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 논술 - dogdoga uli ttang-in iyu nonsul

너무나도 당연한 우리나라의 영토 독도, 하지만 독도를 향한 일본의 도발은 끊이질 않고 있다. 2016년 2월 22일, 올해도 일본은 자칭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진행했다. 일본은 너무도 당연한 대한민국 영토를 분쟁지역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펼치고 있고, 터무니없는 몇 가지 주장을 가지고 세계 여론을 왜곡된 방향으로 형성하려 하고 있다.  

독도.(출처=사이버 독도)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은 10월 25일 ‘독도의 날’을 하루 앞둔 24일 우리나라의 독도영토주권을 명기한 1912년판 일본 중학생들을 위한 교과용 지리부도 ‘최근 일본지도’와 아사히그래프 45권 1호 등 한반도와 부속 도서, 일본을 표기한 지도 2점을 확보해 일반에 처음 내놓았다. 

독도가 우리 땅임이 당연하다고 여기기만 해선 안된다. 이제 우리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확히 알아야 한다. ‘독도의 날’을 맞아

독도가 우리 땅인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 근거와 일본의 왜곡된 주장, 그에 대한 반박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역사적 증거 

‘신증동국여지승람’(출처=외교부)
‘동국문헌비고’의 독도 언급부분.(출처=외교부)

512년,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울릉도)을 점령했을 때부터 독도는 한국 영토로 인식돼왔다. 우리나라의 많은 정부 문헌을 보면 독도에 관한 많은 기록을 찾을 수 있다.『세종실록』 「지리지」(1454년) 『신증동국여지승람』 (1531년) 『동국문헌비고』 (1770년) 『만기요람』 (1808년) 『증보문헌비고』(1908년) 등 모두 독도를 언급하고 있으며, 이는 옛날부터 독도를 우리 영토로 인식하고 통치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지리적 증거

독도에서 가장 가까운 우리나라의 울릉도까지의 거리는 약 87.4km인 반면에 일본 오키섬과의 거리는 157.5km나 된다. 또한 맑은 날에는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일 정도이다. 실효적 지배도 대한민국이 하고 있으니 지리적으로는 말할 여지도 없이 우리 땅이다.

국제법적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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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PIN1 677호를 보면 독도가 한국영토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출처=외교부)

1900년, ‘독도는 울릉군에 속한 땅이므로 울릉군은 울릉도와 석도(독도)를 다스린다’는 내용을 담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발표로 조선의 독도 영유권을 국제적으로 공표했다. 또한, 1946년 1월 연합국 최고사령관 각서  『일본의 정의』를 통해 독도를 일본 영토에서 제외했고, 6월 발표된 연합국최고사령관 각서 제1033호도 일본의 선박 및 일본 국민의 독도 또는 독도 주변 12해리 이내 접근을 금지했다.

발표 당시, 연합국의 결정을 수정하려면 다른 지령이나 공포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였으나 이후 다른 지령이나 협정이 없었으므로 국제법적으로도 대한민국이 독도 영유권을 갖고 있다. 게다가, 눈에 보이고 주민이 일정하게 생활 및 경제활동을 한 공간은 국제법적으로 부속도서로 인정하고 있는데 독도는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기도 하다.

자, 이제 일본이 독도가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세 가지 이유를 살펴보자.

1. 일본은 자신들이 1600년대부터 독도를 먼저 발견하고 이용해 왔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의 독도 언급부분.(출처=외교부)

우리나라는 512년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과『세종실록』「지리지」(1454년)만 봐도 이보다 먼저 독도를 우리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일본에서도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인정하는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4가지만 살펴보자. 

‘은주시청합기’는 시마네현 동부 지방 관료였던 사이토 도요노부가 저술한 책이다.(출처=외교부)


독도에 관해 기술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일본 문헌의 하나인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1667년) 를 보면 일본의 서북쪽 경계는 오키섬이며, 독도는 일본의 영토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고지도중 하나인 ‘개정일본여지로 정전도’(改正日本輿地路程全圖)(출처=외교부)

 
일본 정부가 자국의 독도 영유권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개정일본여지로 정전도(改正日本輿地路程全圖)」(1779년 초판)를 봐도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1693년, 울릉도를 둘러싸고 조선과의 외교분쟁이 발생하자, 1695년 12월 24일 일본 에도 막부는 돗토리 번(鳥取藩)에 문서를 보내 울릉도가 돗토리 번에 속하는지와 돗토리 번에 속하는 다른 섬은 없는지 문의했다. 이에 대해 돗토리 번은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님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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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정관 지령(왼쪽)과 울릉도 약도에 그려진 독도.(출처=외교부)

메이지 시기, 일본 내무성은 토지 기록부 편찬사업에 울릉도와 독도를 포함시켜야 하는지에 관해 당시 일본의 최고 행정기관인 태정관(太政官)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1877년 3월 태정관은 에도 막부와 조선 정부 간 교섭 결과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 소속이 아님이 확인되었다고 판단하고, ‘다케시마(울릉도) 외 일도(一島: 독도)의 건에 대해 본방(本邦, 일본)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명심할 것’이라는 지시를 내무성에 내리는데, 이를 「태정관 지령」이라 한다.

2. 독도는 주인이 없는 땅이며, 따라서 1905년 독도를 일본에 편입시킨 日 내각회 결정이 정당하다? 

대한민국 칙령 41호에 언급된 독도.(출처=외교부)

 
이미 1900년에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발표로 조선의 독도 영유권을 국제적으로 공표했다. 또한 512년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정벌했을 때부터 독도는 우리 땅으로 인식되어왔고, 위에 언급했던 다양한 고문서들이 이를 증명한다.

간혹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정벌할 때 우산국에 독도를 편입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울릉도에서 독도가 육안으로도 보이는데 우산국에서 독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리 없고, 이사부의 우산국 점령 후 우산국은 매년 신라에 토산물 조공을 바쳤다.

‘우산도에서 몇 가지 약초와 함께 수우피 등을 바쳤다’ 라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독도가 우산도(울릉도)의 생활권이었다는 증거가 된다. 수우피는 당시 바다사자, 물개 가죽을 뜻하며 바다사자와 물개의 주 거주지는 독도이기 때문이다.

3.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독도가 직접적으로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독도가 일본이 권리를 포기하는 영토에 포함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을 공식적으로 종료시킨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라는 조항이 있다. 이는 한국의 3000여 개의 도서 가운데 대표적인 큰 섬들을 예시적으로 적은 것이다. 게다가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 종전 후 연합국 사령관의 각서를 봤을 때도 일본에서 분리되는 한국의 영토에는 당연히 독도가 포함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독도는 명백한 대한민국의 영토이다.(출처=외교부)

이처럼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주장은 너무도 당연하기에 그 근거를 일일이 말하기엔 입이 아플 정도이다. 반면에 일본의 주장은 이토록 부실하고 터무니없으니 이런 근거를 가지고 혹여 주위에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헛소리를 하는 이가 있다면 조목조목 반박해주자.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이니까 말이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홍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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