리스티안이 친구들과 한 달 반 동안 스웨덴에 간다는 것
결국 귀가하자마자 전쟁 발발 이따 뒤쪽에서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지만 여기서의 대화 방식은 영화 전반 둘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꽤 중요해요
대니는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여행 일정에 대해 한 마디도 말하지 않은 크리스티안에게 서운함을 토로하며 역지사지로 설득해 보지만
마음이 뜬 크리스티안에게 역지사지는 통하지 않습니다 싸움 걸자는 것처럼 공격적이라고 마구 대니를 구박해요
대니랑 싸우다가 달래려고 스웨덴에 같이 가자고 했어 (???) 근데 아무튼 안 갈 거니까 걱정 마 (니가 어떻게 장담해...?) 근거는 없고 아무튼 안 갈 거야 걔 그런 거 싫어해 며칠 후인지 다음 날인지 친구들에게 폭탄 선언을 하는 크리스티안 어차피 대니는 참여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며 말을 맞춰 달라는 부탁을 했으나...
계획이 틀어져서 짜증 난 마크가 크리스티안과 집중 면담하러 간 사이에 거실에는 조쉬와 대니 펠레 세 명이 남지만 조쉬와 서로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둘만 대화 중인 대니와 펠레 펠레는 대니에게 자신의 가족(호르가 마을 사람들) 사진을 보여 주기도 하고 스웨덴에 도착해서 호르가 마을에 방문하면 어떤 축제를 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 줘요 살갑게 말을 걸고 대니의 슬픔에 공감하는 펠레의 모습에 대니는 위로를 받습니다
여자나 만나서 놀고 싶은데 목적지도 멀고 뜻대로 안 돼서 잔뜩 짜증이 난 마크
캡처가 잘 안 됐는데 헬싱글란드 현수막 역시 '노란색' 입니다 의도한 것 같아요
호르가 마을은 헬싱글란드 지역에 위치해 있어요 이해하기 편하시라고 한국으로 예를 들자면 스웨덴 = 대한민국 노를란드 = 서울 헬싱글란드 = 광진구 호르가 = 능동 스웨덴의 노를란드 지역 안 헬싱글란드 지방에 위치한 호르가 마을
호르가 마을로 가기 전 마을 입구의 넓은 들판을 즐기는 중(?) 펠레와 같은 마을 출신 형제라는 잉마르도 만나고 잉마르가 데리고 온 사이먼, 코니와도 인사를 나누어요
잉마르는 대니 일행에게 마약 성분의 음식? 풀?을 권유합니다 대니는 그다지 마약을 원하지 않아서 망설이고 그런 대니를 배려한 크리스티안 덕분에 용기를 얻은(?) 대니는 마약을 같이 먹겠다고 해요 단순하게 보면 이렇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지만 실상은 좀 다릅니다
이런 식으로 주변 상황을 이용하고 대니를 자극하면서 본인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도록 압박하는 거죠 심각하지는 않지만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스라이팅 가해는 크게 4가지 단계로 진행됩니다 1. 관계 형성 "나는 언제나 네 편이야." 2. 왜곡 "그게 아니라 **라고 말한 거지." 3. 고립화 "네 주변의 **는 좀 이상한 사람 같아. 나만 믿어. 그 사람은 믿지 않는 게 좋겠어. 나는 너를 제일 잘 알아." 4. 무시, 책임 전가 "왜 이렇게 예민해? 너 이상하다." 이러한 과정이 진행되면서 피해자의 경우 초반에는 가해자의 행동에 의문을 제기하고 맞서지만 초반에는 그 행동의 강도가 미미하여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별일이 아닌 것처럼 넘어가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해요 이것이 반복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자는 점점 고립화되며 가해자에게 의지하고 결국에는 스스로를 의심하고 무기력해지며 가해자를 전적으로 따르고 벗어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거죠 가해자는 대화 도중에 끊임없이 이상한 부분에서 꼬투리를 잡으며 피해자를 핍박하고 자신의 관대함을 강조해요 예를 들어 B가 약속 시간에 55분 늦은 상황에서 B가 가해자고 A가 피해자일 때 3일 후 이번에는 A가 약속 시간에 5분 늦은 상황
출저 https://youtu.be/gk9SW07ImJk 크리스티안은 표면적으로 대니를 배려하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지만 대화 내용과 상황을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제가 이전의 싸움 장면에서도 대화가 중요하다고 했던 이유입니다 그 대화에서도 예시와 같은 특징이 나타나거든요
교묘하게 말의 논지를 흐리고 대니가 사과하게 만드는 방식 제일 처음 장면에서 크리스티안과 통화 후 친구와의 대화에서 대니가 크리스티안을 변호하며 스스로 자책하는 것도 가스라이팅 피해자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어요
버섯 차와 마약을 섭취한 후 점점 취해가는 사람들 백야에 대해서 이상한 고집을 부리는 마크를 시작으로 다들 헛소리 대잔치를 벌여요
대니는 손등에서 풀이 돋아나는 환각을 봅니다 근데 별로 놀라지도 않아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서 자연을 느끼는 중에 펠레가 말합니다 "너희는 내 '가족'이나 마찬가지야." 가족이라는 단어에 버튼이라도 눌린 듯 가스가 새는 환청을 들은 대니는 깜짝 놀라서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산책을 나서지만
사람들이 본인을 비웃는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 감정이 점점 격해져요
스스로를 다독여 봐도 쉽게 진정되지 않는 감정에 대니는 결국 울음을 터트립니다
그곳에서도 지독하게 자신을 따라다니는 테리의 환영과 거울 속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면서 대니는 완전히 패닉에 빠져요
도망치듯 들어온 숲속에서 잠든 대니 다음은 그림의 세 번째 장으로 호르가 마을로 들어간 이후의 일들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쓰다가 보니까...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2부에서 마저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2부 예고...(?)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부에서 봬요 ٩๑❛ᴗ❛๑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