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카쿠 로 번역 - a kaku lo beon-yeog

- 류아련님을 위한 적흑 입니다(*'ㅡ'* 

- 번역 감사합니다...<<<

-적흑은 처음이에요...!

네임이 나타난 것은 스물다섯 살의 봄이었다. 네임은 물에 젖은 글씨처럼 뿌옇게 나타나 몇 달이 흐르도록 그 상태를 유지했다. 읽을 수도 없는 글자였고, 네임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형태였다. 게다가 20대는 네임이 발현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였다. 그런데도 발현하다니. 담배를 문 쿠로코는 뿌연 글씨가 생긴 자리를 괜히 손톱을 세워 긁었다. 손톱자국이 남았지만 글씨는 그대로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라이터를 찾으며 쿠로코가 작게 중얼거렸다. 손목시계가 자꾸만 거슬리는 탓이었다. 손목아래에 네임이 발현한 탓에 쿠로코는 평소에는 불편해 잘 차지 않던 손목시계를 차야했다. 이름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어 쿠로코는 이름을 감추고 살기로 했다. 누군가의 주목을 끌고 싶지 않았다.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쿠로코는 책상 위에 던져둔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235, 도쿄역 앞.’

간결한 문자였다. 나오라는 걸까. 담배를 태우며 쿠로코는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봤다. 날짜가 없는 것을 보면 오늘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직 이른 아침이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전화를 해볼까 고민했지만 딱히 묻고 싶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사람이니 일단 나오라는 것이 분명했다. 바쁘다는 핑계를 댈까 고민했으나 결국 통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쿠로코는 시간을 확인했다. 1230. 차가 막히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담배만 다 태우고 나가야할 것 같았다. 모두 모이는 걸까.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은 쿠로코는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다른 이들을 떠올렸다. 키세는 자주 텔레비전에서 보고 있기도 했고 툭하면 연락을 해오곤 했으나 아오미네나 다른 이들은 크게 얼굴을 볼 일이 없었다. 오랜만이니까 나갈까요. 반쯤 타들어간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 쿠로코는 욕실로 향했다. 오랜만에 있는 외출이었다.

도쿄역은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여기서 서로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는 있을까 싶은 정도였다. 문자로 통보받은 시간까지는 아직 20분가량이 남아 있었다. 더군다나 그는 늘 늦게 도착하는 이였다. 그러니 담배 하나 정도는 태울 여유는 있었다. 겉옷 안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낸 쿠로코는 담배 한 닢을 꺼내어 입에 물고 라이터를 꺼냈다. 모모이가 스물두 살이 되던 생일에 사준 라이터였다. 웬만하면 끊는 게 좋지만. 선물을 건네며 모모이가 했던 말이 떠올라 쿠로코는 작게 웃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입에 대버린 담배를 쉽사리 끊을 수가 없었다. 그저 버릇이니 어쩔 수 없다, 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의존에 가까운 것이었다. 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쿠로코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손목이 가렵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이상하게 네임이 있는 곳이 가려워졌다. 담배를 입에 물고 손목시계를 푼 쿠로코는 손목에 새겨진 네임을 보고 잠시 숨을 멈췄다. 뿌옇던 네임이 깔끔한 글씨가 되어 있었다.

끊는 게 좋아. 테츠야.”

아직 10분 전이다. 고개를 든 쿠로코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카시의 모습을 발견하고 숨을 삼켰다. 네임이 자꾸만 움직이는 것 같았다. 가려운 것을 넘어 어딘가 깊은 곳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아카시군. 담배를 손에 쥔 쿠로코는 천천히 그를 불렀다. 아카시는 평온한 얼굴이었다.

내 이름, 테츠야가 가지고 있지?”

방금 알게 된 겁니다만.”

이제 부정은 못해, 테츠야.”

아카시가 손목을 들어 보였다. 쿠로코 테츠야. 정확하게 새겨진 이름이 조금 원망스럽다는 생각을 하며 쿠로코는 결국 담배를 땅에 버리고 두 손을 들었다.

항복입니다, 아카시군. 아카시 세이쥬로, 저의 네임입니다.”

다가오는 아카시를 바라보며 쿠로코는 아카시가 몇 년 전 자신에게 꺼냈던 말을 떠올렸다. 너야, 테츠야. 아카시는 단호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윈터컵이 끝난 후였던가. 담배가 사라지니 입술이 바싹 마르는 것만 같았다. 엄지로 입술을 훑던 쿠로코는 아카시가 코앞에 서 있음을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거의 3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테츠야. 네임이 자꾸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름이 주인을 찾는다는 것이 이런 기분인가. 쿠로코는 매스컴에서 짝을 찾은 사람들이 레퍼토리처럼 반복하는 말을 떠올렸다. 노네임드였을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말이었다. 아카시가 내민 손에 새겨진 글씨는 몇 년 전보다도 더욱 선명해져 있었다. 혈관이 두드러지는 자리에 생긴 네임은 언제라도 혈관을 멈춰버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어져 있다.

잠시 아카시의 손을 바라만 보던 쿠로코는 결국 아카시의 손을 잡았다. 시계 아래에 감춰둔 네임이 그제야 움직임을 멈췄다. , 결국 우리는 이렇게 만나잖아. 쿠로코는 아카시의 눈이 그리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카시군, 저는 널 좋아했습니다.”

알고 있어.”

네임이 나타난 지금은 이것이 제 본심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카시군을 좋아하는 걸까요?”

아카시를 바라보며 쿠로코가 말했다. 잠시 말이 없던 아카시는 이내 평소처럼 웃으며 엄지로 쿠로코의 입술을 훑었다.

그건 테츠야가 더 잘 알거라고 생각해.”

아카시의 말에 쿠로코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라고 대답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담뱃갑이 잡혔지만 그것을 꺼내지는 않았다.

시끄러운 경기장이었던가.

아카시군의 손목의 이름은 제가 아닙니다. 저는 노네임드예요.”

노네임드라는 건 없어, 테츠야.”

이름이 언제 나타나느냐의 차이일 뿐이야. 아카시에게 눈을 돌려 관중석 아래에 있는 코트를 본 쿠로코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고 말을 흐렸다. 토오와 카이조의 시합이었다. 관중석에 앉은 사람들은 저마다 한 학교를 응원하고 있었지만, 아카시는 경기를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아카시의 네임이 나타난 것은 윈터컵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고 했다. 이제 다시금 인터하이가 시작된 지금, 쿠로코의 몸에는 네임이라고 말 할 수 있을만한 흔적조차도 나타나지 않았다. 노네임드. 쿠로코는 꼬리표처럼 들러붙은 말을 입안에서 굴렸다.

만약, 아카시군에게 나타난 네임이 제가 아니라면 어떻게 하나요?”

그럴 리가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내가 네임을 지울 거야. 너를 위해서.”

아카시군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너와 함께하고 싶진 않아요.”

관중들이 함성을 질렀다. 아오미네의 독주를 막을 수 없어! 옆자리의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관중석에서 일어나며 쿠로코는 아카시에게 사과를 했다. 아카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카시의 시선은 이미 경기로 가 있었다.

테츠야.”

코트에 시선을 둔 채 아카시가 입을 열었다.

나는 널 좋아해. 이것만은 알아둬.”

웃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쿠로코는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아카시군의 이름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졸업을 할 때까지 네임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 그래서 담배를 시작했었지. 그리 생각하며 쿠로코는 아카시의 손을 꽉 잡았다. 따뜻한 손이었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 그 말을 목구멍 깊숙이 삼킨 채 쿠로코는 아카시를 바라봤다. 아카시는 말없이 손을 잡아주고 있을 뿐이었다. 바싹 마른 입술에 아카시의 입술이 닿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을 감은 채 쿠로코는 아카시의 몸에 기댔다. 너의 이름이라 다행입니다. 네임을 가리고 있던 시계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쿠로코는 아카시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이제야 정말로 닿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