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숙 사주 - jeong-insug saju

H골프장 사건이 수면위로 재부상한 것은 지난해 8월 윤 씨가 외조카인 강 사장과 김 변호사를 상대로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하면서부터다. 당시 <일요신문>은 윤 씨가 법무법인을 통해 검찰에 접수한 고소장 사본과 정 씨의 진술이 담긴 사실확인서 등 몇 가지 문건을 입수해 처음으로 보도한 바 있다. 이후 일부 언론에서 ‘자작극’ ‘패륜범죄’ 등의 제목으로 후속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사실 이 사건은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에도 숱한 의문과 억측이 나돌았다. 다만 핵심 공모자로 지목된 세 사람이 모두 ‘영어의 몸’이 되면서 한동안 잊힌 사건이 된 것이다. 사건 발생 이후 수사기관의 조사나 재판 과정에서 윤 씨는 한결같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또 다른 공모자로 지목된 김 변호사와 정 씨가 납치극을 시인하면서 세 사람 모두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했다.

하지만 핵심 공모자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출소 후 법원 판결과 배치되는 주장을 펼치면서 법리 논쟁을 떠나 치열한 진실 공방전이 불가피하게 됐다. 특히 실형이 선고될 때까지 납치극을 시인했던 정 씨가 양심고백을 하면서 사건의 진실은 더욱 미궁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 씨는 출소 후 청천벽력 같은 직장암 진단을 받고 제주도에서 요양생활을 하고 있다. 현재는 간과 폐까지도 암이 전이돼 서울 모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정인숙 사주 - jeong-insug saju

▲ 정성일 씨는 골프장 사장 납치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녹취록을 만들었다.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정 씨는 오래전부터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정리한 녹취록 3권을 만들어 논 상태다. 기자가 입수한 녹취록에는 깜짝 놀랄 만한 사실들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었다. 정 씨가 기록한 녹취록 내용이 모두 사실인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죽어가는 정 씨가 녹취록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세상에 알리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을 것이란 판단하에 기자는 정 씨의 소재를 백방으로 수소문했다.정 씨의 지인을 통해 그가 서울 모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기자는 사전 예고도 없이 병원을 찾았다. 지난 21일 오후 병원에서 기자와 만난 정 씨는 잠시 당황해 하면서도 말기암 환자 같지 않게 의연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기자가 전후 사정을 얘기하고 인터뷰를 간곡히 요청하자 그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사진 및 동영상 촬영을 허락했다. 그리고 작심한 듯 자신의 기구한 인생사를 솔직담백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기자는 무엇보다 정 씨가 녹취록을 만든 이유와 이제 와서 자신의 입장을 번복한 배경이 궁금했다. 그는 “대장암 말기 환자로서 간과 폐까지 암이 전이되어 얼마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됐다”며 “그 간의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으로 2007년에 발생한 납치극에 대한 사건의 진실을 정직하게 기록해 억울한 누명을 쓴 윤 회장(강 사장의 외삼촌이자 공모자 윤 씨)에게 속죄하려는 마음으로 녹취록을 만들게 됐다”며 말문을 열었다. 정 씨는 특히 “죽어가는 마당에 왜 거짓말을 하겠느냐”며 “녹취록에 기록된 내용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녹취록에는 정 씨가 왜 자신이 가담하지도 않은 납치극에 휘말리게 됐고,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왜곡된 거짓 진술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었다. 정 씨는 “당시 납치극은 강 사장과 김 변호사가 치밀하게 준비한 자작극으로 그 덫에 저와 윤 회장이 걸려든 사건”이라며 “사건 배후에는 김 변호사를 지원한 검찰 거물급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는 등 엄청난 검은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 씨는 실형이 선고된 자신을 청송교도소로 이감한 사실에 대해서도 분노를 표출했다. 그는 “초범이고 강력범도 아니고 부채도 전혀 없는 나를 흉악범들이 수용된 청송으로 보낸 것은 가서 죽으라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며 “일반 교도소가 쓰레기통이라면 청송은 오물들이 집결한 변기통이다. 그곳에서 수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실제로 납치극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핵심 공모자 중 김 변호사와 윤 씨는 영등포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한 반면 정 씨만 청송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수감생활 도중에 암 진단을 받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 씨는 깊은 한숨을 쉰 뒤 말문을 이었다. “수감 생활 내내 몸이 안 좋았다. 나는 한때 몸무게가 120㎏이 나갈 정도로 건강했고, 담배는 평생 입에도 대지 않았다. 대장암은 초기에 발견될 경우 완치가 가능하다고 들었다. 교도소 측에서는 병명을 알면서도 나에게 알리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암 진단을 받을 경우 형 집행정지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기자가 ‘그럼 언제 암 진단을 받았느냐’고 되묻자 그는 “출소 후 몸이 안좋아 병원에서 검증 받고서야 알게 됐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3기를 넘어 4기로 진입하고 있는 시기였다. 지금은 말기에 다른 기관까지 전이된 상태다”고 말했다.

홍성철 기자 [email protected]

다음호 예고 : 정 씨는 과연 정일권 전 총리의 아들인가,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형편이 아니었던 정 씨가 골프장 사건에 휘말린 이유는 무엇인가. 정 씨의 녹취록에 기록된 충격적인 내용 및 폭탄 주장을 다음호에서 공개한다

H골프장 사장 납치사건 전말

정인숙 아들이 공모했다고? …세간의 주목

H 골프장 사장 납치사건은 약 6년 전인 지난 2007년 2월에 발생했다. 이 사건은 H 골프장 사장 강 아무개 씨의 외삼촌 윤 아무개 씨, 부장검사 출신 김 아무개 변호사, 정인숙 씨의 아들 정성일 씨 등이 공모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겼다. 당시 경찰은 이 세 사람이 강 사장과 아들, 운전기사 은 아무개 씨 등 3명을 납치할 것을 공모, 사주한 혐의로 3월 12일 긴급체포하면서 그 서막이 올랐다.

경찰은 또 김 변호사와 윤 씨의 지시를 받고 강 사장 등을 납치한 경비업체 직원 3명을 같은 혐의로 구속하고 달아난 정 아무개 씨를 긴급수배했다. 이틀 뒤 자수한 정 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3공화국 시절 정관계 고위층과의 스캔들 주역이었던 정인숙 씨의 아들로 드러나 또 한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김 변호사 등은 같은해 2월 26일 오후 7시 43분 인천공항 1층 3번 출입문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강 사장 등 3명을 흰색 카니발 승합차로 납치해 강원도 인근 펜션에 감금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경찰조사 결과 달아난 김 변호사와 윤 씨, 정 씨 등 3명은 사전에 치밀한 공모를 벌여 경비업체를 동원해 강 사장 일행을 납치해 골프장 소유권 포기각서를 받아 골프장을 통째로 빼앗으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범행은 외삼촌인 윤 씨와 조카인 강 사장이 골프장 이권을 놓고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시작됐다. 윤 씨는 1984년 H 골프장 조성 초기부터 당시 회장이었던 강 사장의 아버지를 도와 골프장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는 데 큰 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윤 씨는 2000년 7월 골프장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 당시 사장이었던 강 사장의 동생과 호흡을 맞추며 골프장 운영에 참여했으나 2002년 강 사장이 사장으로 취임하자 골프장 운영에서 손을 뗀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부터 강 사장과 윤 씨의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강 사장 일행이 납치되는 사건이 터졌고, 납치 이틀 만에 탈출한 강 사장은 유력한 용의자로 윤 씨를 지목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윤 씨의 통신내역 조회와 주변 탐문수사 등을 통해 윤 씨가 납치를 사주했다는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고 그를 검거했다.

검찰의 기소로 법정에 선 윤 씨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납치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하지만 법원은 끝내 윤 씨 일행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1년 여간 치열한 법정공방전 끝에 대법원은 2008년 5월 H 골프장 강 사장 납치사건을 공모한 혐의로 기소된 정 씨에게 징역 3년, 윤 씨에게는 징역 2년을 각각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두 사람과 함께 범행을 저지른 김 변호사는 2007년 12월 항소심으로부터 징역 4년을 선고받았으나 상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홍]


정성일 모자의 기구한 인생어머니는 피살 아들은 말기암

정인숙 사주 - jeong-insug saju

▲ 정인숙 씨와 아들 정성일 씨의 아기 때 모습.정성일 씨의 모친은 3공화국 시절 최대 스캔들 메이커로 유명세를 탔던 정인숙 씨다. 정 씨는 지난 1970년 3월 17일 밤 자신의 차량 안에서 괴한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당시 수사당국은 정 씨의 운전기사이자 넷째 오빠인 정종욱 씨를 범인으로 체포했고, 그는 법원의 유죄판결로 20여 년간 수감 생활을 했다. 1989년 5월 가석방으로 풀려난 정 씨는 “나는 동생을 죽이지 않았다. 두 명의 낯선 괴한에 의해 동생은 살해됐고, 난 죄를 뒤집어써야 했다”고 폭로해 사건을 다시 미궁 속으로 빠트리기도 했다.당시 숨진 정인숙 씨의 수첩에는 정관계 거물급 인사 수십 명이 기록돼 있어 그녀와 인연을 맺은 고관대작들과의 스캔들 비사가 끊임없이 나돌기도 했다. 특히 그녀가 사망할 당시에 세 살 난 아들이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놓고 각종 소문과 억측이 난무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구한 인생을 살다 숨진 정인숙 씨가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채 세상에 남긴 유일한 혈육이 바로 정성일 씨다. 정 씨 또한 어머니 못지 않게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고 있다. ‘출생의 비밀’이란 족쇄 때문인지 정 씨는 성장 과정 및 청년기 또한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유년 시절 정 씨는 자신의 출생 비밀을 모른 채 외할머니 손에 자랐으나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친척에 맡겨졌다. 막내 외삼촌 집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85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가 어머니인 정인숙 씨 사건을 처음 접한 것은 미국 유학시절 한국에서 발행한 모 잡지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정 씨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U.S.C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LA에 소재한 금융회사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대학생 때인 1991년 2월 정 씨는 한국에 돌아왔다. 그는 귀국 후 만난 넷째 외삼촌 정종욱 씨를 통해 자신의 아버지가 정일권 전 총리였다는 말을 전해들었다고 한다.

출생의 비밀을 풀 수 있게 된 정 씨는 1991년 6월 정 전 총리를 상대로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셋째 외숙모와 막내 외삼촌 등 다른 친척들의 강경한 만류로 끝내 한 달 만에 소송을 취하했다. 정 씨는 이후 LA로 다시 돌아갔고, 일본을 자주 드나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가 사망하기 전까지 주로 일본에서 지냈고, 외삼촌들이 일본에서 사업을 하는 등 외가 친척들이 일본에 거주했기 때문이다.

정 씨는 1993년 다시 귀국해 정 전 총리를 상대로 친자확인소송을 재시도했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정 전 총리는 1994년 별세했다. 이후 정 씨는 LA에서 사업을 하며 강 아무개 씨와 결혼해서 딸과 아들을 낳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왔다.

2005년 말 다시 귀국한 정 씨는 M&A 전문가로 활동해 왔고, 2006년 6월에는 강남에 ‘서든일렉트릭’이란 회사를 설립하고 압구정동 아파트에서 외제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등 제법 호사스런 생활을 해 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다수 사람들은 정 씨가 ‘정인숙 아들’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정 씨 또한 친인척과 일부 지인들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출생 비밀을 숨기고 보통사람처럼 평범하기 살기를 원했다.

하지만 2007년 2월 H 골프장 사장 납치사건이 터지면서 정 씨의 존재는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고, 그의 인생 또한 막장으로 치달았다. 특히 정 씨는 청송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면서 ‘암’을 키웠고, 결국 직장암 말기에 폐와 간까지 전이돼 현재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면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기자와 동행한 지인들은 훤칠한 외모와 영어·일어에 능통했던 정 씨가 사업수완도 좋았던 만큼 경제적으로도 넉넉했던지라 골프장 사건에만 말려들지 않았어도 평범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