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촌 결혼 가능 - 6chon gyeolhon ganeung

김연식 논설실장

결혼문화가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 가운데 근친 간 결혼을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근친 간 결혼은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최근 제도권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최근 8촌 이내 결혼을 금지한 민법조항을 두고 공개변론을 실시했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람은 2016년 6촌과 결혼했으나 결혼 3개월 만에 파경을 맞았다.

6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배우자가 결혼무효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싶은 그는 1심에서 혼인무효판결을 받고 2심에 항소하는 도중 헌법재판소에 소원을 청구했다. 물론 헌법소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예전에도 이러한 논란이 있었지만 헌재는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8촌 이내의 결혼을 금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해 기각했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라 양측의 공방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현행 민법 제809조는 근친혼 등의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데 제1항은 8촌 이내의 혈족(친 양자의 입양 전의 혈족을 포함한다)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고 규정했다. 제2항과 3항에서는 혈족의 배우자와 친인척 등의 관계에 있는 사람도 일정한 촌수 내에는 결혼하지 못한다고 규정했다. 과거에는 동성동본의 결혼을 금지했지만 8촌 이내로 완화된 것은 시대적 흐름이 많이 반영됐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과거 신라와 고려시대 등에서는 왕족은 물론 친인척간 결혼이 가능했다. 신라에서는 결혼을 하게 되면 배우자 중 어느 한사람의 계급에 따라 신분이 상승되는 관례가 있었다. 신분제도가 철저했던 신라에서는 진골 성골 계급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윗세대부터 계급 간 결혼을 권장했다. 신라경종왕의 경우 사촌 여동생과 결혼하고 성골 진골출신은 삼촌 고모와 결혼하기도 했다.

지금의 결혼문화로 볼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신라시대에서는 가능했던 일이다. 이 같은 일은 고려시대에도 이어졌으나 신분제도가 완화되면서 고려 문종 때는 사촌간의 결혼에서 출생한 자녀들은 관직에 등용하는 자체가 법으로 금지되기도 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면서 근친 간 결혼 문화는 완전히 금지됐다.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존중하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근친은 물론 동성 간 결혼도 철저하게 막았던 것이다.

2019년 우리나라 결혼건수는 통계가 작성된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결혼건수는 23만9159건으로 전년보다 무려 7.2% 줄었다. 올해는 코로나 여파로 더욱 감소할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혼인 건수는 베이비붐 세대가 결혼을 하던 1980년부터 1997년까지 한해 40만 쌍을 넘었다. 이후 매년 감소해 지금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발전됐다. 결혼연령도 점점 고령화 되어 가는 추세다.

지난해 초혼 남성의 평균 연령은 33.4세, 여성은 30.6세로 20년 전보다 각각 4.3세씩 상승했다. 신랑신부가 늙어가면서 가임기간에 있는 여성들의 출산도 점점 줄어들어 현재는 0.8명대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 때문에 인구감소는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특히나 결혼에 비해 이혼건수도 계속 늘고 있어 지난해 이혼은 11만800건으로 전년 대비 2% 늘었다. 이혼연령도 남자는 48.7세, 여자 45.3세로 집계돼 중년으로 넘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모르지만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민법상 친척의 범위를 8촌까지로 하고 있지만 자주 왕래하는 정도에 따라 8촌이 사촌보다 더 가깝게 지내는 경우도 많다. 반대로 사촌이지만 8촌보다 더 먼 친척으로 지내는 경우도 있다. 앞으로 형제지간이 없어지면서 사촌이라는 단어가 생소해질 수 있다.

자녀를 한명만 낳는다고 했을 때 사촌이 생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추세를 이유로 6촌간 결혼을 허용하는 것은 좀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행복추구권과 자유로운 인권을 위해 6촌 이내의 친척에 대해 결혼을 주장할 수 있지만 단순이 인권만을 생각할 문제는 아닌 듯싶다. 그런 주장이라면 8촌과 6촌 4촌 등의 개념이 왜 필요하겠는가? 인간의 본능적인 행복추구권은 인정하지만 최소한의 이성은 제도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당사자는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은 3촌 이상의 방계혈족 사이의 혼인을 허용한다고 주장하며 우리나라의 민법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은 4촌 이상의 방계혈족 사이의 혼인을 허용하고 있다. 방계혈족이라는 것은 직계 존속이 아니라 형제지간에 있는 혈족이다.

헌재의 최종 결정이 어떻게 내려질지는 모르겠지만 6촌간 혼인을 법적으로 허용한다는 것은 우리의 가족사회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 문제가 오래전부터 논의는 됐지만 사회가 아무리 변했다 하더라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안 하는 게 도리인 듯하다. 헌재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전국매일신문] 김연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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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당신의 8촌은 누구입니까?”

 누군가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금방 “○○○입니다”라고 즉석에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8촌 이내 혈족의 결혼을 금지하고, 혼인한 두 사람 사이가 8촌 이내로 밝혀지면 그 결혼은 무효로 하는 민법 제809조등이 “혼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이 들어와 헌법재판소가 공개 변론에 나섰다.

6촌인데 혼인신고, 무효…“결혼의 자유 침해”

헌재에 심판을 청구한 A씨는 2016년 B씨와 혼인신고를 했다. 3개월 뒤 B씨가 “A씨와 나는 6촌 관계”라며 혼인 무효소송을 냈는데 가정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두 사람의 결혼은 무효가 됐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A씨는 항소하면서 8촌 이내 결혼을 금지한 민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2018년 헌법소원을 청구한다. 물론 A씨의 경우가 아주 보편적인 경우는 아닐 수 있다. 변론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관계에 따르면 A씨는 미국 시민권자인데 미국에서는 3촌 이내의 결혼만 금지한다. 즉 외국에선 인정받는 두 사람의 관계가 한국에서 문제가 되는 셈이다. 헌재 관계자는 “12일 변론에서는 당사자들의 개인 사정보다는 현시대와 민법 조항의 관계가 중점적으로 다뤄졌다”고 설명했다.

시대는 변했을까

여러분의 8촌은 누구입니까?. 간략히 그린 아버지 쪽 촌수 관계. 그래픽=차준홍 기자

A씨 측 주장대로 8촌 이내 혼인 금지는 ‘과도한 제한’일까. ‘나’를 기준으로 아버지 쪽 촌수관계만 따져보면 나와 같은 대에 있는 8촌은 고조할아버지를 공통 조상으로 한 자손이다. 어머니 쪽도 똑같이 8촌 이내의 범위에서 결혼이 금지된다. 간소화된 그림이 아니라 현실 가계도를 펼쳐놓으면 8촌 관계는 훨씬 복잡할 수도,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A씨 측을 대리하는 장샛별 변호사(법률사무소 명전)는 “도시화,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친족 관념이 약화한 현시점에서 8촌 이내 결혼 금지를 법으로 강제할만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8촌 이내 혼인금지’를 정한 민법 809조는 2005년 민법이 바뀌면서 생겼다. 그 전에는 동성동본(同姓同本) 사이 결혼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었다. 1997년 헌재가 이 조항이 헌법불합치라고 결정하며 민법을 바꿔야 하자 8촌 이내 혈족으로 금지 범위를 정했다는 것이다. A씨측은 “당시에도 ‘8촌 이내 혼인금지’가 타당한 범위인지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며 “지금이라도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공개변론에서 가장 많은 질문을 한 이선애 재판관은 시대상의 변화가 실제로 있는지 A씨 측에 물었다. 이 재판관은 “누군가가 청구했기 때문에 (판단해 볼) 시점이 됐다는 건가 아니면 공동체 안에서 판단할 여건이 변화했다는 건가”라고 질의했다.

"사회가 많이 변했다"는 A씨측과 달리 법무부는 “구체적인 입법 논의 등 변화의 필요성은 없었다”는 주장을 폈다. 2005년 당시 이 조항을 새로 만들 때 국민의 친족관념이나 법감정을 반영한 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법무부를 대리한 류태경 변호사는 “민법 제777조 1호가 8촌 이내 혈족을 친족으로 규정하고 있고 이를 기초로 한 혼인 금지 범위는 타당하다”며 “한국은 여전히 친족 관념이 강하고 친족 관계를 중시하는 문화가 깊이 뿌리내린 지역도 적지 않다”고 반박했다.

해외보다 규제가 과도하다?…'오만과 편견'도 나온 변론

12일 열린 헌법재판소의 공개변론에서 이선애 재판관이 양측 대리인들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영상 캡쳐]

해외의 사례와 비교하며 한국의 ‘8촌 이내 결혼 금지’가 과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A씨 측은 “독일ㆍ스위스ㆍ오스트리아는 3촌 이상 방계 혈족이면 결혼을 할 수 있고, 미국ㆍ영국ㆍ프랑스ㆍ이탈리아ㆍ일본은 4촌 이상 방계 혈족 사이면 혼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A씨 측 참고인으로 나온 현소혜 교수(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는 “나라마다 사회ㆍ문화가 달라 제도가 국가마다 같을 필요는 없다”면서도 “과거에는 한국의 가족 기능과 외국의 가족 기능이 현저한 차이가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도 서구의 가족개념과 매우 비슷해지고 있기 때문에 친족 개념도 그렇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법무부 측 참고인으로 선 서종희 교수(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의 내용을 들며 각국의 혼인 금지의 범위는 그 나라의 제도와 복합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소설 속 베넷 가에는 자손이 여자뿐인데 당시 상속은 남자에게만 돼 사촌 남성(콜린스)과 딸의 혼인을 논하는 내용이 나온다”고 말했다. 소설 속에서 베넷가의 유산을 상속받게 되는 콜린스는 베넷가에 보내는 편지로 "상속에 대해 보상을 하겠다"며 딸과의 결혼 의사를 넌지시 알린다. 베넷 부인은 콜린스와의 대화를 통해 딸을 상속자에게 시집보낼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서 교수는 이를 두고 “사촌 간 혼인을 금지하면 딸에게 상속 유지가 불가능하니 서구에서 ‘혼인 금지 범위’를 넓히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근친혼 금지 제도는 상속제도나 신분 질서 유지 등 다양한 목적이 고려된 것이기 때문에 한국과 단순비교하긴 어렵고, 문화적ㆍ법제적 관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8촌 이내 결혼, 현실적 검증은?

이날 변론에서는 실제 혼인신고 시점에 서로가 8촌임을 쉽게 알 수 없다는 현실적 관점의 주장도 나왔다. A씨 측 참고인인 현소혜 교수는 “누군가가 나의 8촌 이내 혈족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며 특히 호주제가 폐지된 지금은 더 쉽지 않다고 했다. 과거에는 호적ㆍ제적등본으로 4촌ㆍ6촌을 비교적 쉽게 알 수 있었다면 지금은 개인별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하는 것으로 제도가 바뀐 탓이다. 현 교수는 “누군가가 8촌이라는 걸 증명하려면 부모, 조부모, 증조부, 고조부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모두 뗀 다음 세대별로 추가적인 가족관계증명서를 확인해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했다.

혼인신고서에는 근친혼인지 아닌지를 당사자가 체크하는 란이 있다.

실제 혼인신고를 할 때도 “혼인당사자들이 8촌 이내의 혈족 사이에 해당합니까?”라는 서식에 "네" 또는 "아니오"로 답을 받는 정도에서 그친다. A씨측 장샛별 변호사는 “만약 두 사람이 서로 8촌 이내인 걸 모르고 혼인신고를 했다면 한쪽 당사자나 4촌 이내 친족이 언제든 ‘혼인 무효 소송’을 낼 수 있다”며 “두 사람 사이 자녀가 있었다면 혼인 외 자녀가 되고, 어떤 경우엔 축출 이혼도 가능하다”고 우려했다.

반면 법무부 측 참고인 서종희 교수는 “모든 입법에는 예측 못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데 부작용이 바로 그 조문 자체의 위헌성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고 반박했다. 현 제도에서 혼인신고 시 8촌 이내 여부를 제도적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것은 시스템 정비 문제로 해결될 문제라는 취지다. 혼인 외 자녀·축출 이혼 문제에 대해서도 서 교수는 “세계적으로 예외적인 입법을 통해 사실혼 상태를 보호하거나 혼인외 출생자를 보호하는 법리가 있는데, 이 예외 때문에 원칙을 바꾸자는 건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헌재는 양측 주장을 종합해 살펴본 뒤 결론을 내겠다고 알렸다.

이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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