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창제는 1443년 세종대왕이 만들어서 1446년 반포했다는 것이 공식적인 기록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남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나랏말싸미>라는 영화에서 신미스님과 한글 창제가 나오는데 실화인지, 진실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한글이라는 글자를 만든 목적입니다. 나랏말싸미의 뜻은 그 뒤에 나오는 백성 사랑의 문구에서 한글 창제의 진정함이 있을 것입니다. [엮인 글] 장영실의 업적, 장영실과 세종의 드라마틱한 생애- 장영실의 발명품들 전 세계 280여 개국 중에서 자신만의 글자를 가진 나라는 오직 28개국뿐입니다. 더구나 한글은 사용인구가 13위에 해당하고 언어학자들이 최고의 문자 중 하나로 인정하니, 자랑스러워 하기에 충분한 글자입니다. 그런데 궁금한 점은 세계의 문자 중 창시자가 밝혀진 오직 한 문자가 한글이라는 점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이런 엄청난 일에 대한 호기심은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신미스님'이 한글 창제에 공을 세웠다는 이야기로 상상력을 넓힙니다. (나랏말싸미 영화의 한 장면에서 세종과 신미승려가 함께 있다 [영화 나랏말싸미 뜻 신미스님 한글 창제 실화 진실 신미대사 실존인물] / ⓒ 조철현) 영화의 제목인 나랏말싸미의 뜻은 이렇게 현대 말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나랏(나라의) 말싸미(말이) 듕귁에(중국과) 달아(달라) 문짜와로(글로) 서르(서로) 사맛디(맞지) 아니할쎄(않으니)..." 백성이 자신의 뜻을 펴고 싶어도 한자가 우리 언어와 달라 고생하는 것을 보고, 쓰기에 편하게 하려고 한다는 깊은 백성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창제를 한 사람이 분명하게 적혀 있어도 한글 창제와 신미스님 이야기가 실화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습니다. 왜 그런 상상이 생기는 걸까요? 그것은 아무리 창조라고 할 지라도 참고하거나 자료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한글을 세종대왕이 만든 것이 아니라 신미승려가 만들어 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상업영화인 나랏말싸미에서 신미스님이 한글 창제를 한 것처럼 표현된 것도 그런 관점에서 본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기록으로 증명된 것은 없으며 학계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 하나의 "설"에 불과합니다. (국립한글박물관에 있는 한글 전시물 [영화 나랏말싸미 뜻 신미스님 한글 창제 실화 진실 신미대사 실존인물] / Jocelyndurrey) 그러나 한글을 신미스님이 창제했다고 보거나, 적어도 참고자료를 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첫째, 불경을 잘못 번역한 것이 한자의 문제점이라고 생각한 신미승려는 범어와 티베트어 등 5개 언어를 독학하여 많은 지식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 영향으로 훈민정음 창제 후 실험적으로 만든 책들이 모두 불교서적이라는 점도 있습니다. 셋째, 신미대사가 죽은 후 세종대왕의 아들 문종은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이롭게 했다"는 법호를 내렸다고 합니다. 신미승려가 실존인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나랏말싸미 뜻과 신미대사 훈민정음이 이전의 문자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구태여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자도 현재의 중국인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3천 년 전 우리 민족이 대륙에 살 때, 이미 그 이전부터 한자의 뿌리가 만들어져 있었으니 여러 민족이 공유하며 발전시켰다는 것이 맞는 얘기입니다. 마찬가지로 한글이 만들어진 것도 여러 언어와 문자를 참고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입니다. 다만, 한글 창제에서의 신미스님이 실화냐 진실된 역사냐는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란 한글의 원리를 설명한 책이다 [영화 나랏말싸미 뜻 신미스님 한글 창제 실화 진실 신미대사 실존인물] / Jocelyndurrey) 신미대사가 공부했다는 "범어"는 '산스크리트어'를 말합니다. 고대 인도의 말이며, 범어란 뜻은 "브라만 어"를 한자로 표기한 것입니다. 불교는 고대 인도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러니 불경을 적은 산스크리트어는 불교의 전래와 함께 우리 민족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학자들도 우리말에서 불교어인 산스크리트어가 많이 섞여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스크리트어의 문자를 한글이 모방했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세종실록을 보면 "옛 전자를 모방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옛 전자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문자인지, 중국의 한자인지, 고려 때 들어온 몽골의 문자인지, 심지어 이전부터 고조선이 사용했다는 가림토 문자인지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글이 모방을 했을 수는 있어도 참고와 자료일 뿐이지 말 그대로 베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랬다면 이미 같은 점이 발견되었어야 하는데, 한글은 엄연히 독창적인 글자로 학자들에게 대우를 받는 중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훈민정음 언해본이란 한문으로 적힌 반포 문장을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영화 나랏말싸미 뜻 신미스님 한글 창제 실화 진실 신미대사 실존인물] / www.kiss7.kr)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랏말싸미 영화에서 신미스님이 한글 창제의 실화 인물인 것으로 그려진 것은 세종대왕이 단독으로 글자를 창조했다는 놀라움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훈민정음은 집현전 학자들도 모르는 상황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나중에 정리만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더욱 놀라운 창조입니다. 그래서 신미대사가 도왔다느니 문종이 도았다느니 하는 얘기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훈민정음의 첫 구절인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라는 부분을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라고 해석하고 당연히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즉 중국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해왔는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세종대왕의 조선시대때 중국은 명나라였고 그 이전에도 중국이라는 명칭의 국호를 사용한 적이 없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훈민정음에서 언급된 '듕귁'이라는 표현이 현재의 중국이라는 나라로서 표현을 한게 맞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시대적 배경으로 본다면 중국이 아니라 명국으로 표현되는것이 자연스러웠을텐데 어째서 듕귁으로 기록되어 남겨졌는지 궁금합니다. ※이동통신 기기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우리가 흔히 훈민정음의 첫 구절인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라는 부분을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라고 해석하고 당연히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즉 중국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해왔는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세종대왕의 조선시대때 중국은 명나라였고 그 이전에도 중국이라는 명칭의 국호를 사용한 적이 없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훈민정음에서 언급된 '듕귁'이라는 표현이 현재의 중국이라는 나라로서 표현을 한게 맞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시대적 배경으로 본다면 중국이 아니라 명국으로 표현되는것이 자연스러웠을텐데 어째서 듕귁으로 기록되어 남겨졌는지 궁금합니다. ================================================================== 답변자 : 온라인 가나다 답변일시 : 2021. 10. 13. 안녕하십니까? 말씀하신 내용은 이곳에서 답변드릴 수 있는 범위의 것이 아니므로 답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이곳은 어문 규범, 어법, 표준국어대사전 내용 등에 대하여 문의하는 곳임을 이용에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의하여 주셨는데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나눔바른고딕 옛한글, 나눔명조 옛한글(이 둘은 여기서 다운 가능), 함초롬체 LVT(아래아 한글 문서로.), 본고딕(또는 Noto Sans CJK KR, 여기서 다운 가능) 중 하나가 설치되어 있으면 제대로 보인다.
3. 관련 서적[편집]3.1. 해례본[편집]자세한 내용은 훈민정음 해례본 문서 를 의 번 문단을 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세종대왕 때 간행한 최초의 원본과 동일한 훈민정음의 판본이다. 이에 '훈민정음 원본'이라고 불리기도 하나, 다만 현재 남아있어 대한민국의 국보 겸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지정된 훈민정음 간송본 역시 세종연간에 발행된 첫 판본으로 보기는 어렵기에, 역사학계에서는 '원본'이라고 부르지는 않고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 부른다. 3.2. 언해본[편집]한문으로 기록된 해례본을 훈민정음을 이용해 옮긴(언해, 諺解) 책. 현재 전해지는 것 중 가장 오래된 판본은 1459년(세조 5년)에 발간된 《월인석보》의 권두에 수록된 것이다. 세종대왕의 서문, 본문(예의) 부분이 수록되어 있고, 해례본에 있는 제자해(製字解)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한문(+현토)+언해'의 방식으로 쓰여 있는데,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나랏말싸미…'도 언해본에 훈민정음으로 수록된 서문의 첫 구절이다. 흔히 훈민정음의 모습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월인석보 외의 언해본으로 2종(박승빈 본, 일본 궁내청 소장본)이 더 현전하지만 내용상의 차이는 없다. 3.3. 실록본[편집]《훈민정음》의 본문은 《세종실록》에도 수록되었다. 해례본에는 실려 있는 '해례'와 '정인지 서문'을 제외한 '세종 서문', '본문(예의)'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를 실록본이라고 따로 칭하기도 한다. 4. 여담[편집]
5. 대중매체에서[편집]
6. 관련 문서[편집]
[1] 반포일 기준 1446년 9월 상한(10일) → 양력 환산 → 1446년 10월 9일[2] 물론 현대 학자들의 재구음이므로 실제 발음이 이러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래아를 /ʌ/, ㅟ를 /uj/로 발음하는 등 보다 최신 연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보이나, 아직 전반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ㄹ의 발음을 일률적으로 /l/로 발음하는 등 여전히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3] 이 또한 이렇게 소리를 낸 것 같다고 추측한 것이지 실제로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다. 또한 아래아를 /a/로 발음하고 ㅟ를 /wi/로 발음하는 등 최신 연구 결과와는 다른 부분이 존재한다. 이 영상에서는 '달아'에서의 ㅇ을 음가가 없는 것으로 보았지만, 최근 언어학계에서는 ㄹ 뒤에서 분철 표기된 ㅇ이 /ɦ/ 또는 /ɣ/의 음가를 지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4] 이 '얻어'도 한문 부분의 '할 수 있다'라 뜻을 가진 得(얻을 득)을 직역한 것이다.[5] 한 줄에 우리말 작은 글자로 두 행을 써 넣은 부분이다.[6] 이 와중에 최해산은 명 환관들에게 해를 입기까지 한다.[7] 드라마에서도 강채윤의 입을 통해서 그 실상이 나오는데 강채윤은 작중 광평대군에게 '윗분들이야 공부가 일이니 5만자나 되는 한자를 외우지만, 동트기 전에 일어나 해지기 전까지 허리 한 번 못 펴고 일만 해야하는 백성들이 글자를 공부할 시간이 어딨냐' 며 반박하던 것이 그 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