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르네상스 특징 - itallia leunesangseu teugjing

1,400년부터 1,600년까지 약 2,00여 년에 걸쳐 유럽, 특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전 유럽으로 확산된 예술•문화 전반의 대변혁을 의미하는 르네상스 문화는 인간의 창조력이 정점에 달했던 고전 시대의 문화를 부흥시키고자 한 운동으로 특히, 미술 분야에서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르네상스 Renaissance’란 용어는 “부활”, “재생“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리나시타 Rinascita”란 단어의 프랑스어 번역이다. 이탈리아의 미술사가 ‘바자리’가 썼던 이 단어를 19세기 초 프랑스 학자 ‘미슐레’가 주목하면서 불어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르네상스 미술의 주요한 본질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주의’의 부활이며, 현세에 대한 관심의 증가에 따른 자연 세계의 재발견, ‘인본주의 Humanism’의 부상이었다.

근본적으로 ‘신‘ 중심이 아니라 ‘인간‘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 근대 세계의 출발이었다. 이러한 개념은 미술에 있어서 예술의 사회적 위치의 격상과 미술의 자율성을 가져왔으며, 회화와 조각의 장르와 주제, 탐구 방식까지도 변화시켰다.

미술을 인문학에 견줄 만한 세계를 이해하는 독자적 영역으로 인정함에 따라, 장인으로 취급 받았던 예술가들은 그 창조성을 인정 받게 되면서, 이때부터 작품에 서명을 남기기 시작하였다.

미술의 주제에 있어서도 성서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신화가 다시 등장하였는데, 어떠한 주제든지 그림 속에는 언제나 인간이 중심이었다. 종교화에서조차 인간적인 감정이 표출되었으며, 신이 인간에 비해 월등히 크게 묘사되던 중세의 법칙이 허물어지고 인간과 신이 대등하게 묘사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개인 초상화의 등장 역시 미술이 더 이상 신을 향한 예배의 수단이 아니라 자아의 표현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예술가들은 과학자에 버금가는 탐구정신으로 외부세계를 객관적으로 재현하였다. 15세기 화가들은 3차원의 공간과 대상을 2차원의 화면에 표현하는 어려움을 선 원근법과 단축법 등 과학적인 방식을 통해 해결하였다. 이후 성기 르네상스 화가들이 ‘플랑드르’ 지역에서 창안된 ‘공기원근법’과 유화 기법을 한층 발전시키면서 보다 사실적인 재현이 가능하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특징 - itallia leunesangseu teugjing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시기별, 지역별로 두 시기로 나뉜다. 15세기 부유한 상인 가문이 권력을 쥐고 있던 ‘피렌체’에서는 ‘메디치가’의 후원에 힘입어 전기 르네상스가 발전하였다. 이어서 성기 르네상스는 1490년대부터 약 1530년경까지 교황청이 있던 로마와 해상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15세기 전기 르네상스 시대에 회화에 있어서는 ‘마사치오’, ‘우첼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만테냐’, ‘보티첼리’, ‘기를란다이요’ 등이 활약하였다.

성기 르네상스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3대 거장들과 ‘지오르지오네’와 ‘티치아노’, ‘베로네제’, ‘틴토레토’ 등이 베네치아 파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전기 르네상스의 사실적, 과학적인 재현을 발전시켜서 이상화된 고전 양식을 완성하였다.

조각과 건축 분야에서도 회화와 상응하는 고전주의의 부흥이 일어나는데, ,‘도나텔로’, ‘기베르티’, ‘베로키오’ 등이 고대 조각의 인체를 회복시켰으며, 건축에서는 ‘브루넬레스키’, ‘알베르티’, ‘브라만테’, ‘팔라디오’ 등이 고대의 인본적이고 구상적인 형태미를 되살렸다.

르네상스 시대의 양식적 특징

작성자노을에|작성시간08.05.07|조회수439 목록 댓글 0 글자크기 작게 글자크기 크게

*르네상스의 뜻
르네상스란 '부활' 또는 '재상'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원래 16세기 이탈리아의 화가가 쓴 저서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프랑스어와 독일어로 번역되어 르네상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르네상스란 말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즉 '유럽의 전통 문화인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를 재생 또는 부활한다.'는 뜻이다.
특히 이탈리아 사람들은 고대 로마의 무화를 되찾으려는 의욕이 강했지만, 거기에는 전통 문화를 부활시키려는 단순한 복고 정신뿐만 아니라 인간성의 부활이라는 큰 의미가 들어 있다. 곧 중세 크리스트 교회가 인간성을 없애고 신의 권위만을 강조해 왔던 탓으로 이 시대의 인간들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시대의 인간 중심의 생활을 다시 찾으려는 욕구가 보다 강하게 일어났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르네상스를 인간 중심의 문화 또는 인본주의 사상이라고도 한다.

*르네상스 미술의 발생
르네상스의 문화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발전하여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르네상스 문화는 교회 중심의 미술을 비롯하여 문학.학문.과학 등 전반에 걸쳐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다.
특히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은 교통의 요충지로 동방 제국과의 무역을 통하여 상업이 번창했으며, 서민들은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 따라서 문화도 급속도로 발전해 나갔다. 이 시기에도 크리스트교가 상당한 지배권은 가지고 있었지만, 신 중심에서 인간을 위한 교회로 변하였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가 인간성에 대한 자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의 사정이 점차 어려워져 민간인의 후원으로 교회가 건설되는 등 서민층의 역할이 확대됨으로써 서민 중심의 근대 사회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이유의 하나이다. 따라서 교회의 건축이나 내부 장식이 성직자의 독자적인 생각으로 만들어졌던 것에서 점차 전문 직업인이나 예술가의 개성에 따라 만들었다.

*르네상스 미술의 특색
르네상스의 미술 양식은 서양 미술사에 나타난 한 시대의 특징에 지나지 않으나 근대 미술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그러므로 시각적인 특징보다는 르네상스가 다음 시대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아야 한다. 또 표현의 특색을 통해 그 시대의 인간 정신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르네상스 미술은 교회 건축뿐만 아니라 일반 공공 건물도 포함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의 건축에서 조각과 회화가 독립되어 하나의 미술 영역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과학적인 발달로 회화에서는 원근법이 발달하였고, 조각은 사물로서 입체가 아니라 공간감을 나타내는 미술로 발달하였다.
조각이나 회화는 주로 종교적인 내용이지만 중세의 표현과는 달리 인간적인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즉 예수나 마리아의 모습을 인간과 똑같이 자애롭고 아름다운 감정을 가진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고딕식 첨탑이 사라지고, 그리스나 로마식의 안정감 있고 균제의 미를 지닌 건축 양식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르네상스 미술의 발달
르네상스의 시기를 분명히 구분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유럽 각 지역마다 그 시기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고딕 시대에도 르네상스의 기운이 일부에서 싹트고 있었기 때문읻. 그러나 일반적으로 14세기를 전기 르네상스, 15세기를 초기 르네상스, 16세기를 전성기 르네상스로 구분된다.

[르네상스 전기 미술] 이 시기는 중세의 양식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분명하게 르네상스 양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시기에 이미 르네상스 미술이 움트기 시작하였다. 이 전기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가운데서도 특히 시에나.피렌체.베네치아 등에서 활발히 이루어져 마침내 이탈리아와 유럽 전체에 퍼지게 되었다.
<시에나 파> 시에나는 이탈리아 중부 지방에 있는 도시의 이름이다. 이 곳을 중심으로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에 활약한 화파가 시아나 파이다. 이 파는 피렌체 파와 함께 이탈리아의 2대 화파로 불린다. 시에나 파는 여성적이고도 정서적이며 섬세하고 우아한 화풍을 이루었다.

두치오(1255~1319년) : 비잔틴 예술의 영향을 받으면서 고딕식의 섬세한 표현 형식을 도입한 시에나 파의 초기 화가이다. 두치오는 매력적인 색채와 곡선이 많이 배합된 표현 방법을 구사하여 르네상스 초기로서는 매우 새로운 화풍을 창시했다.

시모네 마르티니(1283?~1344년) : 비잔틴의 화풍에서 벗어나 고딕식의 섬세한 기법을 바탕으로 한 화풍을 발전시킨 화가이다. 그도 역시 선을 강조하여 그림을 그렸다. 이것은 과거의 그림과 비교하여 매우 새로운 표현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르네상스 정신에 맞는 것은 이와 같은 기술적인 표현 방법이 아니라 그림에 나타난 종교적인 인물의 표정이 과거와는 달리 매우 인간적인 감정을 나타낸 것으로 표현되어있다. 예를 들면, 예수나 마리아의 표정이 초월적인 위엄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과 똑같이 표현된 것이다.

로렌체티(1290?~1348년경) : 풍속화, 도시의 풍경, 농촌의 풍경, 자연의 풍경 등을 주제로 하여 그림을 그린 화가이다. 이와 같이 과거에 종교적인 주제로만 그림을 그리던 시대와 비교해 볼 때 매우 진취적이다.
르네상스 정신이 인간 중심이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곧 신을 중심으로 표현하던 예술 활동에서 사람의 생활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려는 근대적 예술 정신이 나타났다.
이와 같이 시엔 파의 새로운 예술 활동은 점차 이탈리아의 각 지역과 북유럽에 큰 영향을 끼쳤다.

<피렌체 파> 피렌체는 오늘날의 플로렌스이다. 14세기부터 16세기에 이르기까지 피렌체는 건축.조각.회화 등이 크게 발달하여 르네상스 미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피렌체가 르네상스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과는 또 다르게 이 곳에서 발달한 회화의 특징 때문에 피렌체 파가 생겼다.
치마부에(1240?~1320?) : 피렌체 화파의 시조이다. 그의 작품에는 비잔틴 화풍이 남아 있지만, 인간이 감정을 표현하려고 한 점에서 르네상스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조토(1276?~1337년) : 치마부에의 제자이다. 그는 스승의 화법에서 벗어나 작품들을 부조와 같은 느낌이 나타나도록 입체적으로 표현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물과 사물 사이의 거리나 공간 등을 생각하여 그림을 구성하려고 했다.
피렌체 파는 남성적이고 근대적이며 과학적이 표현 방법을 발전시켰다. 곧 인물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으며, 원근.거리.공간감 등을 합리적으로 표현했다
르네상스 전기였기 때문에 기교 면에서 능숙하지는 못했지만 비잔틴식의 종교적인 격식이나 장식적인 요소에서 벗어나 자연의 상태 그대로를 표현해 보려는 시도는 매우 용감하고 과감하였다.
이와 같은 시도는 훗일 레오나르도 다빈치.라파엘로.미켈란젤로에게 큰 영향을 ㅈ었고 나아가서는 근대의 사실적인 표현 방법을 촉구한 결과가 되었다.
한편, 14세기 말경에는 유럽 각지의 새로운 양식들이 피렌체에 많이 들어와 마침내 고유의 특징들이 차차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15세기의 화가 마사초가 피렌체 파의 화풍을 다시 일으켰다.

[초기 르네상스 미술] 초기 르네상스 미술은 찬란하게 번영했던 피렌체를 중심으로 르네상스 전기 미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14세기 말경에 고딕 양식을 많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피렌체 고유의 미술 양식이 희미해져 르네상스의 고동이 중단되려고 했다. 하지만 피렌체 파에 속한 작가들의 활약으로 르네상스 미술의 기운이 다시 회복되었다.

마솔리노(1383~1447?) : 초기에는 고딕식의 화려한 색채와 장식적이고 섬세하며 종교한 묘사 등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인물의 표현에 있어서는 개성적인 감정을 나타내려고 했다. 한편, 기교 자체는 고딕식이 많이 남아 있지만 화면 구성에 있어서는 투시도법적인 원근 표현과 공간 표현을 시도했다.

마사초(1401~1428년) : 14세기 말, 피렌체에 도입되었던 잡다한 외래 양식을 타파하고 피렌체 파를 다시 일으키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화가이다.
당시 조각.건축 분야에서는 도나텔로.브루넬레스코가 고딕식 전통을 깨뜨리고 르네상스의 조형적 이상을 실현시키고 있었다. 한편, 회화에서는 마사초가 자연주의적인 방향으로 합리적인 표현 방법을 발달시켜 사실적인 화풍을 확립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산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의 브란카치 예배당에 헌금하는 장면의 벽화가 있다. 그는 이 작품 속의 인물들을 자연스럽고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하였다.
그리고 후광은 기하학적인 모양의 원이 아니라 빛이 비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묘사하였다. 화면 구성에서도 사물과 사물 사이에 입체감.원근감.공간감 등을 나타내었다.

<=마사초가 그린 산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에 있는 <헌금> 벽화

프라 안젤리코(1387~1455년) : 마사초가 주로 남성을 주제로 표현한 것과는 달리 프라 안젤리코는 여성의 가냘프고 청초한 모습을 인간적으로 자연스럽게 표현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수태 고지>와 <애도> 등이 있다. 이들 작품 속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악에 물들지 않은 맑고 깨끗한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프라 필리포 리피(1406~1426년) :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평범한 여성의 아름다움으로 묘사하여 여성적인 매력을 느끼게 하였다. 또한 종교적인 주제가 아닌 풍속적인 내용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으며 시적인 정서를 느끼도록 표현하였다. 프라 안젤리코와 함께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성모의 아기 예배>와 <성 모자와 마리아의 생애>등이 있다.

보티첼리(1444?~1510년) : 당시의 그림은 종교적인 주제에서 자유로운 예술적 창작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었다. 보티첼리는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종교적인 주제와 관계가 없는 상상의 세계를 문학적인 소재처럼 구상하여 표현하였다. 그는 환상적인 세계를 자유롭게 전개시키면서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자유로운 창작을 시도했으며 고대 그리스의 전통적인 인체미를 재현시키려고 했다. 그밖에 화면의 구성을 위한 원근법을 발전시켰고 원근법에 관한 저서도 남겼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봄> <비너스의 탄생>이 있다.

반 에이크 형제(반 에이크 후베르트 1370?~1426년, 반 에이크 얀 1380?~1441년) : 북유럽 플랑드르 출신의 화가이다. 원래 풀랑드르 파는 고딕 미술의 정밀 화법의 영향을 바아 고도의 사실주의를 발전시켰다. 뿐만 아니라 유채화구를 발명하여 새로운 명암의 기법을 이탈리아에 전파시키기도 하였다. 이들은 최고의 정밀 묘사를 한 플랑드르 파의 대표적인 화가라 할 수 있다.
그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산 파본성당의 <합창하는 천사> <악기를 타는 천사> 등이 있다. 플랑드르는 고전적인 전통은 없지만 르네상스 미술에 크게 기여했다. 천국의 문

기베르티(1378~1455년)가 1425년부터 1452년까지 피렌체 성당에 부속된 산 조반니 세례당의 동쪽 문을 청동으로 부조하여 만들었다. 당시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과 같도고 극찾한 것이 유래가 돼'천국의 문'이라 불리게 되었다.

[전성기 르네상스 미술]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남유럽에서는 고대의 전통적인 형식을 이어받아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려고 했다. 곧 인체의 이상적인 모습이나 구도와 같은 형식적이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또한 눈에 보이는 사실을 중요시하면서 과학적인 정밀 묘사를 존중했다. 따라서 정밀한 자연 관찰과 수학적인 방법으로 원근법과 명암법이 제기되었다.
북유럽, 특히 플랑드르의 화가를 비롯한 독일의 화가들은 현실에 있는 모습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곧 과학적인 자연 관찰의 방법으로 작가의 느낌에 따라 대상을 자유롭게 표현하려는 근대적 화풍을 이룩하였다.

뒤러(1471~1528년) : 당시 독일에서 가장 번영했던 도시인 뉘푼베르크에서 태어난 독일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그는 독일의 일반적인 화풍인 정밀 묘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한편, 이탈리아를 동경한 그는 베네치아에 가서 이탈리아 미술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자화상> <네 사람의 사도><토끼> 등이 있다. 그는 인물화, 곧 초상화를 철두철미한 자연 관찰을 통해서 정밀하면서도 엄숙하게 표현하였다. 겉으로 보이는 자연의 사실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인간 정신까지도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점에서 뒤러는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화가라고 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년) :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동물화.식물화 등의 회화와 천문.병기.건축.조각 등 각 분야에 걸쳐 깊이 관찰하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표현한 만능의 천재이다. 특히 인체 해부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당시의 사실적인 화법을 배웠다. 그러나 사실적인 표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표현을 꾀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밀라노의 산 마리아 델 그라체 수도원의 <최후의 만찬>으로 원근법으로 화면을 구성한 이상적인 작품이다. 또한 <모나리자>는 르네상스 미술이 추구해 온 명암 기법을 완성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모나리자의 표정 속에는 정신적인 무한한 신비가 잘 표현되어 있다.

라파엘로(1483~1520년) : 아름다운 성모마리아의 모습을 많이 그린 화가이다. 그는 마리아의 모습을 가장 아름다운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나타내었다. 그것은 자연 관찰의 풍부한 경험을 통해서 표현된 것이다.
화가인 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을 뿐 아니라 다른 여러 화가들로부터도 큰 영향을 받았다. 1504년부터 8년간 피렌체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 이미 그 곳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 젤로 등의 대가가 활약하고 있었다. 따라서 라파엘로는 그들의 화풍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1508년, 로마 교황의 초청으로 비티칸 궁전에 가서 <아테네 학당>이라는 벽화를 그렸다.
원래 움브리아 지방의 화가인 그는 피렌체파의 신과 구성, 그리고 베네치아 파의 색채에 영향을 받아 정신적인 면과 아름다운 자연을 동시에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을 완성시킨 화가라고 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1475~1563년) :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며, 회화.건축.조각에 뛰어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는 로마의 시스티나 예배당에 천장화와 제단 뒷면 벽화를 제작했다. 천장의 <천지 창조>에는 <구약 성서>에 나오는 천지 창조에서부터 천지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내용이 묘사되어 있고, 벽화에는 <최후의 심판>이 묘사되어 있다. 조각가이며 화가인 그의 작품은 웅장한 구상과 구도도 위대하지만, 뚜렷한 선과 조각적인 입체감, 동적인 운동감 등이 정열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특히 피렌체 파의 화풍을 이어받아 르네상스의 미술을 크게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르네상스의 직후에 나타난 바로크 양식의 중심이 되는 화풍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조각 작품으로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 있는 대리석으로 만든 <피에타 상>과 피렌체에서 대리석으로 만든 높이 4m가 넘는 거대한 <다비드 상>, 그리고 <노에 상>과 <모세 상>등 수많은 걸작들이 있다.
건축으로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을 만드는 데 참여했으며, 주로 원개 지붕을 설계했다고 한다. 그밖에 도서관 설계도 하였다. 데생을 포함하여 500여 점의 작품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티치아노(1477~1576년) : 이탈리아 베네치아 파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베네치아는 지금의 베니스를 일컫는다. 미켈란젤로가 죽은 후 16세기 이탈리아 미술은 모두 로마 양식으로 번영하여 르네상스 전성기의 화풍은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티치아노를 비롯한 베네치아으 화가들은 피렌체 화풍을 이어받아 독자적인 화풍을 이루었으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미술을 전유럽에 전파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티치아노는 피렌체 파의 정밀하고 사실적인 화법을 이어 받으면서 매우 부드럽고 아름다운 화풍을 이루었다. 특히 베네치아의 선명하고 상쾌한 기후에 영향을 받아 맑고 밝은, 그리고 화려한 색채를 많이 사용하였다. 또한 베네치아 인 특유의 낙천적인 기질로 말미암아 성서의 내용들을 현실의 자연 공경 속에서 낙천적으로 표현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그리스도의 매장> <성스러운 사랑과 세속적인 사랑> <아름다운 부인이 초상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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