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잘나가는 가구디자이너를 꼽으라면 단연 1991년생 문승지다. 모던 가구의 성지 덴마크, 그것도 왕실 국고에 그의 의자가 보관돼 있다는 사실. 스물두 살 되던 해 한국 가구 디자인의 미래를 전 세계에 알린 그가 첫 개인전 ‘조각모음’을 열었다.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문승지(31) 작가의 사무실에서 검정색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의 그가 물었다. 자유분방하고 주관이 뚜렷할 것 같은 느낌. 기자가 만난 문승지 작가의 첫인상이다. 그는 전날 호우로 사무실 일대가 침수돼 퇴근하는 데만 6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눈빛에서 생기가 돌았다. 막힘없는 언변에서 작품에 대한 그의 열정과 확신이 읽혔다. 제주 소년, 서울을 꿈꾸다대학도 성적에 맞춰 제주대 디자인 관련 학과에 진학했다. 이루고 싶은 꿈도, 목표도 딱히 없었다. 그랬던 그를 서울로 이끈 건 ‘바다에 갇혀 살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 학과 교수님이 ‘방학 때 서울에 가서 전시를 보고 오라’고 하시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차라리 서울에서 공부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길로 학교를 그만두고 계원예술대학교 감성경험제품디자인(현 리빙디자인)과에 지원해 합격했어요. 이후 가구 디자인에 발을 들여놓게 됐죠.” 디자인과에 입학하려면 그림 실력을 갖춰야 하지 않나요. 그냥 운이 좋아서 될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디자인 중에서 특별히 가구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뭔가요.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가구 공부는 어떻게 했나요. 의지가 대단했네요. 미적 감각은 어떻게 키웠나요. 좋아하는 것에 누구보다 열정적이던 문승지는 스물두 살 나이에 인생을 뒤바꿀 기회를 얻었다. 2012년 스웨덴 패션 브랜드 코스(COS)로부터 “전 세계 코스 매장 윈도에 작품을 전시해보자”는 제안 메일을 받은 것이다. 졸업 후 개인 브랜드 ‘MUN’을 창업했다가 접고, 엠펍이라는 애견 가구 브랜드를 운영하던 중 무턱대고 외신 기자들에게 제품을 노출해달라고 보냈던 메일이 효과를 발휘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 등 굵직한 매체에 해당 가구 기사가 실린 덕분에 문승지 작가의 존재는 스웨덴에까지 알려졌다. 합판 1장으로 만든 그의 대표 작업 ‘포 브라더스(Four Brothers)’(2012)가 영국 런던 매장에 전시됐다. 그는 “운이 좋았다”며 겸손해하지만 그 이면에는 남다른 실행력이 있었다. 문승지의 존재감, 팀 바이럴스이번 ‘조각모음’ 전시 작품은 광주 워크숍, 양주 공방, 인사동 호텔 작업실 등을 거쳐 탄생했다. 인터뷰가 진행된 곳은 문승지와 12명의 디자이너가 함께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 레이블 ‘팀 바이럴스’ 사무실이다. 2017년 그는 정창기와 정석병 2명의 공동대표와 함께 디자이너에 의한, 디자이너를 위한 팀을 꾸렸다. 두 해 전 그가 다녀온 덴마크 유학의 영향이 컸다. 유명 가구 브랜드 취업을 희망하던 유학생 문승지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머물 당시 평소 그가 동경하는 프랑스 스타 디자이너 레미 클레멘테와 SNS를 통해 친분을 쌓았다. 레미의 초대를 받아 그의 파리 스튜디오를 찾아간 문승지는 그곳에서 자유와 존중이 머무는, 상상 속에만 존재했던 디자이너 삶의 현장을 목격했다. 순간 ‘취업을 위해서가 아닌 내 것을 하기’로 결심한 그는 ‘어떻게 해서든 나만의 스튜디오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팀 바이럴스는 어떤 팀인가요. 삼성 프로젝트 프리즘, 블루보틀 제주 등을 진행한 서울 작업실은 어떤 곳인가요. 최근에 팀 실험실을 계약했다고 들었어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인사동 인근 호텔에서 작업했다고 들었어요.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든 작업실이 될 것 같아요. 종종 찾는 공간이 있나요. 도면을 실물로 만드는 가구 공장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나와 맞는 공장을 찾는 게 중요하겠어요. 쌓이고 스미는 삶과 작업의 레이어문승지의 아이디어가 이미지로 구현되는 ‘팀 바이럴스’ 사무실 책상. 문승지의 작업 과정은 촘촘하다.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키워드를 아이디어 보드 형식으로 적는다. 텍스트가 이미지로 넘어가는 단계. 생각을 좁혀나가며 이 무드 작업을 두세 번 거친다. 스케치 형태가 나오면 컴퓨터 평면 작업으로 넘어갈 차례. 캐드를 활용해서 도면 작업을 하고, 그걸 다시 3D로 작게 목업(mock up·실물 모형)을 만든다. 완성되면 제조 공장에 찾아가서 도면과 데이터로 샘플을 만들어보고 형태와 강도, 구조를 체크한다. 이후 생지 목업을 제작해 컬러를 입혀보고 실제 작업물이 나오기 직전의 것을 만들어낸다.그런 그의 작품 중에서 유독 의자가 눈에 띈다. 앉는 부분이 넓고 평평한데 짧은 듯 높은 등받이가 있는 그런 의자. 그의 SNS를 봐도 의자에 앉아 있는 사진이 많은 건 기분 탓일까. 롯데갤러리 동탄점에서 열린 ‘조각모음’ 전시에서도 작가의 대표 의자 작업인 ‘포 브라더스’를 비롯해 색을 적용한 신작을 만나볼 수 있었다. ‘조각모음’의 핵심은 가능성. 표준 규격 합판 1장을 부스러기 한 톨 낭비 없이 모두 사용해 만들어낸 사물은 작가의 독창적인 디자인 철학을 담고 있다. 의자 작업을 자주 하시네요. ‘스탠더드 체어’를 좋아하는 걸로 아는데, 좋은 디자인의 의자는 어떤 건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문승지의 스탠더드 의자는 탄생했나요. 롯데갤러리 동탄에서 열린 ‘조각모음’ 전시장 풍경과 ‘포 브라더스’ 작품(아래). 이번 ‘조각모음’은 문승지가 작가로서 연 첫 전시다. 이전에도 간송문화재단, 파라다이스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 파라다이스 ZIP 등에서 2010년부터 꾸준히 전시를 해왔다. 삼성, 까르띠에 등 유명 브랜드가 앞다퉈 찾는 디자이너지만, 이제껏 만든 디자인 사물을 가지고 예술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처음이다.첫 전시 소감이 궁금합니다. 작가와 디자이너의 경계에서 그 역할의 차이가 어떤 것 같나요. 요즘 20대들은 작가님을 ‘힙’하다고 표현해요. 최대치의 능력을 발현하는 자신은 어떤 모습일까요. 평면에서 시작된 그의 작업은 언젠가 평면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변하지 않는 건 문승지가 가구를 만드는 일.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작업을 잘 쌓아가고 있다. 오랜 고민을 통해 더욱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갈 그의 작업을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