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없는 사람 진화 - salangni eobsneun salam jinhwa

사랑니 없는 사람 진화 - salangni eobsneun salam jinhwa

치의학은 왜 의학과 따로 구분되어 있을까? 사실 과거에는 치과의사와 의사의 구분이 없었다. 외과와 내과가 구분되면서 약 17세기 일부 외과 의사가 치과를 전문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의 피에르 포사르를 현대 치과의 아버지라고 하는데, 통상의 외과 시술과 달리 치과적 진료만을 위한 독특한 방법을 여러 개 제안했다. 19세기를 지나면서 치과의사만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대학이 설립되기 시작했고, 이어서 치과와 관련된 법과 규정이 제정되면서 독립된 학문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배경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치과 질환이 너무 흔하다는 현실적인 이유다. 2019년 기준으로 한국의 의사는 총 10만 5000여 명이다. 그런데 치과의사가 2만6000여 명이다. 의사 네 명당 치과의사가 한 명이다. 내과 의사는 1만 8000여 명에 불과하다. 치과의사가 내과 의사보다 많다. 물론 치과 치료는 여러 번 방문해야 하는 특수성이 있지만, 그래도 너무 많다. 그만큼 인간의 치아가 좋지 않은 것일까? 인간의 이빨은 왜 이렇게 취약한 것일까?

치아의 개수


치아의 기원은 멀리 어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무악어류는 치아가 없는데, 턱이 없기 때문이다. 실루리아기까지 원시 바다를 점령한 녀석이다. 그러다가 아가미 활에서 점차 턱이 진화하기 시작했는데, 아마 처음에는 아가미로 더 많은 물이 지나가도록 하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아가미를 지나는 물의 양을 늘리려면 입을 크게 벌려야 하기 때문이다. 턱은 점점 단단해졌고, 원시적인 돌기가 생겨났다. 입을 크게 벌려 깨물 수 있게 된 것이다. 치아를 갖춘 유악어류는 데본기의 지배자가 되었다. 


파충류인 악어의 치아는 모두 비슷비슷하다. 하지만 포유류는 다르다. 페름기 무렵 처음 나타난 현상이다. 다양한 종류의 치아가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형태에 따라 대개 네 종류의 치아로 나뉘는데, 절치, 견치, 소구치, 대구치다. 처음 포유류가 진화할 때는 절치, 즉 앞니가 3 개였고 소구치는 4 개였다. 총 44개다. 치아는 상하좌우가 비슷하므로 앞니만 총 12개다. 하지만 지금 거울을 보면 앞니는 8개뿐이다. 영장류로 진화하면서 세 번째 절치가 사라졌다. 

그리고 여우원숭이 등의 원원류나 신세계원숭이는 첫 번째 소구치(앞어금니)가 사라졌고, 구세계 원숭이로 가면서 두 번째 소구치가 사라졌다. 소구치를 흔히 번호를 붙여 P3, P4라고 하는데, 처음 해부학을 공부하는 의대생은 ‘도대체 P1, P2는 어디 있느냐’고 궁금해하기도 한다. 수천만 년 전에 사라졌다. 그래서 인간의 치아는 총 32개다. 침팬지나 고릴라, 오랑우탄도 모두 32개다. 
잘 알겠지만, 치아는 두 번 난다. 유치와 영구치다. 악어의 치아는 끊임없이 난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평생 50회 정도의 이갈이를 한다. 하지만 포유류는 아니다. 단 두 번이다. 유치와 영구치다. 캥거루나 코끼리 같은 예외도 있다. 포유류지만 이갈이가 여러 번 일어난다. 그런데 영구치가 나면서 좀 문제가 생겼다. 32개의 치아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인류 치아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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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조카의 치아를 잘 보자. 아마 윗송곳니와 앞니 사이에 공간이 조금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래턱에는 송곳니 뒤에 공간이 좀 있을 것이다. 이를 흔히 '영장류 공간'이라고 한다. 고릴라, 침팬지는 송곳니가 크기 때문에 이러한 공간이 필요하다. 어린아이의 치열에 진화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이다. 


오스트랄로피테신으로 진화하면서 인간의 치아는 점점 작아졌다. 일부일처제가 강화되면서 남성과 여성의 체구 차이가 줄어들었는데, 그러면서 송곳니도 작아졌다. 흔히 커다란 송곳니는 고기를 찢는 기능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초식동물인 고릴라의 송곳니가 그렇게 거대할 이유가 없다. 침팬지의 식단에도 고기는 별로 없다. 수컷 사이의 경쟁을 위해서 큰 송곳니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한 여성만 평생 사랑하기로 결심한 인류에게는 이제 큰 송곳니가 필요하지 않았다. 

어금니도 작아졌다. 인류 조상의 사촌쯤 되는 파란트로푸스는 주로 채식을 했기 때문에 거대한 치아를 가지고 있다. 특히 어금니가 아주 강건하다. 턱도 크고 턱 근육이 붙는 두개골도 특징적이다. 하지만 육식을 선택한 직계 조상의 치아는 점점 작아졌다. 도구와 불을 사용하면서 치아의 기능을 대신한 것이다. 인간의 손은 어느 정도는 치아다. 흥미롭게도 네안데르탈인은 상대적으로 큰 앞니와 송곳니를 가지고 있다. 앞니 손상도 많다. 아마 앞니를 도구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네안데르탈인의 손재주는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작은 치아


인간의 치아는 다른 포유류에 비해서 숫자도 작고 크기도 작다. 플라이스토세 전 기간 동안 일관되게 나타난 현상이다. 원래 남성의 치아가 여성의 치아보다 큰데, 예전에는 그 차이가 더 두드러졌다. 현대인의 치아는 남녀 차이가 별로 크지 않다. 인류의 치아는 점점 작아졌다. 
치아의 형태는 식생활과 직접 관련된다. 인류의 치아 크기 감소 현상은 식단의 변화와 요리의 발명에 기인한 것이다. 영양가가 높은 음식을 잘 조리해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치아의 쓸모가 적어진 것이다. 약 200만 년 전에는 턱 근육을 만드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겼다. 전보다 약한 저작근이 진화했다. 

사실 치아만이 아니다. 인간의 위장관도 짧아졌다. 인간의 손 그리고 뇌는 치아부터 대장에 이르는 소화기관의 기능을 상당부분 대신하고 있다. 열량이 높은 음식, 즉 지방이나 단백질, 탄수화물을 구하는 일은 상당한 공을 들여야 한다. 두말할 것 없이 사냥은 몹시 어렵고 위험하다. 대형 동물을 사냥하려면 협력이 필수적이다. 채집도 마찬가지다. 계절의 변화와 지형에 따라 무엇이 어디에 많이 자라는지 정보를 확보하고 기억하고 전달해야 한다.

  사랑니의 진화


사랑할 나이가 되어야 난다고 해서 사랑니라고 하는데, 앞으로는 이런 말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사랑니, 즉 제3대구치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일단 턱이 너무 작아져서 치아가 들어설 자리가 부족하다. 그래서 사랑니는 턱 맨 안쪽에 겨우 비집고 나는데, 너무 깊은 곳에 나기 때문에 기능이 별로 없다. 너무 좁으므로 종종 이상한 방향으로 난다. 잘 썩기도 하고, 옆의 치아를 압박하여 통증이나 염증이 생기기도 한다. 턱을 부여잡은 현대인이 인상을 쓰면서 치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사랑니가 아예 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가장 큰 어금니가 제3대구치였는데, 이제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현대인의 치아에서 가장 큰 치아는 제1대구치다. 약 30만 년 전 무렵부터 사랑니가 없는 변이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 인구 중 약 25억 명이 최소한 하나 이상의 사랑니가 아예 나지 않는다.

  덧니의 진화


나머지 치아도 자리가 넉넉하지 않다. 덧니, 즉 부정교합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다. 치과 대기실이 북적이는 또 다른 이유다. 작아진 턱에 가지런히 치아를 배열할 방법이 없으니 치의학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산업 국가의 경우 다섯 명 중 한 명 꼴로 부정교합이다. 


왜 턱이 작아지는 것일까? 날음식을 씹기 위해서는 조리된 음식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잘게 썰지 않은 육회를 한번 먹어보자. 한참을 질겅거려야 겨우 넘길 수 있다. 진화학자 다니엘 리버먼에 의하면 요리 기술의 발달이 얼굴의 성장을 억제하고 있다. 부드러운 음식을 많이 먹으면서 얼굴이 점점 작아지고, 턱도 작아지고, 좁은 곳에서 치아가 비집고 나오다가 덧니가 생기는 것이다. 


턱과 얼굴의 크기는 발달 과정 중의 자극에 영향을 받는다. 건강한 얼굴과 턱의 발달을 위해서는 좀 씹어 주어야 한다. 하지만 부드러운 음식을 주로 먹는 현대인의 유년기는 이러한 자극이 부족하다. 수렵채집인에게 덧니가 적은 이유다. 신석기 이후 인류는 고기보다 곡물을 더 많이 먹는다. 덧니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린 시절에도 질긴 음식을 꼭꼭 씹어 먹는 것이 구강 건강에 유리하다. 치과에 갈 일도 줄일 수 있고, 턱도 건강하게 자랄 것이다. 턱이 작으면 예쁜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정상적인 발달이 지연된 빈약한 턱은 미적 측면에서도 불리하다. 게다가 덧니도 많고, 치아도 잘 썩는다. 우리 조상처럼 피가 뚝뚝 흐르는 고기를 먹을 수는 없다. 하지만 치아 건강을 위해서 단단한 채소와 견과류를 많이 먹는 것이 좋다. 입에 살살 녹는 음식이 건강에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너무 부드러운 음식만 먹다 보면, 그런 음식밖에 못 먹는 상황에 빠질 것이다. 음식은 씹어야 제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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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 교정 환자가 한가롭게 잡지를 뒤적이며 대기실에 앉아있다. 그런데 그 옆에 인상을 잔뜩 찡그린 또 다른 환자가 보인다. 잡지에 눈길을 돌릴 여유도 없다. 바로 충치 환자다. 충치 치료 전에 치료용 의자에 앉은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고통을 피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맹세한다. 하지만 그러한 회개도 잠시, 드릴이 돌아가기 시작하면 치과의사를 마음 깊이 저주하며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곤 한다. 충치는 인간의 행복도를 바닥까지 끌어내리는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동물은 충치를 잘 앓지 않는다. 인류의 조상도 마찬가지였다. 최첨단 칫솔모가 복합 배열된 칫솔도 없고, 고가의 치약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충치도 없었다. 도대체 현대인은 언제부터 충치를 앓게 되었을까? 

참고자료

-Wrangham R, Conklin-Brittain N : ‘Cooking as a biological trait’. Comp Biochem Physiol Part A Mol Integr Physiol, 136:35-46, 2003.
-Brace CL, Smith SL, Hunt KD : What big teeth you had Grandma! Human tooth size, past and present. In: Advances in Dental Anthropology, eds. Kelley MA, Larsen CS, Wiley-Liss, New York, pp33-57, 1991.
-Feng HL, Zhang XX, Wu H : Research advances in tooth agenesis. Beijing Da Xue Xue Bao, 39:13-17, 2007.
-Macho GA, Moggi-Cecchi J : Reduction of maxillary molars in Homo sapiens sapiens; a different perspective. American Journal of Physical Anthropology, 87:151-159, 1992.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