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영국 식민지 - aillaendeu yeong-gug sigminji

아일랜드

(Ireland)

수도 더블린

국가 전사의 노래

언어 게일어, 영어

종교로마가톨릭교(87.4%),

"말과 글은 그 나라와 국민의 영혼입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식민통치자는 그들의 언어를 강요합니다."

우리도 35년 식민지배 속에 잃은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식민지배 800년이면 영혼까지 털리고도 남았을 시간이죠.

그들의 언어가 남아 있을래야 남아 있을 수 없긴 했겠다 싶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고 독립을 이뤈낸 것을 보면

아일랜드인이 얼마나 강한 민족인지 짐작이 가네요. ​

* 아쉽지만 모국어인 게일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실제 거의 없다고 함.

우린 지켜냈는데..

- 그나저나 섬나라 것들은 하나 같이 왜들 저런 걸까요(?!)

북미로 이주해서 인디언들의 씨를 말렸던 영국,

당시 인디언 인구 3천만,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학살해서 누적합계 1억명의 인디언을 죽였습니다,

당시 아일랜드 인구 800만이었지요,' ㅎ-

이 더러운 역사를 생각하면

 아이리쉬(Irish)의 씨를 말리지 않은 것에 감사라도 해야만 하는 걸까요(?!)

아일랜드의 주식은 감자, 영국의 주식은 왜 고기일까(?!)

먹는 걸로 장난치는 놈들이 세상에서 젤로 싫습니다,

일제도' 산미증식계획'으로 우리 배를 곯였었고,

영국도 아일랜드에서 생산된 밀, 보리 전부를 약탈했더랬죠.

그렇게 아일랜드의 농업생산량으로 영국 전체를 먹여살리고

남은 감자로 근근​히 살아가던 아이리쉬들을

감자흉년으로 모조리 굶겨 죽인 것도 모지라 

'감자 기근이라고(?!) 다른 작물들을 재배하면 될

멍청하게 단일 품종 감자만 심어서 감자가 다 죽으니 대기근이 일어난 것'

이라고 선동질했었고 여전히 그렇게 선동질 중인게 영국이죠.

허긴 나라 빼앗겨, 종교 강요당해, 우리말도 쓰면 죽는다지..

드럽고 치사해서 독립하겠다고 그 악다구니를 썼건만

그 모든 문제를 '북아일랜드 종교분쟁'으로 비화시켜 버리는게 또 영국이긴 하죠.

수백년의 강탈과 도륙과 대학살을 게 눈 감추 듯 감추는 것도 재주면 재주랄까, ㅎ- 

* 아일랜드 사람들이 끝까지 가톨릭을 신봉하고자 하는 건

아일랜드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한 면이 크죠.

맹신이라던가 ​차별, 억압에 대한 단순한 발악이 아니라.

- ​맞다, 아일랜드 사람들 사실 감자 별로 안 좋아한다더군요,

그런데 주식이 감자가 되어버린 이유를 생각하면..

- '신사의 나라(?!)'

보면 영국만큼 이미지 메이킹이 잘 된 나라가 없을 겁니다.

전세계 근/현대사 혼란의 역사 속에 빠진 적이 결코 없는 나라,

침략의 역사로 부를 이룬 나라지요.

그거면 다행이게요(?!)

뒤로 냉큼 빠져 나올 땐 또 엄청난 똥을 투척합니다.

아프리카를 막장으로 만든 것도,

미얀마의 '로힝야족(Rohingya 族)',

북아일랜드 문제도 다 그들이 싸 놓은 똥이죠.

아일랜드 영국 식민지 - aillaendeu yeong-gug sigminji

아일랜드 영국 식민지 - aillaendeu yeong-gug sigminji

- 비열한 놈들의 방식은 동일합니다,

'이이제이(以夷制夷)'

그걸 또 일제가 고스란히 답습했더랬죠, ㅎ-

명실공히 유럽 깡패는 영국, 아시아의 깡패는 일본이 아닐까 싶습니다.

1. 아일랜드의 역사

당시 육지 대륙과 브리튼 제도(British Isles)는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고,

​아일랜드섬의 선주민은 이미 기원전 8000년 전 부터 거주하기 시작,

이후 기원전 900-150년 사이에 켈트계 종족이 세 차례에 걸쳐 대륙에서 건너와

여러 개의 부족국가를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아일랜드 지도               ​▲ 브리튼 제도(British Isles)

기원후 5세기에 성 패트릭이 전한 가톨릭교가 급속히 전파되고,

아울러 신학을 비롯한 학문 연구가 활발해졌다.

800년경부터 1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바이킹의 침입이 있었고,

1169년엔 노르만 왕조의 제 2대 펨브로크 백작의 아일랜드 침공 이후

아일랜드는 노르만 왕조의 직할령이 되었으며,

이후 700년간 영국의 통치를 받게 된다.

* 노르망디가(House of Normandy)-

노르망디 공작 및 잉글랜드 국왕 작위를 가진 중세 귀족 가문.

​1348년 흑사병이 아일랜드를 강타했고,

노르만 거주지의 피해가 심각해 지자

노르만의 세력은 더블린 인근으로 축소되었다.

결국 15세기 말, 영국이 직접 통치할 수 있는 곳은 더블린뿐이었다.

2. 근대(1536–1912)

​1536년 헨리 8세는 아일랜드 재정복과 영국 국왕의 통치를 선언,

통치권을 지속적으로 확대하였으나

영국의 아일랜드 통치는 큰 저항없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성공회가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분리된

잉글랜드 종교개혁 이후 위기에 봉착한다.

영국의 국교가 주민들에게 로마 카톨릭을 버릴 것을 강요하자

아일랜드 민중이 반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엘리자베스 여왕, 제임스 1세 등 영국 왕실은 

이들의 반항을 철저하게 무력으로 억압하는 동시에,

완강하게 저항하는 북부 얼스터 지방의 토지를 몰수하여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신자인 영국인의 이주와 정착을 강행하였다.

이것이 '아일랜드 플랜테이션'이라 불리는 '식민지화 정책'이었다.

현재 북아일랜드의 얼스터에 이주 온 장로교인들은 카톨릭 신자들을 밀어내고,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이들의 후손들은 지금도 모든 영역에서 기득권을 갖고 있다.

친일파가 기득권자로 살고 있는 우리나라 현 상황과 1도 없이 똑같음, ㅎ-

▲ 올리버 크롬웰    ▲ 도요토미 히데요시

1641년 부터 아일랜드의 구교도들은 영국의 신교에 저항하여 싸웠으나

영국 본토에서의 구교와 신교의 내분 과정에서

청교도혁명으로 권력을 장악한 '크롬웰'이

1649-1653년에 걸쳐 구교도인 아일랜드인을 진압하고

토지를 몰수하여 영국인에게 분배하였다.

그리하여 영국인 지주 아래 아일랜드인은  비참한 소작농으로 전락되어

 유명한 ‘아일랜드의 빈곤’이 시작되었다.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1599-1658): 

영국의 정치가이자 군인으로,

1642-1651년의 청교도 혁명에서 왕당파를 물리치고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공화국을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

신분의 한계를 격파하고 영국을 통일하고 지배했던 영국판 도요토미 히데요시.

또한 로마 카톨릭 교회 신자의 공직 진출을 제한했는데,

이로 인해 85%가 로마 가톨릭 교회 신자인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의원중에는

로마 가톨릭 신자가 한 명도 없는 상황이 지속되었고,

1801년, '그레이트 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의 합병 당시에도

그런 상황은 계속되어 합병령은 극렬한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 물론 합병은 체결되었는데,

합병의 대가로 차별 철회가 약속되었으나 조지 3세가 이 약속을 파기했다.

3. 개신교의 지배..

영국의 아일랜드 재정복 이후 아일랜드의 경제 상황은 악화되었다.

아일랜드의 농업생산량은 영국 전체를 먹여살린거나 마찬가지였으나,

생산된 밀, 보리를 아일랜드 대 농장주들과 영국 상인들이 결탁해

전부 영국본토로 팔아넘겨 

생산된 농작물은 아일랜드 내에서 사용되는 것보다는

영국으로 유출되는 양이 더 많았다.

​결국 소작농에게 남은 것은 감자뿐인데

1740-1741년, 두 번에 걸친 혹한의 겨울과 감자 불황으로 인해

​1740년 아일랜드 기근이 발생하여

아일랜드 인구 중 200만 명이 사망하고 200만명은 해외로 이주하였다.

이로 인하여 아일랜드의 인구는 절반으로 줄었다.

* 실상은 기근의 원인은 마름병이 아니라 약탈이 문제였다고 봄   

더욱이 1660년대 이후 아일랜드의 수출은 영국 항해법에 의해 제한되고 있었는데,

이 법은 아일랜드 상품의 영국 수출을 엄격히 제한하는 반면

아일랜드가 영국의 상품을 수입하는 것에는 어떠한 제한도 없었다.

4. ​독립전쟁(1912-1922)

1829년, 구교도 해방법으로 구교도에 대한 차별이 없어졌지만,

1845-49년에 마름병으로 아일랜드 대기근이 발생하면서

800만이던 아일랜드의 인구는

1911년이 되자 440만 명으로 감소하였다.

* 마름병(blight) - 식물이 마르거나 죽는 병해로 감자역병은 마름병의 일종이다.

1845-46년, 감자가 주식인 아일랜드에서는 감자역병이 크게 발생하여

100만 명이 굶어죽고 150만 명 이상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였다.

19세기에 이르러 민족주의 사상이 확산되었으며

국민학교(초등학교)가 설립되어

영어보다 아일랜드어(게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졌다.

민족주의적 흐름과 함께 공화주의에 입각한 독립운동도 전개되었는데,

민족운동은 자치권과 토지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아일랜드 청년과 아일랜드 공화주의 형제당인 페니언단 등의

등장과 활약으로 이어졌다.

한편, 영국 의회는 1886-1893년에 '아일랜드 자치법안'을 상정하였으나

영국계 신교가 많은 북아일랜드 얼스터 지방 주민이 반대하여

자치는 실현되지 못한 채 제1차세계대전(1914)을 맞이하였다.

▲ 아일랜드의 독립운동(IRA)을 다룬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 IRA(아이아르에이)- 1917년에 설립된 영국령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의

  통일을 요구하는 아일랜드 공화국군으로,

자국민과 민간인 가리지 않고 공격한 점 때문에 문제가 좀..

아일랜드 자치법은 1914년에 와서야 통과되었고,

​마침내 1916년 4월 신페인당 등을 주축으로 한

더블린의 무장봉기(부활절봉기)가 대대적으로 발생한다.

비록 무력으로 진압은 되었지만 

이는 독립을 촉진시키는 큰 계기가 된다.

우리는 아일랜드의 주인은 아일랜드인임을 선언한다.  

또한, 아일랜드의 양보할 수 없는 주권과

아일랜드의 통치권 역시 아일랜드인의 것이다.

외국인과 그들 정부가 벌인 오랜 세월의 착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권리는 소멸되지 않았으며,

그들의 압제는 결국 아일랜드인에 의해 종결될 것이다.

모든 아일랜드인은 주권과 자유로운 조국을 소유할 권리가있다.

이러한 권리의 쟁취를 위해 지난 삼백년간 여섯 차례에 걸친 항쟁이 있었다.

우리는 이를 계승하여 세계와 당당히 대면할 것이다.

여기 우리는 독립 주권국가인 아일랜드 공화국의 국민들이다.

우리는 아일랜드 공화국의 자유와 복지, 국가 번영을 위해

우리 자신과 전우들의 생명을 걸 것을 맹세한다.."

- 부활절봉기, 독립선언문 中 -

영국 의회는 1920년 '자치 정부법'을 제시하였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인 1919-1921년까지

고위인사 암살, 건물폭파 등 게릴라 전으로 독립운동 계속 했다.

 영국은 국제사회에서 비난을 받게 되었고,

결국 얼스터 지방의 분리, 아일랜드 자치령이라는 타협안이 승인되어

1921년 12월 '아일랜드 자유국(Irish Free State)'이 성립되었다.  

5. 아일랜드 공화국(1922 -현재)

그러나 자치령이라고는 하지만 외교, 군사, 경제 등의 실권을

영국 본국 정부가 장악하였기 때문에 항쟁을 계속,

1937년 신헌법을 제정하고 국호를 '에이레'로 정하여 독립을 선언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3년후인 1948년엔 헌법을 개정하고

 '아일랜드 공화국(Republic of Ireland)'이 되었다.

* 북아일랜드 종교분쟁 *

 하지만 카톨릭 국가인 아일랜드 공화국에 비해

북아일랜드는 인구의 절반이 신교도이므로,

또다시 신교구교로 갈라져 무혈투쟁과 테러가 계속되니 

국에 북아일랜드를 다시 합체,

그래서 지금 영국의 정식 명칭은

'United Kingdom of Great Britian and Northern Ireland'가 되겠다.

현재 북아일랜드 종교분쟁은 정치적 타협으로 안정되어 가고 있고,

(개인적 사견으로) 북아일랜드를 아일랜드에 반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선적으로 기억해야 할 것은,

수백 년이나 영국에서 온 개신교인들에게 차별과 억압을 받았고,

이들의 불만이 부활정봉기(1916), 아일랜드공화국군결성(IRA) 등의

무장투쟁으로 폭발했을 뿐이지,

아일랜드의 영국으로 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그 의지를

단순히 종교전쟁으로 비화하는 건 엄청난 폄훼라는 점이다.

6. 영국의 만행을 설명하는 '아일랜드인 교수'

  " 에.. 제가 좀 특별한 분을 모시고 왔습니다,

우리나라와 딴 나라의 역사를 비교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실라 컨웨이 교수님 나오시죠(~)"

" 아일랜드 역사와 그곳에 흐르는 감정을

소개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 아일랜드의 역사와 한국역사는 정말 비슷합니다."

 " 영어를 못하면 좋은 직업, 집, 가정을 못 가질거라고

부모님들이 부추기고 있죠(?!)

제가 볼 땐 얼마나 기가막힌지 아십니까(?!)

하지만 여러분들은 외국어보단 한국어를 할 수 있단 사실에 감사해야 합니다."

" 불과 60년전에는 이 땅은 일본어를 구사했던 나라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한국어를 쓰는 이유는

바로 일본에게서 독립했기 때문이죠.

그걸 얼마나 감사하게 여겨야 하는지 아십니까!(?!)"

 " 제가 무슨 말을 쓰고 있습니까(?!)

바로 영어에요..

아일랜드는 영국에게 800년이나 식민통치를 받았지요.

저를 식민지인으로 만든 자들의 언어를 쓰면서

그 언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사실인지 여러분들은 아시나요(?!)"

" 우리나라 말은 '게일어(Scottish Gaelic language)'입니다,

하지만 영국 제국주의 식민통치로 말살당해 버리고 말았어요.

말과 글은 그 나라와 국민의 영혼입니다.

우리들은 그 영혼을 잃어버린 셈이죠."

 " 바로 이 점 때문에 식민통치자는 그들의 언어를 강요합니다,

영국인들은 우리에게 너희들의 언어는 가짜다,

진짜 언어인 우리들의 언어를 배우라고 강요했죠."

 " 영국인들은 1700년대에 우리 땅을 빼앗고 침략했어요,

그리고 우리의 토착언어와 문화를 철저히 말살하고

영국문화와 언어의 우월주의만을 주입했지요."

 " 영국의 왕들은 식민주의자들에게 명령했어요,

이 땅의 모든 것을 닥치는데로 약탈하라고..

이것이 다 너희들의 땅이라면서요.."

 " 영국놈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들더러 다 꺼지라고,

우리 땅이라고 우리집인데..

도대체 이런 황당한 이야기가 어딨답니까(?!)"

 " 당연히 아일랜드인들은 저항했지요,

하지만 영국에게서 나온 답은 대학살이었어요."

* 이후로 감자대기근까지 아일랜드인은 학살과 기근으로 400-600만명이 도륙당함

 " 크롬웰, 아주 사악한 놈이죠."

 " 아일랜드 문제나 IRA문제를

사람들은 자꾸 종교분쟁이나 테러리스트로 취급하는데

그건 정말 억울한 일이에요.."

 " 캐톨릭하고 프로테스탄트가 싸우는구나(?!)

천만에(~!!)

그것은 식민제국주의자들에게 대항하는 독립운동이자

 반식민지인들의 저항이에요(!!)"

* IRA(아이아르에이)- 1917년에 설립된 영국령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의

  통일을 요구하는 아일랜드 공화국군.

" 영어는 정말 비열한 언어이고

정복자의 억압적인 언어에요."

" 영국인들은 우리들의 말을 쓰는 걸 억압했고 철저하게 탄압했습니다,

아일랜드어로 쓰면 그야말로 강력한 제재가 가해졌어요.

우민화 정책으로 아일랜드인은 교육을 제한받았습니다(!!)"

 " 이것이 바로 식민지화의 원리이자 신조이죠.

바로 지배하는 나라의 언어를 말하게 하는 것,

절대 한국사람들은 그걸 잊지 마세요."

 " 그 후 감자 마름병으로 사람들이 굶어죽는 생지옥이 연출되자

아일랜드인은 미국으로 대거 탈출했는데,

영국인들은 배를 일부러 엉터리로 만들어서

수많은 아일랜드인이 물고기밥이 되어버렸죠,

우이라 어떻게 이런 사실을 잊을 수 있습니까(?!)"

* 마름병(blight) - 식물이 마르거나 죽는 병해로 감자역병은 마름병의 일종이다.

1845-46년에 감자가 주식인 아일랜드에서는 감자역병이 크게 발생하여

100만 명이 굶어죽고 150만 명 이상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였다.

 " 여러분도 우리 같은 그런 역사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일본사람들이 여러분꼐 한 짓을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는 안됩니다,

아셨나요(?!)"

.

.

 - 2011년, 거의 100년만에 영국은 아일랜드에게 사과를 하긴 했으나,

보다시피 직접 사죄가 아닌  

어중간한 유감표시에 지나지 않아 

아일랜드인들은 진심이 아니라며 불만을 표했다.

- 2012년, 역시 총리가 화해의 제스춰를 보냈지만

말 이외엔 어떠한 적극적 보상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아

아일랜드인들은 이게 진심인지 아닌지 여전히 믿고 있지 않은 상태다.

이상한 표현법과 사후처리로

과거사 청산에 한계를 드러내는 영국,

결국엔 영국이 아일랜드와의 과거사를 극복하고자 한다면

진심어린 사과와 더불어 ​

대규모의 금전적 해결을 보아야만 하지 않을까..(?!)

아일랜드 영국 식민지 - aillaendeu yeong-gug sigmin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