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파 김현양 사랑 - jijonpa gimhyeon-yang salang

꼬꼬무) 지존파 사건의 전말, 인질여성에게 연정을 품었던 김현양, 탈출할 기회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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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희대의 엽기 살인 조직, 지존파. 가진 자에 대한 복수심이 결성 동기다. 사실 그들 자체내에서는 지존파가 아닌 '마스칸' 이라는 (그리스어로 야망이라는 뜻) 조직 이름이었다고 한다. 26년이 흐른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그 시작은 한낱 대장놀이에 빠진 어느 양아치의 객기 어린 미친 짓이었다. SBS 꼬리에 꼬리는 무는 그날의 이야기 라는 프로그램에서 '지존파 사건'을 재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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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가지의 지존파의 조직 강령이라고 한다.결국 4번을 위배한 조직원 김현양으로 인해 지존파는 검거된다.

지존파의 두목과 결성

26살의 두목 김기환

마스칸이라는 이름으로 조직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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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목 김기환, 1968년생전남 영광군이 고향이다. 3세에 아버지가 사망, 몹시 가난했으나 초등시절 공부를 매우 잘했다. 법정 최후 진술에서 “초등 미술시간에 크레파스를 살 돈이 없어서 안 가져 갔더니 선생님이 그러면 친구들 것을 뺏어서라도 가져왔어야 한다고 혼냈다. 난 선생이 가르친 대로 인생을 살았을 뿐이다.”라며 자신의 죄에 전혀 뉘우치는 기색도 없이뻔뻔한 태도를 일관한다.

중학교에서는 전교 5등의 우등생이었고 운동과 글짓기에도 남달랐다. 다른 조직원들보다 지능적으로 우수했고 나이도 가장 많았다. 머리좋은 넘이 만만하게 부릴 수 있는 나이 어리고 멍청한 애들을 데리고 대장으로 군림했던 것이다. 지존이라는 별명은 포커를 잘해서 도박판에서 얻은 별명이라고 한다.

중2 때 어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졌고 형도 아팠다. 김기환은 학교를 그만두고 부산에 신발공장에 취직한다. 월급의 대부분을 집에 보냈고 틈틈이 검정고시 준비도 했다. 이후 대한석탄공사에서 잡부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았으나 형편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현실에 좌절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지냈는데 그때 도박으로 인한 빚도 지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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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필요했던 김기환은 가진 자들을 증오하며 부자들의 돈을 갈취, 살해하는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는 범죄와, 처세, 대화술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그러나 도박판 메이트들은 살인까지 하는 것에 부담을 느껴 조직 가입을 거절하고 멀리 도망쳐버렸다. 첫 조직에 실패하자 영광군 후배 강동은 등을 끌어들여 현재 멤버를 결성한다. 자신보다 몇 살 어리고, 자신에게 대항하지 못 할 만한 불안정하고 어린 동생들을 위주로 결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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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압적인 리더십으로 동생들에게 군림하던 그는 조직원들이 막노동을 해서 모인 돈으로 자신의 어머니가 기거하던 집을 분홍과 민트색으로 예~쁘게 도장한 아방궁이라는 숙소를 만든다. 지하실에는 소각시설과 사제 철창 감옥 시설을 완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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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조직원들은 잘 훈련된 똥개처럼 그의 말에 복종했다. 혈기 왕성한 나이의 그들은 23살의 어린 여성을 성폭행하고 후에 합류한 김기환이 시범적으로 살해한다. 첫 살인 이후, 조직원 송봉우는 귀신이 보인다는 헛소리를 하더니 공금 300만원을 들고 도주하여 친척 집에 숨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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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봉은이라는 형의 신분증을 들고 다니던 송봉우는 실제로 18세의 미성년이었다

배신자 송봉우에게 용서하고 이해한다, 함께 개를 잡아먹자며 유인한다. 결국 송봉우는 이에 속아 살해당하는데, 경쟁적으로 두목의 이쁨을 받으려던 조직원들은 자신의 충성심을 보여주듯 더욱 잔혹하게 송봉우를 살해하며 배신자의 말로는 죽음이라는 공포심에 깊게 세뇌된다. 송봉우의 나이는 겨우 18세였다.

아지트가 거의 완성되고 실전에 돌입하기 직전, 돌연 김기환은 '아는 선배의 집에 보일러 수리를 하러간다' 며 지인의 미성년인 조카를 성폭행해 체포된다. 광주교도소에 수감된 김기환은 강동은을 부두목으로 임명해 부하 조직원들에게 범행을 지시했다. 10억이 모일때까지 범행을 하고 외국으로 도망가려 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첫 피해자를 살해한 김기환이 혹시 모를 검거에 혼선을 주기 위해 일부러 작은 사건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실제 김기환은 순순히 강간죄를 인정했다. 복역중에도 조직원들에게 칼 한자루와 물만 먹고 산속에서 1주일을 버티라며 다양한 물리적인 단련을 강요한다. 어리숙한 조직원들에게 그의 말은 곧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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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목 김기환

후에 지존파 전원이 검거되고, 사형이 확정된다. 김기환은 노태우 전두환은 무죄인데 왜 나는 유죄냐며 뻘소리를 외친다. 전두환과 노태우 건은 본인 사형 선고 이후의 일이다. 수감중 그는 사형을 앞두고 천주교로 귀의하였고 장기기증에 서약했다고 한다.

1995년 11월 2일 , 지존파 조직원들의 유가족들은 대부분 시신인수를 거부한다. 검거한 고병천 전 수사반장이 대신 인수하였고 장례식을 치뤄주었다고 한다. ' 죄인이 할 말은 없으나 남자는 자기가 한 말은 끝까지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머니께 내가 새 인생을 걷는다고 전해주십시오 ' 속으로는 두려워 벌벌 떨고 있을 그가 사형 집행 전, 07시 55분 마지막으로 태연히 남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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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목 강동은 / 사형 무렵, ?체포 당시보다 살이 찐 모습

1. 강동은 1973년생 당시 21세, 전남 영광군 출생. 부두목이며 고교 중퇴, 절도 폭력전과 2범, 김기환의 초,중 후배였다. 형제가 많아 부모님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생활기록부 상에는 '매사에 무관심한 성향', '바른 생활이 요구됨'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다. 고교 때, 동창인 문상록과 함께 쌀을 훔쳤다가 절도 전과를 갖게 된다. 밴드부에 가입했지만 선배 가혹행위가 심해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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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스브스 뉴스 / 내 손으로 못 죽여서 한이라는 얘기를 허풍이다. 강동은은 소심한 성격으로 입으로 지시만하고 살인 행위에는 가담하지 않았다.

문상록과 가출해 상경한 후 막노동을 시작했다. 전과 삭제를 위해 모은 돈 1500만원을 변호사에게 주었다가 돈만 날린다. 그 때부터 부유층에 대한 적개심이 생겼고, 귀향해 도박에 빠졌다가 김기환을 만나 조직에 합류하게 된다. 김기환에게 충성을 보이며 문상록, 백병옥, 강문섭 등을 영입했고 초반에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수감 중인 김기환을 수 차례 면회해 범행 지시를 받았다. 겉보기엔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소심한 인물이었다. 범행 지시를 받아 조직원들이 실행하도록 하는 역할만 하고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첫 피해자였던 최 씨 살해 후엔 죄책감으로 부상을 핑계대며 자신의 집에서 혼자 지내기도 했고 중소기업 사장 부부 살해에도 지시만 하고 가담하지 않았다.

체포 전, 여친의 빚을 갚아주고 이경숙을 지존파의 일원으로 들인다. 이경숙이 조직에 합류한 지 이틀 째 되던 날 아침, 콩나물을 사러 아지트를 나섰다가 가장 먼저 체포되었다. 이경숙은 임신 상태였다. 접대부로 일하던 이경숙의 빚 1600만원은, 피해자 소윤오에게 갈취한 돈으로 지불했다. 그는 이경숙에게는 죄가 없다고 일관한다.

1995년 11월 2일 오전 10시 20분에 들어 사형장 입회하였다. 몸은 약간 떨며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신앙 고백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가족들이 인계를 거부하여 그의 시신 역시 사형수 공동묘지에 묻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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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양 / 인질여성을 사랑하게 되어 탈출의 기회를 준다.

2. 김현양 1972년 6월 17일생행동대장. 중학교 중퇴, 상해 전과 1범이다. 19세 17세의 어린 동생들이 있었다. 그가 12세 때, 아버지가 간암으로 사망하고, 소아마비로 몸이 불편했던 어머니는 식당 일을 시작했다. 외모가 출중한 어머니와 남성들과의 은밀한 만남을 보면서 충격을 받는다.

중2 때, 가출하여 광주로 올라갔는데 걸인들에게 잘못 걸려. 껌팔이, 절도 등을 하다가 도주, 상경한 뒤, 신문팔이, 구두점 직공, 술집 웨이터 등을 전전한다. 전기회사에 취직해서 돈을 모아 굴비 장사를 시작했으나 실패한다. 장사를 접고 운수회사에 다닐 때, 김기환을 만나 조직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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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된 폭력성을 드러내며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으며 체포 후 웃으며 충격적인 발언을 쉽게 내뱉어 모두를 경악시켰다. 오히려 두목인 김기환보다 언론에 훨씬 많이 노출되었는데 그 이유는 마치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으니 무서울 것도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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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부부중 아내 박미자의 가슴부위의 인육을 먹었다는 김현양

인간이길 포기하려고 유일하게 여성의 유방부분의 인육을 먹었다고 발언했다. 김현양은 납치한 이씨에게 연정을 품었다. 살인과 조직생활에 대한 환멸을 느끼는 듯한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문상록과 강동은은 이씨를 죽이라고 종용한다. 전문가들은 김현양이 일부러 이씨에게 도망칠 여지를 준 것이라고 본다.

김현양을 면회 간 이씨가 '날 일부러 살려준 거냐'고 물었고, 그는 '아니다 모르겠다'고 말한다. 신고한 이 씨를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사과했다. 납치 당시에도 호의적으로 대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속 얘기를 많이 했다 "사랑하는 여자랑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그러면 나머지 애들한테 우리 가족이 개죽음 당할 것이다." 라는 말을 한 적도 있다.

수감생활 중, 가장 먼저 개신교로 참회하였다. 사형 집행 시, 몸을 많이 떨고 안절부절했다고 한다. 찬송가 405장을 부른 뒤, 08시 15분에 집행을 시도하였으나 밧줄 한 가닥이 끊기는 바람에 예정보다 늦은 시간인 08시 25분에 형이 집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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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록 / 이수정을 좋아하는 김현양과 몸싸움을 벌였다.

3. 문상록 1971년생특수절도 등 전과 3범, 고교시절, 형과 아버지가 사망한 후 동창 강동은과 가출해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고교 생활기록부에 "학습에 흥미가 없고 우발적 행위가 우려되며 자기 억제를 못함."이라는 지적이 있다. 평소 충동조절 장애로 의심되는 행동을 보였다.

1991년 입대, 12월에 의가사 제대를 한 후 술집 웨이터를 하다가 강동은과 다시 만났다. 출소후 조직에 가담해 첫 피해자였던 최 씨 살해를 제외하곤 모든 범행에 참여했다. 부두목이었던 강동은을 보좌하는 역할이었다. 연장자였지만 서열은 강동은, 김현양 아래였기 때문에 범죄 시 주도적인 역할은 맡지 못했으나 김현양이나 김기환 못지 않은 잔인한 성향의 소유자로, 범행시 살인 행위 자체나 피해자들의 고통을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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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하게 살인을 즐긴 문상록 / 이수정씨를 죽이자고 주장

문씨는 김기환에게 절대 충성을 보였다. 이 사건의 생존자인 수정씨를 처음부터 끝까지 믿지 못하고 김현양에게 수정씨에게 미쳐있다며 몹시 못마땅해 했다.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고 하던 조직행동 강령을 어기고 이 씨를 살려주려 한 김현양과 지속적인 마찰을 빚었고 크게 주먹 다툼까지 벌였다. 1995년 11월 2일 , 대규모 사형집행에서 15명의 사형수 중 14번째로 15시 15분 경 인정심문을 받고, 천주교 미사를 마지막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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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화상 성형수술이 조직에 가담한 동기라는 강문섭

4. 강문섭 1974년생, 고교 중퇴, 맨 나중에 합류한 막내 조직원, 전과 없음. 부모의 이혼으로 고모 밑에서 자랐다. 얼굴에 큰 화상 흉터가 있는데, 이 때문에 학창시절 침울하고 무기력했으며 주의가 산만했다. 고1 때 장기 결석으로 제적 당한 후, 서울과 전주를 오가며 술집 웨이터를 하다가 만난 문상록의 소개로 '거금을 쥐어주겠다.'던 김기환의 말에 현혹되어 조직에 가담한다. 범행 동기를 ' 얼굴의 화상흉터를 없애기 위한 성형수술 자금 마련'이라고 진술하기도 했다. 조직 내에선 백병옥과 함께 서열 최하위로 범행에 주로 뒤처리를 담당했다.

사형집행 당일 14시 29분, 13번째 순서로 교도관들로 부터 양 팔을 부축받으며 사형장에 입회하였다. 인정심문 후 교도소장과 목사 및 교도관들 등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였고 찬송가를 불렀다. 작별 인사 후 14시 52분, 사형이 집행되고 사형수 공동 화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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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 조직에 합류했다는 백병옥

5. 백병옥 1974년생 중학교 제적(장기 결석), 특수강도 등 2범. 다른 지존파 조직원과는 달리 부모님의 사랑속에 자랐지만 매우 가난했다. 부모가 품팔이를 하여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지존파에 가입해 범행을 저지른 이유도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어서."라고 밝혔다.

공판에 부모 중 유일하게 참석한 백병옥의 부모들은 허름한 차림에 여관에 묵을 돈이 없어 대합실에서 잤으며 아들에게 가난을 물려준 자신들을 탓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백씨 부모가 판사에게 작성한 탄원서는 부모의 눈물에 모두 흐려져 글이 안 보일 정도였다. 끝까지 판사에게 선처와 용서를 구했지만 결국 사형이 구형되고 백씨의 부모는 망연자실한다.

어린 시절 몸이 약했고, 5학년 때 몸이 더럽다는 이유로 선생에 의해 발가벗겨진 이후 학교가 싫어졌다고 하며 중학교 때 장기 결석으로 제적 당한다. 불량 청소년들과 어울려 절도 및 강도 전과도 이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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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병옥의 사형집행을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에서 더이상의 사형집행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교도소 동기였던 강동은과 친분을 맺어 출소 후 천안 공사장에서 함께 일한다. 강동은으로부터 거금이 생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조직 가입을 권유 받았다. 조직에서 맡은 역할은 범행 대상을 물색하는 것이었다. 막내였지만 선배들 못지 않은 잔악함을 보였고 김기환에게 절대 복종했다. 동갑인 강문섭과 아지트에 있다가 경찰을 보고 야산으로 도주하여 대나무숲에 숨었다. 이미 경찰들이 뒷문이 있음을 인지하고 야산에 인원을 배치한 상태었기에 곧 검거된다.

백병옥은 당일 15시 28분 가장 마지막인 15번째로 사형장에 입회 하였다. 당시 두려움에 심하게 떨어서 ' 왜 그리 떠느냐? 별로 안 걸린다. 금방 끝날거다, 예수님도 사형수였다 ' 라며 그의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했다고 한다.

관계자는 백씨가 가장 두려워 하던 것은 수감생활 중 열심히 신앙심을 갖고 종교활동에 임했던 그가 사형 직전, 죽은 이후 정말로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인가 였다고 짐작했다. 사형 집행 시 백씨는 휘장 밑으로 사라질 때까지 찬송가를 계속 불렀다고 한다.

6. 이경숙 1971년생 강동은의 애인, 절도전과1범 다방을 하는 어머니와 알콜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중3때 가출하여 전남 영광의 주점에서 접대부 생활을 하다 강동은을 만났다. 강동은의 범행을 모두 알고 있었음에도 함구하였고 합류한 지 2일 만에 검거된 바, 징역 3년 집행 유예 4년을 선고 받고 석방되었다.

지존파의 범행 행각

생존자 여성 이 씨의 탈출로 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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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이 은행원 최씨의 시범살인을 하며 조직원들에게 한 말이다.

1. 1993년 7월 초, 23세 은행원 최미자 (여) / 23시 충남 계룡시 계룡역 부근에서 송봉우,강동은, 백병옥이 최 씨를 발견하고 송씨가 그녀를 끌고 가 성폭행한다. 애초에 죽일 계획은 없었으나 시범살인라며 뒤늦게 찾아온 두목 김기환은 김현양에게도 강간을 지시한 뒤, 피해자를 목졸라 살해한다. 증거인멸을 가르치고 최 씨를 암매장 했다. 송봉우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공금을 들고 조직을 이탈하여 결국 배신자로 살해당한다. 강동은도 다리 부상을 핑계로 아지트가 아닌 집에서 한동안 생활한다.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조직원들은 첫 살인 이후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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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연주자 이종원씨와 알바였던 이수정씨는 지인일뿐 연인은 아니었다고한다

2. 1994년 9월 8일, 36세 카페연주자 이종원 (남), 27세 이수정(가명,여) / 카페 연주자와 알바생이었던 두 사람의 그랜져 차량을 가로막고 둘을 위협하여 납치했다. 이종원씨는 700만원을 주고 중고그랜저차량을 구입했을 뿐, 부자가 아니었고 이씨는 카페 알바생이었다.

이들이 돈이 없다걸 알고 조직원들은 둘 다 살해하기로 한다. 돌아가며 여성 이씨를 성폭행 하고, 남자에게는 술을 잔뜩 먹인 후 머리에 비닐을 씌워 여성 이씨에게 살인에 가담하도록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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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씨의 사망은 교통사고로 묻힐 뻔한다.

남자를 그랜져 차에 태우고 이들은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 교통사고로 위장했다. 도로에 스키드 마크까지 남기는 치밀함을 보였다.(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종결하려했다. 피해자의 허벅지에 칼에 찔린 자상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 남겨진 여성 ,이 씨에게 연정을 품었던 김현양의 고집으로 이 씨는 생존하였고 그들의 범행에 강제적으로 가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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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음을 막지 못하면 부도위기를 맞을 정도의 영세한 기업이었다.

3. 1994년 9월 13일, 43세 중소기업 사장 소윤오(43세) 박미자(36세) 부부/ 공기총을 발사해 위협, 납치해 아지트로 이동하고 1억을 주면 풀어주겠다는 말로 회유한다. 소씨는 직원에게 사고가 났다며 전화했고 8천만원을 가져오게 한다. 조직원들은 체포를 대비해 차량에 다이너마이트도 구비해 놓았는데 김현양이 다이너마이트 조작을 잘못하여 손과 발에 부상을 입고 아지트로 복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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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소윤오사장은 흙수저로 태어나 고생하며

자수성가한 인물이었다. 돈가방을 든 직원을 따라 도망갈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고, 돌아가라 말한다.

오후 2시 경, 소 씨는 회사의 총무 부장으로부터 8천만 원이 든 돈가방을 받는다. 이때 소윤오는 도주하거나 구조 신호를 보낼 수도 있었으나 아내 박미자가 인질로 잡혀 있었기에 회사직원을 돌려보낸다. 그는 정말 돈만 지불하면 자신들을 풀어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조직원들은 이미 부부를 죽이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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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양은 생존자 이수정씨에게 살인을 강제적으로 가담케한다. 출처.jtbc

김현양은 피해자인 27세 이수정씨의 손을 함께 잡고 술에 취한 소윤오에게 총을 쏘게 한다. 김현양의 태도는 이수정을 죽이라는 조직원들에게 수정씨도 공범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설득하기 위함으로 해석되었다. 박씨의 인육을 먹는 태도도 극도의 잔인한 짓을 함으로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조직원들에게 수정씨를 건드리지 말라는 의미로 보인다. 이어 문상록이 아내 박미자씨를 칼로 목을 찔러 살해했고, 곧 그들은 시신을 해체했다. 시신 2구를 소각하며, 다량의 연기에 대한 주변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돼지고기를 밖에서 함께 구워서 이웃들에게 나누기도 한다.

이씨의 탈출로 지존파 전원 검거

김현양은 피해자에게 탈출의 기회를 제공한다

반찬을 해주고 김치를 담아주기도 하며 이수정씨는 탈출의 기회를 노렸지만 쉽지 않았다. 김현양에게 만일 나를 죽인다면 고통없이 너가 나를 죽여달라고 말했고 김현양은 그러겠다고 답했다. 술에 취한 문상록과 김현양은 이씨의 살해여부를 두고 몸싸움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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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파가 갖고있던 다이나마이트 두목김기환이 탄광잡부로 일할때 구해두었다고 전해진다.

이튿 날 다이나마이트 부상으로 병원에 가려는 김현양에게 수정씨는 같이 가자고 말한다. 첫 질문에 대답이 없던 김현양은 거듭 같아가자는 수정씨에게 흔쾌히 허락한다. 위험하게 왜 데리고 나가냐는 조직원에게 다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결국 그녀와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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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김현양과 생존자가 갔던 병원.

이곳에서 탈출에 성공한다.

병원가는 차 안에서 김현양은 언제 당신같은 여자와 드라이브를 해보겠느냐 나온김에 노래방도 가자는 이야기를 한다. 홀로 진료실에 들어가며 김현양은 현금 50만원이 든 가방과 휴대폰을 수정씨에게 맡기고 진료실로 들어가기 직전,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지며 씨익 웃는다.사실 강동은은 그날, 그녀와 함께 외출하는 김현양에게 나간님에 수정씨를 죽이라고 지시했다. 또한 곧 출소하는 김기환도 깔끔하게 죽이라는 입장이었다. 평소 수정씨에게,이상하게 당신은 내가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고 자주 말했다는 김현양. 그녀를 못마땅해하는 조직원들 때문에 항상 수정씨에게 자신 옆에만 있으라고도 말한다. 곧 출소를 앞둔 두목마저 그녀를 죽이라고 압박하는 상황에서, 그는 더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수정씨가 도망가도록 배려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도망치고 싶죠? 탈출하고 싶죠?

도망가고 싶으면 도망가도 돼요.

50만원의 현금이 든 지갑과, 휴대폰을 이수정씨에게 맡기고 진료실로 들어가며 김현양이 한 말

수정씨는 김현양이 진료실로 들어가는 순간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는 자신이 납치를 당했으니 해남경찰서로 가자는 말을 했다. 택시기사는 내가 후배들을 다 아는데 영광에서 어떤놈이 그랬느냐고 대답한다. 이 말이 두려웠던 이씨는 10만원을 줘버리고 포도밭 근처에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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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후 가까운 영광경찰서로 가지 않고 서울로 가는 현명한 선택을 한다.

그렇게 8시간을 포도밭 근처에 작은 몸을 숨기고 있던 수정씨 (당시 그녀는 40kg였다고 한다)는 포도

밭 주인에게 사정하여 대전까지 차를 얻어탔고, 대전에서 서울로 택시를 타고 우여곡절 끝에탈출 14시간 만에 지인과 함께 서울 서초경찰서에 도착했다. 그녀가 가까운 영광경찰서가 아닌 서울행을 택한 것은 정말 현명했다.

실제로 지존파의 조직원들은 도망간 그녀를 잡기 위해 3일간 영광경찰서 앞에서 잠복했음이 밝혀졌다. 그녀가 경찰서에 나타나지 않자 그녀도 범행에 가담했기에 신고는 하지 못할 것으로 여기고 안심한다.

신속한 검거

카메라 앞에서는 흥분하여 뻔뻔한 태도를 보이던

그들은 형사들앞에서는 양순하고 순진했다.

지존파 김현양 사랑 - jijonpa gimhyeon-yang salang

씨름, 무도유단자, 공수부대 출신의 수사팀 강폭 4반

희대의 강력 범행인 만큼, 특수 수사팀이 급히 꾸려지고 빠른 체포 작전이 전개 된다. 아지트 주변에서 잠복하던 형사들은 이른 아침, 강동은이 포터를 타고 마을로 나가는 것을 발견했다. 경찰의 미행을 눈치챈 그는 도주를 시도했으나 추격전을 벌인 끝에 검거되었고, 영광경찰서의 형사가 '강동은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화를 걸어김현양과 이경숙, 문상록을 유인했다. 함정을 눈치 챈 문상록이 도주하다 형사에게 제압 당했고 김현양, 이경숙은 르망을 타고 도주하려다가 20km 추격 끝에 검거된다. 아지트를 급습한 경찰들에 의해 강문섭, 백병옥도 검거된다.

트라우마속의 피해자 수정씨

이혼 후 생활고, 암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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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이수정씨는 자궁암과 유방암으로 투병중이다

옥중의 김현양은 사형집행 전까지 3번의 면회를 했던 수정씨에게 거듭 미안하다고 전했으며 왜 살려주었느냐는 말에는 직접적인 대답을 회피한다. 사형직전까지 김현양은 이 씨에게 편지도 보냈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아준 용기있고 고마운 신고자였고, 누구보다 피해자였음에도 혹자는 그녀를 두고 범행에 가담한 가해자라고도 말했다. 수감생활 중 김현양은 재판에서 " 내 마음속의 연인 의 생일을 기해,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고 싶다 "고 밝혔는데 그 마음속의 연인은 바로 이 사건의 피해자이자 신고자 이수정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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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경향신문 / 인터뷰에서는 아니라고 부정했으나 김현양이 이수정씨를 흠모하여 탈출하도록 기회를 주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씨에게 감과 대추를 따다 주기도 하며 호의를 베풀었던 김현양은,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살려주자고 주장했기에 당연히 그녀가 의지할 수 밖에 없던 인물이었다. 그의 사형이 집행되고 김현양에게 미안하기도 미안하지 않기도 했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호소하며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깊게 경험한 이 씨는 결혼 이후 곧 이혼했고, 이후에도 정상적인 일상에 어려움을 겪어왔으며 현재는 암투병 중이라고 전해졌다.

시대의 괴물,김기환

가진자에 대한 증오?

피해자들은

구두닦이부터 시작해 자수성가했던

영세 기업의 사장, 소윤오 부부

18세로 미성년이었던 조직원 송봉우,

카페 연주자로 부자가 전혀 아닌 이종원,

23세의 착실한 은행원 최미자였다

거금을 만지게 해주겠다는 감언이설로 갓 스무살 무렵의 동생들을 꾀어 조직에 가담시키고, 허세와 거짓을 보태어 여자때문에 첫 조직이 실패했다며 여자를 믿지 말라던 김기환. 사실 첫 조직결성에서는 살인까지 한다는 계획에 학을 떼고 주변인들이 조직에 가담하지 않았던 것이지, 여자 때문이 아니었다. 대여섯씩 어린 동생들 앞에서 제왕으로 군림하며 첫 피해자를 제 손으로 살해한 후 일부러 성폭행을 저질러 감옥에 갔던 속보이는 인물. 그의 꼼수는 고단하고 불우하게 살아온 어린 동생들에게는 통헸을지 모르나 일반적인 시선으로 볼 때, 참으로 뻔하고 비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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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비열하고 뻔뻔한 두목 김기환

10억을 모아 모두와 함께 나누어 외국으로 도망간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 자체가 머리좋은 인간은 아니다. 단순히 제 손에 피 안묻이고 제 배불리며, 행여 죄가 밝혀지면 동생들에게 덮어씌운 후, 큰 돈 한번 벌어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군가 마냥 자신들의 노래를 만들고 자신의 지존이라 부르게 하며 책도 써서 예정이었다는 김기환 넘에게 실소가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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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윤오 사장은 혼자 도망갈수 있었지만 아내를 위해 도망가지 않았다. 그는 정말 돈을 주면 풀려나리라고 믿었다.

어린 5명의 조직원들과 김기환의 인연이 아니었다면 피해자들의 애통한 죽음은 물론이고 조직원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비극은 없지 않았을까.. 가슴시리게 힘든 나날을 보내왔을 소윤오 사장의 어린 두 딸과, 품팔이를 하여 키운 아들을 사형으로 이별한 백병옥의 부모, 영문도 모르고 시범살인의 대상이 되었던 꽃다운 나이의 은행원 최미자씨, 암투병으로 여전히 8일간의 생지옥에 기억에 고통받는 이수정씨를 생각하면, 김기환이를 저렇게 곱게 죽인 것이 미치도록 분통터지는 심정이다. 허망하고 비통한 죽음을 맞은 피해자들의 영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