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도 국가대표 - ilbon yudo guggadaepyo

차별 대우 탓에 일본으로 되돌아갔던 ‘선배’ 추성훈과 다른 길 걸어

재일동포 3세 유도선수 안창림(필룩스 유도단)이 국제대회에서 잇따라 좋은 성적을 올리면서 올림픽 금메달 기대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안창림은 1월13일 카타르에서 벌어진 국제유도연맹(IJF) 마스터스 남자 73kg 결승전에서 일본의 라이벌 하시모토 소이치를 꺾고 금메달을 따내 올해 도쿄올림픽이 정상적으로 열릴 경우 금메달 획득이 유력해졌다. 안창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20년 전,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가 극심한 차별대우로 인해 국가대표로 발탁되지 못해 다시 일본으로 귀화할 수밖에 없었던 유도선수 추성훈(일본명 아키야마 요시히로)과 비교되고 있다.

“이번에는 괜찮을 거야. 정말 이번만은 올바른 판정을 내려줄 거야.” 2002년 10월1일 부산아시안게임 유도 경기장에서 남자부 81kg급 결승전이 벌어졌다. 가슴에 일장기를 단 일본의 아키야마 요시히로와 태극마크가 선명한 안동진은 끝내 포인트를 내지 못하고 경기를 마쳤다. 아키야마가 안동진보다 훨씬 더 많은 공격을 했고, 시종일관 경기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나갔다. 그러나 안동진에게는 홈그라운드란 이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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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3일 2021 도하 마스터스대회에서 안창림(오른쪽)이 일본의 하시모토와 결승전을 치르고 있다.ⓒ연합뉴스

추성훈, 태극마크 달고 올림픽 뛰고 싶어 고국에 왔지만…

2명의 부심과 상의를 한 주심이 매트 위로 올라섰고, 이내 아키야마를 가리켰다. 아키야마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저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습니다.” 아키야마는 불과 1년여 전인 2001년 9월까지만 해도 추성훈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국 국적의 재일동포 4세였다. 그런데 추성훈이 돌연 일본 귀화를 결심한 것은 한국에서 극한의 차별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추성훈은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 부산시청 소속으로 활약했지만, 고국 사람들로부터 무시와 편견 그리고 차별대우를 받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자신이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유도에서의 차별은 견딜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특정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자신의 마지막 꿈인 올림픽에 나갈 수 없다고 판단해 일본 귀화를 결심했고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선수를 꺾고 금메달을 딴 것이다.

2016년 8월8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카리오카 2’ 경기장. 한국 선수단 가운데 금메달 후보 1순위였던 안창림이 73kg급 16강전에서 벨기에의 디르크 반 티질레에게 절반패를 당해 탈락했다. 안창림은 티질레에게 완전히 분석을 당해 잡기 싸움 자체가 되지 못했다. 유도의 기본인 ‘잡기 싸움’에서 밀리다 보니 성급하게 공격하게 되고, 체력만 소진돼 자신의 기량을 전혀 발휘하지 못한 채 끝내 절반패를 당했다.

안창림이 4강에 올라갔다면 일본의 오노 쇼헤이와 만날 수 있었는데 8강에도 오르지 못했고, 오노는 안창림이라는 라이벌이 일찌감치 탈락한 덕분에 어렵지 않게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다. 당시 한국 유도는 안창림을 비롯해 세계랭킹 1위 선수가 4명이나 돼 최소한 금메달 2개를 목표로 했다. 반면 일본은 세계랭킹 1위가 한 명도 없었지만 유도 종주국임을 내세워 좋은 성적을 자신하고 있었다. 한국에 세계랭킹 1위 선수가 많았던 건, 국제대회에 많이 참가해 랭킹 포인트를 쌓아서 만들어진 결과일 뿐이었다. 일본 선수들은 작은 규모 대회는 출전하지 않고, 부상과 전력 노출을 우려해 주요 대회만 참가했다.

안창림 선수도 그 희생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당시 안창림은 크고 작은 국제대회에 거의 모두 출전하면서 주무기인 ‘왼팔·왼쪽어깨 업어치기’가 노출됐다. 한국은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남자유도에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노 골드(은메달 1개, 동메달 1개)에 그쳤고, 일본은 7체급에서 모두 메달(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4개)을 획득했다.

안창림은 1994년 3월2일 일본 교토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일본 와세다대학에 유학한 후 교토에 정착했고, 아버지는 가라테 도장을 운영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아버지에게 가라테를 배웠는데, 가라테를 더 잘하기 위해 유도를 배우게 됐다. 가라테보다 유도가 더 재미있어 여섯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유도를 시작했다.

안창림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나의 꿈’이라는 작문에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되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싶다”고 썼고, “내가 패하면 (재일교포인) 우리 가족들이 슬퍼한다. 재능이 부족하다면 남보다 3배 더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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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일본과 한국 유도 장점 모두 갖춘 안창림

쓰쿠바대 2학년이던 2013년, 전일본학생유도선수권대회 결승전(당시 66kg급)에서 도카이대 4학년이던 하시모토 소이치를 만나 연장 접전 끝에 왼팔업어치기 절반승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일본 유도대표 코칭스태프가 결승전 경기를 지켜본 후 안창림에게 일본으로의 귀화를 제의해 왔다. 아버지 안태범씨도 재일동포의 설움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귀화를 권유했다.

그러나 안창림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어렵게 지켜온 한국 국적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한국 국적이란 이유로 일본에서 세계선수권대회, 올림픽 예선 같은 주요 대회에 출전 제한을 당해야 했다. 재일동포들은 일본에서는 한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한국에서는 ‘반쪽발이’라면서 무시당하고 있다.

2014년 2월, 평소 알고 지내던 전 국가대표 유도선수 안정환이 삼촌인 용인대 안병근 교수(1984년 LA올림픽 유도 71kg급 금메달)를 소개했다. 안창림은 안 교수의 도움을 받아 쓰쿠바대에서 용인대로 편입했고, 한 달 후인 3월에 한국 유도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됐다.

안창림은 추성훈과 달리 한국의 유도 명문인 용인대를 졸업했고, 자신의 실력대로 국가대표로 선발될 수 있었다. 2015년 쿠웨이트에서 열린 아시아유도선수권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해 일본 대표 하시모토를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하시모토와 라이벌을 형성해 각종 국제대회에서 여섯 번 만나 4승2패로 우위를 보이고 있다.

안창림은 이제 주무기인 왼팔업어치기는 물론, 안뒤축걸기, 빗당겨치기, 들어메치기, 조르기, 누르기 등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며 일본의 기술과 한국의 파워를 모두 갖춘 거의 흠잡을 데 없는 ‘완성형 유도선수’가 됐다. 1년 연기된 도쿄올림픽이 정상적으로 올 7월 개막하면, 하시모토와 올림픽 금메달을 다툴 가능성이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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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마크를 달고 처음 출전한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낸 재일교포 출신 유도 여자 국가대표 허미미. 여자 유도의 희망으로 떠오른 그는 2024 파리올림픽 금메달이 목표다. 김경록 기자

“한국 국가대표가 됐으니 세계 최강 일본을 꺾고 우뚝 설 거예요. 태극마크를 달면서 결심했어요.”

재일교포 출신 유도 여자 국가대표 허미미(20·경북체육회)는 이렇게 말했다. 허미미는 올해 한국 유도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대형 신인이다. 지난 2월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을 통해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는 지난 6월 처음 출전한 국제 대회인 조지아 트빌리시 그랜드슬램 여자 57㎏급에서 세계적인 강호를 잇달아 메치며 금메달을 따냈다. 8강에서 2016 리우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라파엘라 실바(브라질)를 꺾었고, 준결승에선 세계 4위 에테리 리파르텔리아니(조지아)를 쓰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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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빌리시 그랜드슬램 금메달을 목에 건 허미미(왼쪽 둘째). 사진 IJ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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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국제 대회 출전에서 우승한 뒤, 김정훈(왼쪽) 경북체육회 감독과 기뻐하는 허미미. 사진 IJF

신인 허미미는 단 한 차례 입상으로 단숨에 세계 33위까지 올라섰다. 한국 현역 여자 57㎏급 선수 중 최고 순위다. 한국 유도계에선 “한국 여자 유도 선수 중 올림픽 메달 획득 가능성이 가장 큰 선수가 바로 허미미”라고 말한다. 일본 언론도 “일본 여자 57㎏급 에이스 후나쿠보 하루카의 강적이 될 것”이라며 경계했다.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에서 만난 허미미는 “일본 친구들도 두려워하는 한국 유도의 에이스가 되겠다”고 말했다.

허미미는 2002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국 국적, 어머니는 일본 국적이다. 조부모는 모두 한국 국적이다. 그는 유도 선수 출신 아버지를 따라 6세 때 처음 도복을 입었다. 타고난 힘과 센스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중3 땐 1000여 명(본선·지역 예선 포함)이 출전한 전 일본 중학 유도선수권에서 우승하며 ‘유도 천재’라는 별명을 얻었다. 일본 여자 유도는 2020 도쿄올림픽 여자 7체급 중 4체급에서 금메달(52·70·78·78㎏급)을 휩쓴 최강국이다. 고교 시절에도 줄곧 전국 톱3 안에 든 특급 유망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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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미는 할머니 유언에 따라 태극마크를 달았다. 김경록 기자

허미미는 우리말이 서툰 편이다.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초·중·고교 내내 일반 일본 학교에 다녔다. 한·일 이중국적자라서 한국 청소년 대표로 뛴 적도 있지만, 특별히 한국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행을 결심한 건 지난해 세상을 떠난 할머니 덕분이다. 할머니는 “미미가 꼭 한국에서 국가대표가 돼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허미미는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경북체육회 유도팀에 입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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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조 할아버지인 독립운동가 허석의 순국기념비 옆에 선 허미미. [사진 경북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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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 처음 입촌한 허미미. 사진 대한체육회

그런데 이 과정에서 허미미가 독립운동가 허석(1857~1920년)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허석은 일제강점기였던 1918년 경북 지역에 항일 격문을 붙이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던 독립투사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경북 군위군에 순국기념비가 있다. 김정훈 경북체육회 감독은 선수 등록 업무를 위해 허미미의 본적지를 방문했다가 군위군 관계자로부터 “허미미가 독립운동가 허석의 후손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 감독은 경북도청, 국가보훈처, 주일대사관 등은 물론 지역 면사무소까지 찾아다니며 가족 관계 자료를 샅샅이 뒤졌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까지 나서서 허미미와 김 감독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그 결과 허미미의 할아버지인 허무부 씨가 허석의 증손자라는 것을 확인했다. 허미미는 “현조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굉장히 놀랐다. 태극마크에 더 큰 자부심을 가지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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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미는 톡톡 튀는 MZ세대다. 와세다대 2학년인 그는 공부와 운동을 모두 잡을 만큼 욕심이 많다. 김경록 기자

허미미는 ‘공부하는 유도 선수’로 유명하다. 일본체육대, 메이지대 등 유도 강팀의 스카우트 제안을 뿌리치고 명문 와세다대에 입학했다. 현재 스포츠과학부 2학년이다. 허미미는 “고교 시절 막연하게 명문대생을 꿈꿨는데, 와세다대는 유도부 전력도 좋은 편이었다. 입학하면 좋아하는 유도와 공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A학점을 받기 무척 어렵지만, 유도를 하면서 경쟁하는 건 익숙해서 괜찮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을 모두 잘 아는 만큼 양국의 가교 역할을 하는 스포츠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와세다대에서 유도와 학업을 병행하던 허미미는 이달 초 처음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 합류했다. 키 1m59㎝의 허미미는 밸런스가 좋고 힘도 뛰어난 편이다. 일명 ‘뽑아 메치기’로 불리는 강력한 업어치기가 주 무기다. 일본 특유의 기술 유도를 배워 한국 선수들이 약한 굳히기(조르기·꺾기·누르기) 실력도 탄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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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미의 주특기는 업어치기다. 일본에서 유도를 배워 굳히기도 탄탄하다. 사진 IJF

한국의 ‘체력 유도’를 더하면 실력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김정훈 감독은 “이제 겨우 국제 대회에 데뷔했다. 앞으로 꾸준히 세계 무대를 누비며 경험을 쌓으면 더욱 강한 선수로 거듭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미미의 롤모델은 현 여자 대표팀을 지도하는 김미정(1992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감독이다. 허미미는 “레전드 김미정 감독님께 올림픽 금메달의 비결을 전수 받겠다. 진천 선수촌 ‘지옥 훈련’에 대해 익히 들었지만, 각오는 돼 있다. 이겨내겠다”고 자신했다.

그는 세계적인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노래를 들으며 힘을 낸다고 했다. 특히 멤버 뷔의 열성 팬이다. 허미미는 “지치고 힘들 때 BTS 노래를 틀고 흥얼거린다. 금세 긍정 에너지가 솟아 기운을 차린다. 유도 선수로 유명해지면 BTS를 만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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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미의 본격 시험대는 10월 세계선수권이다. 국제 대회 2연속 금메달에 도전한다. 김경록 기자

허미미의 꿈은 2년 뒤 파리 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금메달을 따는 것이다. 한국 여자 유도는 긴 침체기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조민선 이후 올림픽 금맥을 캐지 못했다.

허미미의 첫 시험대는 오는 10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리는 2022 세계선수권이다. 국제 대회 2연속 금메달에 도전한다. 세계선수권은 올림픽 다음으로 권위있는 대회로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총출동한다. 허미미는 “현조 할아버지 순국기념비 앞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다짐했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생년월일: 2002년 12월 19일(일본 도쿄)
소속: 한국 여자 57㎏급 국가대표, 경북체육회
체격: 1m59㎝, 57㎏
학력: 일본 테이쿄중-테이쿄고-와세다대 스포츠과학부 2년
주특기: 업어치기, 굳히기
수상: 2017 전일본중학선수권 우승, 2022 트빌리시 그랜드슬램 금
특기사항: 현조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 허석
취미: BTS 노래 듣기
꿈: 파리올림픽 금, BTS 멤버 뷔 만나기
기타: 2021년 일본 국적 포기. 한국 선택
좋아하는 음식: 삼겹살

피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