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브라더스 금융위기 - limeonbeuladeoseu geum-yung-wigi

2008년 9월 15일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칭하는 말. 리먼 파산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파산으로, 파산 보호를 신청할 당시 자산 규모가 6390억달러였다. 리먼 파산은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후유증으로 우려만 무성했던 미국발 금융위기가 현실화된 상징적인 사건이다.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금융상품에 대한 과도한 차입과 악성 부실자산으로 촉발된 리먼사태의 영향은 전세계로 급속히 확산됐다.

등록일 2020-11-03.

(서울=연합인포맥스) 권용욱 기자 = 리먼 브러더스 파산에 따른 글로벌 금융위기는 지금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환경 속에 촉발됐다.

◇ 글로벌 금융위기, 어떻게 전개됐나
위기는 지난 2007년 들어 미국 주택시장 버블이 꺼지며 불거졌다. 지난 1990년대 말부터 급속하게 상승하던 주택가격은 2006년 6월 고점에 도달한 이후 빠르게 하락세로 반전했는데, 주택가격이 하락한 데에는 미국 통화정책의 영향이 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정보기술(IT) 버블 붕괴로 인한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초저금리 정책을 단행하다 2004년 경제가 회복세로 전환하자 유동성 과잉문제를 해소하고 인플레이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2004년부터 기준금리를 단계적으로 인상했다. 2003년 6월 1% 수준이던 기준금리는 2004년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인상돼 2006년 6월 5.25%까지 올랐다.

기준금리 인상은 모기지 대출금리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모기지 대출금리 상승으로 주택대출금 상환 부담이 증가해 연체율이 급증했고, 압류 처분당하는 대출자가 급증했다. 특히, 저금리 환경에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모기지 관련 고수익 파생금융상품 주택저당증권(MBS)과 부채담보부증권(CDO) 등의 가치가 하락했고, 여기에 투자했던 대형 금융기관들의 손실이 급증하여 신용경색이 심화했다. 이에 따라 미국 금융위기는 빠른 속도로 세계 금융시장으로 확산했다.

2007년 2월 세계 시가총액 3위 은행인 HSBC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부실 채권에서 105억6천만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보았다고 발표하며 서브프라임 사태가 본격화했다. 2007년 7월에는 미국 5대 투자은행 중 하나인 베어스턴스가 헤지펀드 두 개에 대해 파산보호를 신청하며 서브프라임 사태가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베어스턴스가 직접 운영하는 두 개의 헤지펀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증권화 상품에 주로 투자했는데 대규모 투자손실로 파산 위기에 몰린 것이다.

같은 해 8월 프랑스 최대은행인 BNP파리바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손실의 우려로 자산유동화증권(ABS)에 투자한 3개 펀드의 환매와 가치산정을 일시 중단했고, 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신용경색 우려가 유럽에까지 현실화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됐다.

2008년 들어서는 MBS와 CDO 등의 신용보증을 제공하는 미국 채권 보증업체의 신용등급이 강등되어 신용경색이 확대됐다. 채권보증업체 부실은 CDS 시장으로 전이됐고, 이후 미국 모기지 보증 업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유동성 위기가 불거졌다.

미국 정부는 같은 해 9월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각각 1천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국유화하기로 하지만, 같은 달 미국 4위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보호 신청을 하고 곧이어 미국 2위 투자은행인 메릴린치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매각됐다. 대형 금융기관들의 부실과 파산으로 미국과 글로벌 증시는 재차 폭락했다.

◇ CS와 같은 점과 다른 점
지난 리먼 사태와 지금은 오랜 저금리 정책 이후의 긴축 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이라는 측면에서 유사하다. 특히, 미국 주택시장은 버블이 꺼지기 전까지 정부의 지원정책과 닷컴 버블 기간 주가 상승에 따른 부의 증대 등으로 1990년대 내내 상승했었다. 2001년 이후에는 연준의 저금리 정책으로 모기지 금리가 하락한 데다 은행의 대출기준 완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급성장하며 주택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지금의 크레디트스위스(CS) 재무 건전성 우려가 리먼 사태와는 다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씨티그룹의 키이스 호로비츠 애널리스트는 은행들이 2007년보다 더 많은 현금을 손에 쥐고 있을 뿐 아니라 신용 위험에 대비한 준비금도 많고 단기 자금에 대한 의존도도 훨씬 낮다고 설명했다.

투자전문지 배런스는 "전이효과는 없어도 오는 14일부터 시작되는 미국 은행권의 3분기 실적발표는 신중하게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스리쿠마 글로벌 스트레터지스의 코말 스리쿠마 회장은 CS가 '리먼의 순간'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무엇인가 깨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세계 중앙은행들이 기준 금리를 섣부르게 인상했고, 그 뒤로 중요한 '크레디트 이벤트'에 직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USA LEHMAN BR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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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결렬 직후 파산…미국 역사상 최대급, 전세계 금융시장 패닉

리먼브러더스(Lehman Brothers)는 독일 유대인 출신의 헨리, 에마누엘, 메이어의 리먼 세 형제가 차례로 미국에 건너가 1847년에 면화 장사로 출발한 회사다. 세 형제는 면화 사업에서 큰 돈을 벌어 금융업으로 전환했고, 회사는 2008년 파산할 때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메릴린치에 이어 뉴욕 월스트리트의 4위 투자은행으로 성장했다.

리먼브러더스는 1990년대말부터 모기지 시장에 적극 뛰어 들었다. 1997년에 콜로라도 소재 오로라론서비스(Aurora Loan Services), 2000년에는 서부지역의 BNC 모기지(BNC Mortgage LLC)를 인수해 모기지 거래를 활성화했다. 전자는 서브프라임과 프라임 사이의 알트-A(Alt-A) 등급 모기지를 거래했고, 후자는 서브프라임 등급 전문회사였다.

리먼은 두 자회사를 통해 2003년에 182억 달러, 2004년에 400억 달러, 2006년에 500억 달러를 매달 퍼부어 모기지 채권을 샀다. 이 회사는 이제 투자은행을 포기하고 모기지 전문 헤지펀드로 변신한 듯 싶었다. 등락을 거듭하는 주식시장보다 항상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는 주택금융 시장이 그들에겐 매력적이었다.

리먼은 레버리지의 명수였다. 모기지 채권을 사고 그걸 담보로 대출을 일으켜 파생상품을 사고, 또 그것으로 또다른 연동상품을 사는 방식으로 레버리지를 일으켰다. 2008년 파산 직전에 자본 225억 달러의 회사가 6,800억 달러의 자산을 형성하게 되었다. 레버리지 비율이 200331.1에서 2007년엔 31.1로 올라갔다. 빚더미 위에 거품으로 자산을 형성한 것이다. 자산가치가 3~4%만 가라앉아도 파산할 만큼 위태롭게 부채를 안고 있었다.

드디어 2006년부터 부동산시장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악성 채권에서 타격을 입기 시작했고, 2007년에 비우량등급 거래를 하던 자회사 BNC모기지를 정리했다. 2,700만 달러의 손실을 보면서도 조기에 서브프라임 부실을 털어내려 했다.

2008년 파산 직전의 뉴욕 소재 리먼브러더스 본사 /위키피디아

2008년 들어 부동산 시장이 날개 꺽인듯 떨어지고 중간등급인 알트-A 등급도 하락하자 리먼브러더스는 걷잡을수 없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해 초에 리먼은 부실자산을 털어냈어야 적어도 파산은 면했을 것이다. 그런데 경영진이 우물쭈물했다. 산용등급(tranch)이 낮은 모기지 채권이 매각되지 않아서인지, 주택가격이 바닥을 치고 반등할 것을 기대해서인지는 불명확하다. 가격이 하락할 때 손절(loss cut)을 감행할줄 아는 게 경영자의 판단능력이다. 리먼브러더스는 그 기회를 놓쳤다.

20082분기에 28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했고, 경영진들은 이 손실을 메우기 위해 60억 달러의 신주발행을 추진했다. 뉴욕 증시의 하이에나들은 리먼이 신주를 발행할 것이라 예측하고 주식을 내다던졌다. 상반기에 주가는 73%나 하락해 신주발행도 여의치 않았고, 돈을 빌려주는 곳도 없었다.

이 무렵 리먼브러더스는 한국의 산업은행(KDB)에 매각 의사를 타진했다. 당시 산업은행 민유성 총재는 리먼브러더스 인수에 적극적이었다. 822일 이 소식이 보도되면서 리먼브러더스 주가가 5% 상승했고, 그 주에 16% 올랐다. 하지만 산업은행의 리먼브러더스 인수 협상은 무산되었다. 한국 정부의 부정적 견해, 산업은행의 자금 조달 어려움 등이 주원인이었다는 평가다. 그후 리먼브러더스의 주가는 다시 곤두박질쳤다.

이때 산업은행이 리먼브러더스를 인수했으면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답은 99일 산업은행이 인수를 포기한 직후 리먼브러더스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면 명확하게 나타난다.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본사 /위키피디아

리먼브러더스는 한국 국영기업의 포기 이후 닷새만에 파산했다.

산업은행과의 협상 결렬후 리먼은 미국의 펀드회사 누버거버먼(Neuberger Berman)과 매각 협상을 벌였지만, 실패했다. 다급해진 리먼브러더스는 영국의 바클레이즈, 미국의 뱅크오브어메리카(BOA)에 손을 내밀어 가져가라고 했지만 영국의 금융당국은 손사래를 쳤고, BOA도 거절했다.

두 은행의 입장에선 리먼브러더스가 살아있을 때 인수하는 것보다 파산한 후 헐값으로 사는 방식(fire sale)이 훨씬 쌀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당시 한국산업은행이 국제금융판에서 노는 거간꾼들의 트릭에까지 생각이 미쳤는지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리먼은 연방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연방정부 내에는 리먼브러더스를 위해서가 아니라, 리먼브러더스의 채무연결구조 때문에 초래할 금융시장 붕괴를 저지하기 위해 구제금융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헨리 폴슨(Henry Paulson) 재무장관은 2008년 초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금융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을 예측하고 5,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기금을 조달하는 긴급경제안정화법안(Emergency Economic Stabilization Act)을 추진했다. 벤 버냉키 Fed 의장도 동의했다. 하지만 법안이 하원에서 막혀 버렸다. 하원은 세금으로 부도덕한 월스트리트 투기꾼을 보상할수 없다면서 법안 심사를 거부해 버렸다.

남은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월스트리트의 투자회사에 리먼브러더스의 부실을 공동으로 떠안게 하는 것이었다. 10년전인 1998년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파산 위기 때에 투자은행들에게 자금을 배당해 그 돈으로 구제금융에 투입한 적이 있었다.

912일은 금요일이었다. 이날 뉴욕 연준(Fed)의 티모시 가이스너(Timothy F. Geithner) 총재가 투자은행 총수들을 불러 모았다. 가이스너는 은행장들의 팔을 비틀었지만 그들은 연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일요일인 914, 영국 바클레이스와의 딜이 깨졌다는 통보가 왔다. 이제는 파산하는 길 밖에 없었다. 그날 저녁, 리먼브러더스는 파산을 선언했다. 그 소식을 듣고 리먼브러더스의 직원들은 짐을 챙겨 회사를 떠났다.

다음날인 915일 리먼브러더스는 뉴욕지방법원에 챕터11(chapter11) 파산보호신청서를 제출했다.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은 미국 역사상 최대의 파산이었다. 자산규모만 6,000억 달러였다. 미국 중앙은행은 가장 양호한 예금은행인 JP모건-체이스에 긴급수혈 자금을 리먼브러더스에게 투입할 것을 요청했다. 20세기를 주름잡던 JP모건-체이스는 915870억 달러, 16510억 달러 등 도합 1,380억 달러를 연준(Fed)의 지급보증으로 투약했다.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기 때문에 연방정부의 자금을 쓸수 없었고 일단 은행에서 예금자의 예치금을 투입한 것이다.

2007~2008 금융위기 시 뉴욕증시 다우존스 지수 추이 /위키피디아

앞서 97일 연방정부는 준공영기관으로 운영되던 페니매(Fannie Mae)와 프레디맥(Freddie Mac)을 국영화했다. 페니매와 프레디맥은 위기가 최고조로 달했을 때 알트-A형 채권을 3,247억 달러, 1,970억 달러나 각각 안고 있었다. 알트-A 채권은 차입자의 채무상태에 대해 거의 아무런 증빙을 요구하지 않은 담보대출로, 두 기관이 전체 1조 달러 규모의 알트-A 채권 가운데 절반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최하위등급인 서브프라임에서 시작된 채권 부실이 중급 단계로 이전해 공공기관마저 부도 위기에 처할 운명이었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민간회사는 죽더라도 공공기관은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방주택금융청(FHFA, Federal Housing Finance Agency)의 결단에 재무부와 중앙은행이 동의함으로써 민간자본시장의 위축이 공공시장으로 전이하는 것은 일단 막아 놨다.

하지만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은 미국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투자자들은 패닉상태에 빠져 모기지란 이름만 들어가도 모두 내다 팔았다. 예금자는 은행으로 달려가 예금을 뺐다. 최대증권사 메릴린치는 뱅크오브어메리카에 인수되고,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예금은행의 규제가 적용되었다. 본격적은 금융쓰나미가 뉴욕은 물론 전세계를 뒤엎기 시작했다.

<참고자료>

Wikipedia, Lehman Brothers

Wikipedia, Bankruptcy of Lehman Brothers

Wikipedia, Global financial crisis in September 2008

미국이 파산하는 날’, 담비사 모요, 중앙북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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