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 쓰는 방향 - mannyeonpil sseuneun bangh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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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은 일반적인 필기구와 비교할 때 사용에 제약이 많다. 그 제약 중 대표적인 것은 잡고 쓰는 방법이 굉장히 까다롭다는 점이다. 인터넷에 이와 관련하여 여러가지 정보가 있지만 당장 만년필에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정확한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

볼펜이나 수성펜은 어떤 각도에서든 쓸 수 있다. 심지어 볼펜의 경우 침전물이 볼펜 팁에 쌓이지 않도록 꾸준히 돌려가며 쓰는 것을 권하기도 한다. 샤프의 경우 샤프심이 골고루 닳도록 펜을 돌려가며 쓸 수 있게 개발한 제품마저 있다.

그러나 만년필은 닙의 양 날개가 종이에 정확하게 닿아야만 모세관 현상에 의해 잉크가 쏟아지게 된다. 그래서 조금만 각도가 틀어져도 긁는 듯한 필감이나 헛발질이 발생하고 심하게는 닙의 양 날개가 어그러져 단차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제대로 잡고 쓰는 것이 중요하다.

만년필 쓰는 방향 - mannyeonpil sseuneun bangh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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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잡아야 좋을까?

그렇다면 만년필은 어떻게 잡아야 할까? 이를 올바른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만년필 닙의 양 날개가 지면에 균등하게 닿도록 쓰라는 것이다.

이 말의 뜻을 곱씹어보자면 이 외의 다른 조건은 만년필 사용에 제약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자신이 볼펜을 평소에 얼마나 오랫동안 써왔든, 자신의 손이 얼마나 크든 그런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펜을 잡을 때 손가락을 세 개를 쓰든, 네 개를 쓰든 그것 역시 문제의 본질과는 전연 상관이 없다.

일반적으로 가장 크게 오해받는 정보 중 하나가 만년필은 위 사진의 좌측과 같이 엄지 관절에 걸치고 검지와 닙을 일선에 두고 써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빈티지 만년필들의 홍보 브로셔에 나타난 파지법이 이와 같은 모양이라서 이런 오해는 유독 뿌리가 깊다.

만년필 쓰는 방향 - mannyeonpil sseuneun bangh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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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파지법의 목적은 사용이 아닌 홍보에 있다.

정답부터 본다면 그렇게 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사람마다 신체 구조와 필기 환경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큰 글자를 쓰는 환경일수록 펜은 아귀의 안쪽으로 눕는다. 세필을 쓰는 환경이라면 반대로 펜이 아귀의 바깥쪽로 기운다. 게다가 팔꿈치를 얼마나 자유롭게 쓸 수 있느냐, 책상의 공간이 얼마나 허락되느냐, 심지어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상태에서 쓰느냐 불안한 상태에서 쓰느냐에 따라서도 펜을 잡는 모양은 항상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요컨대 올바른 파지법은 닙의 양 날개가 지면에 균등하게 닿느냐에만 관심을 둘 뿐 손 위에서 펜이 놓인 모양은 상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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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닙의 양 날개가 지면에 균등하게 닿는지 여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위의 사진은 내가 글을 쓰는 시각에서 바라본 평소의 파지법 모양이다. 당장에 보기에는 상당히 펜을 기울여서 쓰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방향에서 보아서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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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아까의 파지법을 그대로 유지한 채 펜의 끝단에서 닙 쪽을 향해 찍은 사진이다. 펜이 누워있는 방향에서 바라본다면 닙이 지면을 향하는 쪽에서 볼 때 정면의 12시 방향으로 놓여있다.

닙을 종이 위에서 위와 같이 향하게만 잡는다면 그 후는 적당히 힘을 빼고 가급적 펜의 무게에 손가락의 힘을 살짝만 얹어준다는 느낌으로 부드럽게 써내려가면 된다. 사실 파지법은 이처럼 상당히 단순한 문제다.

만년필 쓰는 방향 - mannyeonpil sseuneun bangh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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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사용시 바라보는 방향 / (우) 펜을 기준으로 보는 방향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만년필을 쓸 때 올바른 파지법은 닙의 양 날개가 지면을 향하는 쪽에서 볼 때 12시 방향으로 놓일 수 있도록 잡으라는 것이다. 이 원칙만 지킨다면 그외의 것은 자신이 쓰기에 편하도록 잡기만 하면 된다.

사용 시 닙을 바라보는 방향과 펜이 지면을 바라보는 실제 방향에는 다소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익히기 전에는 상당히 어색할 수 있다.

아래는 펜을 잘못 잡은 예시다. 아래와 같이 닙이 돌아간 상태로 쓰게 되면 닙의 양 날개가 어긋나며 종이에 닿게 되고, 이것이 반복되게 되면 영구적인 변형이나 손상을 줄 수 있다. 그 동안 펜을 쓰며 느끼는 기분 나쁜 필감은 말할 것도 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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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좌측으로 기운 상황 / (우) 우측으로 기운 상황

정확한 파지법을 한시라도 빠르게 익히기에 좋은 방법은 없을까? 파지법은 기능의 영역이고 이는 개인마다 반복과 연습을 통해 자동화가 되어야만 해결되는 문제이기에 일률적인 대안을 내놓기는 곤란한 면이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팁을 제시하자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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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캡을 꽂아 쓰는 펜이라면 클립을 닙과 같은 방향으로 꽂아두고 쓰는 것이다. 글에 집중을 하다보면 닙이 다소 돌아가더라도 느끼기가 힘든 경우가 있다. 이때, 커다란 클립이 돌아간다면 다소 쉽게 고쳐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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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새끼손가락을 포함한 손바닥이 지면 위에 단단히 자리를 잡고 펜을 잡은 나머지 손가락을 지지해주는 것이다. 위 사진을 보면 새끼손가락과 손바닥은 지면에 붙어있고 닙은 정확하게 정면의 12시를 향한 상태인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방향을 유지한 채로 글씨를 써내려가면 각 펜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