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츠 음악 특징 - walcheu eum-ag teugjing

왈츠(Waltz, 문화어: 왈쯔)는

4분의 3 박자 (도움말·정보)의 경쾌한 춤곡을 말한다. 한자명은 원무곡(圓舞曲)이다.

역사[편집]

이 말의 기원에 대해서는 독일, 프랑스에서 각기 다른 설을 가지고 있다. 물론 왈츠는 각 나라에서 모두 3박자 느낌의 반주를 가지고 있다. 이는 오스트리아·남독일의 렌틀러나 독일 춤곡, 또는 비엔나 춤곡이라 한 것에서 19세기 초엽에 독자적인 음악으로서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으로, 베버(특히 <무도에의 권유>)에 이르러서 본격적인 왈츠가 작곡되었다. 그 이전의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의 것은 렌틀러와 왈츠의 중간적인 것이라 해도 된다.

왈츠를 실제로 예술화한 것은 쇼팽과 슈트라우스 부자이다. 쇼팽은 피아노 독주용의 왈츠를 많이 작곡하여, 왈츠를 춤추기 위한 것보다 오히려 듣고 호소하는 춤곡으로 하였다. 그 형식은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3부형식의 것이 많고, 때로는 서주(序奏)나 코다(結尾)를 두는 일도 있다. 한편,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는 춤출 수도 있고 예술적인 향기도 높은 왈츠를 작곡하였는데, 슈트라우스 부자의 힘으로 빈의 왈츠는 더 번성하였다. 그 왈츠는 원래의 왈츠보다도 리듬이나 악센트를 될수록 변화하여, 즉 제2박이 조금 짧아지도록 하여 그 위에 멜로디가 흐르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빈 왈츠의 연주는 빈에서 생활하고 빈에서 왈츠를 몸에 익힌 사람이어야만 가장 이상적인 춤을 출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슈트라우스로 대표되는 빈 왈츠는 대체로 몇 개의 단순한 형태의 짧은 왈츠를 조합하여, 그 전후에 서주와 코다를 둔 것으로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서주와 코다 사이에 5개의 왈츠를 두고 있다. <빈의 숲이야기>, <황제>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산만해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개개의 왈츠 몇 개가 다른 곳에서 재현되는 일이 적지 않다. 또 서주나 코다는 반드시 3박자계가 아닌 경우도 있다. 또한 성악을 같이 하는 것도 있다.

쇼팽이나 슈트라우스에 의하여 왈츠는 각국으로 퍼져, 제각기 그 나라에서 훌륭한 왈츠 작품이 나오게 되었다.

'왈츠'란 말을 처음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 세계인의 보편성을 획득한 춤곡이다.

영어로 'Waltz(월츠)', 독일어로 'Walzer (발처)', 프랑스어로 'Valse (발스)', 이탈리아어로 'Valzer (발체르)', 스페인어로 'Vals(발스)'가 다 같은 뜻이다.

18세기 말경부터 바이에른 지방에서 발생한 보통 빠르기 4분의 3박자 경쾌한 무곡이다.

'왈츠'라는 이름은 대개 독일어의 '발첸(waltzen, 구르다, 돌다)'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 프로방스의 옛 춤 ‘볼타(volta)’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대부분의 민속예술이 그렇듯이 왈츠란 춤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출발선을 확실히 긋기 어렵다.

그렇지만 왈츠의 전신이 독일의 민속무용인 '랜틀러'였다는 데 적지 않은 음악학자들이 동의한다.

랜틀러는 3박자 춤곡이다. 오스트리아 엔스(Enns) 강 상류의 한 지구인 '란델' 또는 '란들'에서 기원했다.

'시골 풍의 춤(Landlicher Tanz)'라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원래 고유 의상을 입고 추는 시골 사람들의 춤이었다. 템포는 왈츠보다 조금 느렸다.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이 유럽을 휩쓸었다. 귀족과 평민이란 이원적인 구분에서 벗어나 제3세력인 시민계급이 등장했다.

귀족들만 즐길 수 있었던 무도회가 대중들에게도 개방됐다. 도시의 대중들은 소일거리와 이성교제를 위해 무도장을 찾았다.

프랑스 부르봉 왕조 시절 귀족사회를 중심으로 활발했던 고귀한 미뉴에트에 이어 대세는 왈츠였다.

남녀 한쌍이 가까이 포옹한 자세로 추는 3박자의 춤은 발첸 외에도 '드레어(Dreher)', '벨러(Weller)', '슈핀너(Spinner)', '슐라이퍼(Schleifer)'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런 춤은 남부 독일, 오스트리아, 보헤미아 등지에서 성행했다. 독일 사람이 추는 대중적인 춤이라 해서 ‘도이처’ 혹은 ‘독일 댄스’ 등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골스런 뉘앙스를 갖는 랜틀러라는 이름은 사라졌다. 포괄적인 의미의 ‘도이처’라는 용어도 함께 없어졌다.

결국 무대를 활주하고 회전한다는 '발첸'이라는 동사가 특정한 춤을 가리키는 '발츠(Waltz)'로 귀결됐다.

1790년대 들어 왈츠의 사회적 인기는 급증하기 시작했다. 왈츠의 인기가 거세지자 ‘왈츠의 메카’라 할 만한 대규모 댄스홀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1807년 댄스홀 '슈페를'이 문을 열었다. 그 이듬해에는 6천명의 댄서를 수용할 수 있는 ‘아폴로’가 문을 열었다.

'아폴로'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디스코텍 이름이 될 정도로 역사적인 이름이 됐다.

춤의 인기와 시장성이 확대되면서 춤곡의 수요가 증가했다. 이 장르에 대한 유명 음악가들의 관심도 점차 늘어났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훔멜은 아폴로의 무도장들을 위해 왈츠를 작곡한 초창기 왈츠 음악가로 손꼽힌다.

훔멜에게 영향을 받은 작곡가 중에는 슈베르트도 있었다.

그의 몇몇 왈츠는 8마디짜리 단위가 두 개씩 붙어 하나의 왈츠를 이루는 초창기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D365의 '첫 번째 왈츠'가 그렇다. 반면 다른 작품들은 구성 마디가 16마디에서 24마디까지 이른다. 3부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다.

슈베르트는 왈츠를 형식적으로 발전시키지는 않았지만 그의 작품 ‘감상적인 왈츠’럼 자신의 왈츠곡에 고유한 제목을 붙였다는 것, 그리고 왈츠를 예술적 창작의 대상으로 수용했다는 점이 업적으로 인정된다.

독일 낭만주의 음악가 카를 마리아 폰 베버 역시 왈츠를 소재로 작품을 썼다.

베버는 왈츠의 조직화 및 구성화의 측면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피아노 론도인 '무도회의 권유'는 왈츠의 위상을 음악적 창의성의 맥락으로 격상시킨 걸작이다.

이후 왈츠 작곡가들은 거의 베버가 창안한 형식을 따랐다. 베버는 왈츠를 여러 곡 모아 그것들을 하나의 세트로 묶었다.

그 앞에는 느린 서주를 붙이고 음악의 끝에다 이전의 흐름들을 회상하면서 곡의 열기를 식히는 코다를 붙였다.

젊은 왈츠 작곡가들은 왈츠라는 한 우물만 파는 삶을 살았다. 이들은 왈츠의 형태를 보다 높은 단계로 올려 놓았다.

이런 업적을 처음으로 이룬 두 사람을 꼽는다면 바로 요제프 란너(1801~1843)와 요한 슈트라우스 1세(1804~1849)가 될 것이다.

이들은 빈 왈츠를 융성시켰다. 원래 3/4 박자의 왈츠는 첫번째 박자에 강한 악센트가 있다.

1분간 대략 28∼30 소절의 템포라 할 수 있는데 빈 왈츠는 1분간 보통 60소절의 템포로 춘다.

빈 왈츠의 악센트는 제2박 보다 약간 선행하는 선입음(Anticipated Beat)으로 인해 더 한층 흐르는 경향을 가지고 추진력과 회전력의 원천이 되는 스윙을 준다. '쿵 작작' 이 아니고 '쿠작 작'으로 들리는 건 그 때문이다.

1830년대 란너와 슈트라우스 1세의 음악은 빈에 맹위를 떨쳤다. 21세의 젊은 피아니스트 쇼팽은 “란너와 슈트라우스의 왈츠를 듣고 있으면 모든 것이 몽롱해진다”고 쓰고 있다.

젊은 바그너 역시 빈 대중음악계의 마왕 슈트라우스에게 매혹당했다고 전해진다.

1804년 빈 근교의 레오폴드슈타트에서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태어났을 때 그의 부친은 바로 사망했다.

일찍이 재능이 많았던 요한은 의붓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14살 때 한 식당 밴드에 취직했다.

슈트라우스는 거기서 요제프 란너를 만난다. 원래 란너가 곡을 쓰고 슈트라우스가 그 영향을 받았다.

란너의 곡은 반응이 좋았다. 오스트리아의 수많은 무도회장에서 란너와 슈트라우스의 악단을 찾았다.

란너와 슈트라우스는 이제 경쟁관계가 됐다. 악단은 둘로 쪼개졌다. '슈트라우스 왈츠 왕국'은 이렇게 문을 열었다.

비슷한 시기 개장한 유럽 각국의 대형 유원지에는 슈트라우스의 왈츠가 필수적이었다.

1838년에는 런던에서 빅토리아 여왕의 대관식 공연을 갖기도 했다.

유명한 평론가 한슬릭은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오케스트라를 “춤곡으로 세계를 누빈 첫 오케스트라”라고 칭했다.

그러나 슈트라우스의 가장 큰 라이벌은 바로 가족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슈트라우스의 큰아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샤니'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일찍이 음악에 두각을 나타냈다.

어찌나 음악을 잘 했던지 아버지 슈트라우스는 아들 슈트라우스에게 ‘라틴어 숙제는 내가 해 줄테니 작곡을 해 다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아버지 요한은 아들에게 한 번도 음악 공부를 허락한 적이 없었다.

험난한 예술가의 길을 아들에게도 걷게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에리히 클라이버가 아들 카를로스 클라이버에게 지녔던 감정과 비슷하다.

아니, 모든 부자 음악가들을 둘러싼 숙명 같은 것이라고 할까.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모자 수선공과 딴살림을 차리면서 가출한다.

19세 생일을 얼마 안 남긴 1844년 요한 슈트라우스의 데뷔가 이루어졌다.

유려한 선율, 기막힌 오케스트레이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음악을 접한 객석은 술렁인다.

지방 신문은 이 데뷔 연주회 리뷰 제목을 '잘 가세요 란너, 잘 가세요 슈트라우스 1세, 어서 오세요 슈트라우스 2세'로 뽑았다.

슈트라우스 2세는 성향도 극보수였던 아버지와 달리 진보 공화주의자였다.

1848년 이탈리아 반란군을 진압하고 돌아온 라데츠키 장군을 위해 ‘라데츠키 행진곡’을 썼을 때도 반기를 들었다.

이는 샤니가 나중에 베르디와 친해지는 계기가 됐다. 음악적으로 아버지가 실용적인 춤곡을 작곡한 반면, 샤니는 귀로 듣는 춤곡을 중시했다.

가족 가운데 숨어있던 재능 있는 음악가였던 요제프와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를 오케스트라에 끌어들인 것도 작곡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이중 요제프 슈트라우스는 형 요한과 쌍벽을 이루는 재능을 보였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프러시아 전쟁에서 패배한 오스트리아의 좌절을 치유하기 위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작곡했다.

봄을 맞아 피어나는 빈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해 '빈 숲속의 이야기'를 썼고, 언론 협회의 기념식을 위해 '조간신문'을 작곡했다.

어디까지나 이들은 '듣는 음악'이었다. 아버지 요한 때만 하더라도 춤이 없는 춤곡은 디스코테크에서 음악만 듣는 것만큼 어색했지만 아들 대에서 감상용 춤곡의 틀이 확립됐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에게는 모두 7명의 자녀가 있었다. 그 중 세 아들이 모두 음악가, 그것도 왈츠와 폴카의 음악가가 되었다.

우선 왈츠의 왕 슈트라우스 2세가 큰 아들, 둘째 아들 요제프 슈트라우스, 셋째 아들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가 모두 왈츠의 지휘자 및 음악가였다. 에두아르트의셈이다.

1921년 빈 시립공원에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기념비 제막식이 거행됐다.

거장 아르투르 니키쉬가 지휘를 맡은 가운데 빈 필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1925년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에 빈 필하모닉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빈과 잘츠부르크에서 두 차례 왈츠를 레퍼토리로 기념연주회를 열었다.

공연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를 계기로 요한 슈트라우스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이후 왈츠를 주요 레퍼토리로 삼는 연주회가 종종 열리게 됐다. 왈츠의 무대는 무도회장에서 콘서트홀로 옮겨졌다.

1939년 12월 31일 빈 필의 음악회가 빈 신년음악회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빈 필 최후의 상임지휘자였던 클레멘스 크라우스의 지휘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특집으로 꾸민 오전 음악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이 행사는 이듬해 1940년 마지막 날에도 마련됐다.

크라우스는 세계대전 때문에 중단됐던 1945년을 제외하고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오늘날까지 세계의 새 아침을 여는 창으로 자리매김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 첫날 빈 무지크페라인 잘에서 빈 신년음악회가 열렸다. 안드리스 넬손스가 지휘하는 라데츠키 행진곡에 맞춰 중계방송을 보는 세계인도 함께 박수를 쳤다.

본격적인 빈 신년음악회가 시작된 것은 1939년 12월 31일이다.

빈 필의 마지막 상임 지휘자 클레멘스 크라우스의 지휘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특집으로 꾸민 오전 음악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왈츠 음악회는 이듬해 1940년 마지막 날에도 마련되었다. 크라우스는 이 공연을 1941년 1월1일에 반복해 연주했는데 이것이 바로 제1회 빈 신년음악회가 된다.

빈 신년음악회는 전쟁 때문에 열리지 못했던 1945년을 제외하고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열렸다.

지금까지 모두 15명의 지휘자가 빈 신년음악회를 거쳐 갔다.

창시자인 클레멘스 크라우스가 1941년부터 14년 동안 지휘대에 섰고, 그 중간에 요제프 크립스가 1946, 1947년 2회, 빌리 보스코프스키가 최장집권(1955~79년), 로린 마젤도 총 10회(1980~86, 1994, 1996, 1999, 2005), 주빈 메타 5회(1990, 1995, 1998, 2007, 2015), 리카르도 무티 5회 (1993, 1997, 2000, 2004, 2018), 마리스 얀손스 3회 (2006, 2012, 2016), 클라우디오 아바도(1988, 1991) 카를로스 클라이버(1989,1992), 조르주 프레트르(2008, 2010년), 프란츠 벨저 뫼스트(2011, 2013년), 다니엘 바렌보임(2009, 2014년), 아르농쿠르(2001,2003) 각 2회, 카라얀(1987), 오자와 세이지(2002), 구스타보 두다멜(2017), 크리스티안 틸레만(2019), 안드리스 넬손스(2020)가 1회씩 지휘했다.

2021년 신년음악회는 리카르도 무티가 통산 여섯 번째로 지휘봉을 잡는다.

이 글에 소개된 곡들

곡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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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없는 곡] Hummel: 12 Waltzes And Coda - Waltz No.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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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vitation à la valse, H. 90 (Orch. Berlioz) (feat. Robert Cordier)

"Lanner : Die Schonbrunner (The Schonbrunn Waltz), Op. 200 - Die Schonbrunner, Op.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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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don Mozart Players(런던 모차르트 플레이어즈)

Hummel: Sappho Von Mitilene Suite / Das Zauberschloss Suite / 12 Waltzes And Coda Hummel: 12 Waltzes And Coda - Waltz No. 1 듣기 불가 재생목록에 추가 불가 내 앨범에 담기 Hummel: 12 Waltzes And Coda - Waltz No. 1 다운로드 불가 영상 재생 불가 기타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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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otte Baumgart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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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 Cluytens(앙드레 클뤼탕스)

André Cluytens - Complete Stereo Orchestral Recordings, 1957-1966 듣기 재생목록에 추가 내 앨범에 담기 L'Invitation à la valse, H. 90 (Orch. Berlioz) (feat. Robert Cordier) 다운로드 불가 영상 재생 불가 기타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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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ann Strauss Ensemble Johann Strauss Ensemble

"Lanner, J. / Lanner, A.J. : Orchestral Music (Johann Strauss Ensemble, J. Wildner)" 듣기 재생목록에 추가 내 앨범에 담기 flac 다운로드 영상 재생 불가 기타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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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rd Bernstein(번스타인)

Strauss, Jr: Waltzes - Strauss, Sr.: Radetzky March 듣기 재생목록에 추가 내 앨범에 담기 flac 다운로드 영상 재생 불가 기타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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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bert Von Karajan(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Strauss: New Year's Concert In Vienna 1987 듣기 재생목록에 추가 내 앨범에 담기 다운로드 영상 재생 불가 기타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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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bert Von Karajan(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Strauss, J.I & J.II/Josef Strauss: Walzer & Polkas 듣기 재생목록에 추가 내 앨범에 담기 다운로드 영상 재생 불가 기타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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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 Boskovsky(빌리 보스코프스키)

Johann Strauss II: Waltzes 듣기 재생목록에 추가 내 앨범에 담기 다운로드 영상 재생 불가 기타 기능

글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

월간 '객석' 기자 및 편집장 역임. 현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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