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어디 떠나고 싶은 도화살 - maennal eodi tteonago sip-eun dohwasal

  • 맨날 어디 떠나고 싶은 도화살 - maennal eodi tteonago sip-eun dohwasal

    [권리찾을사람들]④노동자성인정...아나운서

    < 권리를 말하다 > 안녕하세요. 저는 모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일하고 있는 가짜 3.3 피해 노동자입니다. 지역 방송국에서 프리랜서로 아나운서 일을 하고 있고요. 지난 6년 동안 뉴스 앵커, 라디오 DJ, 그리고 TV 프로그램 MC 등을 맡아서 일을 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회사는 시간적으로 보면 정규직 아나운서들은 9to6로 일을 하고 1시간 일찍 나오면 (1시간) 일찍 퇴근 1시간 늦게 나오면 (1시간) 늦게 퇴근 이렇게 일을 하고요. 프리랜서들은 맡은 방송 2시간 전 쯤에 나와서 분장 받고 의상을 챙기고 또 대본을 받아서 연습을 하다가 방송에 들어갑니다. 저 같은 경우는 지난 6년 동안 뉴스, 라디오, TV 이런 회사의 주력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면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거의 주 5일 주말 당직까지 서면서 일을 했었고요. 업무적으로 볼 때 정규직 아나운서들이나,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이나 아나운서들은 주로 아까 말씀드린 그런 시간에 나와서 분장, 의상, 대본 챙겨서 연습하고 회의하고 방송에 투입됩니다. ● 권리찾기를 나선 이유가 무엇인가요?지난해 4월에 회사에 새로운 간부들이 부임을 하고 나서 하나씩 제 일을 제 프로그램들을 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정규직 아나운서들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겠다라고 그런 방향을 나타냈고요. 자연스럽게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줄어드니까 출연료가 월 100만원대 초반으로 급감했는데요. 생계나 자아실현이 어려웠어요. 프로그램을 계속할 수 있도록 요청을 했는데 (사측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모르쇠로 대응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뭐 "그만두라"는 신호로 해석을 할 수밖에 없었고요. 다섯 번에 걸친 공개채용 절차를 통해서 선발이 돼서 입사를 했고 지난 6년 간 그 어떤 정규직 아나운서보다 더 많이 일을 했습니다. 주말 당직도 서고 방송과는 상관이 없는 행정 업무도 몇 년 동안 했었기 때문에 '내가 그만둘 이유는 없다 회사의 부당한 처사고 내 권리를 찾아야겠다'라고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정규직 아나운서와 프리랜서 아나운서의 업무는 차이가 있나요?일단, 방송 업무에 있어서는 정규직 아나운서와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의 업무가 다르지 않습니다. 평일 방송도 그렇고 주말에 당직근무 돌아가면서 하는 주말 뉴스데스크 같은 경우에도 완전히 동일하고요. 방송 업무에 있어서는 늘 휴가 때 서로 대타를 하면서 완전히 동일한 업무를 했다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정규직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회사 내 문서업무나 행정업무가 소소하게 있는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아나운서를 떠나서 회사에 정규직 직원으로서 해야 되는 그런 업무들은 소소하게 다를 수 있지만 아나운서라는 직종 내에서 하는 일은 완전히 동일하고 그렇게 서로 대체해 가면서 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 왜 추가적인 업무를 거부하지 못 하셨나요?당연히 해야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사 사무실에 제 책상, 컴퓨터, 모든 비품이 있고 정규직 아나운서들은 당연히 제 선배고 그분들은 저를 후배로 대했기 때문에 그분들이 하던 행정업무, 손이 많이 가고 반복되는 행정업무들을 저에게 넘겼을 때 저는 막내이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 된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정규직 선배 아나운서들이 최소 9년, 최대 12년 만에 정규직으로 전환이 됐습니다. 물론 그분들은 '계약직-무기계약직-정규직' 이 코스를 거치긴 했지만 제가 입사했던 초기에, 2016년에는 저한테 "너도 고생하면우리 회사가 생각을 해 줄 거야. 우리 회사가 그렇게 박한 곳이 아니야" 라고 말을 했던 선배들이 있습니다 제가 그때 그때 다 녹음한 게 아니어서 참 입증자료가 있는 게 아니어서 안타까울 따름인데요. 그러니까 저도 당연하게 '아 이렇게 뭐 지내다 보면 언젠가 정규직이 되겠구나'라고 생각을 하고 받아들이고, 일련의 계약형태라든가 기타 업무에 대해서 전혀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일을 해왔던 것이고요. 그리고 특히 (사측은) 'PD와 계약을 했다 프로그램별로 계약을 했다' 라고 하는데 제가 궁금한 건 '업무위임계약서'에 갑은 저희 회사로 되어 있습니다. 을이 저고요. 그래서 저는 이 회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들 이거에 출연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PD와 계약을 했다', '프로그램별로 계약을 했다' 이런 말이 잘 이해가 되지가 않고 계약서 마지막에 '수임인' 서명자를 보면 회사의 간부, 책임있는 간부가 그 수임인입니다. 그래서 저는 프로그램별로 프로그램 PD와 계약을 한 게 아닌데 그런 주장을 왜 하는지... 그러니까 결국에는 근로자성을 위장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 그렇다면, 방송국이 프리랜서 아나운서를 채용한 이유는 무엇일까요?그냥 이제까지는 심적으로만 느끼고 있던 건데 결국에는 책임 있게 고용을 하지 않기 위해서 값싸게 인력을 쓰고 값싸게 버리기 위해서였다는 걸 지난해 4월부터 제가 겪은 일들을 통해서 알았고 또 권리찾기유니온을 통해서 여러 가지 공부를 하고 알고 깨닫게 되면서 결국에는 제 근로자성을 위장하기 위해서였다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은 정규직보다 많이 시키고 사실 정규직들은 또 일이 너무 많아지면 회사에 또 항의도 할 수 있고 조정도 할 수 있는데 프리랜서들은 업무를 거부하는 순간 그 다음 업무는 사실 없다고 봐야 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값싸게 말 잘 듣는' 그런 노동 약자를 원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2년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경우도 있었는데요. 최근 시대의 흐름이 바뀌면서 2년을 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해주지 않으면 문제가 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프리랜서로 사람을 쓰고 4년, 5년, 저처럼 6년까지도 오랫동안 쓰고도 언제든지 아무렇게나해고할 수 있기 위해서 그렇게 프리랜서로 채용을 했다는 것을 정황상 확신이 들었습니다.그런 것도 있더라고요. 정서적으로 이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가짜 3.3 노동자까지 일종의 계급으로 나뉘어져서 자신들도 모르게 가짜 3.3들한테는 말도 쉽게 나오고 행동도 눈빛도 쉽게 나오는 경우들을 굉장히 많이 봤습니다. 방송국에서 굉장히 사회 곳곳의 약자를 비추고 피해자들을 얘기하는데 언론사들 내부에 있는 그런 노동 약자들에 대해서는 너무나 차갑고 냉혈한 눈빛을 보낼 때가 많습니다. 그런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피해도 너무나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 다른 방송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정말 많이 일어나고요. 저희 회사에도 저 말고도 수년 이상 프리랜서로 일하는 동료들이 있는데 그 동료들은 현재 일이 있지만 역시 불안한 상황이라고 말을 할 수 있고요. 저희 회사 말고도 다른 방송국들도 대부분 프리랜서로 운영되는 그런 곳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와 같은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데요. 그래서 제가또 권리찾기유니온을 통해서 더 이상의 가짜 3.3 피해 노동자를 양산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런 인식을 주기 위해서 참여한 부분도 있습니다. 사람을 수년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 5일 직접적인 지시를 해가면서 일을 해놓고 쉽게 해고하려는 그런 문화, 그런 습관들이 방송 산업에서 이제는 사라질 때가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 앞으로 방송산업이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지금 전국적으로 방송국들이 신분을 위장한 가짜3.3, 그런 노동자, 아나운서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사측이 또 이런 문제를 제기하면 끝까지 싸워보겠다면서 수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이런 노동 약자들을 일종의 괴롭힘으로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아나운서를 뽑을 때부터 제대로 책임있게 고용을 해서 그 아나운서를 회사에 얼굴로 기용하고 책임있게 성장시키고 회사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려는 그런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권리찾기에 나서다 > 1. 사업장 정보 ○ 사업장명 : ㅇ방송사○ 업종 : 방송산업○ 규모 : 80인○ 지역 : 광주 2. 당사자 정보 ○ 법률구제 분류 : 가짜 3.3 근로자지위확인 공동진정 11호○ 사건진행 : 고용노동부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직종 : 아나운서○ 근무 기간 : 6년 3. 가짜 3.3 위장 ○ 계약의 형식 : 프리랜서 업무위임계약서○ 세금의 종류 : 사업소득세(3.3%)○ 위장유형 : 이상한계약형(B형)○ 위장수법 : 공채 면접으로 채용한 노동자, 이후에 방송 프로그램별 도급계약으로 위장 4. 근로기준 (Fact 코드) F1-5. [급여지급] 근무시간이나 유급으로 처리되지 못하는 공짜노동을 한다.- 프로그램 출연 횟수별로 급여 지급. 따라서 프로그램 출연을 위한 대본 작성 및 피드백 시간, 대기시간 및 준비시간은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 않F1-8. [인사차별] 근무경력이 인정되지 않아 승급·승진에 차별을 당한다.- 장기간 근속하더라도 직급 승진 불가능F1-11. [업무휴식] 휴가가 보장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다. - 근로기준법상 연차사용 불가능, 여름휴가 주어지지만 정규직 아나운서들의 눈치로 자유롭게 사용 불가F1-17. [고용불안] 계약해지의 불안이 크거나 해고의 위협을 당한다.- 한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음 프로그램을 배정받을 때까지 재계약 여부 불투명. 프로그램 출연 여부에 관계없이 고용관계가 유지되는 정규직과 달리, 방송프로그램 개편이라는 빌미로 상시적으로 해고 위협에 노출 5. 노동자성 입증 (Confirmation 코드) C1. 나의 업무를 직장에서 지휘·감독하는지C1-1. 직장에서 정한 업무의 범위와 주된 내용에 의해 업무를 수행한다.- 프로그램 출연 및 하차 통보, 방송사에 필요한 녹음, 진행, 행사 모두 사용자가 결정. 심지어 약정된 업무 외 분장물품까지 관리 C1-2. 직장에서 정한 통상적인 시간과 주된 장소에서 근무한다.- 일정한 시간에 방송되는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사용자가 정한 시간에, 사용자가 정한 스튜디오에서 근무C1-3. 수행 중인 업무를 사업주(관리자)가 확인하여 변경할 수 있다.- 담당PD가 결정한 주제와 순서에 따라 대본을 작성, 수정까지 반영. 녹음 스타일까지 지시 C2. 나에게 적용되는 근로의 기준을 사업주가 정하는지 C2-1. 취업 시, 내 급여기준과 근로조건의 주요 부분이 미리 설정되어 있었다.- 정규직과 같은 방식으로 채용, 입사 초반 주급으로 고정 급여 지급 C3. 나의 노무제공이 사업주의 사업 내에서 이루어지는지C3-1. 업무에 필요한 주요 비품을 직장에서 제공, 작업장의 유지보수에 필요한 비용을 사업주가 부담한다.- 방송국이 방송 진행을 위한 분장 및 의상 모두 지원, 업무를 위해 다른 인력을 고용하거나 제3자를 고용하는 것은 불가C3-2. 사업주가 설정한 방향에 따라 노무를 제공, 그에 대한 대가를 지급한다.- 프로그램 출연 당 금액은 회사가 근로의 내용과 질을 고려해 결정 C3-3. 노무제공의 대가 외에 사업의 결과로 발생하는 이윤 또는 손실을 사업주와 분담하지 않는다.- 방송 횟수에 따라 정해진 출연료를 받기에 방송국 이윤 창출과 손실에 대한 책임 없음 6. 사건진행 경과 ▽ 가짜 3.3 방송노동자 근로자지위확인 공동진정 특별접수(2021.12.22.)▽ 노동자성 인정 행정종결(2022.8.25.) 4대보험료 안 내고... 근로소득세도 안 내는데... 받을 건 받아야 하니까 3.3% 환급? 떼인 세금이 33만 원이면 떼인 임금은 대체 얼마? 근로자가 아니라며초과수당, 유급휴가 없고 맘대로 해고에퇴직금, 실업급여도 없다면..? 3.3 떼이는 우리가 돌려받아야 할 것은빼앗긴 임금과 근로기준법····나도 가짜 3.3인지 알아보기▼<가짜 3.3 실태조사>온라인 설문bit.ly/가짜33실태조사

    [사람] 이주영 22-10-04 545

  • 맨날 어디 떠나고 싶은 도화살 - maennal eodi tteonago sip-eun dohwasal

    [권리찾을사람들]③노동자성인정...영어유치원강사

    < 권리를 말하다 >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의 ㅇ영어유치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는 이혜령입니다. ● 어떤 계기를 통해, 이 일을 하게 되셨나요? 특별한 계기는 없고, 취준 기간이 길어져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어요. 그러던 중 당시 친하게 지내던, 학원에서 일하는 외국인 친구가 영어학원 강사를 추천해줬습니다. 저는 영어도 아이들도 좋아해서 재밌을 것 같아서 시작하게 됐습니다.저는 어릴 때부터 영어를 좋아하고 재미있게 배웠고, 그 덕에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을 갈 때도,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도 영어를 잘 하면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듯이 아이들이 영어를 재미있게 배우고, 나중에 커서도 인생을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 일하며 인상 깊었던 사례가 있나요? 그때 어떤 걸 느끼셨나요? 아무래도 아이들한테 영어를 가르치다보니, 영어를 재밌어하고 좋아할 때가 제일 뿌듯해요. 원래 자신감이 없던 아이가 점점 영어를 재밌어하고 자신있어하는 게 보일 때, 집에서도 보호자들에게 배운 것들 조잘조잘 이야기한다는 말을 들을 때, 그럴 때가 제일 보람찬 것 같습니다.힘들었던 경험은, 처음 일하던 곳은 수업 스케쥴이 많이 빡빡했어요. 저는 아이들이 좋아서 이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아이들한테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일에 치이다보니 아이들한테 소홀해지는게 가장 스트레스였어요. 예를 들면 아이들이 다퉜을 때 양쪽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반응할지 고민해서 잘 대처하거나, 수업 시간에 일상 이야기를 해도 잘 들어주고 싶었는데, 시간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여유가 없다보니 그러지 못하는 부분이 제일 아쉬웠습니다. ● 권리찾기를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노동 형태는 근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개인 사업자로 등록되어 사업소득세를 납부하고 있었습니다.이러한 일이 각종 업계에서 너무 비일비재하고, 당시 제 사업주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음을 알게 돼서, 이러한 행태에 제동을 걸고싶고 미약하나마 행동으로 옮겨서 선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권리 찾기에 나섰습니다.부당하게 사업소득세를 부과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찾아보기 위해 검색을 하던 중에, 권리찾기유니온이 이러한 노동자들의 공동 진정을 넣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기사로 알게 됐습니다. ● 권리를 찾는 과정은 어땠나요? 어떤 걸 느끼셨나요? 이러한 사업주들의 행태를 제재할 제도가 전반적으로 너무 미비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러한 행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제도는 전무하고, 제가 신고 한 이후에도 제 노동 형태가 근로자였음을 입증하는 책임도 전적으로 저에게 있었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사업주가 저에게 합의서에 동료 강사들에게 이야기하지 말라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고자 만든 법을 어겨도 그저 밀린 임금 지불하면 없던 일이 되고, 심지어 노동자에게 그런 합의조건까지 요구할 수 있으며 이걸 제재할 수 있는 방도가 전혀 없다는 게 너무 부당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금액이 크지 않았고 당장 그 돈이 없어도 생계에 지장이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합의를 거부할 수 있었지만, 이러한 부당한 합의조건도 수용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가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권리찾기 이후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일을 시작하면서 부당한 행위들을 참고 넘기는게 ‘사회성 있고’ 바람직한 일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제 권리를 주장하고 찾는 과정을 통해, 이 과정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부정적인 감정들도 많이 해소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한테는 소중한 경험이었고 앞으로의 삶에서도 어떤 지침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권리찾기유니온 홍보가 목적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권리찾기유니온이 아니었다면 할 수 없는 경험들이었습니다. 금전적인 부담을 덜어주신 것도 당연히 감사하지만, 이 과정의 의미를 이해해주고 뜻을 함께해주는 사람과 단체가 있다는 게 정말 든든했어요. < 권리찾기에 나서다 > 1. 사업장 정보 ○ 사업장명 : ㅇ영어유치원○ 업종 : 학원산업(유치원)○ 규모 : 5인 이상 10인 미만○ 지역 : 부산 2. 당사자 정보 ○ 법률구제 분류 : 가짜 3.3 근로자지위확인 공동진정 13호○ 사건진행 : 부산지방고용노동청 부산북부고용지청 진정○ 직종 : 학원강사(영어유치원강사)○ 근무 기간 : 1년 3. 가짜 3.3 위장 ○ 계약의 형식 : 일반계약 강사 근로계약서○ 세금의 종류 : 사업소득세(3.3%)○ 위장유형 : 무작정형(A형)○ 위장수법 : 근로계약서 작성하고도 사업소득세 신고 4. 근로기준 (Fact 코드) F1-5. [급여지급] 근무시간이나 유급으로 처리되지 못하는 공짜노동을 한다.- 퇴근시간이 지난 뒤에도 근무하였지만 어떠한 급여도 추가로 받지 못F1-13. [업무휴식] 공휴일(빨간날)에 쉬지 못하고, 자주 출근해야 한다.- 한국인 강사들은 모두 사업소득세를 원천징수하고, 외국인 강사들만 4대보험 가입F1-17. [고용불안] 계약해지의 불안이 크거나 해고의 위협을 당한다.- 영어유치원 특성으로 휴게시간에도 아이들을 돌카봐야하므로 제대로 된 휴게시간을 부여받지 못함[기타] - 임금명세서 대신 사업소득세 원천징수가 표기된 명세서 지급 5. 노동자성 입증 (Confirmation 코드) C1. 나의 업무를 직장에서 지휘·감독하는지C1-1. 직장에서 정한 업무의 범위와 주된 내용에 의해 업무를 수행한다.- 계약서에 ‘학원운영에 필요한 사업주의 지시에 대한 불복종’이 즉시 계약해지 사유로 명시되어 있음- 실제로 학원의 지시에 따라 강의 준비 및 시행, 수강생 관리, syllabus 개발, 학부모 상담, (매달 있는) 시험 채점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C2. 나에게 적용되는 근로의 기준을 사업주가 정하는지C2-1. 취업 시, 내 급여기준과 근로조건의 주요 부분이 미리 설정되어 있었다.- 수습기간 기본급 200만원, 3개월 후 220만원이 미리 결정되어 있었음C3. 나의 노무제공이 사업주의 사업 내에서 이루어지는지C3-3. 노무제공의 대가 외에 사업의 결과로 발생하는 이윤 또는 손실을 사업주와 분담하지 않는다.- 매출 또는 원생 수와 관계없이 기본급 220만원을 지급받음 6. 사건진행 경과 ▽ 사업주가 퇴직 후에도 연차휴가미사용수당 미지급▽ 사업소득자이며 5인미만 사업장이어서 연차휴가 지급 의무가 없다고 답변 ▽ 노동청에 가짜 3.3 근로자지위확인 공동진정 접수▽ 진정인 출석조사, 피진정인 조사, 대질 조사▽ 연차휴가미사용수당 지급 시정지시(승소로 행정종결) 4대보험료 안 내고... 근로소득세도 안 내는데... 받을 건 받아야 하니까 3.3% 환급? 떼인 세금이 33만 원이면 떼인 임금은 대체 얼마? 근로자가 아니라며초과수당, 유급휴가 없고 맘대로 해고에퇴직금, 실업급여도 없다면..? 3.3 떼이는 우리가 돌려받아야 할 것은빼앗긴 임금과 근로기준법····나도 가짜 3.3인지 알아보기▼<가짜 3.3 실태조사>온라인 설문bit.ly/가짜33실태조사

    [사람] 이주영 22-08-23 898

  • 맨날 어디 떠나고 싶은 도화살 - maennal eodi tteonago sip-eun dohwasal

    [권리찾을사람들]②노동자성인정...프로축구단유소년지도자

    < 권리를 말하다 >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14년 간 ㅂ프로축구단에서 초등학교 9년, 중학교 5년을 총 14년 간 유소년 감독으로 일했던 최우정이라고 합니다. 공개채용을 통해 입사했음에도 저는 노동자가 아니라 프리랜서라고 하여 3.3% 사업소득세를 납부하는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와 같은 유소년 감독 코치 그리고 트레이너, 통역사 등 지원 스태프들은 실제 전혀 프리하지 않게 일을 해왔으며 노동자가 아니라고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입사) 당시에는 팀의 막내 지도자였는데요. 아침 7시 쯤에 출근했고. 또 프로구단이라는 그 자부심 아래 배운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런 말 하면 부끄럽기도 한데 제가 초등학교 (맡을) 때 사실 별명이 ‘아이파크의 히딩크’었거든요. 우승한 트로피가 33개 있습니다. 그만큼 우승도 많이 했고 또 현재 프로 선수들도 많이 배출해서 거기에 대한 영광, 그런 것도 있는데요. 2006년~2007년부터 했으니까 예를 들면 1학년 1반 1교시, 1학년 2반 2교시 이런 식으로 거의 해마다 연 한 3만 명을 지도하고. 그리고 이렇게 맥도날드에서 요구하는 부분을 우리 구단이 거기에 맞춰서 배정표를 만들어서 우리한테 지시를 하는거죠. 그게 제일 큰 사업이었고 그게 끝나고 나면 여기 와서 점심을 먹고, 구단에서 컴퓨터랑 책상이 배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서 일을 했습니다. 2012년 당시 저는 구단이 정해준 시간표에 따라 부산 시내 70개가 넘는 초등학교에서 약 3만 명에 달하는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축구교실 외에도 구단이 요구하는 ‘아빠와 함께하는 프로그램’, 학부모 대상 비디오 영상제작, 초등교사님들 대상으로 하는 축구수업을 진행했고요. 모든 사항을 구단의 지시 하에 전부 진행해왔습니다. 개인사업자가 뭘 하는지 그 다음에 계약서가 일반계약서인지 근로자계약서인지 이런 부분도 사실 몰랐고. 구단에서 지시하는 모든 사항들을 안 따를 수가 없잖아요. 그러면 1년마다 계약자체가 안 되잖아요. 저는 사무직원과 똑같이 3층에 출퇴근하였는데, 항상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였고요. 구단 봉고차를 사용하던 12세 감독 시절에는 차량담당 선생님들의 직원의 허락을 받아 사용했으며, 경로나 이동시간 그리고 킬로(km) 수를 체크해 왔습니다. 그리고 훈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구단차량을 반납하고 퇴근하는 등 자유롭게 퇴근할 수가 전혀 없었습니다. 사람을 고용해서 대신 일하게 하는 것은 꿈에도 불가능하고 전속계약서를 작성하면서 14년 동안 단 한 번도 다른 구단이나 단체에서 지도 업무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유롭게 일하는 프리랜서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이제 14년 간 일하고 이틀 남겨 놓고 올해 계약 만료 통보를 하더라고요. 사실 통보를 받고 앞으로 어떡하지? 퇴직금이라도 있었으면 조금 더 생활의 여유를 마음의 안정을 찾고 했을 건데 당장 이제 돈이 없으니까 일자리 찾기가 또 쉽지도 않고. 그리고 14년 간 말 그대로 죽어라 뼈가 빠지게 일을 하고 또 결과가, 좋은 성적과 함께 또 수많은 대한민국에서 프로선수를 배출했는데도 불구하고 저한테 돌아오는 것은 이틀 남겨 놓고 계약 만료로 '내년에 가기 힘들겠다' 그러면 여태까지 구단을 위해서 제 청춘을 바치고 14년 간이나 열심히 한 것은 아무 그것도 없고 그러다 보니까 너무 허탈하고 아쉬운 것보다는 오히려 화가 많이 났습니다. 모두가, 유소년 지도자 선생님들이 쉬쉬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넘어가고 오히려 지금 우리가 작년 재작년에 (공동진정) 하고 난 다음에 거꾸로 역행을 간다 하더라고요. 계약서에 퇴직금이 없는 걸로 오히려 계약서를 쓰라고. 현직에 종사하는 지도자 선생님들은 쓰라고 하니까 안 쓸 수도 없는 부분이잖아요. 우리 유소년 지도자들 그나마 일했으면 퇴직금 정도는 주게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로축구단에서 먼저 모범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프로구단이 프로답지 못하게 거꾸로 역행을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도 다 가정이 있고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런 문제가 해결 안 되는데 어떻게 선수를 마음 놓고 편안하게 지도할 수가 있겠습니까? 1년 하고 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고, 또 1년 하고 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고. 저는 어차피 어느 정도 할 만큼 했고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지금 현재 현직에 (몸) 담고 있는 프로구단 유스 뿐만 아니고 온 사회가 조금 더 밝아지고 좀 투명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일 큰 고용불안 문제, 그런 부분에서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지도자 선생님들이 조금 더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지도자 선생님들의 처우를 조금 더 개선해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 이상은 없습니다. < 권리찾기에 나서다 > 1. 사업장 정보 ○ 사업장명 : ㅂ프로축구단○ 업종 : 스포츠산업(축구 프로스포츠)○ 규모 : 10인 이상 20인 미만○ 지역 : 부산 2. 당사자 정보 ○ 법률구제 분류 : 가짜 3.3 근로자지위확인 공동진정○ 사건진행 : 부산지방고용노동청 부산북부고용지청 진정○ 직종 : 운동선수 감독(유소년 지도자)○ 근무 기간 : 14년 3. 가짜 3.3 위장 ○ 계약의 형식 : 전속계약서○ 세금의 종류 : 사업소득세(3.3%)○ 위장유형 : 이상한 계약형(B형)○ 위장수법 : 지휘감독해도 노동자 아닌 불일치 계약 4. 근로기준 (Fact 코드) F1-5. [급여지급] 근무시간이나 유급으로 처리되지 못하는 공짜노동을 한다.-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근무. 당직이 있는 날에는 클럽하우스 숙소에서 숙식도 함께하지만, 초과근로에 대해서는 기본급 외에 어떠한 급여도 추가로 받지 못함F1-13. [업무휴식] 공휴일(빨간날)에 쉬지 못하고, 자주 출근해야 한다.- 리그경기가 주말에 있어 주말에도 근무해야 하고, 대회가 모두 끝난 연말 10여일을 제외하고는 공휴일에도 출근하여 훈련 및 지도 업무를 수행해야 함F1-17. [고용불안] 계약해지의 불안이 크거나 해고의 위협을 당한다.- 매년 계약서를 새로 작성하기 때문에, 연말이 되면 재계약 거부 및 계약만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됨 5. 노동자성 입증 (Confirmation 코드) C1. 나의 업무를 직장에서 지휘·감독하는지C1-2. 직장에서 정한 통상적인 시간과 주된 장소에서 근무한다.- 사무국 직원과 동일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며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훈련이 끝난 뒤 구단 사무실에 들러 차량 입고 후 퇴근하는 등 근무장소가 정해져 있음C3. 나의 노무제공이 사업주의 사업 내에서 이루어지는지C3-2. 사업주가 설정한 사업의 방향에 따라 노무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는다.- 구단이 정한 유소년 육성 방침에 따라 훈련 및 지도업무를 수행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고정적으로 지급받음 6. 사건진행 경과 ▽ 구단이 계약만료를 통보하며 퇴직금 미지급▽ 당사자가 해고 직후 진정(1차) 제기 : 노동청이 근로관계 실질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 없이 각하 판단▽ 노동청에 가짜 3.3 근로자지위확인 공동진정(재진정) 접수▽ 진정인 출석조사, 피진정인 조사, 대질 조사▽ (2022.6.30) 부산지방고용노동청(북부지청)은 조사결과에 따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판단하고, 사측(HDC스포츠)에 시정지시(퇴직금지급) 명령 4대보험료 안 내고... 근로소득세도 안 내는데... 받을 건 받아야 하니까 3.3% 환급? 떼인 세금이 33만 원이면 떼인 임금은 대체 얼마? 근로자가 아니라며초과수당, 유급휴가 없고 맘대로 해고에퇴직금, 실업급여도 없다면..? 3.3 떼이는 우리가 돌려받아야 할 것은빼앗긴 임금과 근로기준법····나도 가짜 3.3인지 알아보기▼<가짜 3.3 실태조사>온라인 설문bit.ly/가짜33실태조사 [참고자료][성명] 부산아이파크 유소년지도자 노동자성인정...가짜3.3퇴장 레드카드

    [사람] 이주영 22-07-01 1882

  • 맨날 어디 떠나고 싶은 도화살 - maennal eodi tteonago sip-eun dohwasal

    [권리찾을사람들]①5인이상인정...아울렛조리사

    < 권리를 말하다 > 저는 올해 쉰아홉 이고요. 이름은 서진경입니다. 저는 좀 규모가 큰 한식 뷔페 주방에서 일을 했었어요. 일단 출퇴근시간 따지면, 12시간이 기본 근무였고요. 한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선풍기조차도 하나 없는 그런 열악한 환경이었죠. 자체주방이 좁으니까 협소해서 냉방시설을 할 수 있는 여건도 안 됐었고요. 계속 불 앞에서 살아야 되니까. 환경이 그렇게 좋지는 않죠. 연장근무 수당 없었고 연월차 없었고. 명절 이럴 때 당일만 휴무였었고 12시간 기본근무였는데 제 시간에 퇴근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새벽 4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이었어요. 하루에 제가 한 600명~800명 분 식사를 만들어야 돼요. 아침에 보통 혼자 가가지고 새벽에 한 100명에서 120명 분 아침식사를 혼자 하거든요. 준비해 놓고 점심에 400명~500명 그때는 직원들이 출근하기 시작해요. 저녁에 한 100명에서 120명. 그 정도 인원 식사 준비 해놓고 4시에 퇴근이에요. 그 시간 안에 끝낼 수가 없으니까 맨날 연장근무하게 되고요. 또 사업주가 무슨 개인적인 모임있거나 약속이 있으면 딱 내려와요. "오늘은 메뉴가 뭐다" "준비해라" "삼겹살이다, 뭐다" "준비해라" 그러면 또 그거 맞춰서 준비하면 (저녁) 6시 (퇴근) 기본으로? 장기근속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하루 나왔다가 그만두는 사람 이틀 나오는 사람. 이러다 보니까 이게 내 직장이고 내 권리를 찾아야 되고 이런 것 자체가 좀 동떨어진 느낌이에요. 우리는 하루하루 연명해서 살아가는 느낌으로 그냥 (월급) 수령하는 느낌으로 사는 거죠. 내 권리를 찾고 내가 오늘 여기서 몇 시간을 근무를 하고 또 내가 오늘 이걸 추가 했으니까 얼마를 수당을 받고 그런 거를 전혀 생각을 못했죠. 그냥 너무 업무에 바빠요. 그냥 맨날 사람 바뀌니까 거기에 (적응)하고. 근데 어느 날 자꾸 주변 환경이랑 이렇게 보면 좀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들고 너무 업무도 많고 이러니까 검색도 좀 해보고 그렇게 해서 권리찾기를 알게 돼서 상담드려보고 '아 그냥 퇴사를 해야겠다' 생각을 하고 퇴사하고 바로 상담드려서 제가 이런 이런 일이 있다고 말씀 드려서 도움 많이 받았죠 규모는 꽤 커요 아울렛이라고 해놓고 각 브랜드마다 다 있는데 매장마다 상주하는 직원들이 두세 명씩은 있고 전체 직원수만 해도 한 200명은 넘을 것 같은데요. 제가 주방에 있으니까 식수를 거의 다 알잖아요. 그렇게 규모가 작지는 않았는데 4대보험 가입한 사람은 많지 않고 그때까지만 해도 그걸 몰랐었죠. 한 사장님 안에 다 (같은) 직원인 줄 알았어요. 가짜로 사업자등록 해가지고 거기에서 또 (사업장)쪼개기를 해서 직고용하는 분을 항상 5인 미만으로 해가지고. 고용주는 어떻게든지 나가는 지출을 줄이려고 했었던 거였어요. 해고도 5인 미만은 쉽잖아요. 기존에는 이런 아줌마들이 주방에서 일하면 하루에 무조건 일당 얼마 12시간 기본 그냥 항상 그게 만연해 있어 가지고 그런 거를 좀 무지하게 몰랐었던 건 사실이에요 근로계약서 쓰기 전에 4대보험 가입하는거 하고 3.3%가 있는데 이건 그냥 세금을 바로 내 급여에서 바로 공제해버린다고 그렇게 설명을 맨 처음엔 들었죠. 단순하게만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원래는 3.3%가 프리랜서인데, 저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하고 나는 여기 고용이 됐지만 내가 3.3%에 대한 (노동자로서) 세금을 낸다고 그렇게 생각을 했었죠. 그 다음에 수령액이 4대보험 가입 하게 되면 거의 한 10% 정도가 공제가 되잖아요. 3.3%는 그것만 공제하고 나머지는 다 (노동자에게) 가고 그 몇 십만원 차이가 굉장히 와닿아요. 당장은 3.3% 떼니까 내가 들어오는 돈이 많은 것 같지만 권리찾기 노무사님한테 도움 받아서 프로그램 해서 설명을 쫙 들어보니까 너무나 많이 몰랐던 거예요. 그 연장근무 수당이 얼마였고 국민연금 이런거 나중에 수령해야되는 금액들 그런 거를 생각을 못하고 그냥 당장당장 받는 돈만 생각했던 게 정말 억울했었어요. 우리가 당장 3.3%(세금)만 낸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많이 몰랐었구나 내가 내 양심껏 열심히 일해줬는데 너무나 그게 아닌 거예요. 권리찾기를 했는데 지금도 똑같은 일을 또 하고 있는 거예요······. - 권리찾기유니온 유튜브 ‘가짜 3.3 시리즈 - 하루 12시간을 일하는 조리노동자 이야기’ 인터뷰 中 < 권리찾기에 나서다 > 1. 사업장 정보 ○ 사업장명 : ㅍ아울렛 ㅎ뷔페○ 업종 : 외식산업(한식 음식점업)○ 규모 : 100인 이상 300인 미만○ 지역 : 경기 평택 2. 당사자 정보 ○ 법률구제 분류 : 가짜 5인미만 사업장 공동고발 56호(4차)○ 사건진행 :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평택지청 고발○ 직종 : 조리사○ 근무 기간 : 1년 미만 3. 가짜 5인미만 위장 ○ 쪼갠 사업장 수(인원) : 36개, 총 250여명○ 계약의 형식 : 표준 근로계약서○ 세금의 종류 : 사업소득세(3.3%)○ 위장유형 : 융합형(A+B형)○ 위장수법 : 중간관리자를 제외한 직원 대부분을 사업소득자로 신고. 서류상 쪼개진 모든 사업장을 중간관리자가 인사관리. 4. 근로기준 (Fact 코드) F1-9. [업무휴식]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고된 일을 해야 한다.- 하루에 600~800명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기에 쉬지 못하고 일함- 하루 10시간 이상(새벽 4시에 출근해 15시 퇴근) 주 6일 근무하여, 월 소정근로시간이 300시간에 달함F1-13. [업무휴식] 공휴일(빨간날)에 쉬지 못하고, 자주 출근해야 한다.- 상시 근로자 수를 축소하여 공휴일에도 정상 출근하며 휴일근로수당도 지급되지 않음F1-14. [작업안전] 작업환경이 불량하거나 위험한 업무를 감당해야 한다.- 제대로 된 환기시설과 냉방시설도 없는 곳에서 조리하고, 별도의 휴게공간도 없어서 작업장에서 앉아서 쉼 5. 가짜 5인미만 입증 (Confirmation 코드) C2. 인사노무관리의 총괄성C2-3. 업무지시, 근태, 휴가 승인 등을 관리하는 자가 동일한지- 동일한 중간관리자가 36개 사업장을 순회하며 직접 관리C3. 회계의 독립성C3-1. 임대료나 각종 세금 등 비용을 동일한 사업주가 처리하는지- ㅍ아울렛 소유주가 ㅎ뷔페 사업주와 동일, 자기계약으로 처리 6. 사건진행 경과 ▽ 열악한 근로조건과 장시간 근로가 해결되지 않아 자발적 퇴사▽ 당사자가 퇴사 후 가짜 5인미만 사업장 제보, 공동고발 접수▽ 고발인 출석조사, 피고발인 조사▽ 가짜 5인미만 사업장 인정하고 체불금품 지급하여 취하▽ 이후 고용노동부 ‘상시근로자 5인 이상 의심 사업장 근로감독’ 진행, 보도자료에 대표사례로 보고(체불금품 5억원 인정) 4대보험료 안 내고... 근로소득세도 안 내는데... 받을 건 받아야 하니까 3.3% 환급? 떼인 세금이 33만 원이면 떼인 임금은 대체 얼마? 근로자가 아니라며초과수당, 유급휴가 없고 맘대로 해고에퇴직금, 실업급여도 없다면..? 3.3 떼이는 우리가 돌려받아야 할 것은빼앗긴 임금과 근로기준법····나도 가짜 3.3인지 알아보기▼<가짜 3.3 실태조사>온라인 설문bit.ly/가짜33실태조사

    [사람] 이주영 22-06-30 1248

  • 맨날 어디 떠나고 싶은 도화살 - maennal eodi tteonago sip-eun dohwasal

    엘지트윈타워 노동자 이야기 ② - 노조 하나 있고 없고가 하늘과 땅 차이

    작년 12월의 한겨울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유제순을 만났었다. 엘지가 노조 파괴를 목적으로 용역업체를 바꾸는 방식으로 고용 해지를 통보했고, 노동자들은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로비 농성 중이었다. 8개월 남짓 시간이 흘러 한여름에 만난 유제순은 부당해고에 맞서 당당히 지켜낸 민주노조 엘지빌딩분회의 분회장으로 더 빛나고 더 단단해져 있었다. [사진 1] ‘LG마포빌딩 첫 출근! 청소노동자 노동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7월 1일 첫 출근날 오전 5시 엘지마포빌딩 정문 앞에서. 뒷줄 세 번째가 유제순 분회장 바뀐 현장 달라진 시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지. 잘리면 어디로 가나 싶어서 죽는시늉까지 하면서.” 그러다 민주노조를 만들면서 변해왔다. 항상 수그러져 있던 어깨부터 펴졌다. 해고 통보에 맞서 싸우는 동안 ‘내 등 뒤엔 민주노총이 있다, 뭉치면 살게끔 돼 있다, 회사의 부당함에 덤벼들 수 있다’는 마음이 꽉 차올랐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회사는 세월 흐른다고 변하는 곳이 아니었다. 10년여 최저임금으로 부리고 그마저 임금꺾기를 해서 주말 무급 노동으로까지 부려 먹었다. 하지만 농성을 승리로 마친 지난 4월 30일 노사 합의 뒤로 현장은 바로 바뀌어 버렸다. 핵심은 노조이며 단결이고 투쟁이었다. 목에 힘주고 눈 부라리던 이들이 앞으로는 안 그러겠다며 오히려 노동자 눈치를 보고 분회장님 무섭다고 한다. 노조 하나 있고 없고가, 노조 하나 지켜내고 못 지켜내고가 하늘과 땅 차이다. 136일의 농성은 노조와 엘지 양측의 경험이다. 노조는 투쟁으로 노동자의 하늘을 열었고, 엘지는 그런 노조를 우습게 볼 수 없게 됐다.조합원들이 로비에 들어오면 “안녕하세요.” 보안요원이 먼저 크게 인사한다. 엘지의 청소 용역업체인 지수아이앤씨 본사 바로 목전에 이렇듯 당당하게 민주노조가 섰다. “‘덩치가 적다고, 키가 작다고 나를 우습게 보지 마라. 난 덮지 않고 파헤치는 사람이다. 구광모하고도 싸운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지.”맞는 말이다.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협상안을 통과시켰다. 전엔 벌벌 기었다면 이젠 누구 하나 무섭지 않다는 유제순이다. 조합원에겐 작업 시간에 돌아다니지 말고 기본 업무에 충실하자 독려하되 사측의 갑질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한다. 고용 승계와 정년 연장은 물론 만근수당으로 7만 5천 원을 따냈고, 무급으로 토요일마다 나와서 왁스 청소하던 것을 특수청소업체에 맡기는 것으로 바꿨다. 전체 조합원의 노조 총 활동 시간으로 연말까지 1,000시간도 보장받았다. 조합원 전체 회의도 치르며 충분하게 사용하고 있다. 일하는 빌딩 근처에 번듯한 노조 사무실도 만들었다. 들러서 보겠느냐고 자신 있게 안내한다. ‘띠띠띠띠’ 번호를 눌러 잠금을 풀고 사무실 문을 열어 보인다. 안에 화장실도 있고, 여러 명이 앉아 회의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볕이 환하게 쏟아지는 전망 좋은 사무실이 그동안 지하 휴게실에 익숙했던 이들의 것이다. 창가에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모범조직’이라는 단체명패가 반짝인다. [사진 2] 엘지빌딩분회 단체명패 앞에서 민경남 사무장의 불끈 주먹 “현장에서 고생은 했지만 배운 게 너무 많아. 우리 분회를 찾아오는 다양한 동지들도 만났고. 그 추위에 돈만 생각하면 못 할 활동이지. 저런 단체가 있구나. 그 힘으로 우리나라는 썩지 않고 이어가는구나 싶었고.” 이민이나 가버리고 싶을 만큼 썩어빠진 나라라는 생각이었는데 서로 돕고 연대하는 이들 속에서 희망을 보았다. 같이 먹고 자고 몸 던져 싸우며 정든 연대 동지를 하나하나 떠올린다. “보안들과 충돌할 때도 조합원부터 보호해줬지. 우리에겐 천사였지만 사측과는 무섭게 싸웠어. 옷이 다 찢어지고. 겨울이라 두터운 옷이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지.”대종상 영화제 수상소감처럼 고마운 이를 일일이 거명하며 손으로 꼽아보니 열 손가락을 훌쩍 넘어선다. 누군가는 분위기를 띄우고, 누군가는 꼼꼼하게 스케줄을 챙기고, 누군가는 먹는 게 부실하지 않은지 돌아보며 함께한, 백인백색의 고마운 동지들이다.해고와 농성 뒤 유제순의 시선은 크게 달라졌다. 2015년 TV 화면으로 당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보며 ‘미친 X X’라고 생각했다면. 동일 인물인데도 2020년 12월에 로비 농성장에서 연대 발언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저렇게 순하고 선한 사람이 또 어딨나?’하는 생각을 했다. [사진 3] 그제와 이제의 한상균 위원장. 한상균이라는 사람이 달라진 게 아니라 유제순이라는 사람의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길거리를 다니면서도 음악이 들려. ‘철의 노동자’라도 들리면 귀 기울이고, 어디 있나 확인하고. 오죽하면 나섰을까, 저 속에는 어떤 속상함이 있을까 하고.”노조를 알고 나서야 몰랐던 걸 알게 됐다는 유제순. 하춘화의 ‘난생처음’을 ‘노조를 알고부터 노조를 알고부터 세상을 알았습니다’로 ‘노가바’ 해야 할 거 같다. 함께 누리는 ‘불금’ 분회장으로 숙제처럼 안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싸우며 배우는 시간이 전혀 없던 새 조합원들과 쉬는 시간 쪼개서 함께 노래라도 익히고 싶은 거다. 근데 그게 맘대로 안 된다. 시도해도 흐지부지된다.“여기 식구들은 아직 뼈저리게 닿지 않는 듯해. 밥 먹으면 불 끄고 자는 거야. 투쟁가라도 배워야 할 텐데.”새벽 첫차를 타고 와서 오전 6시에 일을 시작하고 오후 4시에야 퇴근하는 삶. 그나마 밥때인 오전 8시 30분에서 한 시간, 오전 11시 30분에서 한 시간이 휴식 시간의 전부. 후딱 밥 먹고 눈이라도 붙여야 하니 교육은 먼 나라 이야기일 수도 있다. 유제순은 농성 기간 내내 불면증으로 평균 1시간 정도 잤다. 농성장 날바닥에서 못 자던 잠을 농성 승리 후 집에 돌아가 2달 쉬는 동안에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7월 20일 이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자고 있다. “잠이 뭐야. 우리는 땅바닥에 허리를 대보지를 않았는데. 배워야지, 기본은 알아야지.” 흥분해서 아우성치며 투쟁하고 아침저녁 마이크 잡고 목청껏 싸우던 게 불과 얼마 전이다. 양치하는데 목에서 피가 두 번이나 올라와 폐병인가 걱정될 정도로 목을 썼다.'엘지 조합원들은 어찌 그리 발언을 잘하시냐', '연대하러 와서 많이 배우고 간다'는 소리도 들었다.“현장에서 투쟁하며 눈으로 확인한 걸 입으로 토해낸 거지. 평상시 하는 대로, 그냥 나가서 하는 거야. 나이도 60이 넘어서, 따로 쓰고 준비하고도 없이.” [동영상] 김영례 부분회장의 발언. “‘나는 못 해’라고 빼든 사람이 나중엔 물이 올라서…”라는 유 분회장의 증언 돌아보면 한 조합원이 분해서 난간에 올라가 떨어지겠다던 아찔한 일이며, 농성 조합원 전체가 소복 입고 청와대며 한남동 구광모 대표 집으로 행진을 하던 일들이 생생하다. 얼마나 추웠던지 눈썹에 고드름을 매달고 걸었다. 이제 그까짓 추운 건 일도 아니라는 한마디에서 강인하게 단련된 노동자를 본다. 그런 고생이 보람으로 다가오던 한순간을 꼽으라면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토요일 무급 왁스 노동에서 해방된 날. 경험 못 한 ‘불금’이란 걸 제대로 느낀다며, 함성을 지르고 몸을 흔들며 신나서 퇴근하던 조합원의 모습이다. 투쟁의 성과를 새로이 함께하는 조합원과 똑같이 누리며 여의도 조합원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 시간이다. 이런 ‘순박한 여사님’들과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고 몸으로 실천하는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면 아시아나케이오 복직 투쟁 농성장에 같이 연대 가려 한다.신입 조합원들에게 빨리 배우고 익히라고 채근하는 대신 얼굴 맞대고 이야기하는 시간 속에 같이 다듬으며 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탈 없이 따르고 지지해 주는 조합원의 마음을 알고, 지부에 같이 고민해줄 동지도 든든하게 있으니 말이다. 엘지빌딩분회원은 엘지트윈타워 농성에서 끝까지 싸운 20명에 엘지마포빌딩의 미화팀 16명과 시설팀 8명이 더해져 44명이다. 여기에 앞으로 보안팀까지 결합 예정이다. ‘100명보다 파워 있는 조합’이라는 유제순의 노조부심을 읽는다. 어이쿠, 절로 눈이 부신 오후였다. [사진 4]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 입법추진단의 입법 제안 운동에 동참하는 민 사무장과 유 분회장 글김우권유하다 편집위원

    [사람] 김우 21-08-31 4560

  • 맨날 어디 떠나고 싶은 도화살 - maennal eodi tteonago sip-eun dohwasal

    아시아나 KO 노동자 이야기 ② – 현장에서 쫓겨난 노동자의 복직으로 OK 세상을

    코로나라는 핑계, 경영이 어렵다는 구실 코로나로 모두가 어렵다. 국제선 운항이 막힌 항공 산업에 쏟아부은 기간산업안정기금은 ‘함께 살자’는 의미를 담은 지원금이다. 금호아시아나항공은 코로나 시국에 ‘나만 살자’고 2조 4천억 원만 냉큼 받아먹고는 하청노동자 고용유지엔 딴청이고 그 책임은 뒷전이다. 사실 코로나로 모두가 어려운 게 아니다. 금호아시아나항공은 2019년 1조 6천억, 2020년 1조 7천억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그런데 전 회장인 박삼구는 수천억대 배임과 횡령을 자행했다. 물러날 때는 퇴직금 64억과 상표권 사용료 120억을 받아 챙겼다. 그러고도 여전히 금호문화재단의 이사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금호문화재단은 아시아나케이오를 포함해서 2차 하청사 8개 업체의 지분 100%를 소유하는 공익법인이다. 각종 세금을 면제받으면서 공익활동이 아닌 ‘남는 장사’를 해왔다. 금호아시아나가 일감을 몰아주면 전 이사장 박삼구가 매년 수십억을 가로채는 방식이었다. 아시아나케이오는 금호아시아나항공 자회사의 하도급 회사로 기내 청소와 수하물 분류 작업을 한다. 항공산업이 호황일 때는 저임금으로 막 부리고 장시간 노동으로 실컷 부리던 노동자를, 코로나로 불황이라며 맘대로 댕강댕강 잘랐다. 정부가 90%의 고용유지지원금을 주는데도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10여 년 썼으면 잘 썼고 인력이 필요할 땐 다시 뽑으면 될 일이지, 왜 10%의 고용유지 자부담 비용을 쓰겠냐는 심보가 읽힌다. 10%를 내는 것이 부담이라면 그 돈 우리가 내겠다는 노동자들의 의사마저 무시했다. 해고의 핵심은 민주노조 탄압과 와해였다. 무급으로 일한 시간 돌려달라고 체불임금 소송을 내는 민주노조, 전기불과 에어컨이 꺼진 깜깜한 곳에서 땀범벅으로 유해 약품 청소를 하는 건 부당하다는 민주노조가 ‘눈엣가시’였던 것이고. 마침 코로나라는 안성맞춤인 해고의 핑계를 찾았을 뿐이다. [사진 1] 아시아나케이오 해고자 생계비 마련을 위한 재정사업으로 판매한 쿨토시 '함께 날자' ⓒ 코로나19 희생전가 정리해고 철회,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 원직복직을 위한 대책위원회 (이하 아시아나케이오공대위) 회사가 희망퇴직과 무기한 휴직을 선택하지 않은 노동자를 선택해 정리해고해 버린 것이 2020년 5월 11일이었다. 해고 노동자들은 5월 15일부터 부당해고 철회 천막 농성장을 차렸다. 금호아시아나 본사가 있는, 종각역 센트로폴리스 건물 앞이었다. 인천지방노동위원회(이하 인천지노위) 부당해고 판정 한 달 뒤인 8월 14일엔 판결문을 받아들고 서울고용노동청 본청 앞으로 갔다. 코로나19에 고용유지를 중요 과제로 삼겠다며 “하나의 일자리도 반드시 지키겠다는 각오로 함께할 것”이라던 정부에도 책임을 묻고 싶어서였다. 원정 투쟁도 다녔다. 모기업인 아시아나항공 본사 앞으로, 그 자회사인 아시아나에어포트 앞으로, 아시아나케이오 바지사장 선종록 대표 집 앞으로, … 차에 피켓을 싣고 다니며 “여기서 했다, 저기서 했다” 유랑을 했다. 어디서 하면 더 타격이 되고 무엇을 하면 더 효과적일까. 끊임없이 모색하며 끈질기게 버텨왔다. 작년 7월 지방노동위에 이어 12월 중앙노동위에서도 아시아나케이오의 해고는 부당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아시아나케이오지부 김계월 지부장은 조금 기대하고 약간 희망을 품어보기도 했다. 사회적 비용을 고려한, 다른 사업장의 복직 사례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1노조와 상의해야 한다, 복직이 아니라 재입사가 어떠냐는 ‘어이없고 기가 막히는’ 태도로 일관했다.김 지부장이 교섭 때 양심을 찌르기라도 해야겠다며 준비해 간 말이 있었다. “자식들 앞에 부끄럽지 않냐”는 일갈이었다. 그이들은 양심이 콕 찔렸을까? ‘양심에 털이 났다’라거나 ‘양심에 철판을 깔았다’는 말을 떠올릴 상황이 내내 그이들의 답이다.[사진 2] 행정법원 앞에서 해고자와 시민은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하며 삼천 배를 올렸다 ⓒ 아시아나케이오공대위 법이란 무엇인가, 밥이란 무엇인가 회사는 ‘돈이 없어서’라는 납득할 수 없는 구실로 복직시킬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그러면서 체불임금의 법정이자를 쌓으며, 복직 불이행으로 이행강제금을 물며, 특별근로감독으로 벌금을 내며, 거대로펌 김앤장의 변호사 3명을 선임해 수임료를 쓰며 행정소송을 걸었다. 지난 20일에 행정소송 1심 판결이 나왔다. 아시아나케이오는 패소로 소송비용 전부를 떠안았지만 다시 항소를 검토한다고 한다. [사진 3] 행정소송 승리를 기념한 다섯 해고 노동자의 사진 촬영 ⓒ 정택용 아시아나케이오가 이렇게 ‘다시 또 다시’ 불굴의 재판을 진행하는 저의는 무엇일까. 명백한 시간 끌기며 자명한 민주노조 파괴다. 노동자들이 막연한 기다림이 힘들어 ‘이리로 저리로 불안한 미래를 향해 떠나’가길, 막막한 생계에 허덕이다 뿔뿔이 흩어지길, 미운털 박힌 민주노조가 산산 조각나길, 누워서 떡을 먹으며 기다리는 것이다. 꿈틀해봤자 지렁이 아니겠냐는 식으로, 거리에서 용을 쓰는 노동자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끝도 없는 소송을 거는 아시아나케이오를 보면서 생각한다. 많이 배웠다는 변호사에게 돈을 처발라 대리전을 하며 끄떡없는 악덕 사업주 아시아나케이오를 보면서 생각한다. 법이란 무엇인가. 결국 돈도 시간도 갖고 있는, 가진 자의 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또 밥이란 무엇인가 생각한다. 우리에겐 노동이 밥이고 삶이니 함부로 뺏지 말라는, 해고는 살인이라는 노동자의 절규를 들으며 생각한다. 밥은 하늘이기에 혼자 못 가지는 것이라 했다. 우리 사회는 정작 그 하늘 같은 밥을 서로 나눠 먹고 여럿이 같이 먹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다. 해고 노동자는 김 지부장을 포함해 다섯이 남아 길 위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매일 피케팅을 하고, 때론 땡볕에 걷고, 때론 오체투지로 차가운 땅바닥에 몸을 던지고, 때론 곡기까지 끊고, 때론 무더위에 삼천 배를 올리며 복직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는 사이 김정남 전 지부장과 기노진 회계감사는 거리에서 정년을 맞았고, 김하경 조합원은 내년이 정년이다. 58세 김 지부장과 54세 박종근 부지부장이 그 뒤를 이을 터다. 하지만 그이들은 회사의 기대대로 호락호락하지 않다. 회사의 바람대로 쉬 꺾이지도 않을 것이다. 연대 투쟁 속에 '우리 곁에 늘 동지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기운을 받는다. 더 어려운 사업장을 보며 '더 나은 조건에 있는 우리가 포기하지 말아야겠다'고, '다른 노동자들의 꿈과 희망이 되어야겠다'고 야무지게 다짐하기도 한다. 그이들이 민주노조를 KO 시키려는 아시아나케이오를 KO 시키리라 믿는다. 작년 인천지노위 판정이 있던 날 당시 김계월 부지부장을 인터뷰했었다. 복직해서 현장에 돌아가면 내걸고 싶은 펼침막이 있다고 했다. ‘드디어 우리가 살아 돌아왔다. 부당해고에 맞서 싸워 이기고 돌아왔다. 정의는 살아있다’는 문구였다. 여전히 그러한가 물었다. 세월이 흘러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거대한 자본과 끝까지 싸워서 노동자의 자존심을 지켜내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마침내 ‘우리가 이겼다, 우리가 옳다’고 알리고 싶다고 한다. 민주노조 조합원으로 싸웠노라, 이겼노라, 다시 살아 왔노라, 널리 선언하고 싶은 것이다. [사진 4] 김계월 지부장의 꿈도 역시 '함께 날자' 저 하늘로~ ⓒ 아시아나케이오공대위 김 지부장은 영험한 예지몽을 꾸기도 한다. 인천지노위 판정 전날엔 금반지를 손가락마다 끼는 꿈을 꿨다. 행정소송 판결 전날의 꿈은 어느 큰 집에 갔는데 황토로 만든 침대가 놓여 있는 꿈이었다. 대궐 같은 집의 금 침대 쯤으로 간주하겠다. 또 김 지부장의 사주를 보면 60대에 돈방석에 앉는다고 한다. 내후년이 오기 전에 먼저 체불임금을 받아 자그맣게라도 방석을 깔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겠다. 글김우권유하다 편집위원

    [사람] 김우 21-08-24 4052

  • 맨날 어디 떠나고 싶은 도화살 - maennal eodi tteonago sip-eun dohwasal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이야기 – ‘그런 마음’으로 싸운 유제순들의 승리

    작년 겨울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유제순을 만났다. 천막농성 66일 차, 전면파업과 로비농성 3일 차 되는 날이었다. 마침 그날은 그이가, 빨간 투쟁조끼를 벗고 작업복 차림으로 현장으로 가는 동료 이탈자 3명의 모습과 마주친 날이기도 했다. 유제순은 나름 이해하려고 했다. 사측이 200~500만 원으로 제시하는 위로금이며, 7~8년 노동에 1700~1800만 원의 퇴직금이며, 몇 달 치의 실업급여를 생각하면 마음이 갈팡질팡할 거라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투쟁으로 개고생하느니 그게 더 낫지 않나' 하고 마음이 기울어질 수 있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솔직하게는 가슴이 찢어지고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라 말한다. 1년 4개월 여 같이 싸운 날들이 겹쳐져 그러하리라.파업 대오는 위로금 지급 시점에 10명 정도가 나가고, 다시 3명이 줄어 24명이 됐다. [사진 1] 12월 16일. 첫 로비농성 날에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해결을 위한 노동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 [사진 2] 12월 18일. 로비에서 연대자들과 경쾌한 율동과 힘찬 노래를 ⓒ권유하다 우리는 ‘씨*년들’이었다 유제순이 청소노동자가 됐던 시기는 아이들이 중학교에 다니던 사춘기 시절이었다. 갱년기 우울증이 오며 '나는 왜 태어났을까' 하는 고민까지 들었다. 퇴근하던 동네 언니를 붙잡고 부탁했다."저 좀 어디 데리고 가주세요." 직업소개소를 통해 가산 디지털 공단으로 가서 면접을 봤다. 육체적인 일이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수시로 성추행이 일어났다. '궁둥이를 툭툭 두드리고', '어깨를 끌어안고', 걸레질 시범을 보인다며 '뒤에서 안으며 가슴을 스치고'… 감독이며 사장이며 용역업체 사장이며 가릴 것 없이 그러했다. 따지고 덤비니까 "독버섯은 잘라 보내야 해." 스스로 나가게끔 힘든 일만 시켰다. 그냥 나올 순 없었다. 남편과 상의해서 경찰서를 찾아갔다. "본 사람 없어서 이거는 힘듭니다."라더니 잘해 주겠다며 따라 나왔다. 경찰의 태도가 180도 달라진 이유는 아는 선배가 구로 경찰서 강력팀장이기 때문이었다. 2년 재판 끝에 승소했다. '청소일은 이런 거구나, 밑바닥 사람을 짓밟는구나, 이 나라가 더러운 나라구나, 우리를 돌봐줄 경찰은 아무 일도 아니라고 넘기려다가 빽이 있으니 바뀌는구나.' 경험과 성찰의 시간을 경유하고 엘지로 왔다. 이번엔 알게 또 모르게 갑질을 당해야 했다. 소장이 뭐라고 해도 죄인처럼 고개도 못 들고 사는 나날. '노조로 권리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100명도 넘는데 왜 노조를 못 만들고 당하기만 하고 사나?' 싶은 나날이었다. "제순 씨, 우리 노조 만들면 안 돼?""합시다. 어떻게든 합시다."동료인 박소영이 식당에서 말하자마자 바로 답이 튀어나왔다. '이래도 짤리고 저래도 짤리는 인생. 정년 11년에 노조 한 번 해보고 죽자'는 마음이었다.사측 모르게 40여 명을 모으고 민주노총의 담당자를 불러서 휴게소에서 만났다. 소장은 손을 벌벌 떨고 회사는 난리가 났다. 몸이 아파서 눕기라도 하면 "씨*년들 일도 못 하는 년들이 쉬려고 한다." 뭘 잘못 먹어 응급실에 다녀오기라도 하면 "씨*년이 뭘 처먹었길래 배탈이 났어." 청소도구를 빠트린 날엔 "씨*년들이 걸레를 안 가지고 내려오고 지*한다." 별별 욕을 퍼붓는 감독에게 그저 '씨*년들' 그 이상이 아니었던 그이들이 당당하게 노동자로 바로 서는 순간이었다.손전등을 비추어가며 티끌을 찾아내고, 계단 손잡이 안 보이는 구석에 부러 껌을 붙여놓고 구박을 하던 용역업체 팀장에게 기세 있게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다. [사진 3] 천막 농성장에 붙어있는 연대방문자들의 메시지 ⓒ권유하다 말 못하고 살던 입을 열어 하나하나 해결했다. 관행이던 토요일 노동을, 왁스 청소를, 시간 쪼개기를 바로 잡았다. 잠가서 쉬지 못 하게 하던 휴게소 문을 활짝 열며 답답하게 닫혔던 마음의 문도 환하게 열렸으리라. 그런 마음으로 싸우고 있어요 유제순은 청소일을 창피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직업엔 귀천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딸들에게도 "일하는 여사님들께 음료수라도 사드려라." 이른다. 남편도 아내를 생각하며 회사에서 자기 책상을 자기가 닦는다고 한다. 두 딸에게 어제 처음 농성 이야길 했다. "큰일 나요." 걱정하고, "조심하세요." 당부하지만 반대는 하지 않는다. 엄마는 한 번 한다면 하는 사람이니까 그렇다. 남편도 비난하지 않고 기를 살려준다. "자네 성질 아는데 앞장은 서지 마. 중간에서 놀아. 이왕 시작한 거니까 승리는 해야 돼~" 위로금을 받고 나가는 쉬운 길이 아니라, 질긴 투쟁이라는 어려운 길을 걷는 이유를 물었다."저 사람들이 우리를 흩어 놓으려는 수작이니까요. 절대 조직을 이탈하면 안 되죠. 꽁으로 들어온 거는 보람도 없이 나가는 법이에요." "햇볕도 없는 지하실이나 계단 밑에 휴게실이 있어요. 밀폐 공간에서 쉬고 밥하고, 가래침 뱉은 세면대에서 설거지하며 일하는 청소노동자가 너무 많아요. 자꾸 알려야죠. 우리뿐만 아니라 밑바닥 노동자도 대우받는 노동자로 바꿔야죠. 위로금 1,000만 원을 준대도 마다할 거예요." "우리가 이 투쟁을 성공시킨다면 우린 다닐 수 있는 날들이 길게 봐야 4~5년 이지만 우리 후배들을 생각한다면 이런 갑질 당하지 않도록 우리가 싸워야죠. 저는 그런 마음으로 싸우고 있어요." [사진 4] 12월 18일. 유제순의 엄지척 ⓒ권유하다 오전 3시에 일어나서 새벽하늘 보며 첫 차로 출근하는 일인데 그래도. 70살까지 다니고 싶다고 한다. 옮겨온 노숙농성장인 로비가 그나마. 차 소리 심한 거리의 농성천막보다 낫다고도 한다. 땅값을 생각하면 오히려. 호텔보다 비싼 곳에서 묵는 셈이라고, 언제 이런 비싼 곳에서 자보겠냐고도 한다. 로비에서 '호강'하는 유제순도 전에는 TV에서 데모하는 사람을 보면 욕을 했다. 분신하는 사람 역시 비판했다. 하지만 너무 분하고 억울한 상황을 직접 경험하며 '내 목숨 바쳐야만 해결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불살랐겠구나, 느껴지며 이제는 이해가 가기도 한다. 마침내 승리 작년 11월 30일이었다. 엘지가 그룹 본사가 있는 건물인 엘지트윈타워의 청소노동자 80여 명에게 12월 31일부 고용 해지를 통보했다. 용역업체를 바꾸는 방식의 부당 해고 핵심은 노동조합 파괴였다. 엘지 그룹 계열사에서 일감몰아주기를 해온 청소 용역업체 '지수아이앤씨'는 엘지 구광모 회장의 고모인 구훤미 씨와 구정미 씨가 지분 100%를 소유한 회사다. 명절 상여금조차 없이 최저 임금을 강요하고, 그 마저도 임금꺾기를 하며 노동자를 주말 무급노동으로까지 부려온 회사다. 그 덕에 2015년 10억 원부터 매년 10억 원씩 증가한 배당금을 지난해엔 60억 원 지급하기도 한 회사다. 10년 넘게 최저 임금만 받아오다가 2019년 10월 노조를 만들어 최소 생활임금 보장을 요구하자 1년 넘게 교섭을 끌며 시급 60원 인상을 이야기했을 뿐인 회사다. 해고 통보에 전원 고용승계를 주장하자 200만 원, 500만 원, 기준도 없는 개별 위로금으로 사직서 사인을 유도한 회사다. 민주노조를 만든 비정규 노동자는 연말을 앞두고 집단 해고하되 이웃사랑 성금은 120억을 내는, 아수라 백작 엘지의 다른 한 쪽 얼굴인 회사다. 우리 몸을 던져서라도 성공을 바란다는, 이길 때까지 끝까지 싸우려는 생각이라는 유제순을 뒤로 하고 돌아오던 날이 지난 12월 18일이었다. 이후 싸움은 지난했다. 엘지는 불법 대체인력 투입과 고소고발과 경비용역으로 위협하는 걸 넘어 전기를 끊고 출입문까지 막아 연대하려는 이는 물론 밥이 들어오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연대 시민이 만들어 온 도시락을 엎고, 가족들이 사 온 초코파이와 두유를 정문에서 후문으로 던지며 농성자들에게 나가서 주워 먹으라고 하는 게 엘지의 태도였다면. 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 없으니 굶는 것을 택하겠다는 것이 농성자의 자세였다. 그이들은, 앞으로는 교섭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몇몇에게 따로 연락해 청소 노동자의 1년 연봉인 2,000만 원으로 회유하는 야비한 책동에도 굽히지 않고. 농성 4개월 여 만에 마침내 승리했다. 4월 30일 노사 합의문에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농성 중인 청소근로자 전원은 7월 1일부터 엘지마포빌딩에서 근무한다, 현재 만 60세인 정년을 만 65세로 연장하기로 한다, 만 65세 이후에는 만 69세까지 1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하기로 한다'는 내용을 한 자 한 자 박아 넣었다.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직접 협상한, 값진 결과, 소중한 승리였다. [사진 5] 12월 18일. 코레일네트웍스 지지 방문 날에. 노동자의 힘, 서로의 힘, 지지의 힘, 연대의 힘이 싸움의 동력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해결을 위한 노동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 [사진 6] 12월 18일. 유제순의 브이 ⓒ권유하다 인터뷰이 유제순은 이제 당당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엘지빌딩분회장이다. 체감 온도 영하 20도를 넘는 혹한의 날씨에 뜨겁게 뜨겁게 타올랐던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의 투쟁을, 유제순들의 그 값진 승리를 기린다. 글김우권리찾기유니온 편집위원

    [사람] 김우 21-08-02 3964

  • 맨날 어디 떠나고 싶은 도화살 - maennal eodi tteonago sip-eun dohwasal

    [권유하는 사람들] ⑩ 임순광 '멋대로, 그대로'

    한결같은 평가 임순광의 고향은 부산. 6살에 포항으로 이사 와서 초‧중‧고를 나왔고, 지금도 포항에서 민주노총 경북지역본부 정책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억양이며 말투가 완연한 경상도 사투리라서 인터뷰 도중 되묻게 되는 일이 몇 차례 있었다. 노사 단체협약 협상 자리에서 상대편이 기가 죽곤 했는데 쉬 알아듣지 못할 사투리로 기일게 게다가 소리 높여 말하니까 그랬다는 게 자체 해석이기도 하다. 사진 1. 1990년 형제와 함께. 왼쪽이 임순광. 안성기 씨 닮았대서 중학교 시절부터 별명이 '안생기' ⓒ임순광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경북대분회 사무국장을 맡던 시절. 수업에 농성에 병간호까지 겹치기 출연을 하며 치아 상태가 안 좋아져 과거보다 더 발음이 안 좋아졌다는 주장도 펼치는데. 2004년 9월 경북대분회의 천막농성 투쟁 때 얘기다. 구미 금오공대 수업 후 대구 경북대로 돌아와서 농성장을 지켰다. 연말부터는 형님 간호까지 맡았다. 한주의 절반은 농성장에서, 절반은 병원에서 잤다. 치열한 시간 끝에 1월 말 파업 투쟁에 승리해서 단협 합의서에 사인하던 날엔 어금니 2개가 빠지고 4개엔 금이 갔다니 말 다 했다. 파업 종료 뒤엔 경북대 분회장으로 출마했다. 대구경북 연구원으로 받던 300만 원 정도의 수입을 포기하고 월 20만 원의 노조 활동비를 선택한 거다. 그렇게 그의 선택지는 언제나 농성장이고 항상 노조이며 늘 투쟁의 현장이었다. 내가 만난, 그를 아는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제멋대로며 말이 많고 글이 길어 피곤하다고 장난처럼 타박하는 사람도, 이론과 글이 되는 드문 인물이라며 높이 사는 사람도 하나같이 같은 평가를 한다. 교수연구자 운동가인 그이가 ‘이론가뿐만 아니라 실천가’라는 것이다. 반면교사로 인생 역전 주변에서 ‘빵 체질’인 사람을 목격하곤 한다. 규칙적으로 먹고 자고 운동하며 오히려 푹 쉬고 나왔다는 뻥을 치며 웃는 경우다. 임순광은 사주를 보면 역마살, 도화살 이런 거 대신 ‘농성살’이라고 나오지 않을까 싶게 ‘농성 체질’인데.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관심과 저항적 실천은 언제부터였을까. 중학교 때부터 자료를 찾아보며 ‘이걸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사회학과를 자발적으로 선택했다지만. 아무래도 반골 기질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시절이지 싶다. 경북 전역에서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이 모이는 학교였다. 명문이라며 재수생이 대기하는 학교. 특수반을 두어 차별하는 구조에 유급생이 속출하는 학교. 1년에 2~3명은 정신과 치료를 받는 환자가 나오는 학교였다. 급기야 고1이던 10월에 중학교 때 전교학생회장이던 짝이 자살하는 충격적 현실을 마주했다. 비평준화, 학벌, 입시 과열 경쟁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꼈다. 이때부터 여행을 다니며 열심히 놀았다. 중3 때 도내 고사에서 유일한 수학 점수 만점자였지만, 수학 보충수업에도 빠지고 자율 학습이라 부르던 타율 학습에도 불참했다. 자율 학습 하루 결석에 다섯 대의 매타작이 이어졌다. 허벅지가 시커멓게 터져나가며 전교에서 매를 가장 많이 맞는, 1위 학생이 됐다. 때리고 핀잔주는 건 물론 돌로 머리를 때리는 선생부터 구정물 위에 물구나무서기를 시켜서 지치면 구정물에 빠지게 하는 가학적인 선생까지. 선생들이 체벌로 친구들을 괴롭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곤혹스러웠다. 그런 선생과 그런 조직과 그런 제도가 싫던 마음을 교육 운동 분야에 대한 구조적 관심의 기초로 삼았다. 사진 2. 1975년 어머니와 형과 함께. 오른쪽이 임순광 ⓒ임순광 훌륭하지 않은 교사를 반면교사로 삼은 임순광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그이의 생에 엇비슷한 성장이 있다. 5살 때까지도 말을 하지 못하고 홍역 치료 약을 잘못 먹은 탓에 오른쪽 눈이 약시인데, 말 많은 사람으로 책을 끼고 사는 사람이 됐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소아마비 증세가 있어서 전교에서 운동을 가장 못 하던 아이가 평생 운동가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과 겹친다고나 할까. 광장과 거리에 살다 광장과 거리에서 학자와 교육자인 활동가로 살아가고 싶다는 임순광. 주요 활동 경력을 살펴봐도 단조롭지 않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에서 꾸준히 활동한 외에도 교육혁명공동행동 공동대표, 대학공공성강화대책위 공동대표, 박근혜퇴진과민주평등국가시스템구성을위한전국교수연구자시국회의 집행위원, 사회적교육위원회 공동대표, 대학무상화평준화추진본부 집행위원장 등을 맡아 종횡무진 활약해 왔다. 사진 3. 2011년 비정규교수노조 첫 번째 위원장 시절. 상어라는 별칭에 어울리는 느낌 ⓒ임순광 사진 4. 2015년 비정규교수노조 두 번째 위원장 시절. 전국교수대회 중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머리를 밀어주고 있다 ⓒ임순광 사진 5. 2018년 비정규교수노조 세 번째 위원장 시절. 국회 앞 농성장에서 강사법 개선안 입법 시행과 예산안 배정을 요구하며 ⓒ임순광 “심심한 날이 없었지.” 이전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그이의 심심하지 않은 나날들 초창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대학 합격증을 받자마자 선배 따라 강남 아니 강당으로 가고, 강당에서 노래 배우고, 고민이 심화되고, 과대표를 맡고, 세미나에 들어가고, 마당극에 참여하고, 집회에 참석하고. 물 흐르듯 흘러가는 시간이었다. 어느 날은 집회 선두에 섰는데 최루탄이 주변에서 2개나 터졌다. 피를 코로 쏟으며 실려 나갔다. “얘는 다신 안 나올 거다.” “얘는 투사가 될 거다.” 피투성이로 사회학과 과방에 누워있던 임순광을 보던 선배들의 뒷말이었다. 임순광은 후자가 됐다. 온갖 모임에 나가고 새벽엔 선동 연습, 저녁엔 세미나, 밤에는 공단 주변에 선전 벽보를 풀칠하러 다녔다. 재개발 철거반대 투쟁, 노동자 파업 투쟁에도 ‘출장’ 나가서 쇠 파이프 화염병 조를 맡았다. 사진 6. 2020년 옆지기 보라 동지와 함께. 지지 응원하며 같은 곳을 바라보는, 이 두 사람을 보라. 어울린다는 표현은 이럴 때 써야 할 듯 ⓒ임순광 성장은 있되 변함은 없는 모습으로 평생을 사는 임순광에게 이제껏 변치 않은 이유를 물었다. 살다 보니 그런 거라 답한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이다. 운동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대학교 신입생 시절 마당극의 대본을 외우며 잠꼬대로까지 팔을 흔들며 대사를 읊던 모습 그대로. 앞으로도 임순광은 참으로 열심이고 진실로 진심일 것이다. 글김우권리찾기유니온 편집위원

    [사람] 김우 21-07-19 4683

  • 맨날 어디 떠나고 싶은 도화살 - maennal eodi tteonago sip-eun dohwasal

    [영상] 중대재해법 5인미만 제외 규탄하는 '가짜 5인미만 고발 당사자'들의 메시지

    21년 1월 8일 국회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5인미만 사업장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5인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는 5인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죽음마저 차별하겠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5인미만 사업장이 제외된 이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일명 '가짜 5인미만 사업장 확산법'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근로기준법의 5인미만 사업장 차별 조항으로 인해 수많은 ‘가짜 5인미만 사업장’이 횡행하고 있다. 사용자의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여 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함이다. 현재도 불법·편법으로 위장한 ‘가짜 5인미만 사업장’이 셀 수 없이 많다. 이러한 조건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적용 대상에서 5인미만 사업장을 제외하는 결정은 사용자에게 ‘가짜 5인미만 사업장’을 더 많이 양산하라고 권고하는 법으로 역할 할 수밖에 없다. 이번 법안이 ‘가짜 5인미만 사업장’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더욱 명확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가짜 5인미만 사업장 고발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냈다. “5인미만이면 처벌 안 받는 법이 통과되면 이런 가짜 불법 사업장들이 더 늘어날 것입니다. 이제 다치고 죽는 것까지 차별받아야 한다니 인간적으로 소외감과 인간으로 권리를 못 받는다니 참담합니다. 법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이런 사업장들이 많아지게 될 텐데요, 고통받을 근로자들을 생각하면 슬프고 마음이 아픕니다.” - 가짜 5인미만 고발 당사자의 기자회견 발언 中 - 1월 8일 기자회견에는 전국의 가짜 5인미만 고발 당사자들이 음성 녹음으로 참여했다. 가짜 5인미만 사업장의 실태가 어떠한지 고발하며 이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가짜 5인미만 확산법으로 작용할 것을 규탄하기 위함이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전국의 가짜 5인미만 사업장 고발 당사자들의 음성 녹음을 영상에 담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 대상에 5인미만 사업장이 제외되어 ‘가짜 5인미만 사업장’이 확산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당사자들의 목소리로 직접 들어보자. 아래 첨부파일을 다운받으시면 기자회견 보도자료를 받아 볼 수 있습니다. 보도자료에는 긴급 기자회견 현장에 울려 퍼진가짜 5인미만 사업장 고발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녹취록으로 담겨 있습니다.

    [사람] 이산하 21-01-20 3163

  • 맨날 어디 떠나고 싶은 도화살 - maennal eodi tteonago sip-eun dohwasal

    [영상] 복직 35년 투쟁의 길, 희망의 이름으로 걷다 (김진숙 지도위원 청와대 도보행진)

    2020년 12월 30일, 김진숙 지도위원이 부산에서 청와대로 걷기 시작했다. 35년간 복직을 위해 싸웠지만 결국 한진중공업이 또 다시 복직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앓는 것도 사치라 다시 길 위에 섰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 트위터) 암투병 중에 청와대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걸음에 '희망 뚜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왜 그의 걸음은 '희망 뚜벅이'가 되었을까. 김진숙 지도위원, 그리고 그 걸음에 함께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영상에 담았다. 희망을 걷는 김진숙 지도위원을 영상에서 만나보자.

    [사람] 안창규 21-01-19 3125

  • 맨날 어디 떠나고 싶은 도화살 - maennal eodi tteonago sip-eun dohwasal

    [영상] 어쩌면 일어날지 몰라, 기적..."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조금 특별한 크리스마스 이브"

    청소노동자들은 길게는 10년을 넘게 엘지트윈타워에서 일했다.일하는 와중에도 청소노동자들은 쉴 공간 하나가 없어 석면 가루가 떨어지는 단자함에서 쉬고, 여자 화장실 끝 변기통에 앉아 쉬었다. 야간에 요기를 때우기 위해 싸온 음식을 먹으려하면 부시럭 소리난다며 먹지도 못하게 했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전에는 격주 토요일마다 무보수로 일했다. 그렇게 10년을 넘게 일해온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12월 31일자로 집단해고 된다.하청 용역 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면서 고용승계를 보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약 1년 전 노동조합을 결성한 것이 계약 해지와 고용승계 거부의 이유로 보인다. 청소노동자들은 파업을 선언하고 건물 로비에서 노숙 농성을 이어나가고 있다.‘내년에도 일할 수 있게’ 라고 말하며, 추운 겨울밤 차디찬 건물 로비 바닥에서 눈을 붙인다. 12월 24일, 엘지트윈타워조금 특별한 크리스마스 이브청소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영상에 담았다.영상 | 글안창규, 노승혁, 박의현권리찾기유니온

    [사람] 안창규, 노승혁, 박의현 20-12-28 3378

  • 맨날 어디 떠나고 싶은 도화살 - maennal eodi tteonago sip-eun dohwasal

    [가짜 5인미만 당사자 - ㄱ잡지사] 4부: 더티 플레이어가 페어 플레이어를 만났을 때

    권유하다의 노무사를 만나기 전 두 번째 이유서를 쓰고 있을 당시 나는 회사가 선동하는 내용에 일일이 증거를 첨부해가며 강하게 반박했다. 이제 대리인을 만났으니 이 내용과 여기에 첨부한 증거자료를 한 데 모아 담당 노무사에게 전달했다. 담당노무사는 추가적으로 몇 가지를 물어봤고, 일주일 뒤 새롭게 쓴 이유서2를 건네줬다. 노무사는 최소한의 증거만 첨부한 채 간략하고 깔끔하게 의사전달을 하는 글로 바꿔놓았다. 법리적으로 우리가 유리하니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 없다는 취지였다. 노무사는 사측의 답변서를 모두 읽고 선동과 날조에 능숙한 사람들임을 금세 알아봤다. 노무사 말로는 이런 경우, 사측에 일일이 대응하지 말고 반증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주장이 거짓말임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설명이었다. 일단 사측의 반응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며칠 뒤 담당노무사가 전화를 주었다. 하 노무사는 사측 노무법인과 통화를 했는데 사측 대리인이 노무사를 선임했냐며 깜짝 놀라는 눈치라고 했다. 우리 노무사님 또 다시 상대의 패를 간파했다. “아마 노무사 없이 구제신청을 해서 힘으로 어떻게 해보려는 심산이었나 봐요.” 법인을 5인 미만으로 부수고 쪼개어 노동자들을 기만해가며 잉여자금을 모으는 사용주가 선택한 노무법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으로 자본으로 대응해 오면서 그간 승산이 있었나보다. 해당 사장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영위하면서도 불법이라는 생각보다 스스로 사업 수완이 좋아서 이런 방식을 택했다고 굳게 믿고 있을 것이다. 소위 ‘내로남불’이다. 원래 사장 본인은 이공계 엔지니어였지만 본인의 사업을 접고 15년 전부터 출판사를 운영했다고 했다. 그의 할아버지가 교과서에 실릴 만큼 유명한 소설가였으니 본인이 출판업 또는 언론사에서 쌓은 경력이 없어도 출판업계에서 사업하기 좋은 인맥을 적극 동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업계에 실무자로서 겪는 경험은 전무한 채 회사부터 차렸으니 회사를 차리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 사장으로 앉은 셈이고 노동법의 의의나 사용주의 역할에 대해서도 모를 것이 뻔했다. 애초부터 진짜가 아니었으니 운영방식이나 법적대응에도 속임수가 판쳤다. 문학이 무엇인지 알 법한데 어쩌다 자본만 숭배하는 사람이 됐는지 씁쓸해졌다. 열흘 만에 사측에서 두 번째 답변서를 보내왔다. 이번에는 첫 번째 답변서에 비해 사측은 다소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사장이 언론이나 출판 쪽에서 업무 경력이 없던 터인지 ‘우리는 편집장의 승인 시스템이 없는 잡지사다’ 내지는 ‘이제껏 전혀 기사에 문제가 없었다’와 같이 잡지사의 관행이나 특이성까지 무시하면서 관리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한 내용으로 작성해 서류를 보내왔다. 사측 노무사들은 한 술 더 떠서 ‘이렇게 근로자가 서울 노동위원회에 침해받은 권리에 대해 구제신청 절차를 밟고 있으니 부당해고가 아니다’라는 궤변까지 늘어놨다. 심지어 답변서 1에 기재했던 사측의 입장을 번복하는 등 말이 되는대로 반박하는 내용도 섞여 있었다. 이제는 결론을 돌려줄 차례가 됐다. 담당 노무사는 이번 이유서에는 사측의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을 제시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추석연휴를 앞두고 나는 최대한 상세히 적은 자료를 보냈고 노무사는 이를 바탕으로 밤을 새가며 세 번째 이유서를 썼다. 노무사는 연휴 전날에야 촘촘하게 적은 이유서를 완성했다며 전화를 걸어왔을 때 수화기 너머로 담당 노무사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노무사와는 연휴가 지나고 심문기일에 만나기로 했다. 싸움에 휘말리지 않으면서도 당사자만큼이나 온전히 사건에 이입하는 대리인을 보며 ‘쿨’해지는 법을 새삼 배우게 됐다. 글│사진김상은글쓰는 노동자로 살고 싶은 1人

    [사람] 김상은 20-12-15 3369

  • 맨날 어디 떠나고 싶은 도화살 - maennal eodi tteonago sip-eun dohwasal

    [권유하는 사람들] ⑨ 김대성 ‘만년 과장을 선택한 사람’

    세월도 비껴가는 권리찾기유니온의 김대성 감사는 사무금융노조 KB 손해보험 지부장이다. 회사에서 30년 왕따 인생에 노조위원장이라니 인생 반전이다. 입사 초기부터 노조 활동 열심이던 김 감사에게 회사는 한 손엔 채찍을, 다른 손엔 당근을 들었다. 김 감사랑 얘기하는 사람은 윗선이 ‘불러서 1시간씩 깨니까’ 누구도 김 감사와 밥을 먹지 않았다. 회사는 87년 노조위원장을 부당해고했다가 복직시켜야 했던 아픈 학습을 했다. 김 감사를 해고하기보다 나가게 하려는 시도가 바로 왕따시키는 것이었다. 한편으론 김 감사가 대리일 때 차장을 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 지금이야 사원, 대리, 과장 직대, 과장, 차장 모두 조합원이지만 당시에 차장은 노조원이 될 수 없었다. 차장 줄게, 너의 노조원 자격 다오. 활동 그만하라는 회유의 뒷거래였다.차장이 된다는 건 연봉이 4천만 원이나 올라간다는 것이고, 부장으로 승진도 보장되는 길이었다. 말만 잘 들으면 아니 노조 활동만 덜 해도 걸어갈 수 있는 꽃길이었다. 하지만 김 감사는 ‘조합 활동 못 할까 봐’ 차장 승진을 거절했다. 그리고 2022년 2월이면 정년을 맞이하는 지금껏 차장을 달지 못했다. 그야말로 ‘만년 과장’이다. [사진 1] 회원이 40여 명이던 노조 노래패 '노래 벗'의 91년 4월 야유회. 맨 앞줄 왼쪽이 김 감사 ⓒ김대성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후회의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사람의 두 가지 마음이다. 사람에겐 선택의 갈림길에 서는 순간이 있다. 마음은 시소를 타고 끊임없는 저울질을 하기 마련이다.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그가 걸어온 길이 되고, 걸어가는 길이 되고, 바로 그 사람이 된다. “김대성 씨 대단해. 오랜 시간 어떻게 그렇게 버티지?” 인터뷰 자리에 함께한 지인의 한마디다. 88년 LG 회장실에 있던 김 감사의 ‘성향을 파악한’ 회사가 90년에 LG 화재로 발령을 보내며 알게 된 직장 동료다. 그이가 덧붙이는 말.“주위에서 몰아쳐도 휘지 않아. 세월도 김대성 씨를 이길 수 없어. 세월이 비껴가는 사람이야.” 노조 임원을 했던 이들도 승진 앞에 장사 없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걸 보아오면서 하는 말이다. 지인에게 같이 활동하며 인상 깊었던 게 무엇인지 물었다. 고집불통의 한결같음이라 답한다. 융통성 없는 외골수로 느껴지기도 했던 김 감사가 결혼한 게 기적이고 기특한 일이라 한다. “하고 싶은 거, 지키고 싶은 거 있어도. 모두 변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그렇지. 김대성 씨는 그렇지 않았어.” [사진 2] 노래 벗의 율동 연습. 맨 앞. 김 감사가 날아오르고 있다 ⓒ김대성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라는 노래에 ‘세월 흘러가면 변해가는 건 어리기 때문이야’라는 가사가 있다. 결코 어리진 않되 천진스러운 소년 같은 웃음을 잃지 않는 김 감사의 학창 시절은 어땠을까. 일탈이라 해봤자 여름방학 자율학습 때 학교 담 한 번 넘어 영화 보러 간 정도였다. 하지만 ‘따귀 맞는 모범생’이었다. 매일 오후 7시면 자고 자정이면 일어나서 오전 6시까지 공부에 매진했다. “선생님에게 질문해서 답 못 하게 하려면 열심히 해야 하잖아요.” 형식적으로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향한 나름 반항이었다. 김 감사는 선생님이나 상사들이 싫어하는 캐릭터라고 자신을 정의한다. 집에서 그이가 가는 길을 반대하지 않는 이유는 작년부터 적용되는 임금 피크제 때문만은 아니다. 노조 활동 하나 안 하나 기왕 버린 몸이라 생각한다기보다 반대해도 의미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말을 해봤자 말려봤자 변동 없이 그 길을 걸을 사람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나를 위한 삶 “나를 위한 삶인 적은 없었나요?”“(노조 활동) 그게 나를 위해 사는 거죠.”회사 노조 활동 10년, 회사 밖 노조 활동 20년이다. 1999년부터는 기업별 노조의 배타성을 넘어 초기업 단위 노조 만드는 활동도 해오고 있다. 권리찾기유니온에 열정을 보태고 있는 것 외에도 6개나 된다. 전국사무연대노조, 청년유니온, 노년유니온, 노후희망유니온, 지역일반노조 등이다. 월급 일부를 상근자 급여로 주고 사무실 임대료를 내주다 나중에는 월급 전부를 내어주고 옆지기 월급으로 살기도 했다. 지인도 물었다.“김대성 씨는 취미가 노조죠?”“아녜요.”“그럼 취미가 뭐예요?”“...” 김 감사는 답하지 못했다. 대학도 데모하고 싶어서 들어갔다는데 회사도 노조하고 싶어서 들어간 건 아닐까. 빨리 간부가 되고 빨리 해고되면 내부 조직화가 어렵겠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한다고 했는데 그래도 95년엔 간부가 됐다. 풍물, 노래, 역사 기행반을 만든 것도 취미를 즐기려 한 게 아니었다. 아니 노조 활동이라는 분명한 취미를 위한 것이었다고 해야 할까. 노조 위원장 당선은 전 위원장이 어용성이 강해 염증을 느꼈던 조합원들에게 변화가 필요했던 ‘덕분’이다. 경선이었지만 한 후보는 회사 쪽 사람이어서 김 감사가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받았다. 조합원들은 임금 인상 많이 해줄 줄 알고 뽑았다고 말하지만 김 감사는 그보다는 다른 변화에 치중하고 있다. 저임금 노동자에게 유리하도록 임금 정률 인상제를 정액 인상제로 바꾸었다. 33년 만의 일이다. 무기계약직인 비정규직 노동자로 조합원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남녀차별 축소에도 힘쓰고 있다. 회사는 신입을 하위직급인 5급과 6급은 100% 고졸·전문대졸 여성으로 뽑고, 대졸 이상의 4급은 분리해 채용하고 있다. 4급 입사 여성이 수적으로 부족하니 직급이 올라갈수록 여성이 급감한다. 남성은 33세에 다는 대리를 여성은 43세에도 달까 말까 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나의 이해관계에 따라 저항도 만만치 않다. 차장급은 정액제에, 남성인 사원과 대리와 과장은 승진과 관련된 남녀평등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여직원은 무기계약직과 동등해지는 걸 못 견뎌 한다. 옆에서 힘을 보태줬으면 싶은데 아쉽게도 노조 임원들도 노동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아니다. [사진 3] 학습 소모임에서 96년 경기도 나들이를 갔다. 사진 속 인물들은 모두 나중에 노조 지부장이 됐다. 왼쪽부터 9대, 12대, 8대 KB손해보험 지부장 ⓒ김대성 김 감사는 언제나 수월하지 않은 길을 선택해 왔다.“후회하는 거 있으세요?”“반발이 워낙 심하기 때문에 내 하고 싶은 걸 다 못하고 나갈 것 같은 거죠.”지인이 옆에서 거든다.“다 시기상조라고 얘기할 때 이미 그걸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발 앞서가며 많이 외로웠을 거야.”농담이 아니라 내가 같은 회사 다녔다면 꼭 밥을 같이 먹어줬을 거라고 얘기했다. 시대를 앞서가는 이들의 외로움 곁에 함께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김우권리찾기유니온 편집위원

    [사람] 김우 20-12-02 5706

  • 맨날 어디 떠나고 싶은 도화살 - maennal eodi tteonago sip-eun dohwasal

    [가짜 5인미만 당사자] 당신은 5인미만 사업장에 일하는 노동자입니까?

    당신은 5인 미만 사업장에 일하는 노동자입니까?“네”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다시 한번 물어보자. 당신은 근로근준법에 보호를 받고 계십니까? 그럼 또 대부분 “받지 않을까요” 대답이 돌아온다.하지만 정답은 “당신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라면 근로기준법에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이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수가 정부 추산 350만 명이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추산한 350만 노동자들은 ‘근로근준법’에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거나, 휴게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거나, 연장근로를 해도 시간 외 추가 수당을 지급받지 못해도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라는 이유로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5인 미만 사업장을 유지하려고 한다. 일하는 노동자가 5인 이상이 되면 같은 사업장에서 같은 일이 해도 다른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신고를 한다.사업주는 사업장 쪼개기를 하거나 관리직에 일하는 사람을 업주로 신고하거나, 일하고 있는 노동자를 신고하지 않거나, 편법과 꼼수를 동원해 5인 미만 사업장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권리찾기유니온'의 2020년 2월 4일 ‘가짜5인 미만 사업자 고발운동’을 시작으로 5인 미만 사업장의 실태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런 목소리들을 모아 ‘권리찾기유니온'에서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다 근로 환경을 고발한 5인 미만 사업장 피해 당사자들을 모아 가오나시(가짜 오인 미만 나야나 시상식) 를 준비 중이다. 고발 당사자 중 10명이 ‘2020 가짜 5인미만 고발 경연대회’에 참여 신청을 했다. 이 영상은 경연대회 10명의 참가자 중 4분의 인터뷰를 모아 그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권리찾기유니온’은 10명의 용기 있는 목소리를 담아 내보낼 예정이다. 글 │ 영상안창규권유하다 편집실 가오나시상 자세히 보기 <-- Click!

    [사람] 안창규 20-11-26 3535

  • 맨날 어디 떠나고 싶은 도화살 - maennal eodi tteonago sip-eun dohwasal

    [가짜 5인미만 당사자 - ㅂ연구소] 1부: 프로그램개발·연구직노동자 세 번의 해고일기

    처음 5인 미만 사업장에서 해고된 건 2017년 가을이었다. 울산에서 생명과학과 대학원을 수료하고, 서울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운 뒤, 울산에 돌아와 개발자로 스타트업에 취업했다. 알바가 아닌 최초의 직장이었다. 2월에 입사해 전공이 아니라 많은 어려웠지만 노력으로 극복하려고 힘을 냈다. 하지만 비전공자가 사수 없이 혼자 개발을 시작단계부터 맡은 건 너무 어려웠고, 노력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대표와 부대표는 개발자를 더 뽑아 준다고 했지만 반년이 지나도 충원은 요원했다. 직원 4명 중 개발자는 나 혼자였고, 미숙한 실력으로 의사소통 문제도 생겨 결국 대표는 사직을 권했다. 최초의 해고통보였다. 정규직이었지만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내 잘못이라 생각했고, 순순히 사직서를 썼다. 다행히 실업급여를 받았다. 와인 판매 알바 등을 하면서 다음 일자리를 찾았다. 울산엔 적당한 수준의 급여와 근무조건이 되는 개발 기업이 부족했다. 해를 넘기고, 일자리를 찾다가 2018년 1월 경기도 한 기업이 내가 했던 분야의 개발자를 구했다. 이력서를 보냈고 면접을 보았다. 이번에도 스타트기업이었지만, 임금도 높고, 근무환경도 괜찮았다. 면접 자리에서 합격 통보를 받고 울산에서 경기도로 이사했다. 이번에도 직원은 4명이었다. 이번에는 다른 직원들이 도와주기도 했다. 하지만 일이 익숙하지 않아 시간이 걸렸다. 커뮤니케이션도 문제를 일으켰다. 6월쯤 인턴이 한 명 들어왔다. 전공자였고, 신입이었다. 신입답지 않은 뛰어난 의사소통 능력을 보여주었고 나와 비교 당했다. 결국 이번에도 해고통보를 받고, 사직서를 썼다. 이번에도 내 잘못이라 생각했다. 이번에도 실업급여를 신청했지만 문제가 생겼다. 재직기간은 6개월이었지만, 휴일을 빼면 재직일수가 180일이 안 돼 실업급여를 못 받았다. 급한 마음에 동사무소 가서 긴급 생계비를 신청했지만 당장 생계가 문제였다. 결국 신용카드 대출에 손을 댔고, 빚이 쌓여 연체가 발생했다. 신용등급이 10등급까지 떨어지고 카드는 정지된 채 천만원 넘는 빚이 생겼다. 결국 프로그래머는 접고 다시 생명과학 쪽 직장을 찾았다. 두 번의 해고로, 개발자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안정된 일자리는 찾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다. 건설일용직과 대학병원 조교, 쿠팡플렉스 등을 전전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었다. 울산에서 나를 따라 상경한 동거인이 많이 고생했다. 집 근처 대학병원 파견 연구원 모집공고를 봤다. 사업장이 서울, 판교, 대전에 있고, 집에서 가까운 판교에서 면접을 봤다. 7년 된 중견 벤처기업으로 직원도 많았다. 합격해 대표의 연구실이 있는 서울 근무를 시작했다. 파견 갈 병원이 생길 때까지 잠시 서울로 출근했다. 지하 1층, 지상 3층짜리 작고 허름한 건물이었다. 출근 며칠 뒤 대표의 진면목이 봤다. 엄청 다혈질에 직원들에게 폭언폭행이 비일비재했다. 대표의 폭력성에 못 이겨 박사 1명이 그만뒀고, 그 자리에 내가 채용됐단다. 조만간 파견지로 가서 근무할 거란 기대에 한 달을 버틴 끝에 파견근무를 시작했다. 업무지시는 주로 파견지에서 내려주었고, 업무 보고는 대표에게도 보냈다. 파견지 전임자는 출산 때문에 그만 둔다고 했다. 인수인계 받던 중 파견근무 한 달 만에 대표가 연락와 이직하라고 했다. 자기들이 회사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 회사가 조만간 파견지에 입주하니 업무 편의를 위해 그리로 이직하라고 했다. 같은 회사나 다름없으니 안심하고 이직하고 근무조건도 동일하게 맞추겠다고 했다. 안심 하라니까. 근무조건도 맞춰 준다니까. 같은 회사나 다름없다니까. 7년이나 된 중견기업이니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이직했다. 그런데 근로계약서를 받고 이상했다. 분명 이직 전엔 정규직이었는데, 갑자기 1년짜리 계약직이었다. 새 담당자에게 연락하니 계약조건은 틀린 게 없다고 했다. 찝찝했지만, 계약이야 연장되는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나 말고도 그쪽으로 이직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쪽으로 저쪽으로 몇 번의 인력 교환이 이루어졌고, 최종 나 포함 2명이 파견지에서 일하게 됐다. 다시 5인 미만 사업장이 됐다. 업무지시는 여전히 파견지에서 내려주었고, 이번에는 전 대표와 현 대표 2명에게 일일보고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일 잘해서 파견지에선 실적을 인정해 줬지만 양쪽 대표는 못마땅해 했다. 이유는 몰랐다. 이직하고 8개월이 지난 6월 어느 날 인사담당자가 전화했다. 경영상 이유로 해고하니 해고와 권고사직, 자진퇴사 셋 중에 고르라고 했다. 말문이 막혔다. 갑자기? 아무 징조도 없이 갑자기? 내가 대표에게 뭔 잘못을 했나?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잠깐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받아들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전엔 해고 징조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다른 직원들과 이야기 해 보니, 전 대표가 나를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직원들에게 했다는 걸 알았다. 전 대표에게 전화하니, 싫어한다고 말한 건 사실이지만, 자기 회사가 아니므로 해고에 영향을 주진 않았다고 한다. 믿을 수 없었다. 같은 회사라고 공공연히 말하다가 이제 와 발뺌 하는데 어떻게 믿겠는가. 지인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했고,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온라인으로 접수했다. 며칠 뒤에 연락이 왔다. 취하하시라고. 그리고 민사소송을 하라고. 5인미만 사업장은 해고 구제신청도 못한다. 글이현의프로그램개발·연구직노동자

    [사람] 이현의 20-11-17 48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