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 마츠 완력 - kala macheu wanlyeog

훌쩍, 훌쩍

이치마츠는 문득 귀를 거슬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환한 만월이 뜬 꽃동산에서 파란색 리본을 맨 고양이와 춤을 추는 이상하지만 재미있는 꿈을 꾸다 억지로 깨어난 이치마츠는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그래서 소리의 원흉-카라마츠를 이번에야말로 쳐 죽이겠다는 생각을 하며 일어나 앉아 빙글 자리에서 몸을 돌렸다.

“썩을 마츠, 너 죽고…!”

하지만 이치마츠가 높이 쳐든 주먹은 허공에서 굳어버렸다. 창밖의 낯익은 만월이 방을 비추고 있는 가운데, 그 어스름한 빛 속에서 카라마츠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얼굴과 쉼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땀으로 푹 젖어버린 머리카락, 이불을 꽉 움켜쥔 그의 손은 백지처럼 창백했다.

꽉 깨물린 입술에서부터 시작된 검붉은 한줄기 선이 목까지 그어지는 것을 본 이치마츠는 그제야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이불을 걷었다. 어둑한 가운데에도 카라마츠의 상태는 명확히 보였다. 얇은 파자마가 온통 땀으로 젖어있었고, 힘이 들어가 단단하게 굽어진 발끝도 이질적으로 하얗게 질려있었다.

“카, 카라마츠!”

손에 쥐고 있던 이불이 사라져서인지 이젠 제 가슴팍을 쥐어뜯듯 움켜쥐는 카라마츠에 놀란 이치마츠가 그 이름을 부르며 재빨리 그 손을 잡아챘다. 소름끼치게 차갑고 축축한 낯선 감촉에 이치마츠는 흠칫 몸을 떨었다.

“아아…, 정말! 시끄럽다구, 이치마츠 형.”

“뭔데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한다고.”

소란스러움에 형제들이 하나 둘 잠에서 깨어났다.

“오소마츠 형! 썩을, 카라마츠, 카라마츠가!”

“어엉? 카라마츠가 썩었다고?”

“이치마츠? 왜 그러는데.”

어울리지 않게 다급한 이치마츠의 목소리에 이상한 낌새를 감지한 쵸로마츠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켰다.

“무슨 일…!”

그리고 눈에 들어온 광경에 형제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카라마츠!”

한 손은 이치마츠에게 붙잡혔지만 비어있는 다른 한손으로 가슴을 쥐어뜯고 있었다. 그 손의 움켜쥠이 점점 강해지며 파란색 잠옷에 천천히 검은 얼룩이 번져갔다.

“혀, 형!”

카라마츠 옆자리의 토도마츠가 식겁해 카라마츠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형제들 중에서도 힘이 가장 센 카라마츠가 온힘을 다해 쥐고 있는 주먹은 토도마츠의 힘만으론 풀리지 않았다. 그것을 알아차린 오소마츠가 그 옆으로 재빨리 기어와 토도마츠를 도와 카라마츠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폈다.

“쵸로마츠 약상자! 쥬시마츠, 물!”

겨우 펴진 손을 토도마츠의 양손에 단단히 쥐어주며 오소마츠는 다른 동생들에게 지시했다.

“카라마츠! 카라마츠! 정신 차려!”

두 동생이 우당탕 시끄럽게 1층으로 내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볼을 가볍게 두드렸다.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좀 더 힘주어 때려도 좀처럼 정신을 못 차리는 카라마츠였기에 오소마츠는 가장 먼저 이 상황을 알아차린 이치마츠에게 물었다.

“이치마츠, 카라마츠 왜이래?!”

“모, 몰라. 나도. 자다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깨보니까….”

울먹이며 고개를 젓는 이치마츠의 손등은 카라마츠가 쥐고 있는 탓에 희게 질려있었다. 손톱으로 붉게 긁힌 자국도 보였다. 상당히 아파보임에도 이치마츠는 그 손을 놓지 않고, 오히려 더 힘주어 그 손을 맞잡았다.

말을 채 맺지도 않고 다시 카라마츠의 얼굴을 보면서 정신없이 ‘썩을 놈, 일어나, 일어나.’를 연발하는 동생에게 자세한 뭔가를 묻고 대답을 듣기란 요원한 일임을 안 오소마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떼며 크게 외쳤다.

“동생들이 울고 있잖냐! 일어나, 카라마츠!”

그리고 이어지는 철썩!하고 피부가 맞닿았다 떨어지는 소리. 가볍게 볼을 두드리는 수준이 아닌 풀 스윙으로 날려진 뺨치기에 토도마츠는 대경했다.

“오소마츠 형! 미쳤어!”

“안 미쳤어! 어쨌든 정신은 차리게 해야 할 것 아니야!”

“바보야?! 바보지?! 구급차를 부르라고!!”

“가위 눌린 걸로 무슨 구급차야!”

“얼어 죽을 이게 무슨 가위야!! 미친 장남!”

부랴부랴 약상자를 들고 들어오던 쵸로마츠가 놀라서 상자를 내팽개치고 다시 뺨을 때려보려는 듯 손을 드는 오소마츠를 등 뒤에서 잡아챘다.

“일어나, 카라마츠!”

“인간아, 좀! 카라마츠 얼굴 부은 거 안보이냐! 쥬시마츠, 물은 거기 두고, 이리 와서 형이 멍청한 짓 못하게 꽉 잡고 있어! 난 구급차 부를 테니까!”

“으, 응!”

법석을 떠는 그때였다.

“…이건….”

시장통처럼 시끄러운 틈바구니에서 벌레의 날갯짓처럼 작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미약한 목소리는 천둥처럼 형제들 귀에 박혀 방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카라마츠 형!”

“정신이 들어?!”

“거 봐! 가위라니까!”

“닥쳐, 얼간이 장남! 카라마츠, 괜찮아?”

“형! 카라마츠 형!”

모두가 카라마츠의 옆으로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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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둥이 라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쌍둥이 자체도 태어나기 힘든데 여섯 쌍둥이라니. 덕분에 쌍둥이 둘만 모여도 시선이 가는 판에 둘 이상이 모여서 거리라도 돌아다닐라 싶으면 여지없이 엄청난 시선들이 쏟아졌다. 다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집 밖으로는 왠만하면 혼자서 돌아다니던가 아니면 함께 우르르 몰려다니는 편이었다. 특히 왠만하면 셋 이상 몰려 다니려고 하는 편인데 왜냐하면...

뭐야, 쌍둥이야? 허, 존나 특이하네. 야, 니들 일로 와봐라.

딱 두명이서 몰려다니면 이렇게 시비 걸리는 일이 잦기 때문이었다. 오늘 이 불량배들의 레이더망에 걸린 건 막내 라인인 쥬시마츠와 토도마츠였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해서 함께 산책이라도 갈까 싶어서 나온 것인데 어찌 이리 타이밍 좋게 불량배들에게 걸려버린건지. 토도마츠가 마른침을 삼켰다. 쥬시마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 우... 우리...?

뭐야, 뭐야? 야구? 야구?

일로 와보라고, 새끼들아. 말 드럽게 못알아듣네. 쌍둥이들은 귀도 나눠서 태어나냐?

웃기지도 않은 개그에 지들끼리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을 본 토도마츠가 쥬시마츠의 긴 소매를 잡아 당겼다. 형, 도망가자...! 워낙에 힘이 좋은 쥬시마츠라면 모를까 막내인 토도마츠는 말그대로 막내 그 자체였다. 쉽게 말해서... 학창 시절 싸움을 해볼 기회는 앞의 제 형들의 선에서 딱 끊었기 때문에 토도마츠는 싸움을 무진장 못했다. 무엇보다 맞는 건 싫다고...! 내일 데이트 있는데 얼굴 망가지면 어떻게 해...! 토도마츠는 속으로 아우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런 토도마츠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 어느새 다가온 불량배가 토도마츠의 머리채를 잡아 끌었다. 아... 아! 아픔에 소리를 지르자 쥬시마츠가 주먹으로 머리채를 붙잡은 손을 내리쳤다. 딱! 뼈에 맞는 소리가 들리고 작은 비명이 터져나왔다.

씨발, 이 새끼가!

토도마츠, 놔줘!

뭐하냐, 니들! 빨리 이 새끼들 끌고 와!

그 목소리에 담배를 피고 있던 불량배 무리 중 서너명이 쥬시마츠와 토도마츠의 머리와 옷자락을 잡아채 골목으로 질질 끌어 내던졌다. 더러운 쓰레기더미에 내던져진 토도마츠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누군가가 토도마츠의 머리채를 다시 잡아챘다. 아, 아! 아픔에 머리채를 잡은 손을 움켜잡은 토도마츠는 바로 코 앞에 아른아른 거리는 담배불에 숨을 헉 들이마셨다. 금방이라도 얼굴을 지질 듯한 모습에 토도마츠는 입을 꾹 다문체 바들바들 떨었다. 그 옆에서 쥬시마츠의 비명이 작게 퍼졌다.

도, 동생 건들지... 윽!

꼴에 몇분 일찍 태어났다고 형인가 보지? 동생 걱정말고 니 걱정이나 하지, 그래?

아까 전 토도마츠의 머리채를 잡아 끌던 그 불량배가 쥬시마츠의 위로 올라타 마구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쥬시마츠에게 손을 맞은 게 어지간히 분했던 모양이었다. 혀... 형... 놀라 커진 눈에서 송글송글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토도마츠의 머리채를 붙잡은 불량배가 히히히 웃어댔다. 사내새끼가 울어대긴, 계집년 같이.

그러니까 순순히 오라고 했을 때 오면 좋잖아, 이 씨발 새끼들아. 아, 하여간에 눈치가 존나 없어요.

그 말에 주변에 있던 다른 불량배들이 키득키득 웃어댔다. 야, 빨리 털고 교육 좀 시켜서 보내자고. 하여간에 요즘 애새끼들은 말을 들어 쳐먹지를 않아요. 자신들을 도와줄 생각없이 무시무시한 말만 내뱉는 이 상황에 토도마츠가 눈을 꾹 감고 속으로 빌기 시작했다.

제발 도와줘, 아무나... 아무나 도와줘... 형... 형들 없어...? 오소마츠 형, 쵸로마츠 형, 이치마츠 형... 제... 제발... 아무나... 도와줘...!

야, 씨발. 내 동생들한테 뭐하는 짓이야, 니네.

토도마츠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던 걸까. 반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목소리, 그러니까... 마츠노 가의 차남, 카라마츠였다. 평소 보였던 그 중2병 섞인 허세는 어디로 가고 눈을 부릅 뜬 체 코에 걸려 있던 선글라스를 툭 바닥에 떨군 카라마츠가 천천히 골목 안쪽으로 들어왔다.

솔직히 처음 카라마츠를 발견했을 땐 토도마츠는 하필이면 카라마츠 형! 이라는 생각을 했다. 매번 허세를 부리며 동생들에게 맞아도 반항 한번 하지 않는 카라마츠가 자신들을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줄거란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기에. 그러나 토도마츠는 꿀꺽 다시 마른침을 삼켰다. 뭔가... 무섭다...! 카라마츠 형에게서... 뭔가 이상한 기운이... 이거... 무서워...!

후아,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손으로 벽을 짚었다. 짚은 곳에는 벽과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파이프가 있었다. 손으로 그곳을 단단히 붙잡나 싶던 그 순간 우득, 까드득, 콰득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바닥에 누운 체 고개만 뒤로 젖혀 그 광경을 목격한 쥬시마츠의 눈이 휘둥그레 졌다. 파이프를 고정한 나사들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파이프가 벽과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저건... 인간이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쥬시마츠, 토도마츠... 일로와.

그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쥬시마츠와 토도마츠가 불량배들의 눈치를 보다 몸을 일으켜 후다닥 카라마츠를 향해 달려갔다. 형아! 형! 놀란 두 동생이 카라마츠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런 두 동생들의 등을 상냥하게 두드려준 카라마츠가 오른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어느새 오른손에는 벽에서 떼어낸 파이프가 들려 있었다. 야구배트 길이 정도의 파이프를 카라마츠는 쥬시마츠에게 건냈다.

쥬시마츠.

으... 응?

혹시라도 저 새끼들이 너희한테 달려들면.

으... 으응.

그걸로 확 쳐버려. 야구배트로 공 쳐내듯이.

그 목소리에 힘이 잔뜩 실려 있다는 걸 알아차린 쥬시마츠가 잽싸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아, 그럼... 내 동생들 건드린 대가를... 치뤄야지, 이 쓰레기 새끼들아. 덤벼. 카라마츠가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명백한 도발에 열이 뻗친 불량배들이 우아아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카라마츠의 쇼 타임이 시작됐다.

주먹을 한번 휘두를 때 마다 한명씩 나가 떨어졌다. 자신보다 덩치가 배는 큰 불량배의 목덜미를 붙잡고 그대로 내던졌다. 눈을 빛내며 소리를 지르며 절도 있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야말로 야수였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쥬시마츠가 아! 하고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고보니 잊어먹고 있었어.

어...?

카라마츠 형아, 우리 중에서 힘이...

가장 쎄잖아! 그... 그러고보니... 토도마츠가 빠르게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자신들의 기억 속에 학창시절 때 싸움을 자주 하기는 했었다. 아무래도 육형제는 눈에 띄기도 했고 호기심에 툭툭 건드려보던 일진애들도 적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때마다 동생들, 그러니까 사남오남막내가 무사했던 이유는 바로 앞서서 형들이 모두 처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소마츠는 장남이라며 동생들을 먼저 살폈고 쵸로마츠도 보통 막내들을 다독이는 역활이었다. 분명 그때도 카라마츠 형은 없었는데... 그... 그럼 설마...?

지금까지 싸움에 가장 많이 나선게... 카라마츠 형...?

믿기지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그 증거가 바로 자신들의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지 않은가? 후아, 아아... 귀찮아, 정말. 불량배들의 리더로 보이는 남자의 멱살을 잡고 잠시 하늘을 바라보던 카라마츠가 스윽 고개를 내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미 주변에는 다른 불량배들이 나가 떨어져 신음만 흘리고 있었다. 카라마츠가 가볍게 남자를 들어올려 눈을 맞췄다.

너... 다시 한번 더 이 근처 어슬렁거리면 그땐 진짜 죽는다. 그리고 그때는 입으로는 먹을 수 없게 해주지.

그러곤 카라마츠는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다. 돌벽의 파편이 파스스 부서졌다. 그 말도 안되는 힘에 남자가 마구잡이로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한 카라마츠가 툭 남자를 던지듯 내려놓고는 천천히 뒤돌아 동생들에게로 다가왔다. 지금껏 자신이 보았던 카라마츠가 아닌 것 같은 기분에 토도마츠가 조심스레 입을 열려는 순간 쥬시마츠가 먼저 카라마츠에게 달려들었다.

형아!

오, 쥬시마츠! 괜찮아? 이 형님이 아우들의 원수를 갚았단다!

형아, 진짜 멋있어! 진짜 짱!

후후, 난 원래 멋있다고. 그래서 카라마츠 걸들이 항상 기다리고 있는거지.

들어올 때 떨어트렸던 선글라스를 다시 주어 쓴 카라마츠가 까딱 고개짓을 해보였다. 가자는 수신호에 쥬시마츠도 토도마츠도 카라마츠의 옆에 꼭 붙어 떨어질 줄 모른 체 세 사람은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는 이치마츠에게 얻어 맞아도 그저 웃고 넘어가는 카라마츠를 보며 이치마츠의 명복을 언제 빌어줘야 하나 고민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