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근현대사 유적지 - seoul geunhyeondaesa yujeogji

이 안내판은 일제강점기시절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건국의 초석을 다진 순국선열묘역 주변 6곳에서 볼 수 있다. 제헌국회 초대 부의장과 2대 의장을 지낸 해공 신익희, 초대 부통령 성재 이시영, 독립청원서를 파리로 보내는 장서운동을 주도한 심산 김창숙, 항일투쟁 단체 신한청년당을 만든 몽양 여운형, 3‧1운동 기획자이자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중심에 섰던 의암 손병희 선생을 소개한다.

의암 손병희 묘역 옆에 있는 ‘봉황각’ 안내판도 새로 단장했다. 3‧1운동 발상지로 평가받는 봉황각은 손병희 선생이 천도교 지도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1912년 세운 교육시설이다.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15명을 배출했을 정도로 독립투사를 키워낸 산실 역할을 했다. 봉황각은 서울시 유형문화재이며 순국선열 묘역은 모두 국가 등록문화재다.

안내판은 국문과 영문으로 설명한다. 특히 봉황각과 여운형 선생 묘소에는 해설과 지도를 통합한 안내판이 문화재를 편리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강북구는 전문가 자문단에 국문 감수(監修)를 거쳐 안내판 설명내용을 알기 쉬운 문구로 작성했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북한산 자락에는 항일 독립운동부터 광복에 이어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격동기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드러난다”며 “이곳에 있는 역사문화 유적지에서 조국 독립과 건국에 앞장선 선열들을 찾아보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제주4·3 도외 유적지 조사단이 서울에 있는 4·3유적지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2021년 7월 11일 서울 남대문 인근에서 해방을 맞은 1945년 당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전국인민대표자대회가 열렸던 경기공립고등여학교 터를 찾는 모습입니다.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는 지난 7월 11일부터 13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 일원에서 제주4·3 도외 유적지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조사는 제주도 밖에 있는 4·3 관련 유적지에 대한 조사를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4·3이 제주섬 안에만 갇혀 있어선 안 된다는 공감대의 발현이기도 합니다. 수도권 조사를 시작으로 전국에 있는 4·3 관련 유적지들을 돌아보고 현황을 기록할 계획입니다. 혹여 4·3에 관한 왜곡된 인식을 확산할 우려가 있는 유적지가 있다면 이를 개선할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조사에는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연구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소속 연구자와 활동가, 언론사 기자 등이 참여했습니다. 우리 (사)제주다크투어도 동참했습니다.

조사단원들은 사전 회의를 통해 조사 대상 유적지를 선정하고 일정을 조율했습니다. 한정된 답사 기간 중 최대한 많은 유적지를 돌아봐야 했기에 최선의 동선을 구성하기 위해 고심했습니다. 유적지에 대한 기초자료 조사도 함께 진행해 중점적으로 살펴봐야 할 포인트에 대해서도 공유했습니다.

◆전쟁을 '기념'하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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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으로 들어서는 제주4·3 도외 유적지 조사단

첫 유적지 조사는 전쟁의 기억을 미화해 '기념'하는 대표적 장소, 전쟁기념관이었습니다.

국방부가 있는 용산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은 전쟁을 '모뉴먼트(monument)'하는 시설입니다. '모뉴먼트'. 생소한 단어이지요.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합니다. 흔히 자랑스러운 전승(戰勝)을 기념하는 방식은 '모뉴먼트'라고 하고, 비극적인 것을 추념하는 방식을 '메모리얼(memorial)'이라는 말로 표현한다고 합니다.

전쟁기념관은 전쟁을 모뉴먼트하는 국내 시설의 총본산과도 같은 곳입니다. 다른 지역에 있는 여러 전쟁기념관들이 특정 전투의 승전 등 구체적 전과에 대해 기념하는 방식이라면, 용산 전쟁기념관은 종합적인 관점에서 전쟁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전쟁기념관은 약 1만여 평 규모에 1만 점가량의 전시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한국전쟁 관련 전시물이라고 합니다.

전쟁사를 아우르는 역사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4·3과 관련한 내용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여력이 있다면 4·3을 설명하는 방식을 살펴봄으로써 전쟁기념관이 전쟁을 설명하는 기제를 유추해보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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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에 조성된 제주4·3 관련 패널

전쟁기념관에 있는 전시물 중 4·3에 관해 직접 언급하며 설명하는 패널은 하나밖에 찾지 못했습니다. 이 패널에 따르면 4·3은 '한국전쟁'이라는 키워드에 종속되어 결과론적으로 국군의 전력을 약화시킨 원인으로 설명됩니다.

한국전쟁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낸 측면에 대해선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군경은 물론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라는 정도로 정리해 버립니다.

4·3이 발발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제주도 내 상황, 예를 들어 경찰의 발포에 의한 민간인 사망, 이에 항의하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잡아 가두는 친일 출신의 경찰관들의 행태, 미군정의 경제정책 실패, 그리고 한반도를 남북으로 갈라놓을 단독선거, 단독정부 수립의 반대 기치 등은 설명에서 배제되었습니다.

맥락은 찾아볼 수 없고, 단편적 정보를 전체인양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왜곡에 가까운 생략은 4·3을 군의 입장에서 알리고 싶은 서사를 구성하는 하나의 부품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4·3을 잘 모르는 이가 이 패널을 보게 된다면 '4·3=반란'이라는 인지도식을 갖게 될 것입니다. 설명문 바로 옆에 배경처럼 삽입된 사진과 문구는 이러한 인식을 더욱 강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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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관련 패널 옆에 삽입된 사진과 문구. "인민군을 남한에 내려 보내면 아예 발밪춰 20만 명의 지하남로당원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북한 외무장관 박헌영", "심문받는 여수·순천 10·19사건 용의자들(1948.11)"이라는 문구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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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관련 패널 옆에 삽입된 사진과 문구. "연행되는 반란군"이라는 문구와 함께 속옷만 입은 남성들이 항복 자세로 줄지어선 사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앞서 설명해 드렸듯 전쟁기념관은 전쟁을 모뉴먼트하는 공간입니다. 이 과정에서 군 지휘관이 영웅화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인물의 흑역사는 지워지고, 밝은 부분만을 부각하는 것이죠. 모든 지휘관의 명암에 대해 언급할 필요 없이 4·3과 관련한 인물의 소개만 봐도 전쟁기념관이 전쟁을 어떤 식으로 설명하는지 알 수 있을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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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에 전시된 송요찬 연대장의 패널. 사진 뒤쪽 인물이 송요찬 연대장.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송요찬 연대장입니다.

송요찬은 1948년 6월 21일 제주에 주둔하던 11연대 부연대장(당시 소령)으로 부임했습니다. 이어 7월 15일에는 11연대를 제9연대로 재편하면서 송요찬이 연대장으로 임명됩니다. 미군에 의해 '강인하고 용감한' 성격이라 평가받던 송요찬은 학살을 꺼려했던 최경록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그렇다고 최경록이 온건한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송요찬은 4·3 당시 '초토화작전'을 펼쳐 민간인 학살을 주도했던 군 지휘관 중 한 명입니다.

당시 미군정 보고서들을 살펴보면, "9연대장 송요찬 중령은 강력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송요찬 중령은 섬 주민들의 당초 적대적인 태도를 우호적·협력적인 태도로 바꾸는 데 대단한 지휘력을 발휘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특히, 악명 높은 서북청년단원을 군인으로 편입시켜 '특별중대'로 만들기도 했는데요. 이 특별중대는 제주도 주민들에게 있어 악몽 그 자체였습니다.

전쟁기념관은 이런 송요찬에 대해 "6·25전쟁 중에 헌병사령관, 수도사단장으로서 용맹을 떨쳤고, 전후에는 3군군단장, 1군사령관을 거쳐 육군 참모총장을 지냈다"고 설명합니다.

4·3 당시 민간인 학살을 주도했다거나 일본군 출신이었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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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민간인학살과 관련한 내용을 담은 패널. '북한군이 저지른 악행'이라는 것이 설명의 요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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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민간인학살과 관련한 내용을 담은 패널. '북한군이 저지른 악행'이라는 것이 설명의 요지입니다.

이외에도 민간인 학살을 설명하는 패널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자행한 일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설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4·3과 한국전쟁이 겹치는 시기에 벌어진 '예비검속' 민간인 학살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4·3으로 육지부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자국 군·경에 의해 집단학살된 행방불명 수형인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습니다. 한국전쟁에서 양측 군인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의 숫자는 대략 60~1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억울한 옥살이' 4·3 수형인의 행적을 쫓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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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해 조사를 벌였습니다. 1908년에 개소한 서대문형무소는 근대적 시설을 갖춘 한반도 최초의 감옥입니다. 대표적인 형무소 유적지로 꼽힌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이 투옥되어 고초를 겪었고, 해방 이후 군사정권이 들어선 시기에는 많은 민주화 투사들이 구금되었던 공간입니다.

지난 1988년에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었고, 1998년부터 역사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관련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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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의 옛 모습을 촬영한 사진 자료.(서대문형무소역사관 내 전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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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역사관의 전시 패널을 살펴보는 도외 4·3유적지 조사단.

4·3 당시 불법적인 군법회의(군사재판)로 수형인이 된 80명 정도의 도민이 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고 합니다. 수감자들은 대부분 여성이었고, 10여 명이 생환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역사관 자체가 항일운동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4·3 관련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지난 2007년 10월 28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는 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희생당한 분들을 기리는 진혼제가 봉행되기도 했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한국 근현대사 전체를 아우르는 시설이 되어 4·3에 관한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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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되었다 희생당한 분들을 기리기 위해 열렸던 진혼제의 장소를 찾았습니다. 당시 현장을 촬영한 사진과 함께 현재 모습을 담았습니다.

이어서 마포형무소 옛터에도 다녀왔습니다.

현재 서울 서부지방법원 및 검찰청이 들어선 이곳에서는 4·3 당시 1, 2차 군법회의 수형 피해자 500여 명이 수감되었습니다. 15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은 장기수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마포형무소 정문 인근에 '독립운동유적지' 표석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1912년 일제가 경성형무소를 설치하여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렀던 유적지"라고 설명이 되었습니다. 표지석이 낡아서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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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형무소 옛터. 현재는 서울서부지방법원 및 검찰청이 들어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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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형무소(경성형무소) 옛 모습.(서대문형무소역사관 내 전시 자료)

그런데 이 표지석 옆에 새 안내판이 생겼습니다.

몇 년 전 한 4·3단체가 이곳에서 조사를 벌였던 당시에는 이 표지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날 조사를 위해 방문한 마포형무소 옛터에는 '경성감옥 터'라는 제목의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내용은 일제강점기 이 자리에 있었던 경성감옥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역시나 아쉽게도 4·3과 관련한 내용은 기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새 안내판이 조성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희망적인 변화로 느껴졌습니다. 언젠가 이 안내판 옆에 4·3에 관한 내용을 담은 안내판이 세워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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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형무소 정문 옆에 조성된 '독립운동유적지'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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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형무소 정문 옆에 조성된 '경성감옥 터' 안내판. 기존 표석 옆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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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형무소 정문 옆에 나란히 세워진 표석과 안내판.

이외에도 이날 하루 동안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전국인민대표자대회가 열렸던 경기공립고등여학교 터, 남로당 중앙당사 터 , 4·3 학살의 책임자 중 한 사람인 조병옥의 묘, 해방기 한반도의 정국을 주도했던 인물 중 하나인 여운형 선생의 생가 터 묘 등을 조사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어지는 다음 후기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