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대적 배경 - yundongju sidaejeog baegyeong

[인문]윤동주의 일생과 시대배경, 작품해설

  • 상세정보
  • 자료후기 (0)
  • 자료문의 (0)
  • 판매자정보

소개글

윤동주 선생님의 일생과 시대배경 그리고 작품들을 해석한 리포트 입니다.
목차로 소개되어있고 총 6쪽 입니다.

목차

1. 윤동주 그는 누구인가?

2. 윤동주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3. 윤동주의 작품세계
1) 서시
2) 참회록

4. 결 론

본문내용

1. 윤동주는 누구인가?
윤동주의 대표작들은『문장』과『인문평론』을 위시한 문예지가 폐간당하고 모국어를 전혀 쓸 수 없었던 시기, 많은 지식인이 검거되고 투옥되는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문학활동이 전면적으로 불가능해진 시기에 집중적으로 쓰여졌다. 윤동주 시의 대부분은 해방 직후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간행된 이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더라도 그의 시들은 가장 어두운 역사적 시대 속에서 문학적 사명과 신념을 투명한 대속의 자세로 살아 남은 유물이다.
"일제하 마지막 시인인 동시에 해방 후의 시단과 연결되는 맨 처음의 시인이며,일제하와 해방 후를 잇는 기념비적 위치를 차지하는 시인"이라는 문학사적 위치는 아직도 낡지 않은 논의로 머문다. 사망 당시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 보관되어 있었다던 의문의 시편들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의 시가 저항시인가의 여부에 대한 논의보다는 시가 가진 본래의 저항성의 본질과 어떠한 형태로 관련성을 갖는지에 대해 보다 진전된 논의들이 이어져야 한다.
윤동주는 일제 말기 암흑기를 살면서 자아 성찰을 통하여 내면의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역사 의식을 표현했다. 시대의 무게에 비하면 이렇게 소극적인 태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암흑기 문단사의 별로서 존재한다. 그 이유는 현실의 어둠을 견뎌 내면서도 사랑을 잃지 않았고,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참회하고 절망의 극한에 이르러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지속적으로 노래했던 그 신념의 빛 때문이다.
윤동주에 대한 연구는 1960년대 들어서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그 이전에는 1954년에 발표된 고석규의「윤동주의 정신적 소묘」뿐이었다. 1970년대 김윤식.김현이 펴낸「한국문학사」에서 윤동주의 작품을 대표적인 저항시로 꼽은 이래로 그의 시를 두고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논란이 되어 온 것은 그가 과연 저항 시인인가에 대해 제기된 의문이었다.
그를 저항 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 직접적인 원인은 그가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젊은 나이에 옥사한 사실에 둘 수 있다. 윤동주는 일제의 식민지 정책을 직접 비판하고 나서거나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지만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면서 부끄러움에 대한 강박 관념을 보여 주는 시어들, 사색과 실존 의식에 우러나오는 저항의식 또는 실향의식 까지를 사회적 또는 정신사적 맥락에서 일제 암흑기에 저항하는 태도로 논의해 왔다.

태그

이 자료와 함께 구매한 자료

오늘은 일제강점기 대표적 저항시인, 윤동주 시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윤동주 시인은 19171230년 출생하였고, 1945216일 타계하셨다. 중국 만저우 지방 북간도 명동촌에서 출생하였고, 1925년 명동 소학교를 입학하였고, 이때부터 끊임없이 동시를 발표하셨다. 이를 통해 윤동주 시인이 문학적 소질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1931년 명동 소학교를 졸업하고, 달라즈 중국인 관립학교를 거쳐 이듬해 가족이 용정으로 이사하자 용정 은진 중학교게 입학하였다.

  1935년 다니던 은진 중학교에서 숭실중학교로 편입하게 된다. 이후 숭실중학교는 교장이 신사 참배 강요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파면되고, 윤동주는 문익환 등과 동반 퇴학하였다. 이후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에 편입하게 되고, 이때부터 윤동주라는 이름으로 <가톨릭 소년>이라는 잡지에 시를 올리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의과대학을 요구하는 아버지와 큰 갈등을 겪기도 하였지만, 결국 19384922살이 되던 해에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게 된다. 1939년 조선일보 학생란에 많은 시를 윤동주’, ‘윤주라는 이름으로 올리게 되었고, 1940년 후배 정병욱을 만나게 되고 그와 친해지게 되면서 그에게 본인의 시를 남기게 되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게 되는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을 발간하려고 하였으나, 담당 교수의 만류로 실패하게 된다. 검열당해서 출판되어도 소용없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1941년 일본에 유학하고자 창씨 개명을 하게 되는데, 이때 <참회록>이라는 시를 남기게 된다. 1942년 동경 입교대학 문학부 영문과를 입학하게 되고, <쉽게 쓰인 시>를 비롯한 여러 시를 고국의 친구에게 우송하였고, 같은 해 가을에 도시샤대학 영문과에 전학하였다. 19437월 귀향 직전에 항일운동의 혐의를 받고 2년 형을 선고받고, 투옥되게 된다. 광복을 앞둔 194521628세의 젊은 나이로 일본의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생을 마치셨다. 같이 투옥된 송몽규 씨에 따르면 매일 윤동주는 주사를 맞았다고 한다.그리하여 현대에는 윤동주가 생체 실험을 받았다는 의혹이 존재한다.

윤동주 서시 윤동주 시 배경과 해석

오늘은 윤동주 서시와 윤동주 시 배경과 해석을 해보려고요

윤동주 시인은 식민지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시에 표현한

민족 시인으로 일제 강점기에 짧게 살다간 시인인데요

윤동주 시인의 작품들은 인간과 우주에 대한 깊은 사색,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진실한 자기성찰의 의식이 담겨 있다고

평가되고 있답니다.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서시와

길이란 시를 소개할게요

윤동주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의 특징은

일제강점기 상황("밤') 에서 순수한 표상인  이상('별') 을 실현하는데

현실적 어려움('바람') 에 부딪쳐 끊임없이 시달리며

갈등하고 있음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요

하늘, 바람, 별, 잎새 자연적 소의 상징화로적절한

시각적 심상으로 활용한 서정시로 승화시키

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답니다.

윤동주 시 길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두리 우고 ·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길을 찾는 까닭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길은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식민지 지식인의

결연한 자세를 보여 주는 작품으로

자기 성찰과 자기 수련을 통해 식민지 시대를 극복하고

본질적 자아를 회복하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랍니다.

Toplist

최신 우편물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