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징그러운 벌레 - sesang-eseo jeil jing-geuleoun beolle

어느 한 포털사이트에서 가장 징그러운 벌레에 대한 통계조사에서 조사했다.

질문 내용은, 가장 싫어하는 벌레를 3개를 고르세요..

수백명이 참가하여, 나온 결과는 바퀴벌레를 선택한 사람이 57%로 1위었고

근소한 차이로 지네(돈벌레 포함)를 선택한 사람이 2위였다.

여자가 바퀴벌레를 더 싫어한다는 것과 남자가 상대적으로 지네를 더 혐오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매년 바퀴벌레에 대한 익숙함 때문에 바퀴벌레 혐오도가 점점 떨어지는 진다고 한다.

여기서 지네는 돈벌레를 포함한 통계이다.

남녀별로 가장 징그러운 벌레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 조사였다.

사실 나는 발 2개, 발 4개가 아닌 것들은 다 싫다. ㅎㅎ



가장 징그러운 벌레에 속하는 문제의 이녀석. 그리마라고 한다.

나도 바퀴벌레보다 이 녀석이 더 싫다.

이유는 다리가 너무 많다. ㅎㅎㅎ

더듬이로 진화된 첫 번째 다리를 포함해서 30개 인데 

비상식적인 다리개수에 혐오스럽다. 걍 가장 징그러운벌레다 ㅋ


오래전에 부잣집의 집 자재로 나무가 많이 사용되었고 

그 나무를 좋아하는 이 벌레를 두고, 돈 벌레라고 불렀다.

지금은 그냥 징그러운 벌레일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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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징그러운 벌레가 여기있다

일명 갠지스나방

학명은 크리토노토스 갠지스 (Creatonotos gangis) 이다

밑에 다리부분은 애벌레 같고

윗부분은 나방같은 괴이한 모습 

다리부분에는 털도 많아서 더 징그럽다 

발견된 국가는 인도 , 인도네시아 , 일본 , 호주 등에서 발견된다

인간에게 해로운 곤충은 아니라고하니 다행이지만

보는것만으로도 해롭다 ㅋㅋ

그냥 게임에 나오는 보스몹같다 아우 징그러 ㅋㅋ다행히 한국에는 없는듯?난 본적이 없다

(Creatonotos gangis) 
장희빈 소생인 경종은 본디 병약했으나 어머니 장희빈 때문에 병을 얻었다고도 했고 영조가 왕위를 찬탈할 욕심으로 지병에 쓰던 한약과 함께 먹어서는 안 될 음식을 바쳐서 죽음에 이른 것이라고도 했다.

왕이 된 영조는 영민하고 정치적 감각이 있었음에도 늘 편치 않았다. 마음의 병이 깊어갔고 성격은 날카로워졌다. 아버지는 병을 안으로 앓았으나 아들, 사도세자에게 전이된 병증은 밖으로 튀어나왔다. 누르고 감추려 들면 발악했다. 커질 대로 커진 어둠의 덩어리가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만 멈춰서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세상이 손가락질 하는 광증의 사도세자가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더냐? 아니면 땅에서 불쑥 솟아나기라도 한 것이더냐? 성심을 다해 고칠 생각을 했어야 하거늘 역모로 몰아 죽이다니.... , 돌아보면 사도세자는 곳곳에 있다.”

영조의 허락도 없이 평양엘 드나든 것이 생각 없는 행동이었다 하더라도 역모 죄를 씌울 수는 없는 일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왕위 계승은 정해져 있는 일이었고 이미 정무까지 보고 있었던 터에 역모라니,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혹자는 몇몇 사람도 아니고 노론 세력과 가족들, 그 많은 사람들 모두가 죄도 없는 사도세자를 음해했겠느냐고 묻기도 했지만 정조는 바로, 그렇다고 끄덕였다.

정조가 가장 괴로워하는 것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음해한 사람들의 중심에 어머니와 외가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머니가, 가장 비통했을 어머니가.... 어쩌면 아버지를 해치려는 자들을 위해 알게 모르게 정보를 제공했으리라는 짐작이 있었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갇혔던 뒤주는 외할아버지가 가져온 것 아니던가. 어머니를 향한 효심이 지극했음에도 정조는 어머니가 남긴 기록들을 외면했다. 결국 사도 세자는 당쟁의 희생물이었다는 생각이었다.

어둡고 무서운 시간을 견디고 왕이 되었지만 정조는 아버지를 죽인 자들의 칼이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있으며 그 끝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불안 속에 살았다. 실제로 즉위 초에만 여덟 번의 암살 시도를 겪었다. 무술을 연마하지 않았더라면, 조금이라도 방심했더라면.... 등골이 서늘했다.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벽 속에 숨어 있는 칼, 어둠 속을 뚫고 날아오는 칼들을 항상 경계해야 했다. 긴장의 연속이었다.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몬 인사들도 불안을 떨치지 못했다. 정조는 사도세자 건이 정치 쟁점화 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진상규명과 책임추궁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빗나갔다. 정조는 처벌 받은 아버지가 죄인이었든 처벌한 사람들이 잘못이었든 진상규명은 얻을 것이 없다는 셈을 하고 있었다. 권위를 손상시키고 피바람만 일으킬 것이었다.

연산군 때와 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하랴? 왕의 사사로운 복수로 전락할 일을 또 시작하랴?”

정조는 고개를 저었다.

왕의 처신이 그만하기가 쉬운가.....

정약용은 보기 드문 왕재라 생각했다. 저만한 판단과 생각이라면 어지러운 나라의 현실을 맡을 만하다는 기대도 있었다.

정조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술을 연마하고 의술까지 익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팠다. 언제 누가 교묘히 독약을 내밀지 모를 왕좌였다.

정약용은 채제공의 손을 잡는 정조의 모습에서 인재를 구하는 간절함을 읽었다. 백 년에 한 번 날까 말까한 인사라 여기며 아꼈다. 노신 채제공의 화답도 보았다. 그러나 누이는 어쩌다 친정에 오면 정조가 시아버지 채제공보다 더 아끼는 사람은 바로 정약용이라고 말하곤 했다. 정약용은 문득문득 그것이 자신의 십자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도세자의 묘를 이장하고 난 후 도읍도 수원 화성으로 옮길 것이야....”

언제 그리 하실 것입니까?”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지.”

도읍을 옮기다니? 정조가 털어놓은 계획은 엄청난 것이었다. 아직 채제공 외에는 아는 이가 없는 일들이었다.

사도세자의 묘를 이장한다는 것도 만만치 않은 반대에 부딪힐 것이지만 도읍을 옮기는 일은 말도 꺼내기 어려울 것이었다.

도읍을 옮기려는 의도는 이내 대신들에게 읽힐 것입니다.”

도읍을 옮기지 않고는 기득권층의 뿌리를 흔들 수 없어. 세력을 굳혀 놓은 보수권력층의 기반을 무력화하려면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밖에 없어.”

보이는 것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절묘한 방법이긴 합니다만 조정대신들이 결사반대할 것입니다.”

그러니 날 도와 달라는 말이지. 서학이 빌미가 되어 날 떠나게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야.”

명심하고 힘을 다하겠습니다.”

화성 이야기가 나오면 조정 대신들이 내게 벌떼같이 덤벼들 것이야. 그들이 감히 걸고넘어질 수 없을 만큼 훌륭한 도성을 만들어야만 승산이 있지. 그러니 다른 일 다 제쳐 놓고 화성 일에만 몰입해 달란 말이지. 만천 이승훈이 내게 도르래를 이용하면 작은 힘으로 큰 힘을 낼 수 있을 거라며 도면을 보여준 적이 있네. 그런 것도 한 번 써 보면 어떻겠나? 고정 도르래와 움직 도르래가 있다던가.....”

, 고정 도르래는 우물물을 긷는 것처럼 힘의 방향을 바꿀 때 사용할 수 있지요, 움직 도르래는 힘의 방향을 바꿀 수 없지만 작은 힘으로 큰 무게를 움직일 때 사용하고요. 이 두 가지를 적절히 이용하면 용역은 물론 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십 년 계획이 이삼 년으로 당겨질 수도 있겠는 걸....”

정조의 결심은 확고했다. 며칠 전에도 또 침소에 자객이 들지 않았던가. 화성 이야기를 꺼내면 정조는 더욱 외로운 섬이 되어갈 것이다.

현실이 어떻든 정조가 수원 화성을 축조하라는 명을 은밀히 내린 이후 정약용의 머릿속에는 수원 화성 축조 계획이 익어 가고 있었다. 벌써 기중기도 만들어 시험 중이었다.

, 이럴 때 광암이 힘을 보태준다면....

정약용은 교단의 조직에만 열심인 광암이 정조와 가슴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서로 큰 힘이 되리라 믿었다.

*

아니, 이렇게까지....”

광암이 방에 못질이 된 채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있었다. 정약용은 가슴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칼바람에 숨이 멎는 듯했다. 방문에 어른거리는 것이 바람에 쓸리는 나무 그림자가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광암의 모습인 것만 같았다.

도대체 누가 이랬느냐?”

정약용이 맨손으로 달려들어 판자를 뜯어내려 하자 이승훈이 달려들어 말렸다.

이 사람, 이러지 말게. 광암이 돌림병에 걸린 모양이야.”

그게 말이 됩니까? 그 건장한 몸에 갑자기 돌림병이라니요? 서학 때문이겠지요. 이렇게까지 하는 건 집안에서 너무한 것 아닙니까?”

아니, 흑사병이라네. , 책에서 읽어보지 않았나, 서양 어디에서는 한때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죽기도 했다지 않던가..... 그러니 여기 이러고 있지 말고 가세. 사람의 힘으로 어째 볼 수 없는 일 아닌가....”

이승훈의 손에 끌려 사랑채로 나왔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밤이 깊도록 달빛을 밟으며 서성이다가 다시 광암의 방으로 향했다.

접니다. 좀 어떠십니까?”

뭐 하러 다시 왔나? 내게 가까이 오지 말게. 화를 당할 걸세.”

지금 병은 핑계고 서학 때문이지요?”

집안 어른들을 탓할 수 없다는 거 잘 알지 않나? 오래된 생각일세. 쉽게 바꿀 수 없지.”

광암의 아버지 이부만의 강경함은 가문의 완강한 태도 때문이었다. 서학을 끊지 않으면 이부만의 가족 전부를 족보에서 파내겠다는 가문의 위협이 점점 거세졌다. 문중은 문중대로 사회적 편견을 감당하지 못해서 곤혹스러울 터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족보에서 빼겠다는 문중 어른들의 엄중한 경고가 빗발치고 있네. 아버지도 괴로운 처지지.”

그렇다고 문에 못질까지 하신답니까?”

돌림병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열병인 것은 분명하네.”

열병쯤 못 이겨내겠습니까? 백 근을 한 손으로 드는 힘이 있지 않습니까?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좋아질 것입니다.”

그랬다. 그는 키가 육척이나 되고 백 근을 한 손으로 들고 웃을 수 있는 건장한 남자였다. 어지간한 병으로 쓰러질 리 없었다.

“.... 그보다 삼미.... 나는 지금 한 그림을 보고 있네.”

삼미는 어려서 앓은 마마 자국으로 눈썹이 세 개처럼 보인다 하여 붙은 이름이었다. 광암은 마음을 털어놓고 싶을 때 일종의 애정표현처럼 그 이름을 불렀다. 광암은 남은 할 말이 그것뿐인 것처럼 그림 이야기를 꺼냈다. 엉뚱한 그림 이야기 속에 전하고자 하는 다른 뜻이 있을까? 정약용은 아마도 그럴 것이라 여겨 다가앉았다.

어떤 그림입니까?”

그 그림은 지금 암자 안에 있네만 나는 그 그림을 아껴 자주 보았고 가슴에 새겨 두었네. 지금도 똑똑히 볼 수 있네. 우리네 중에 누가 그림을 저리 그리는 것을 보았는가? 한결같이 보이는 것을 그대로 박아내듯 그리지 않던가.... 허나 저 그림은 생각을 그린 것이네.”

무슨 말인지 압니다.”

땅 위에 몸을 세우고 가지를 펴는 나무를 보여주는 듯하지. 뿌리를 확인해 보면 재미있네. 그의 뿌리는 누군가의 얼굴 위에서 시작되고 있지. 뿌리를 따라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 보면..... 어깨가 있고 배가 있고 몸통 아래 다리가 있다네..... ”

그런 그림이 있었습니까?”

뿌리와 본질이 같은 존재의 탄생을 알리는 것도 같고...., 어제가 오늘을 만들었고 오늘이 미래를 만들 거라는 말을 하는 것도 같네.....”

광암은 쉬엄쉬엄 한 마디씩 했다.

그림을 보는 동안 머릿속에서 우리 사는 세상이 스쳐 지나간다네. 자네도 꼭 가서 보시게. 정안 스님이 열쇠를 가지고 있네. , 저기 앵자봉도 보이네.”

주어사 강학회가 생각나십니까?”

그는 못질 된 외로운 방 안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둘러앉아 생각을 주고받던 강학회의 그 자리에 앉아 말을 하고 있는 듯싶었다. 강학회를 하는 동안 그의 얼굴에서는 환하게 빛이 났었다. 추운 겨울, 눈에 발이 푹푹 빠지는 길을 걸어 주어사의 문을 열고 들어서던 광암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하였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뜻을 읽을 줄 아는 눈이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는 조리 있는 언변도 있었다. 그는 이제 막 불꽃을 올리는 등불 같았다.

그 나무들을 그린 사람은 죽은 사람의 세상이 끝이 아니라 나무로 꽃으로 자비와 사랑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네.”

광암은 이미 이 세상의 소리들은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점점 침묵이 길어졌다. 숨소리가 고르지 못했다. 그가 온 힘으로 말하고 있는 소리들은 겨우겨우 방 밖으로 새어 나왔다.

물리적인 변화를 말하는 게 아닐세.... 이 세상 가르침이 아무리 훌륭한 이론체계를 갖춘다 해도 주재자를 인식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닐세....”

광암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더니 한참 아무 말이 없었다.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회복되시면 꼭 함께 그 그림을 보러 가겠습니다. 며칠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위로랍시고 말을 그렇게 하고 있자니 더 서글퍼졌다.

나는 하느님이....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고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며 살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네..... 정약종, 권일신, 김범우, 이승훈.... 모두에게 감사하네.....”

*

그가 서학에 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낸 곳은 배 안이었다. 정약종, 권일신, 이승훈 등이 함께였다.

형수의 묘소를 돌아보고 나오면서 옥구슬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정약용이었다.

형수님은 옥을 유난히 좋아하셨지요. 심성도 옥과 같으셨고요.”

흐음, 그랬지..... 자네 아는가? 옥중의 옥이 무언지?”

형산의 화씨벽이라고 들어 알고 있습니다만.”

세상에 하나뿐인 백옥이지.”

형수님이 그 화씨벽 이야기를 즐겼었지요. 변화가 원석을 들고 갔다가 왕을 기만한 죄로 두 다리를 잃은 이야기며 세 번째 호소하여 결국 지보至寶로 인정받아 화씨벽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즐겨 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어려서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을 함께 들었는데 누님은 온통 마음을 빼앗긴 표정이었어. 변화가 두 다리를 잃고 나서도 이것은 돌이 아니라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이라며 껴안고 울었다는 이야기 앞에서 유난히 눈이 반짝이더라구. 마치 그 화씨벽이 누이의 눈 속으로 들어간 듯 보이기도 했었지. 그때부터였던 거 같아, 그 욕심 없는 사람이 옥에는 욕심을 부릴 때가 있더라구.”

진시황이 탐을 내어 결국 손에 넣었다지요?”

옥새로 만들었는데 그 후로, 황제가 된 사람들은 모두 그 화씨벽 옥새를 갖고 싶어 안달이었지. 주원장도 애를 태웠지만 행방을 몰랐다고 하고.... 내 요즘 부쩍 그 화씨벽을 생각한다네.”

누이에 대한 정 때문에요?”

그래서만은 아니야. 내가 지극히 귀한 분을 내 안에 모시게 되었거든. 그리고 그분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네.”

광암은 화씨벽 이야기를 서학으로 돌렸다.

언젠가 얼핏 말씀하셨던 그 서학 말입니까?”

그래.... 어두운 곳에 두면 빛을 발한다는 것도 꼭 같고 귀한 보석인 것도 같네.”

글쎄요, 전 천명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제왕들이 탐했던 물건이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만.....”

제왕들의 입장에선 필요한 일이었을 걸세. 그들은 자신의 자리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 말하고 싶고 권력의 상징으로 품고 싶었을 테지만 내가 모시고 싶은 건 화씨벽의 옥질玉質일세.”

티끌 하나 머무를 수 없고 사악한 귀신을 물리친다 듣긴 했지요.”

어두운 곳에 두면 빛을 발한다니 신비 중의 신비 아닌가? 뿐인가, 곁에 두면 겨울에는 주위가 훈훈해지고 여름에는 시원해져 백 보 안에는 먼지나 해충이 달려들지 못한다더군.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삶이 바로 그와 같을 것일세.”

배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 모두는 유학을 숭상하는 선비들이었다.

그러니까 그 보물을 우리보고도 품어 보라 이 말 아닌가? 지금.”

권일신이 물었다.

맞습니다. 저 혼자 품어서 될 일이 아니니까요.”

나도 칠극을 비롯한 서책을 읽고 많이 생각했었는데 서양인들의 행위는 영 마땅치가 않아서 말이지. 그들은 하느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세상 곳곳을 누비고 다니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을 억압하고 강탈해 간다고 들었네. 행실은 반대인 게지. 책이 말하는 서학의 가르침으로 산다면 세상 곳곳에 좋은 삶을 보여주고 심어 주어야 할 거 아닌가?”

이가환은 광암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정약용은 배 안을 돌아보았다. 누구도 선뜻 동조하지 않았다.

그래, 우리에겐 유학의 가르침이 있지 않은가?”

만천 이승훈도 말끝을 흐렸다.

“..... 지금 우리는 진유眞儒에서 멀어져 있네. 일부 양반층들의 학문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편은 되었을지 모르겠으나 일반 민중들에게는 생명력이나 안정된 정신의 중심적인 핵을 제공할 수 없어..... 진유眞儒의 이념에는 신앙의 대상으로서 초월적 상제의 개념이 거부된 적이 없지.”

그가 처음 정약용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말이었다. 광암은 진유眞儒의 개념이 분서갱유 이후 변질되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정약용은 진유의 개념을 유심히 살펴보지도 않았거니와 현실의 경전과 달리 그 이상의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

그날 배 안에서 멀거니 광암을 보고 있었거나 그가 하는 말에 부정적이었던 사람들도 광암이 병들었고 감금당했다는 소식 앞에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가 말하던 빛을 향해 고개를 들었고 화씨벽을 만지작거렸다.

화씨벽을 처음 세상에 내어 놓았을 때 왕은 보석공을 불러 물었고 보석공은 처음 보는 원석 앞에서 먼저 몸부터 사렸네. 뿐인가? 앞일이 두려워 이건 보석이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지. 보석을 보석인 줄 모르는 왕은 기만 죄를 물어 변화의 다리를 잘랐네.”

김위준이 말했다. 그의 말이 예언처럼 들렸다.

광암이 내놓은 보석도 그와 같을까?”

변화가 화씨벽을 들고 왕을 찾아갔어도 가치를 인정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듯이, 두 다리를 내어주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듯이 광암도 스스로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어쩌면 그가 죽고 나서도 또 다른 사람들이 이 보물을 보라고, 어두움에 빛을 주는 이 보물을 보라고 외치며 제물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모를 일이기는 해도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 사람, 삼미, 설사 사람들이 보물임을 알아보는데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일단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면 그들은 빛이 될 것이야. 그들로 인해 세상이 밝아질 것이야.”

광암의 목소리를 들은 듯싶었다. 정약용은 눈을 감았다. 그날의 강이 자신을 향해 출렁이며 밀려오고 어지럼증이 일었다.

광암이 태극도란 감괘坎卦와 이괘離卦를 합한 데에 불과하다, 이를 만리萬理의 근원이라 말할 수 없다고 말할 때,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네. 성리학 일색인 조선에서 누가 그를 받아들일 수 있겠나?”

물결처럼 밀려오는 또 다른 소리는 이가환의 목소리였다. 이가환은 배 안에 있던 사람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광암과 설전을 벌였었다. 은근히, 재앙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내비쳤었다.

이승훈은 외숙 이가환을 그림자처럼 따랐으나 점차 광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조선의 유학이 합리적인 철학을 강조한 성리학 체계로 자리 잡고 말았던 것이 조선 사회를 자유로운 생각을 용납하지 못하는 억압적 세상을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믿는 것은 이승훈도 광암과 마찬가지였다.

그도 집에서 서학 책을 모조리 불사르고 성물을 내다 버리는 소동을 겪은 후 단단히 약조를 하고 근신하는 처지였다.

*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못질해 가두고 굶기다니 이게 어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입니까?”

권일신이 옆에 와 앉으며 말했다.

그는 조선의 사상체계를 마련한 일꾼, 권근의 후손이고 권철신의 아우이다. 그런 그가 누구보다 먼저 서학을 받아들였다.

권일신처럼 좋은 사람을 본 적 없다는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이가 없었다. 조선 성리학이 권근의 공로인 것을 모르는 이가 없는데 그 후손인 권일신을 앞에 두고 성리학을 비판한다는 것은 광암으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었다. 게다가 그의 장인 안정복은 서학이라면 말도 못 꺼내게 하는 사람 아니던가. 그럼에도 권일신은 천주교에 가장 열심이었다. 광암이 열흘이나 공을 들이고도 끌지 못했던 권철신을 이끈 것도 권일신이었다.

, 우리 모두 큰 별 하나를 잃었네.”

권철신도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이가환의 눈이 면면을 훑고 지나갔다. 이들 모두가 이미 광암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와 있다는 우려가 얼핏 표정에 스쳤다.

그는 분명 조선에 새로운 씨앗을 뿌렸지요.... 그는 하늘에 올랐을 것인데 눈물이 왜 이리 흐르는지....”

권일신은 말을 잇지 못했다.

광암과 유난히 금실이 좋았던 첫 부인 권 씨의 친정 식구들이었기에 그들의 슬픔은 남다른 것일지도 몰랐다.

새사람이 들어와 아들 현모를 낳았고 아들이 커가고 있었지만 광암은 권 씨 부인을 잊지 못했다.

생전에 광암은 소금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해가 될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인지 젓갈보다 간이 약한 가자미식해를 즐겼다. 권 씨 부인의 가자미식해는 일품이었다. 친정에서는 손수 담가 본 적 없는 것을 광암을 위해 연구하여 누구나 인정하는 솜씨꾼이 되었다. 새사람도 식해를 담갔지만 광암은 자식도 없이 일찍 떠난 권 씨 부인이 생각나서일까, 식해를 입에도 대지 않았다. 내막을 아는 이들은 현모 모자를 더욱 안타까운 눈으로 보았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가문의 냉대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마지못해 장례를 치러 준다는 분위기였다. 형인 격과 동생인 석이 나서서 이것저것 지시를 하고 문상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슬픔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이부만은 표정 없이 대청을 지키고 앉았고 어머니는 방 안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현모 모자는 구석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웅크리고 있었다. 문상 온 사람들은 슬쩍슬쩍 그들 모자를 훔쳐보며 앞으로도 그렇게 죽은 듯이 살아야만 할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천쇠만이 현모 모자의 곁에 붙어 슬픔을 함께 했다.

천쇠는 광암 이벽이 따로 집을 얻어 교회로 쓰는 곳에 데려다 놓은 아이였다. 살림을 맡은 이말희를 어미처럼 따랐다. 누군가 정안 스님 거처에 버려두고 간 것을 광암이 데려다 보살폈다. 심부름을 시키기에도 아직 어린 나이였다. 그러나 배움이 빨랐다. 광암은 은근히 교회를 지킬 재목으로 키우려는 속내를 보였었다. 관을 덮기 전에 마지막으로 십자가를 넣어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천쇠의 고사리손 덕분이었다.

천쇠, 너 상이 끝나면 나랑 가자.”

권철신이 넌지시 천쇠를 불렀다. 광암이 키우려던 아이였으니 앞으로 자신이 거두어 주겠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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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만천 이승훈 베드로

윤유일이 북경에서 돌아왔네.”

무슨 답을 받아 왔나?”

유항검이 고개를 숙였다. 표정이 어두웠다.

안 되는 일이라던가?”

세례를 제외하고는 안 된다는군. 벌 받을 준비를 하고 기다리라고 하더라네. 독성죄에 해당된다네. 신부를 보낼 수 있도록 애쓰겠다는데 쉽지 않을 걸세. 헌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제사도 불가라는 것이야.”

178910, 윤유일(尹有一)을 북경으로 파견하여 자치적 교회의 존재를 알렸다. 그리고 조상 제사에 대한 교리 해석과 성직자 파견을 부탁했었다.

이벽이 떠난 후 교회가 사라지고 말 것 같은 암담한 상황에서 우리도 북경처럼 미사를 봉헌하고 성사를 집행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온 것은 권일신이었다.

가성직자라? 될까?”

말이 나고 처음 며칠은 망설였다. 교회를 지킬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유항검이 권일신의 말에 힘을 실었다.

이승훈은 못할 것도 없다 싶었다. 북경에 있으면서 충분히 보고 들었으니.... 권일신, 이존창, 유항검 등 십여 명이 함께 했다. 신부가 되어 차례로 미사를 봉헌하고 성사를 줬다.

미사를 집전하려면 신부라야 되고 신부는 결혼을 하지 않고 신품성사를 받아야 된다는 것을 알아낸 사람은 유항검이었다.

잠시 중단하면 어떨까?”

북경에 가서 답을 받아 와야 하지 않을까?”

의논이 분분했다.

베이징 교구장 알렉산드르 구베아 신부로부터 윤유일이 받아온 회답은 조선 사회가 천주교를 금지하는 것 이상의 타격이었다. 임시성사 집행을 해 오는 동안 자기 순서가 되면 사흘 전부터 집에서 나와 엄격하게 계를 지키며 지내다가 특별히 만든 제례복을 입고 미사를 봉헌했었다. 하지만 자치교회를 인정할 수 없다니, 즉각 중지해야 했다.

사제를 모셔오는 일이 급해졌다. 그러나 제사의 불가 통보에 열심이던 양반들이 너도 나도 교회를 떠나는 상황이라 사제를 모신다는 것은 말도 꺼내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 아예 존립 자체가 어려워지고 말았다. 교회 건설자들은 신앙인이라기보다 문화의 선각자들에 가까웠다.

제사 문제는 만천에게도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세례를 받을 때도 갈등이 심했었다. 가장 곤혹스러웠던 일이 세례자는 첩을 두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미 있는 첩을 어찌 해야 하나? 통역을 하는 중국인이 어떻게 전했는지 모르지만 서양 신부는 다시 한 번 일부일처라는 말을 강조하고 세례를 주었다.

이승훈은 아용을 내쳐야 한다는 다짐에 괴로웠다. 그러나 일부일처제가 하느님 앞에 떳떳한 일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그라몽 신부는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교회 활동을 적은 서한을 보내라고 주문했다. 그도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아용을 버리는 일은 훨씬 더 힘들었다.

아용은 유항검의 고향 마을에 살던 의원의 딸이었다. 유항검의 집은 그의 땅을 밟지 않고는 전주를 지나갈 수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부유했다. 만천은 외숙 이가환이 전해 달라는 책자를 들고 유항검을 찾아 갔다가 낙마하는 바람에 발이 묶였다. 그때 의원을 찾은 것이 인연이 되어 아용을 들였다. 그런 인연이다 보니 아용은 유항검을 친정오라비라도 되는 듯 따랐고 유항검 쪽에서도 오라비 노릇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용은 북경에 다녀오면 좋은 일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이 무슨 청천벽력이냐고 땅이 꺼지게 울었다. 유항검도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만천의 눈치를 살폈다. 아용은 이 모두가 광암 이벽 때문이라고 원망을 하기도 했다. 벼슬도 마다하고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공부를 하기에 세상을 구할 대단한 연구인 줄 알았더니 겨우 아녀자를 내치는 일이었냐고 하소연도 했다.

분서갱유로 사라지고 훼손된 진유의 올바른 의미를 찾아야 된다고 하시기에 저는 고대 유학을 바로 세우시려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서학 때문에 제게 이리 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용뿐만이 아니었다. 가족들 중 누구도 만천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실부인 입장에서야 첩을 내보내는 일이 앓던 이 빠지는 것처럼 속 시원한 일이겠건만 부인 정 씨도 심기가 편치 않아 보였다. 뭔가 아용이 잘못한 일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서학에 미치는 것보다야 첩에게 미치는 게 낫다는 생각을 감추지 않았다.

첫 배교는 을사추조적발사건으로 김범우가 죽은 직후였다. 가족들의 성화로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배교를 선언한 마당에 아용을 그대로 둘 수 없는 일 아니냐며 정 씨가 서둘러 아용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방으로 찾아가는 일은 피했지만 집에 들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나 광암이 죽고 1787년 다시 교회로 은밀히 돌아왔다. 아용을 다시 내보내야 하나 고심했다. 부인의 반대를 못이기는 척 별채에 그대로 머물게 두었다. 윤유일이 돌아 온 후 양반들이 하나둘 교회를 떠난다는 소식에 희망을 품었는지 아용의 별채에서 기다림이 느껴졌다. 등이 밤늦도록 걸려 있었다. 다른 가족들도 제사 문제가 걸렸으니 이제 서학에는 영영 발을 끊으리라 믿는 눈치였다.

만천은 아용에게 가려다 정약용에게로 발길을 돌렸다. 유항검이 와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세 사람은 걷기 시작했다. 약속이나 한 듯, 뒷산을 향해 걸었다. 소나무가 숲을 이룬 곳 동쪽으로 언덕이 좋았다. 풀이 무성했다. 자신의 집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정약용이 털썩 주저앉았다. 만천은 풀밭에 드러누웠다. 유항검이 풀줄기를 떼어 풀피리를 불었다. 풀피리 소리가 시원찮아지나 싶더니 물었던 것을 뱉고 다른 것을 떼어 물었다.

광암이 있었다면 뭐라고 할까?”

유항검이 뜬금없이 광암을 입에 담았다.

광암은 토착화 과정에서 진통이 따를 것이라고 줄곧 걱정했었지.... 마테오리치가 천주는 곧 고경서古經書의 상제와 같다고 주장한 것도 결국 중국 그리스도교의 토착화에 논리체계를 세우려고 한 것 아니겠나?”

만천도 줄곧 광암 생각을 하던 터였다.

토착화가 말이 쉽지 몇 년 세월로 되겠나? 하지만 보유론補儒論은 적어도 주자학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한 원인이 될 것임은 분명하지.... ”

유항검이 잘근거리던 풀피리를 내던지며 말했다. 다시 풀줄기를 떼어 물더니 이내 내던지고 풀 위에 누웠다. 정약용도 따라 누웠다. 침묵이 흘렀다. 어느새 달이 밝았다. 구름이 달을 감싸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건 땅 위에 누운 자신들뿐이었다. 광암은 그저 휘영청 높이 떠 있었다.

광암은 태극을 우주의 궁극자로 인식하는 개념을 단연히 반박했지. 정약용, 자네도 만물을 생육하는 근본 위에 또다시 이를 주재하는 상제천上帝天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쩌면 세상은 점점 유물론의 지배를 받게 될 것 같지 않나?”

달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유항검의 목소리가 달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배 안에서 광암이 했던 화씨벽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화씨벽의 가치가 드러난 이후에 소양왕은 열다섯 개의 성과 바꾸자고 했고 인상여는 목숨을 걸고 지켰다지요?”

어디 그뿐인가? 후한 말 십상시의 난으로 어디론가 사라지고 난 후 손견이 낙양성 진군 때 눈에 불을 켜고 찾았는데 우물에서 발견되었다는 거야. 그걸 원술이 얻었고 나중에는 원술의 부하 서구가 빼앗아 조조에게 바치고 부귀를 누렸다지 않나. 어쨌든 서로 가지려고 눈이 벌게졌다는 얘기지.”

두 사람이 주고받는 이야기는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곤 했다. 지나가는 구름 사이로 달이 언뜻언뜻 모습을 내보였다. 구름은 멈춘 듯 보이면서도 꽤 빠르게 지나갔다. 어쩌면 배 안에서 들은 이야기들도, 지금 누워 있는 이 언덕도 달빛도 그렇게 지나가는 중일 것이었다.

이제 생각하니 그날 광암은 그 이야기를 마음먹고 했던 것 같습니다. 박해가 끝나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갈구하게 될 거라고 믿었던 듯합니다.”

그래, 육신의 눈으로 알게 된 보물도 그렇게 갖고 싶어 안달인데 영혼의 눈이 알아보게 된 보물이야 더 말할 거 없지 않겠느냐고 했었지.”

유항검이 풀피리 소리처럼 작은 소리로 광암의 말을 되짚어보는데 만천은 가슴이 미어졌다. 광암 이벽에게 배교하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던 지난날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강학회를 마치고 돌아와 신념에 찬 어조로 성경을 이야기하고 고대 유학을 논하던 그의 열정이 그리웠다.

지금 조선 사회가 창조된 만물은 모두 하느님 앞에서 평등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그냥 두겠습니까? 그런 정신이 뿌리 내리면 기득권을 잃게 된다고 생각하겠지요.”

정약용이 풀잎을 뜯어 멀리 던지며 말했다.

풀벌레들이 세 사람 사이로 뛰어 다녔다. 세 사람 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지만 한두 번의 제물로는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

, 또다시 배교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다니, 만천은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정약용이 결국 돌아섰다. 제사를 지내는 문제 앞에서.... 광암이 죽은 후 줄곧 반촌에서 함께 교리를 연구하고 강술하는 등 교회활동을 영도했던 처남이었다. 유항검도 권일신도 정약용만큼은 결코 돌아서는 일이 없으리라, 상제천을 배반하는 일이 없으리라 하였었다. 그러나 그도 주자학의 조선에서 태어나고 자란 선비였다. 제사만큼은 건드릴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제사를 금하라고요? 그럴 수는 없지요.”

고심한 그늘이 역력했다.

정약용이 떠난 뒤 주위를 돌아보니 세상이 텅 빈 듯 허전했다. 애초에 보유론적인 이해에서 출발한 동료들이었다. 유교적 예법과 천주교회법의 상치라는 현실에 직면하여 모진 고문에도 지켜온 교회를 스스로 떠나고 있었다. 권일신만이 홀로 남아 교회를 지키리라 하였다.

만천은 배교를 선언하고 평택 현감으로 나가면서 아용부터 찾았다. 아용은 화색을 띠었으나 부인 정 씨는 말수가 적어졌다. 첩을 잊지 못해 불러들이는 만천의 행태가 야속해서만은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만천 몰래 성경을 읽고 글이 짧은 이도 누구나 읽을 수 있게 한글로 정리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만천은 아용의 마음을 살피는 일에 급급했다. 왔다 갔다 하면서 마음고생을 시킨 죄로 밤낮없이 아용의 비위를 맞추었다. 조금이라도 보상하고 싶었다.

아용이 모처럼 술상에 정성을 들이고 거문고를 뜯는 중인데 정약용이 들어섰다. 권하는 술을 내려놓으며 은근히 주변을 물릴 것을 청했다.

외가에 갔었습니다. 형님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군요.”

제사를 안 지내?”

.”

정약용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묻지도 않은 말을 일부러 찾아와 전할 때는 보통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입을 여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일면 외딴 시골에서의 일인데 싶은 생각도 스쳤다. 그리고 곧, 윤지충이 사는 해남은 멀리 떨어진 곳이니 소문만 나지 않는다면 별일이야 있으랴, 싶었다. 그러나 정약용의 생각은 달랐다. 발 없이 천리를 가는 게 소문 아니냐, 소문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느냐는 거였다. 결국 일이 터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소리였다. 유항검과 윤지충은 이종 간이니 유항검에게도 불이 떨어질 것이었다. 그동안 유항검이 신주를 조상무덤에 묻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던 것도 밝혀질 것이고 문제가 될 것이었다.

외가의 일은 일이고....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무엇이 말인가?”

제사는 효孝이고 민속인데 왜 교리에 거는지 말입니다.”

나도 그 생각을 하였네. 만일 우리에게 사제가 계시면 시원하게 말을 들어보겠건만 답답하기 그지없네.”

암만 생각해 봐도 그리스도 정신과는 무관한데 사람만 상하게 생겼습니다.”

정약용은 일간 다시 찾아가 의논해 보겠노라며 일어섰다. 그는 어려서부터 외가에 정이 깊었다. 그의 외가는 윤선도의 문과 예가 이어져 내려오는 집안이었다. 좀체 속을 드러내지 않는 정약용의 얼굴이 붉었다. 허위허위 걸어 나가는데 그의 머리 위로 몰려오는 먹구름이 보였다.

그가 돌아가고 나서 곰곰 생각해 보니 약용은 마음의 준비를 시키러 온 것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왔다. 그의 말대로 소문이라도 난다면? 결국 떼죽음을 예고하는 소리 아닌가? 반대파에 속한 홍낙안 · 이기경 등에게 계속 공격을 받고 있는 처지였다. 시파를 몰락시키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연결 고리를 눈여겨보고 있을 것이었다. 외숙, 이가환을 재상으로 쓸 것이라는 정조의 언질이 있고 난 후 공격 또한 거세지고 있었다.

만천은 오래된 싸움을 거슬러 더듬어 보았다. 임진왜란 후에 화의(和議)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남인 유성룡이 실각되면서 남인이 몰락하고 득세한 북인은 다시 선조(宣祖)의 후사문제(後嗣問題)로 대북(大北)과 소북(小北)으로 갈라져 대립했다. 인조반정은 광해군과 대북파를 몰아내고 서인들이 집권할 기회였다. 복상 문제로 시작된 서인과 남인의 싸움도 진흙탕이었다. 나라는 분당에 의해 움직이고 싸움은 반복되었다. 경종을 지지하던 소론이 영조 즉위 뒤 노론의 반격을 받았다. 사도세자를 높이는데 찬성하는 시파와 반대하는 벽파로 또 갈라서면서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다. 어느 것이 대의고 진리이냐가 문제가 아니었다.

반대파들은 자신에게 가장 모진 갈퀴를 던질 것이었다. 조선에 천주교를 불러들인 첫 인사로 주목받고 있으니..... 처남인 정약용과 외숙 이가환에게 정조가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어 울타리가 되어 주는 것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외숙은, 나 때문에 네가 죽을지 너 때문에 내가 죽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하며 경계하였다.

외숙은 천주교 교리서를 번역하기는 했어도 합리적인 정신을 받아들이려고 애썼지 천주교에는 확신이 없었다. 누가 청에 간다는 소리만 들리면 달려가 책을 구해 달라고 청을 넣곤 했다. 서학이 중국 문화보다 보편적 수준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믿었다. 서양 신부들을 받아들이고 서양 물자를 실은 선박을 초청하자는 주장도 했다. 반대파들에겐 요사스러운 언행이었다. 외숙은 조선이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수학자라 할만 했다. 청을 통해 들여온 과학서적들을 그가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는 이는 얼마 되지 않았다.

만천, 우리 조선은 과학과 수학을 너무 모른다, 내가 죽으면 조선에 기하의 종자가 마르고 말 것이다. 나는 네게 희망을 걸고 있다.”

외숙은 그렇게 말하곤 하였다. 자신의 뒤를 이어달라는 간곡한 당부였다. 그러나 만천은 외숙의 경지를 다 읽을 수 없었다.

그의 학문은 인정받지 못했다. 가치를 인정받기는커녕 몰아내려는 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장희빈의 아들 경종을 보호하려고 들었던 이잠의 후손이라는 이유까지 들이대었다. 성호 이익도 이잠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흔들지 않았던가. 정조가 종조는 종조고 종손은 종손이다, 라고 비호하자 노론은 그가 천주교인임을 트집 잡기 시작했다.

이가환과 만천 이승훈이 보고 있는 책들은 조선의 근간을 흔드는 사악한 서적이라는 말들이 이미 파다했다.

윤지충이 제사를 거부하면 천주교가 구실이 되어 대대적인 옥사가 일어날 것이 뻔했다. 처남 매부로, 친척으로 얽혀 있는 것도 불안한 일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떼죽음에 엮이고 싶지 않다는 본능이었을까? 관내에 천주교인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버럭 소리부터 질렀다. 당장 잡아들이라 명을 내린 것도 모자라 장을 치라고까지 하였다. 힘없는 노인이었다. 다음날로 풀어주었지만 마음이 영 개운치가 않았다. 아용을 찾았다.

친정에 가셨다고 합니다.”

뜻밖의 전갈이었다. 친정? 친정에는 왜? 그 먼 곳에, 말도 없이? 평소에 가지 않던 친정엘 왜?

...... 꼭 이럴 때 갈 것이 뭔가?

역정이 났지만 부인 정 씨에게로 향했다. 정 씨가 묵주를 돌리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처음 얼마간 광암을 원망하던 때가 있었으나 이제는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만천이 배교를 거듭하여도 정 씨는 홀로 신앙을 지켰다. 평택으로 오고서도 기도 생활을 하고 성경을 한글로 정리하는 일에 몰두했다. 만천은 소리를 죽이며 다가가서 함께 기도를 바쳤다. 모처럼 고요한 시간이 찾아 들었다. 부인 정 씨가 곁에 있어도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친정에서 사람들이 다녀갔습니다.”

정 씨가 묵주를 반짇고리 안에 깊이 묻고 돌아앉으며 말했다.

누가 왔더이까?”

올케랑 사촌들이 왔었습니다. 윤지충이 해남에서 위폐를 불사르고 제사를 폐지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허나 집안에서 일어난 일이라 아는 이는 없다 합니다.”

그 소리뿐이오?”

중국에서 중국인 신부가 올지도 모른다는 말도 얼핏 들었습니다.”

아용이 그 소리를 들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중국에서 신부가 온다면 다시 교회활동이 활발해질 것이라 여기고 다시 배척당할 것을 걱정하여 친정으로 간 것이 분명해 보였다.

부인 정 씨가 만천의 마음을 읽고 먼저 입을 열었다.

아용도 천주교에 들고 싶어 합니다. 지금은 버림받을 것을 걱정하기보다....”

아니, 아용이 천주교에 들고 싶어 하다니 그 무슨 말씀이오?”

기도와 실천 생활을 한 지 꽤 되었습니다.”

어쩐지 부인이 하는 일을 자세히도 안다 싶었느니.... 그럼, 그동안 줄곧 아용이 부인과 함께 성경을 한글로 옮겨 적는 일을 해 왔던 것이오? 그렇게도 천주학을 싫어하더니만....”

이제는 성경을 저보다 더 잘 욉니다.”

헌데 친정에는 갑자기 왜 갔단 말이오?”

아마 제가 쓰고 있던 글을 본 듯합니다. 친정 식구들을 맞이하느라 미처 맺지 못하고 붓과 함께 두었었는데 지필묵만 있고 글이 없습니다.”

아용이 가져갔단 말이오? 뭐라 썼길래?”

정 씨는 대답이 없었다.

만천은 일어나 아용의 처소로 향했다. 아용의 방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간단한 짐만 꾸려 떠난 것 같았다.

남겨진 글이 유서처럼 반듯하게 방을 지키고 있었다. 만천은 그녀가 영 돌아오지 않을 요량으로 떠났음을 알았다.

月落在天 水上池盡

달은 영혼과 신앙을, 물은 잠시의 세도와 권력을.... 하늘은 영원세계, 진리와 본향을.... 연못은 유한하고 불완전한 이 땅의 인간세상을 뜻할 터였다.

그래, 달은 떨어져도 하늘에 있지. 허나 물이 솟구치면?

만천의 머릿속을 글자들이 빠르게 돌아쳤다.

이것이 부인이 썼다는 글이오? 아니면 아용이 남긴 것이오?”

뒤따라 온 부인 정 씨가 대답했다.

月落在天은 저의 글입니다만 아용이 제가 쓴 것을 이어서 써놓은 것 같습니다.”

, 부인은 내가 또 교회로 돌아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배교하는 일이 생길까 염려하십니까?”

그래, 그럴 것이다. 내가 또 그러고 말 것이다. 세상이 부르면 또 기울 것이다. 적당히 타협을 보려들 것이고 합리화하려 할 것이다. , 내가 그럴 것이다. 나는 세상을 못 버리고 천상을 탐하는 연옥영혼일 수밖에 없는 게다.

, 하느님!”

만천 이승훈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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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윤지충이 돌을 던지고 있었다. 돌들은 배교자, 배교자 소리와 함께 날아다녔다. 자신의 눈앞에서 점점 커지던 돌이 스치듯 사라지고 나면 딱히 어디 맞은 것 같지도 않은데 아악, 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오고 끔찍한 통증이 몸을 조여 왔다. 저 소리가 정녕 윤지충이 내게 하는 소리란 말인가? 저 돌들이 정말 나를 겨냥한 것이란 말인가? 내 속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나으리, 둘이가 와 있습니다요,”

마두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다시 배교자, 배교자.... 소리가 웅얼거림처럼 들려왔다. 눈을 씻고 보니 건너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 윤지충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윤지충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태연히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돌이 그의 몸에 닿아 불꽃이 튀던 순간들은 꽃으로 피어나 윤지충을 감쌌다. 어느새 윤지충의 모습은 사라지고 꽃들이 서로를 끌어안은 채 커다란 꽃다발이 되어 솟구쳤다. 허공은 꽃밭인지 별밭인지 모를 세상을 펼쳐 보였다.

웬 계집아이 하나가 돌을 들어 종이처럼 폈다. 눈에 익은 글씨가 나타났다.

보세요, 이거 손수 쓰신 글 맞지요?”

바로 둘이가 아닌가.

그래 그건 네 아비가 나보고 서양과 동양의 학문은 다르다라고 써달라기에 써 준 것이구나.”

그런데 저 나으리가 보더니 이곳에 글자 한 자가 빠졌대요. 인재를 잃지 않으려는 임금님의 마음을 알고 저 나으리들이 꾀를 낸 거라는데 여기 서학 앞에 나쁘다는 글자 한 자만 다시 써넣으시면 제주도까지 보내지 않는대요. 노모가 기다리고 계시잖아요. 여기 붓을 가져왔어요. 힘을 내어 붓을 잡아 보세요. 글을 모르니 제가 대신 써 넣을 수도 없고 어쩌지요? 저 나으리보고 써 넣으라 해 볼까요?”

안절부절못하는 아이의 모습과 정신이 혼미한 듯 고개가 꺾인 채 벽에 기대어 있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다른 세상의 일처럼 보였다.

얘야, 허락을 받았느냐? 그러면 붓을 이리 다오. 내가 대신 써 넣어 주마. 저 양반이 정신이 들락날락 하는 판에 붓을 쥘 수나 있겠느냐?”

관리의 것으로 보이는 우악스러운 손이 둘이에게서 붓을 빼앗아 갔다.

, 이제 되었어요. 제주도까지 가지 않으셔도 된대요. 어머니가 계시는 예산으로 가실 수 있대요.”

팔순 노모를 두고 먼저 가려 하느냐?

슬픔으로 일그러진 어머니의 작은 몸 위로 허공이 부서져 내렸다. ! , 어머니..... 어머니를 향해 팔을 내젓자 부서진 꽃들이 자신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내려왔다. 순간, 왜 깔려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꿈에서 깨어나서도 한참을 그것이 이상했다.

나으리, 둘이가 와 있습니다요.”

마두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보였다.

무슨 일로?”

제 어미가 곧 죽을 것 같다고 종부성사를 청합니다.”

어허, 아니 될 말. 이제 성직에 관여할 수 없다지 않았더냐.... 그동안 모르고 한 것만 해도 죄가 깊거늘....”

그리 일렀는데도 제 어미 마리아가 꼭 종부성사를 받아야 눈을 감을 것이라며 꼼짝을 안 합니다요.”

그렇겠지. 마리아가 누군가. 그리 열심이었는데 성사도 못 받고 떠나고 싶겠나? 그 마음을 누가 모르겠나. , 서둘러 가보세. 성사는 못 받아도 기도 속에 떠나게 해 줘야지.”

*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 자들이 떼거지로 왔구만.”

마리아의 남편이 권일신을 흘끗 보더니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궁시렁거리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아내의 죽음을 슬퍼한다거나 고통을 나누고 싶어 한다거나 그런 마음은 애당초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가래를 끌어올려 마당 쪽으로 퉥, 뱉으며 마루 끝으로 나앉는 모습이 험상궂기 짝이 없었다.

도와주러 온 사람들한테 말본새 하고는....”

마두가 가는 눈을 떴다. 그가 누군가. 동네에서 짐승만도 못한 자라고 손가락질 받는 무자비한 인물이다. 죽지도 않은 사람을 벌써부터 죽은 사람 취급하는 것도 모자라 작부를 끼고 주막에서 살다시피 했다.

둘이 어미는 교회를 지키는 숨은 일꾼이었다. 위에 종양이 생긴 지 오래라 손을 쓸 수 없다고 손 의원이 고개를 흔든 지 몇 달이 지났다.

이 지경이 되자면 무척이나 아팠을 텐데 그간 그렇게 아무 내색도 안 하다니.... 무슨 사람이 이리도 미련하오? 곁에 있던 의원이라는 자가 이제야 알아채다니 나도 참 무심한 놈이오.”

손 의원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마리아는 이미 눈도 뜨지 못했다. 먼저 와 있던 교우들의 기도소리가 구슬펐다. 마리아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손 의원이 한 번씩 숨을 확인했다. 바싹 말라 뱃가죽이 등에 붙었다. 몸 어디에도 살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았다. 교회 안팎을 쓸고 닦던 손도 뼈만 남아 갈고리 같았다.

이승훈 유항검 최창현 이단원(이존창) 등과 함께 죄인 줄도 모르고 신부 노릇을 해왔다. 사흘 전부터 그들이 심신을 깨끗이 하고 미사를 준비하는 동안 못지않게 삼가고 조심한 사람이 바로 마리아였다. 새벽부터 일어나 기도를 드리고 나서 성체성사를 위한 빵을 만들었다. 손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달려가 힘을 보탰다.

한 번은 너무 딱해서 보리쌀자루를 보태 준 집이 있었다. 바느질 일로 겨우 살던 홀어미가 산에서 굴러 꼼짝을 못했다. 어린 아이들이 있었다. 마리아는 오며가며 살림까지 보살피는 중이었는데 남편이 찾아가 보리쌀자루를 도로 빼앗아 오고 말았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남에게 보리쌀까지 퍼 준다고 욕을 하고 손찌검을 했다. 화를 못 이겨 낫까지 찾아 들었다. 둘이가 울면서 권일신을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큰일이 날 뻔했다.

그 말을 듣고 호남의 부호인 유항검이 쌀을 보내기 시작했다. 교회에 보내는 쌀 외에 따로 마리아의 집으로도 적지 않은 쌀을 보냈다. 덕분에 마리아는 그토록 소원하던 일을 이루었다. 남편을 교회로 이끈 것이었다. 베드로로 다시 태어난 남편에게 교리를 알려주며 기뻐하는 모습이 마치 세상을 다 얻은 사람 같았다.

그러나 그가 그리 오래 베드로로 살지는 못했다. 투전판을 다시 기웃거리고 주막에도 뻔질나게 드나든다는 소문이 들렸다. 마리아의 얼굴에 그늘이 깊어 갔다. 예전으로 돌아간 그는 술만 들어가면 여전히 서학 하는 것들은, 어쩌구 하며 돌아다녔다. 충효도 팽개치고 반상의 구분도 내다버린 요사스러운 무리들이라고 떠들어댔다. 몇 달 후에는 천주교를 반대하는 양반들에게 정기적으로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고 돈푼을 얻어 쓰기도 한다는 소리까지 들렸다.

둘이는 그런 아비 때문에 늘 고개를 숙였다.

아비가 나가며 뱉은 말에 얼굴이 발개진 둘이가 아비의 허물을 조금이라도 덜어 줄 양으로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마을 애들이 저만 보면 천주교인들이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말이 참말이냐고 물어요.”

제 아비만 그러는 게 아니라 마을에 도는 말이라는 뜻이었다.

너는 무어라 답했느냐?”

아니라고 했지요. 우리 엄마가 만드는 빵과 술을 먹는 건데 신부님이 성체로 바꾸어 주시면 예수님의 몸이 된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무어라 하더냐?”

말이 안 된다는 아이도 있고요. 대개는 이상하다고 하면서도 정말로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하지요.”

그래,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는 몸은 부활하신 몸이란다. 너 예수님을 영하면서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엄마가 예수님 같이 되는 거라고.....”

맞다. 그러면 하느님이 우리 안에 사시며 우리를 통해 활동......”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둘이가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마리아의 머리가 옆으로 툭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신부노릇을 하면 죄가 된다고 들었지만 마리아를 위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하시지요? 그러시지요. 여태 해 온 일인데 한 번 더 한다고 뭐 크게 죄가 더 무거워지겠습니까? 더구나 마리아는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여기 있는 누구보다 하느님이 사랑하셨을 겁니다, 있는 죄도 사해 주실 것입니다..... 하던 눈빛들도 모두 고개를 떨어뜨렸다.

세례 후 온전히 교회를 위하여 살아온 둘이 어미를 위해서 장례미사를 봉헌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안 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알면서도 신부노릇을 할 수는 없었다. 대신 빵과 떡을 정성껏 나누리라 마음먹었다. 마두를 불렀다. 마두는 교인들이 그릇그릇 떡과 술을 가져왔다고 말하며 교회에 있던 포도주만 한 병 들어보였다.

*

장례 일을 봐 준 사람들에게 한 자루씩 나누어 주고 나니 유항검이 보내준 쌀도 바닥이 보였다. 교회에 오는 이들과 밥 한 그릇이라도 나누자면 또 곳간에서 쌀을 내와야 할 것이었다.

교회는 이미 지도자였던 사람들이 다 떠나 썰렁했다. 북경으로부터 성직에 관여한 불경죄와 제사 금지가 적힌 서신을 받은 후 양반들은 교회를 등졌다. 남은 이는 오직 권일신뿐이었다.

- 당신은 어떻게 하겠소?

- 당신마저 떠나면 성사는 물론 세례는 어떻게 할 것이며 강론 말씀은 누가 할 것이오?

둘이 어미의 묘를 쓰는 동안에도 면면이 모두 눈으로 물었다.

아쉬운 대로 중인 계급의 손 의원이 어느 정도는 대신할 수 있겠지만 대다수는 글을 몰라 중요한 일은 할 수 없었다.

양반네는 떠났지만 중인과 상민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요.”

마두조차도 걱정이 드는 모양이었다.

걱정 말게. 나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교회를 떠나지 않을 것이네. 헌데 내 잠시 다녀올 데가 있으니 뒤주는 알아서 채워 놓게.”

해남엘 가실 것입니까?”

행선지를 묻는 낯빛이 어두웠다. 윤지충의 꿈 얘기를 마음에 담고 있는 모양이었다.

- 제사를 어찌 거부할 수 있단 말이냐? 하늘이 두 쪽 나도 그럴 수는 없다.

교회를 세웠던 사람들이 제사 문제 때문에 모두 고개를 저으며 교회를 떠나는 판에 윤지충이 위폐를 불사른 건 충격이었다.

....... 나는 위폐를 모시지 않았다. 부모를 대신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더구나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나무토막을 아버지나 어머니로 모실 수는 없다.

....... 또한 잠드신 다음에는 음식을 드리지 않는데 하물며 영원히 잠드신 후에 음식을 드리는 헛된 짓을 할 까닭이 있는가?

...... 그리고 지금 양반만 제사를 지낸다. 상민이 제사 지내지 않는다고 벌 받는 법은 없다. 그러니 내가 법을 어겼다면 양반의 법을 어겼을 뿐이다.

...... 내 비록 제사를 지내지 않아서 선비와 양반들에게 죄를 얻을지언정 하느님의 법은 어기지 않고자 함이었다. 이게 내가 하느님을 공경하는 뜻이다.

진산 군수 신사원을 향한 윤지충의 반박은 교회를 떠나는 양반들의 발길도 붙드는 듯했다. 하지만 사람은 결국 오래된 생각을 따라가기 마련일까? 머뭇거림도 잠시, 무거운 짐을 내려놓듯 훌훌 떠났다.

그러나 권일신은 변화의 싹을 보고 있었다. 중인과 상민 계급의 신자들이 부쩍부쩍 늘었다. 남쪽에서는 윤지충과 권상연이 사형을 당할 때 피가 엉기지 않았고 치유의 기적을 보였으며 그걸 보고 입교자가 생기고 있다는 말도 올라왔다.

*

꿈에 윤지충이 찾아온 것은 혹시라도 마음이 흔들릴까 염려하는 것 같기도 했고 기다리고 있다는 말인 것 같기도 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을 창조하신 천주를 섬기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의 무엇을 준다 해도 그분을 배반할 수 없고 그분에 대한 제 의무를 궐하기보다 차라리 죽음을 당하겠습니다.”

벌써 임금에게 답을 올렸다.

은밀히 임금의 뜻을 전해온 것은 만천 이승훈과 정약용이었다. 임금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임금도 막을 수 없는 죽음이 코앞에 와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강이 깊다. 이 강을 무사히 헤치고 좋은 세상에 닿을 수 있도록 부디 든든한 배가 되어 달라. 배 한 척이 아쉽다, 하셨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부디 목숨을 보존하라는 당부 아닙니까? 윤지충의 죽음만으로도 얼마나 애석해 하시는지 모릅니다.”

이승훈과 정약용의 말이 아니더라도 정조가 자신을 얼마나 아끼는지, 그리고 도도한 강이 임금도 건드리기 어려운 신하들이고, 파당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외로운 임금, 그 임금을 돕기는커녕 적에게 빌미를 주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윤지충이 순교했다면 이제 차례가 온 것이다..... 홀로 교회를 지키는 일은 순교를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때가 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일이었다.

해남에 가려는 것이 아닐세.”

그럼 어디로 가십니까?”

김범우에게 다녀와야겠네.”

김범우에게요? 그 일로 아직도 그렇게까지 불편하십니까? 함께 옥사에 들여보내 달라고 옥사 앞에 앉아서 며칠을 버티다 끌려나오곤 하셨잖습니까.... 김범우도 원망은 없을 것입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지은 가장 큰 죄 아닌가? 그렇게 몹쓸 죄가 어디 있겠나....”

한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양반들은 모두 방면되고 중인이라는 이유로 김범우만 홀로 잡혀갔다. 모진 매를 맞고 뼈와 살이 으깨진 몸으로 유배 길에 올랐다. 결국 장독으로 죽었다. 한시도 마음 편히 살 수 없었다. 만사를 제쳐놓고 오늘은 그의 무덤을 찾아 술 한 잔 부으리라. 미안하고 죄스러운 이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으리라.

말에 막 오르는 참에 마리아의 남편이 들어섰다. 제법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름도 없는 것을 마리아라 이름으로 불러 주시고 가는 길까지 살펴 주셨으니 마땅히 인사를 올려야합지요.”

처의 장례를 후히 치러 준 것에 감사한다는 말이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감?”

마두는 그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하는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제가 이번 일로 깊이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요. 저도 과거를 뉘우치고 다시 교회에 나가려 합니다. 안 된다고 마십시오. , 지체 높으신 만천 이승훈 나리도 몇 번이나 나갔다가 뉘우치고 다시 들어오시지 않았습니까? 뭐 딱히 어른을 물고 늘어지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그동안 마리아에게 얼마나 모질게 굴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요. 지은 죄도 많고 염치도 없지만 앞으로 속죄하며 살고 싶습니다요. 이 어리석은 놈을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이번에는 권일신도 말에서 내렸다. 귀를 의심하면서.

듣던 중 반갑고 고마운 말일세.”

일단 다녀오시고 나중에 말씀하시지요.”

마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고삐를 바투 잡으며 다시 말에 오르기를 재촉했다. 잠시 속을 뻔했지만 이내 제 정신이 들었다는 말투였다.

제가 문밖에서 얼핏 들으니 단양으로 가신다는 듯하던데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말해 보게.”

김범우는 단양에 가지 않았습니다요.”

아니, 그 무슨 소린가?”

분명 그는 단양으로 유배를 갔다. 세상의 눈이 가라앉을 즈음에 찾아가려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승훈이 와서 고개를 저으며 장독으로 죽었다는 말을 전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든 만나러 갔을 것이었다.

유배 가기 전날, 감시의 눈을 피해 마두를 보냈었다. 그러나 마두는 들어서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아들 하나가 찾아 주어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안으로 들이려 했지만 다른 가족들이 냉엄한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고 그 아들은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어 더는 아무 말도 못하더라 하였다.

너희는 양반이라 하나도 다치지 않고 우리만 매를 맞고 반 주검이 되었다. 무슨 염치로 우릴 찾느냐?”

마두가 돌아온 것은 달빛도 없는 밤이었지만 마두가 차마 다 전하지 못하는 원망과 한이 고스란히 건너왔다.

왜 아니겠나. ..... 죄인이 무슨 말을 하겠나....”

그때의 비탄과 참담함은 시간이 흐르면서 물밑으로 가라앉았지만 시시때때로 솟구쳐 마음을 어지럽혔다.

김범우가 밀양 단정이라는 곳으로 갔다는 말을 주막 패거리들에게서 들었습죠. 포졸들에게서 나온 말이라 했고요.”

밀양? 단정? 그렇게 멀리? 더 아는 것이 있는가?”

더 아는 건 없지만 이놈이 모실 수는 있습지요.”

마두가 차라리 자신이 모시겠노라 막아섰지만 권일신은 둘이 아비를 앞세웠다.

*

설마, 포졸들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증을 가지고 둘이 아비의 뒤를 밟은 것일 수도 있었다. 둘이 아비와 입을 맞추고 기다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다음이었다. 고문 중에 나오는 말들이 하나같이 기가 막혔다.

...... 마리아의 상을 치르던 날 서학의 무리들이 빵과 술을 나눠 먹었는데 사람의 살과 피를 먹으면 뭐, 하느님이 사람 안에 살게 되는 것이라나 뭐, 그런 말을 서로 하더라..... 그들은 모두 권일신을 신부님이라 부른다. 그리고 임금님 명을 어길지언정 그의 명은 어길 수 없다며 그를 따르더라.... 뿐인가, 을사추조 적발사건 때 죽은 죄인 김범우를 두고 나라에서 생사람을 잡았다 하여 원망을 하더라.....

그리 증언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거였다. 둘이 아비와 패거리들이 홍낙안, 목만중 등에게 서학의 우두머리로 자신을 지목해 고했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이용당했다는 뜻이었다.

임금님께서 절대 잃고 싶지 않은 신하라 하셨답니다.”

그래? 그럼 일단 유배 정도 가게 해놓고 가는 길에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세. 뭐 장독으로 죽었다 하면 될 일 아닌가?”

혼미한 의식이 저들의 말을 알아들었다.

진심으로 마지막으로 좋은 일을 하려는 것입니다요.”

이번에는 둘이 아비의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인 것 같았다.

관리들이 임금님 의중을 읽고 방법을 구한 것이랍니다. 형님인 권철신 어른께서도 어머니 돌아가시는 것이라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십니다. 제가 죽일 놈이라 증인까지 섰지만 가시는 길에 한 번은 마음 빚을 꼭 갚고자 합니다. 부디 한 글자만 써 넣으십시오. 이제 와서 이러는 게 말도 안 되는 소립지요만 이대로 가시면 지가 평생 걸려서 어찌 삽니까요?”

목소리가 애절했다. 눈물도 보았지 싶었다.

둘이가 종이를 내밀었다.

여기 한 글자가 빠졌답니다, 한 자만 써 넣으시면 목숨을 구하고 귀양을 가셔도 노모가 계시는 예산으로 가실 수 있답니다.”

, 그것이 꿈이 아니었던가.

배교자, 배교자, 배교자.....”

윤지충의 돌들도 꿈이 아니었다.

***************************************************************************** 5 천쇠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은 하느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었다는 뜻이니 바로 우리 마음으로, 우리 곁으로 왔다는 뜻 아닌가.....

광암이 떠났을 때 권일신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었다.

그가 죽지 않았다면 그는 우리와 함께 있을 수 없소. 언제까지나 멀리 있는 존재일 뿐이오. 그러나 그가 사랑으로 죽어 하느님과 하나가 되었으므로 누구나의 사랑이고 누구나의 자비인 것이오.

예수의 죽음을 말하면서 광암이 늘 하던 말이었다.

오 년인가, 육 년인가? 돌아보면 서학에 심취했던 시간이 꿈인가 싶었다. 끊어버리기로 결심하는 즉시 모든 관계를 접었건만 설교하던 광암의 목소리는 끊을 수 없었다. 생전에 그가 하던 말 그대로 광암은 배 안에도 있고 주어사 뜰에도 있고 달빛 속에도 있었다.

제사는 미신행위이니 금하랍니다.”

제사를 금하라니 나는 절대 그럴 수 없소!!”

교회를 떠나면서 허공에 대고 몇 번이나 소리쳤었다.

올려다 보이는 것은 슬픔이고 괴로움이었다. 사람은 공간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 사는 것이라더니 과연 그런 것인가..... 그들은 정말 죽어 누구나의 사람이 되고 누구나의 목소리가 되고 누구나의 사랑이 된 것인가.....

슬프다, 이 나라 사람들이여,

주머니 속에 갇힌 듯 궁벽하구나.

성현은 만 리 밖 먼 데 있으니

그 누가 이 몽매함 헤쳐 줄 건가

고개 들어 사방을 둘러보아도

또렷한 정신 가진 자 보기 드무네.....

아직도 떠난 사람들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였나? 좋은 세상에 갔을 거라고 믿어 보세.”

나직이 시를 읊조리는데 누군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놀라 돌아보니 언제부터 지켜보았는지 정조가 권철신과 함께 서 있었다.

. 그래야지요. 슬퍼하는 것은 떠난 분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못난 저를 위한 것입니다.”

권철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임금에게 너무 편하게 말하는 것 아니냐는 질책이었다. 그러나 정조는 신하들에게 형식에 얽매이지 말라고 주문해왔다. 형식보다는 소통을 원했다.

광암은 방에 갇혀 있다가 굶어 죽었다지? 내 아버지 사도세자께서 뒤주에 여드레나 갇혀 있다가 돌아가셨으니 내 어찌 그의 죽음이 남의 일 같겠나.....”

흑사병에 걸려 그리 되었다 하지만 저는 믿지 못합니다. 정안 스님도 고심하는 빛이긴 했지만 전혀 병색은 보이지 않았다고 했고요. 제가 마지막으로 문을 마주하고 앉았을 때도 열에 들뜬 몸이기는 했지만 죽음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독살 당했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서학으로 인해 가문이 화를 입을까 봐 제 식구들이 그리 했다는 건가?”

아무 증거도 없으니 단언이야 못하옵니다.”

광암의 문에 못질해 놓았던 판자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 왜 그걸 뜯어내지 못했던가..... 정약용은 가슴이 미어졌다.

광암 이벽에 이어 윤지충, 권일신까지.... 서학을 빌미로 귀한 인재들을 잃고 말았어.....”

- 권일신이 고문으로 반 주검이 된 상태에서 손을 내어 주어 배교를 하겠다는 내용에 수결을 한 것도 정조의 심중을 들여다보고는 무슨 수를 써서든 살릴 방도를 찾으라고 명한 관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 제주도가 아닌 팔순 노모가 사는 곳으로 유배지를 바꿔주겠다고 하자 수결을 했다.

소문은 언뜻 들으면 권일신이 효자라는 말을 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내놓으리라는 권일신을 욕되게 하는 것이었다.

이제 제 차례가 된 듯하옵니다.”

권철신은 동생 생각에 목이 메는 듯싶었다. 그는 권일신 사후 거의 문밖출입을 끊고 지냈다. 곧은 성격, 부드럽고 온화한 인품, 학문에 대한 열정.... 형제라고 해도 그 두 사람처럼 닮기는 쉽지 않을 것이었다. 권철신이 세례를 받고 난 후, 그 즉시 노비들을 풀어준 걸 알고 광암도 정약용도 역시 권철신이라고 무릎을 쳤었다.

권일신이 교회재건운동을 위해 찾아왔을 때 정약용은 망설였다. 희생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말로 말렸다. 교회를 처음 건설했던 양반들이 모두 떠날 때도 권일신은 홀로 남았다. 광암이 주교가 될 사람이라고 했던 말이 틀리지 않는다 싶었다.

믿음이라는 게 꼭 드러내야 하나? 교회에 모여야만 하는 것인가?

정약용은 확신이 없었다.

각자 마음으로 덕을 쌓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렇지가 않네. 우리는 애덕을 통하여 하느님과 일치를 이룰 수 있네. 또한 신덕이 아니면 하느님을 올바로 알아보고 깨달을 수 없지. 마음만으로는 그분이 우리의 희망임을 밝힐 수 없네. 하느님을 향하여 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이 모든 덕행들이 교회에 있네.”

권일신은 망설임이 없었다.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의지가 있었다. 의심도 걱정도 없었다.

- 이보게 삼미, 우리가 도달할 곳은 하느님이 계신 곳, 하늘나라가 아닌가?

그의 선량한 눈빛 앞에 앉으면 아무 말이 없어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내 도대체 서학이 무엇이기에 이런 사단이 벌어지나 싶어 서학 책을 조금 펼쳐 봤더니 뭐 내가 읽은 건 극히 일부분이겠지만 하느님 앞에 모든 인간이 똑같이 귀하다고 말하고 있더군. 지금 우리 조선에서 반상의 경계를 허물자고 하면, 누구나 하느님 앞에 똑같은 존재라고 하면 화살이 날아오지 않겠는가?”

정조가 말했다.

맞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그 아들을 죽이려 들 것입니다.”

정약용이 대답을 망설이자 권철신이 나섰다. 정약용은 이미 끊어버리기로 결심한 서학을 정조 앞에서 논한다는 것이 뭔가 마땅치 않았다.

스승님께서는 집에 있던 노비들을 다 풀어주셨다 들었습니다. 그도 서학 때문입니까?“

믿음은 실천이 따라야 하니까요. 주자학에서는 모든 인간윤리, 도덕, 제도, 법률 등이 인위적이고 사회적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천리天理에 의한 것으로 생각하지요. 그러니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약자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을 당연하다 여기게 되는 것이고요.”

그럼, 스승님 말씀은..... 부자, 부부, 주종主從, 군신君臣, 군민君民 등의 상하관계를 부정하는 것입니까?”

그런 인간관계를 절대시하고 우상화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지요. 그 때문에 덕이 상호적일 수 없고 조화를 이룰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런 정의와 평등을 조선이 받아들일까요? 그리고 그런 세상이 현실에 있을 수 있을까요?”

정조는 어디가 불편한지 몸을 뒤로 젖히며 미간을 찡그렸다.

..... 스승님, 제가 그런 정책을 편다면 기득권을 가진 세력들이 저를 살려두겠습니까?

정조는 그렇게 묻고 싶은 거였다.

..... 아무리 왕이라 해도 절대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누군가의 손에 사고를 가장한 죽임을 당하거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스스로 무너질 것입니다. 사도세자가 그랬던 것처럼요.

정약용은 속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어느 날인가 정조가 말했었다.

..... 내 아버지 사도세자는 정말 죄인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지 싶어. 적어도 내가 어렸을 때는 아버지만큼 사리 밝은 사람이 없었네. 내 눈에 아버지는 하늘이었지. 어느 날부턴가 아버지에게 먹구름이 몰려들었던 것 같아. 아버지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거든. 아버지가 괴물이 되어간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어. 어머니가 비명을 지르고 궁녀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어. 저기 괴물이 있다고 가리키는 곳에 아버지가 서 있었지. 대신들은 아버지가 병들었고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고 말하면서 한 손으로는 역모 죄를 들이대더군.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의 죄는 조선이 허락하지 않는 꿈을 꾼 거였어.

그때는 정조가 아비의 죄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하는 말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괴로움을 견디기 위한 자기 위안이라고.... 권일신까지 그렇게 죽고 나자 정조가 했던 그 말이 자꾸 새롭게 들려왔다.

소신 등의 꿈으로 끝날지 모르겠으나 조선 사회는 새롭게 혁신되어야 합니다. 모든 부문에서 모순과 부조리가 창일漲溢하기 때문이지요. 온갖 것이 아주 작은 부분에까지도 병들지 않은 데가 없으니까요.”

권철신은 더 이상 말할 기력이 없어 보였다.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더니 입을 굳게 다물고 옷을 여미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갈 생각인 듯했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보이는 것은 텅 빈 산과 앙상한 가지들뿐이었다. 매서운 바람이 제법 큰 나무들까지 흔들었다. 바람은 억울한 사람들이 울며 지나가는 흐느낌처럼 기이한 소리를 냈다. 궁궐이라고 해도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발길을 돌려 꼭 하고 싶은 말을 잊었다는 듯이 청을 넣는 권철신의 모습은 뜻밖이었다.

광암이 떠나면서 천쇠라는 아이를 맡아 거두었사온데.....”

, 천쇠라면..... 광암이 주어사에서 데려다 교회 살림을 하는 이말희에게 맡겨 교회를 보살피듯 키우고 있던 그 아이 아닌가? 정약용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교회 재건운동을 펼치면서 교회에서 몇 번 본 기억이 났다. 권일신도 어린 녀석이 총기가 보통이 아닌 걸, 하며 귀여워했었다.

그 아이를 청으로 보낼 길이 있었으면 합니다.”

가는 거야 뭐 어렵겠습니까? 헌데 왜?”

지난번에 만천 이승훈이 가져온 망원경이랑 기하원본을 보면서 아이가 제법 반응을 보입니다. 청은 지금 다른 세상의 문명이 모여들고 있으니 아이를 보내 보고 싶습니다.”

그 아이가 그만한 재목이 될런지요?”

, 신의 생각으로는.....”

정약용은 천쇠의 거취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광암으로부터 사제로 키우고 싶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사제를 밖에서 모셔와야겠다는 의논이야 진즉부터 있었다. 권철신의 기대는 중국이나 서양 사제보다는 방인사제에 있었다. 내심 천쇠를 키워 조선 천주교의 기둥으로 삼고 싶은 거였다.

정조의 부름을 받은 것은 꼭 닷새 후였다. 홍삼을 싣고 청으로 가는 상단이 있으니 촉박하지만 그들을 따라 가라는 명이 떨어졌다. 동상東商이라는 이름은 낯설었다. 채제공이 시전의 특권을 박탈하고 자유로운 상업을 보장하려 하였으므로 상단의 명암이 엇갈리는 때였다. 채제공은 상도를 아는 상단이니 도움이 되리라고 말했다. 그들의 활동이 명분만 일삼는 사회를 자연스레 변화시키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희망을 두고 있었다.

정약용은 권일신, 윤지충과 한 가지라는 상소가 빗발치고 있네. 소나기는 피해간다는 말도 있지. 이참에 청국에 한 번 다녀오게. 청은 서양과도 길이 가깝고 우리보다 통하는 곳이 많으니..... 세상을 움직이는 수레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그 힘이 어디서 나오고 있는지 자세히 보고 오게.”

, 천쇠도 데려갈 수 있는 것입니까?”

물론이네, 허나 너무 오래 있지는 말게. 화성을 축조하는 일에 차질이 없도록 돌아오게.”

진산 사건의 여파가 가라앉을 동안 몸을 낮추고 눈에 띄지 말라는 정조의 말 속에 수원 화성 축조에 과학적 지식을 더할 수 있기를 바라는 속내가 얼핏 스쳤다.

외사촌인 윤지충과 교류가 많았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니 한통속으로 엮자고 드는 인사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었다. 권일신을 도와 교회재건에 힘써 온 것도 큰 죄였다. 제사 문제로 더는 관여치 않게 되었다고 몇 번이나 입장을 밝혔지만 소용없었다.

사학도로 규탄 받는 처지 아닌가? 주상께서도 정약용 자네만큼은 절대 잃고 싶지 않으실 걸세.”

권철신이 말했다.

, 권철신이 천쇠를 청으로 보내고 싶다는 청을 넣은 것은 바로 자신을 청으로 피신시키라는 충언을 에둘러 한 말이었던가? 그것이 자신을 위한 말임도 알아채지 못했으니.... 정조가 대번에 알아듣고 서두른 것도 모르고 있었으니.... 정약용은 뒤늦게 권철신의 깊은 생각을 읽고 고개를 숙였다.

권일신이 실제로는 독살 당한 거라는 소문을 자네도 한 번쯤 들어보았을 걸세. 내가 너무 아낀다고 시샘하는 자들이 그리 했을 것이라는 게야. 권일신이 덕을 통하여 하느님과 가까워진다고 말하지 않던가? 나를 도와 백성을 살피는 것이 권일신이 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야.”

국가를 경영하는 일도 권일신의 일도 결국 바탕은 애민이 아니냐고 묻는 정조의 말은 당부에 가까웠다.

1789, 사도세자의 묘를 이장할 때, 정조는 또 한 번 억장이 무너졌었다. 배봉산은 도성에서 거리가 먼 곳인데다 묘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수원에 새로운 도시를 세울 셈이 이미 있었기에 새 묘 터는 자연 수원 가까운 곳이 되었다.

관을 드러내던 날, 곁에 섰던 사람들은 차마 정조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했다. 묘를 파헤쳐보니 관이 물에 잠겨 있었던 듯 젖어 있었다. 관을 열어보니 물이 흥건하였다. 난행과 광태를 더 이상 볼 수 없어 죽여야 했다면 시신이라도 불쌍히 여겨 좋은 곳에 묻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 비극의 핵은 당쟁이야.”

말은 단 한마디뿐이었다. 차분하고 나직했다. 하지만 거친 숨소리는 흐느낌과 다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바로 곁에서 보았다.

- 어찌 수원 화성 일에 소홀할 수 있으랴? 내 목숨을 어찌 내 것이라 할 수 있으랴? 어찌 내 것이라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랴? 제사문제도 제사문제지만 정조를 도와 백성을 유익케 하는 것이 내 목숨 값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이 내게 맡기신 일일 것이다.

정조의 총애를 자신의 십자가라고 여기던 일도 부끄러운 것이었다.

한 달 안에 한강에 다리를 놓을 수 있겠는가?”

정조가 뜬금없이 그렇게 물어왔을 때 감이 왔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어떻게 한 달 안에 한강에 다리를 놓느냐고 주위가 수군거렸지만 정약용은 정조가 자신을 믿고 싶어 한다는 것만 생각했다. 누군가를 믿고, 손잡고 함께 정무를 펴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알아야 했다. 없는 힘도 내야하고 불가능한 일도 해내야 하는 거였다.

여러 척의 배를 이어서 한강을 건널 수 있도록 배다리를 만들어 보여 준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최선을 다하겠노라는 응답이었다.

*

천쇠의 눈이 부쩍 소견이 들어보였다. 귀엽다는 말을 들어야 할 나이건만 눈이 똘망똘망하고 다부져 보였다. 권철신이 누군가. 조선의 선비라면 누구나 그에게 무언가 가르침을 받았다. 단연 제일의 학자라 할만 했다. 그의 가르침을 받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천쇠 자신의 역량도 보통은 아닌 듯싶었다. , 그래서.... 권철신이 그에게 새 세상을 열어주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배에 오르고 처음 얼마간은 천쇠에게 마음 쓸 겨를이 없었다. 머릿속이 망망한 바다와 다르지 않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천쇠도 말이 없었다.

배가 유난히 출렁거리는 한낮이었다. 문득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천쇠의 일부가 바로 광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부모 형제들은 만난 적이 있더냐?”

아닙니다. 부모 형제는 물론 저는 제 자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 대신 정안 스님을 만났고 광암과 직암을 만났지 않았나....”

“......”

앞으로 커서 무엇을 하고 싶으냐?”

사제가 되고 싶습니다.”

사제? 그런 꿈이 있었느냐.....”

.”

혹 아직도 광암의 처자와 왕래가 있느냐?”

정약용이 물었다.

, 자주 들러보았습니다.”

어찌 지내더냐?”

유항검 어른이 많이 도우십니다. 그리고 본댁에서도.....”

, 유항검이 쌀을 보낸다는 소리는 나도 들었다. 본댁과도 연락을 하며 지내신다니 다행이구나

식해를 만들어 보내시는 걸 몇 번 보았습니다.”

광암이 가자미식해를 즐겨 먹던 것을 알고 새 사람이 가자미식해를 만들어 내었었다. 새 사람이 공들인 것이 무색할 만큼 광암은 입맛을 바꿨다. 권 씨 부인이 만든 것은 그리도 맛나게 먹더니.... 가자미식해를 쳐다보지도 않는 광암을 두고 가족들은 돌아서서 혀를 찼었다.

가자미식해 말인가?”

.”

, 그랬구나. 며느리가 안쓰러워 그렇게 마음을 쓰고 있는 게구나. 세상의 눈을 의식해 며느리를 집에 들이지는 않아도 광암을 생각하는 마음을 식해를 통해 주고 받고 있는 것이구나.....

영조도 그랬을까? 정약용은 눈을 감았다. 배가 흔들려 속도 메슥거리고 어지러웠지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일들은 또렷했다.

물 한 잔 드십시오.”

천쇠가 물을 내밀었다. 물맛이 달았다.

눈앞에는 파란 하늘과 바다뿐이었다. 바다는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솟아오르다 사그라지는 파도였다. 쉬지 않고 움직여 자신을 변화시키는 푸른 물이 모인 곳이었다. 정약용은 물이 공간을 변화시키고 시간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돌아보니 그 바다가 천쇠의 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천주교 신자더냐?”

걸쭉한 목소리가 뒤에서 물었다.

.”

천쇠의 대답에 망설임이 없었다. 정약용은 이도 저도 아닌 말을 입 안에 우물거리고 있었다.

나도 이전엔 천주교 신자였느니라.”

걸쭉한 목소리는 상단의 견습생 딱지를 겨우 면한 듯싶었다.

천주교 신자였소? 본 적이 없는데....”

, 나으리도 신자요? 본 적이 없다니, 그럼 나으리는 조선의 신자를 다 안다는 소립니까?”

뭐 어지간하면 안면이 있다고 보오만.”

, 그럴 리 없소. 하긴 우리 집이야 양반이 아니니 양반 나으리가 알 리 있겠소만 우리 마을에서도 우리가 신자인 것을 아는 이가 별로 없소. 언제부터랄 것도 없이 오래된 신자 집안이지만 나는 별 흥미가 없어서 멀어졌소.”

걸쭉한 목소리는 거리낄 것이 없어 보였다. 나이는 물론 반상의 구분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말투였다. 파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배가 몹시 흔들렸다. 이 망망한 바다 위에서 양반이 무슨 소용인가 싶기는 정약용도 마찬가지였다. 파도가 뒤집기로 들자면 양반 상놈의 구분이 다 무엇이랴? 바다는 네가 중하다 여겼던 것들, 그것들 모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리 말할 요량인 듯했다. 점점 기세를 높이고 있었다.

그게 대강이라도 언제부터인지 아시는가?”

아마도 임진왜란 때부터 아닌가 싶소.”

그럴 리가? 세스페데스 신부가 왜군의 종군신부로 왔었다는 말을 듣긴 했소만 신자가 났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소.”

백성들 사이에 생긴 일을 관에서 다 꿰고 있다고 믿으시오? 우리 조선의 백성과 관이 그리 가까운 줄 아쇼? 이보쇼, 양반 나으리. 백성을 세금 걷는 대상으로만 아는 게 관리요. 경서 구절이나 암송하고 시를 읊다가 지방 수령으로 내려오는 관리들이 백성들이 어찌 사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어찌 알겠소?”

실무에 무능하다는 원망을 들어 싸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소. 허나 천주교가 임란 때 전해졌다면 그 정도는 알 수 있는 일이오.”

아니, 모를 것이오. 그 신부가 마을을 지나가면서 틈나는 대로 드문드문 불씨를 심었소. 그렇지만 별 소득은 없었을 것이오. 그 누가 확인할 수 있었겠소?”

그럼 그때?”

아니, 그 신부와는 상관이 없소. 우리 집안에는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잡혀갔던 조상이 있었소. 포로가 된 그들이 그곳에서 신앙을 갖게 되었다 들었소.”

포로 생활에 도움이 되었을 법하오.”

그러나 그들 중 상당수는 일본에서 순교자가 되었소. 우리 조상님은 천행으로 서양인들의 배를 얻어 타고 돌아왔소.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나 싶지요? 조선의 관이 그렇게 허술하다면 믿겠소?”

국경이 바다 쪽으로는 뚫려 있다는 말 아닌가? 임진왜란 때 코와 귀가 잘린 자들이 얼마고 포로로 끌려간 백성이 얼마던가?

정약용은 난간으로 달려가 뒤집히는 속을 쏟아 내었다. 별 먹은 것도 없건만 노란 물이 나올 때까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래 속은 좀 어떠시오?”

걸쭉한 목소리가 지나가며 물었다.

바다가 잔잔하니 속도 괜찮아졌소.”

우리네는 마구 굴러다니다 보니 바다가 뒤집어져도 속까지 뒤집어지는 법은 없소. 하느님이 공평하다는 생각 안 드오?”

정약용은 기운이 없어 대답 대신 입술만 달싹여보였다. 일리 있는 말이다 싶었다. 걸쭉한 목소리가 말린 삼 뿌리를 내밀었다. 제 입에도 이미 한 가닥 물고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이 길을 자주 다니시는가?”

이 길뿐이겠소? 난 저 멀리 사막까지 다녀온 적도 있소.”

, 그럼 다니면서 본 중에 가장 맘에 남는 게 무엇이오?”

, 나야 뭐, 장사치라.... 굳이 말하자면 쇠를 다루는 이들 모습이 머릿속에 자주 떠오르긴 하오.”

쇠를 다루는 사람들?”

왜요? 까짓 대장장이들? 하고 말하고 싶소? 하긴 몸 고생이야 말도 못하오만 나는 그들이 일하는 모습만 보면 나도 모르게 불뚝불뚝 힘이 솟고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듭디다.”

나도 한 번 데려가 보여 줄 수 있소?”

에이, 가봤자 나하고는 같은 걸 느끼지 못할 게요. 꼭 원한다면 한 번 가보기는 가봅시다. , 내 거기서 얻은 것이 있소.”

걸쭉한 목소리가 사라졌다가 이내 돌아왔다. 손에 칼 두 자루를 들고.

이게 보기에는 얼추 비슷해 보이지만 이건 한 쪽만 날이 있는 도刀요. 그리고 이건 양쪽 날이 있으니 검劍이요. 도는 자르기만 하고 검은 찌르고 베는 거요.”

그 정도야 조선에도 흔하지 않소?”

아니, 이 건 쇠를 몇 만 번 두드려 얻은 칼이오. 그리고 재료부터 다르오. 강바닥에서 채취한 쇳조각을 용광로에 넣어 강철로 만들어 재료로 삼았기 때문에 보통 칼과는 만들어진 과정부터 다른 것이오.”

, 공이 많이 들었으니 당연히 가치가 다르겠소....”

걸쭉한 목소리는 칼을 햇빛에 비추어보기도 하고 한 쪽 눈을 가늘게 뜨고 이쪽저쪽 살피기도 하다가 칼집에 넣었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청에 가면 볼만한 곳들을 안내해 주마, 제 쪽에서 먼저 약조까지 하였다.

배는 어느새 청국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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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만권의 책을 읽다

저것이 무엇인가? 쥐었다 펴는 손 같기도 하고 모였다 흩어지는 빛 같기도 하고 줄었다 늘어나기를 반복하는 마술 같기도 하다. 아니, 어찌 보면 커다란 눈 같지 아니한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눈길..... 어디에 숨어도 환히 꿰뚫어 볼 것만 같은 눈.....

두렵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자신이 그것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문 앞에 걸려 있었다. 들고 나는 사람의 몸짓이 아무리 조신해도 그것은 흔들렸다. 작은 돌 하나가 호수의 수면을 깨우면 수많은 동그라미가 퍼져나가듯 바람이 그것에 닿으면 그것이 가지고 있던 온갖 몸들이 흔들렸다. 몸을 흔드는 바람에 있는 줄도 몰랐던 수많은 문들이 열렸다. 문들이 열리면 눈이 부셔 잠깐잠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음을 앗아간 것이 이것이었던가.....

누군가 커다란 원 안에 작은 원들을 그려 넣었을 것이었다. 내부의 원들은 일정한 간격을 가지고 조금씩 작아져 갔을 것이고 그것들의 끝부분을 남겨 둔 채 오려서 분리시킨 다음 살포시 비틀었을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조금씩 비틀며 짜 올리는 풀여치통처럼 시선을 끌어올렸다. 양파 껍질을 까듯 그것의 비밀스러운 조직을 풀어보는데 엇갈린 채 연결되어 있는 내부의 원이 앞을 막았다. ‘그것의 또 다른 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내부의 작고 단단한 원과 조금씩 방향을 틀며 다가가서 만나고 있는 외부의 원은 분명 별개의 것인 듯 보였다. 그러나 그 두 원은 틀림없이 한 몸이었다. 두 원이 어디서 어떻게 연결된 것일까? 아무리 집중해도 알 수 없었다.

바람이 없으면 그는 그것을 살짝 건드려 그것이 빙그르르 돌면서 만들어내는 기쁨과 변화무쌍함을 즐겼다. ‘그것은 이쪽저쪽 몸을 돌리며 환상적인 도형과 빛을 만들어내 보여 주다가 멈추곤 하였다.

그것이 멈추자 그가 말했다.

신비롭지? 겨자씨만한 빛이라도 닿기만 하면 숨어 있던 다른 빛들을 찾아내 빛나게 해 주잖아? 아무리 봐도 빛이 빛을 일으키는 모습은 신기하기만 해. 뿐인가? 아주 쉽고 부드럽게 몸을 뒤집어. 방향이 바뀌는 것도 뒤집히는 것도 감지하기 힘들지. 그저 부드러운 물살이 지나가는 것만 같아. 보고 있노라면 고통이 영광으로 바뀌는 일이 저렇게 순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그의 입에서 고통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뜻밖이었다. 왜 그에게는 아무 두려움도 고통도 없겠거니 여기고 있었을까? 그가 만능으로 보이는 때문일지도 몰랐다. 필요하다 싶으면 뚝딱뚝딱 무엇이고 만들어 내고 끼니때마다 시답잖은 재료로 재료 이상의 맛을 내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고통도 그에게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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