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란 무엇 인가 독후감 - yeogsa lan mueos inga doghugam

역사란 무엇인가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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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란 무엇 인가 독후감 - yeogsa lan mueos inga doghugam

소개글

역사란 무엇인가 내용요약과 저자의견 반박 및 역사란 무엇인가 독후감 및 서평 입니다.

독후감 방향성과 내용에 대해 교수님에게 창의적이라는 칭찬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참고하신다면 생각을 많이 해보았다고 칭찬 받을수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목차

1. 역사란 무엇인가 책소개

2. 저자(E.H 카)가 말하는 역사의 정의

3. 역사란 무엇인가 본문 내용요약
1) 1장: 역사가와 그의 사실
2) 2장: 사회와 개인
3) 3장: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
4) 4장: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5) 5장: 진보로서의 역사
6) 6장: 지평선의 확대

4. 저자의견에 대한 반박

5.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나서 느낀점 (서평)

본문내용

1. 역사란 무엇인가 책소개

영국의 역사학자인 에드워드 카가 1961년 집필한 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의 본질과 역사 서술의 문제점 그리고 저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역사관에 대해서 알기 쉽게 풀이한 책이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책 구성은 총 6장으로써 제1장 역사가와 사실, 제2장 사회와 개인, 제3장 역사와 과학과 도덕, 제4장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제5장 진보로서의 역사제, 제6장 넓어지는 지평선이다.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 이외에도 낭만의 망명객,소비예트 러시아의 역사,새로운 사회,위기의 20년,평화의 조건,새로운 사회,소련이 서구에 준 충격 등의 저서를 남겼다.

2. 저자(E.H 카)가 말하는 역사의 정의

자신의 역사작업 경험을 예시로 제시하면서 읽기(사료수집)과 쓰기를 동시에 병행해야만 한다고 하였다. 이는 역사 사실과 역사가가 끊임없이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이다.
만약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19C 랑케의 실증주의 사학(가위와 풀의 역사,스킬라)과 콜링우드의 현재주의적 사관(선전문,역사소설,카리브디스) 중 하나로 치우칠 수 있다
또 인간과 환경의 관계는 역사가와 연구주제의 관계와 같다고 말함으로써 역사가와 사실의 평등한 관계,주고받는 관계를 강조하였다
즉 E.H 카가 말하는 역사의 정의는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3. 역사란 무엇인가 본문 내용요약

- 1장: 역사가와 그의 사실

역사란 무엇인가 이에대해 액턴은 ‘우리는 이 세대에서 안전한 역사를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고 조지 클라크 경은 이에 맹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액턴과 조지 클라크 경의 충돌은 그 두 사람의 발언 사이의 기간동안 사회에 관한 우리의 견해 전체가 변화했음을 반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관해서 어떤 견해를 있는가라는 더욱 폭넓은 질문에 대한 대답의 일부가 된다. 19세기는 사실들을 숭배한 위대한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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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 독후감 상태 승인
  • 작성개시일자 2018년07월26일
  • 승인일자 2018년07월26일
  • 작성자 박**

이 책은 미국의 20세기 역사가 에드워드 햇릿 카가 1961년 한 강연 내용을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제목 그대로 에드워드 카는 이 책을 통해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우리는 역사가 해석한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에 대해 말하였다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식인들의 견해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고 그에 따라 ‘역사가’의 역할과 임무 또한 변화해왔다. 에드워드 카는 19세기 역사관과 그로부터 60년 후인 20세기 중반의 변화한 역사관을 소개하며 강연을 시작한다. 그리고 역사관이 그렇게 변화한 배경과 자신의 견해를 설명했다.

19세기 역사관을 대표하는 영국의 역사가 ‘액턴’은 이렇게 말했다. 이 세대에는 아니지만 언젠가 인류는 ‘완전한 역사’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여기서 그가 말하는 ‘완전한’ 역사란 무엇인가? 19세기는 사실(facts)들을 숭배했던 시대라고 하다. 당시 역사가들은 역사가란 ‘사실’만을 객관적으로 기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역사가 주관적인 견해가 들어가선 안 된다고 했다. 예를 들면 여러 나라의 전쟁을 두고 기록한 역사는 어느 나라에서 보든 타당할 수 있게 객관적으로 적어야 했다. 이러한 사실 숭배는 19세기에 부흥한 실증주의와 경험주의, 이단론에 힘입어 당대에 지배적인 역사관이 되었다. 액턴이 말한 ‘완전한 역사’란 사실(facts)만으로 객관적으로 기록된 역사였다. 그는 후기 빅토리아 시대 특유의 긍정성으로 완전한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에드워드 카는 여기서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역사적 사실(facts)’이란 무엇인가?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사실이라고 해서 모두가 역사적 사실이 되지는 않는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인류가 살았고 각자의 인생에 수많은 사건이 일어났지만 그러한 모든 과거의 사실이 역사에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사실 중 역사가들이 주요한 사건으로 평가하는 것만이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건의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지위는 역사가의 ‘해석’에 좌우된다. 역사가는 소수의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여 그것들을 역사적 사실로 전환시켜야 하고 이와 동시에 수많은 하찮은 사실을 비역사적으로 간주하여 추려내야 하는 임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사실이 역사적 사실로 전환되는 과정에 이미 역사가의 해석이 들어가기 때문에, 어떠한 역사적 사실도 객관적일 수는 없다.

액턴 이후로 약 50여년간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수많은 연구들을 통해 역사관은 변화하였다. 그 중 이탈리아 역사가 크로체는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해서 그리고 현재의 문제들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며, 역사가의 주요한 임무는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임을 의미한다.’고 했다. 저자와 동시대 역사가인 조지 클라크도 1960년에 ‘객관적인 역사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액턴을 비판했다. 에드워드 카는 이러한 견해를 바탕으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역사란 역사가와 그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답한다.

최근 몇 년 전부터 뉴스에서 ‘팩트(fact)’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뉴스에서 다루는 사건들에 대해 팩트를 체크하고, 청소년 사이에서는 ‘팩트폭격’ 등의 유행어가 번져 팩트라는 단어가 일상에 자리잡았다. 유행어처럼 팩트라는 단어가 번진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우리보다 몇 년 앞서 유행어로 번진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팩트열풍이 현시대뿐만 아니라 19세기에는 더 심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가 객관적인 역사적 팩트란 없다고 말한 것처럼, 뉴스에서 말하는 ‘팩트’도 객관적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뉴스에서는 자신들이 밝히고자 하는 것을 시청자들에게 더욱 객관적인 것처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팩트’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도 든다.

또, 이것을 나 자신에게 대입해 생각해 볼 수도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로 사실일까? 내가 과거의 기억에 대해 아무리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그것은 ‘완전한 사실’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모르는 사실이 있을 수 있고 내 기억이 왜곡되었을 수도 있고 내 판단은 주관적인 영향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와 똑같은 과거의 사건을 두고 다른 기억을 하며 서로 자신이 옳다고 말싸움을 할 때가 있다. 이럴 때 내가 ‘완전한 사실’을 기억하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며 상대방의 말도 잘 듣고 수용하는 태도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드워드 카는 이렇게 역사에 대해 설명한 후, 역사가를 평가하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본격적으로 말하기 앞서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말한다. 사회와 개인 중 무엇이 우선일까? 이에 대한 답은 없다. 사회와 개인은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둘은 서로에게 필수적이고 보완적인 관계이다. 한 개인에게서 사회의 영향을 배제하면 그 개인은 형성될 수 없다. 또한, 반대로 개인이 없이는 사회도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은 분명한 진리이다. 그러나 르네상스와 더불어 시작된 ‘개인주의 숭배’는 이 분명한 진리를 역사적으로 모호하게 만들었다.

‘개인숭배’는 이전까지 자신을 오직 한 종족/가족/집단 등의 단체 구성원으로만 인식했던 인간이 르네상스 이후로 자신을 정신적으로 ‘개인’으로 인식하며 시작됐다 그 후 자본주의와 산업혁명, 프랑스 혁명, 공리주의 등의 부흥을 기반을 개인숭배 의식은 더욱 확대되었다. 그러나 그 후 ‘대중 민주주의’가 발흥하며 개인화는 다시 집단적인 형태로 대체되었다. 에드워드 카는 개인숭배 시기는 역사적 발전이 일어나며 있었던 정상적인 한 사회적 단계였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개인과 사회는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이기 때문에 역사가 또한 그러하다. 19세기 역사관은 역사를 개인에 의해 쓰여 진 개인에 관한 어떤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그 개인의, 즉 역사가의, 지식은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축적한 지식에 영향을 받았으므로 개인적인 소유물이 아니다. 역사가는 (다른 개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사회의 대변자이며, 역사의 일부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 역사가의 연구를 평가하기 전, 그 역사가의 입장을 파악하지 않으면 그것을 평가할 수 없다. 따라서 저자는 역사를 연구하기 앞서 역사가를 연구하고, 역사가를 연구하기 앞서 역사가의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라고 말한다.

이는 비단 역사나 역사가를 평가할 때뿐만 아니라, 그 어떤 모든 개인과 사건을 평가할 때 적용해야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나와 다른 사회적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을 나의 잣대로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한 사람의 주장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것이 아니라 그가 그러한 생각을 갖게 된 사회적 환경을 고려하여 받아들어야 할 것이다. 독서를 할 때도 저자의 역사적/사회적 배경을 고려하여 독서를 해야 할 것이다. 역사책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이라도 말이다.

역사관이 19세기에서 20세기로 오며 변화하였듯, 과학에서도 그러한 변화가 있었다. 18세기 19세기에 과학자들은 자연에 대한 여러 법칙들(뉴턴의 운동법칙, 중력의 법칙, 보일의 법칙, 진화의 법칙 등)을 발견하며 이러한 과학 법칙들이 명확하게 확정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과학자들에게 남은 임무는 많은 자연현상에서 이러한 법칙이 맞아떨어짐을 발견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뉴턴은 ‘나는 가설을 세우지 않는다’며 자랑했다. 이것은 19세기 역사관에서 ‘완전한 역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던 것과 매우 유사하다. (개인은 사회에 의해 형성된다는 애드워드 카의 말대로) 역시 같은 시대에 유럽이란 사회적 환경에서 살았던 인물들이라 과학자나 역사가나 비슷한 사회적 영향을 받아 생각이 비슷했나보다.

역사가들이 그러했듯 20세기가 되며 과학자들의 인식도 변화했다. 수학자 푸앵카레는 ‘과학자들의 일반 명제들은 사유의 진전을 구체화하고 체계화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가설이며, 따라서 증명과 수정과 반론을 필요로 한다’고 했고 이것이 20세기의 상식이 되었다. 20세기의 과학자들은 자신의 해석을 검증하는 가운데 하나의 가설로부터 다음 가설로 점진적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겸손한 희망을 품게 되었다.

이전에 한 강연에서 들은 내용이 생각났다. 과학기술이 혁명적으로 진보하기 이전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우주와 자연, 생명체 등에 대해 단 10퍼센트밖에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진보하자 그들은 자신들이 단 1퍼센트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후기 빅토리아 시대에 자만했던 역사가 액턴처럼, 당대 유럽인들은 항해로 전 지구적으로 다른 나라들을 지배하며 곧 모든 세계를 다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인류는 이제 겸손해질 일만 남지 않았나 싶다.

역사가가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것에 대해서도 시대에 따라 견해가 달랐다. 이에 대해 애드워드 카는 개인의 도덕성에 대한 판단과 사회의 도덕성에 대한 파단을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역사가가 개인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그보다는 사회의 도덕성에 대해 판단하는 일이 더 가치있다고 말한다. 역사적 인물(개인)의 행위는 사생활과 공적인 행위로 나뉘는데,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 논하는 것은 역사가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공적인 행위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해야하느냐 말아야하느냐에 대해서는 시대에 따라 견해가 변화했다. 역사가가 자신의 주인공에 대해 도덕적 판단이 있다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은 예로부터 이어져왔고, 특히 19세기 영국에서 가장 강력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20세기가 되며 역사가는 재판관이 아니므로 개인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하지 않아야 된다는 견해가 주를 이뤘고 저자인 애드워드 카 또한 이에 동의했다.

애드워드 카는 역사적 인물의 사생활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이만큼 재밌는 것이 있을까? 사극 드라마도 조선왕조의 역사적 사건을 다룬 드라마도 재밌지만 왕이나 역사적 인물의 사적인 이야기나 사랑 이야기야말로 정말 재밌지 않은가! 물론 이러한 드라마에는 픽션이 많이 첨가되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역사가 왜곡될 수도 있기 때문에, 애드워드 카의 말대로 ‘역사가’는 재판관이 돼서는 안 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역사의 연구는 원인에 대한 연구이기 때문에, 역사가는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가의 책임은 고대 그리스의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역사가 헤로도토스 때부터 규정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8세기 이후로 200여년 간 역사가들은 역사적 사건의 원인과 그것을 지배하는 법칙을 발견해 인류의 과거 경험을 체계화하려 했다. 역사는 과거의 사건을 원인과 결과의 질서정연한 전후관계 속에 배열함으로써 성립한다는 것이 공인된 교리였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 역시 20세기가 되며 변하였다. 20세기 중반에는 더 이상 역사의 ‘법칙’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원인’이라는 말도 ‘해석’등의 용어로 대체되고 역사가들은 인과적 연구방법에 반대하며 기능주의적 연구방법을 지지했다. 역사가들은 동일한 사건에 대해 여러 가지 원인들을 제시하고 그 원인들 중 궁극적인 원인을 ‘해석’해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앞서 소개된 과학자들의 자연법칙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매우 유사하다.

마지막으로 애드워드 카는 다시 한 번 역사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과정으로 역사가는 그 과정안에서 움직여 나간다고 강조하며, (그가 강연했던 시점을 기준으로) 현재 진보하는 세계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그래도, 그것은 움직인다.’는 말을 인용해 강연을 마무리 했다.

이 책의 핵심 내용 중의 하나는 객관적인 사실로 역사를 기록하려 했던 19세기의 역사관은 모순이며 역사가는 사회의 영향으로 형성된 개인이기 때문에 역사 또한 그러하다는 것인 것 같다. 그렇다면 역사가의 주관성이 개입하는 것이 어디까지 허용되는 걸까? 한 일본의 역사가가 20세기 역사를 일본인 시점에서 쓰는 것을 그 역사가는 일본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아니면 사회의 영향을 수 밖에 없는 개인이지만 어느 정도의 객관성은 가져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그 ‘정도’는 어떻게 규정되는 걸까? 책을 읽고 나서 이러한 궁금증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